[box type=”note”]초등학교 3학년인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척추에 생긴 소아암으로 하반신마비로 휠체어를 타지만 언제나 씩씩한 아이입니다. 지민이는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이지만 집과 학교 울타리를 넘는 순간 사회는 지민이의 휠체어를 막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지민이가 지하철이 닿는 곳을 다니면서 교통약자와 휠체어 탄 사람들에게 불편한 곳이 있다면 가감 없이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뜨길 희망합니다.
이 기사는 EBS육아학교와 공동 기획한 연재물입니다. 지민이가 지하철로 가볼 만한 곳을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지민이가 추천받은 장소를 대중교통으로 가 본 후 가감 없는 소감을 전달 드리겠습니다.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프로젝트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펀딩기금은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만드는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필자)
- 엄마는 지민이 덕분에 남들보다 눈을 두 개 더 갖게 됐어
- “엘리베이터는 내 다리야”
- 삼성역의 수퍼맨을 찾습니다
- “엄마, 휠체어 리프트는 불편해”
- 현장학습이 불편한 이유
- → 휠체어 타고 제주올레길 가다
- “휠체어 위한 지하철 지도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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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 씨, 지민이 낳고 나서 전화해서 한 말 기억나?”
“뭔데요?”
“안 기자님, 저 로또 맞았어요, 그랬잖아.”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소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런 확률은 10만분의 1, 로또 확률이죠. 당시 지민이 담당 레지던트가 미국과 일본 사례를 뒤져 비슷한 치료사례를 4건 찾았다는 말이 생생합니다. 당시 이 고백을 들었던, 시사저널 안은주 기자님은 소아암을 앓는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밖에 없는 의료현실을 취재해 주셨습니다.
그 후 10년… 지옥 같던 ‘로또의 시간’이 기어코 흘렀습니다. 그 사이 지민이도, 안 기자님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동안 지민이는 힘든 치료 후 생명을 만들어 냈습니다. 안은주 기자님은 고민 끝에 기자 생활을 끝내고 제주에 내려가 ‘제주올레길’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지금은 제주올레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사무국장 자리에 계십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휠체어 탄 지민이가 혼자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있는 세상을 상상했고 그 과정에서 안 기자님이 만든 제주올레 ‘휠체어 길’이 떠오른 것은 당연했습니다.
제주올레 휠체어 구간은 제주올레 23개 코스 중 10개 코스 일부이며, 구간별 길이는 최단 1km에서 최장 5.5km입니다. 원칙적으로 제주올레에는 자전거를 포함해 어떠한 탈 것도 들어올 수 없는데 장애인들의 다리인 휠체어만은 제주올레 길에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하네요. 휠체어 구간 정보는 제주 올레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민이와 함께 제주로 향했습니다.
지민이와 함께 제주올레 6길을 걷다
어제는 춥고 비가 왔지만, 오늘 아침은 전날과 달리 화창하게 갰습니다. 지민이가 박수를 칩니다.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검은 모래 해변 옆을 지납니다. 지민이가 이날 온 올레길은 서귀포의 명물 쇠소깍에서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로 이어지는 제주올레 6길 중, 휠체어코스인 쇠소깍-보목포구 코스 초입입니다.
올레길 초입부터 제주올레의 마스코트 ‘간세’ 위에 휠체어 코스를 나타내는 예쁜 표시가 있습니다. 모자 쓰고 가방을 멘 역동적인 휠체어 표식입니다. 지민이 맘에도 쏙 들었나 봅니다.
“엄마! 모자 쓰고 가방 멘 휠체어 장애인이니까 왠지 여행을 많이 하는 장애인 같아!”
바닷가 길을 지나 올레길을 나타내는 표식을 찾았습니다. 빨간, 파란색 리본. 올레꾼들이 묶어 놓은 올레길 표식입니다.
올레꾼을 위한 공공화장실, ‘열린화장실’이란 푯말 옆에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가 있습니다. 이렇게 경사길을 완만하게 만들어서 수동휠체어로도 가기 쉽게 만든 화장실은 서울에서도 찾기 드뭅니다.
수동휠체어로 오기는 조금 어려운 오르막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검은 돌담을 잡고 지민이 혼자 가보라고 합니다. 저 위쪽에 좀 더 비탈진 곳이 있어 아무래도 지민이 혼자는 좀 무리일 것 같습니다.
휠체어 길용 오르막길에는 손잡이를 설치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수동휠체어로는 오기 힘든 길은 따로 표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휠체어 올레길인데도 혼자 오긴 어렵겠다는 말에 지민이가 “재미없어”라고 합니다.
“지민아, 재미로 오는 것 아니야. 이런 거(바다 옆) 보면서 가는 거야.”
은빛 바다에 햇빛이 부딪혀 아름답게 빛납니다. 언젠가는 지민이도 이런 바다를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되겠지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입니다. 지민이에게 혼자 내리막길을 가 보라고 하니 신이 나서 혼자 씽씽 내려갑니다. 인도와 차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올레길의 특성상 차가 오는 경우도 있어 다소 위험하기도 했지만, 보호자가 동행하면 휠체어 길은 충분히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제주올레 홈페이지에서 상-중-하로 난이도를 구분하고 ‘유동차량이 많다’ 등 길의 특성을 잘 적어 놔서 가기 전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날은 시간상 전체 휠체어 올레길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더 걷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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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안은주 사무국장 인터뷰
이날 올레길을 걸은 후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님을 만나 함께 휠체어 올레길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평범엄마: 올레길 휠체어 코스를 지민이와 다녀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휠체어 장애인들이 가기 쉬운 길을 추천하신다면?
안은주 사무국장: 8코스가 무난한 편입니다. 약간 오르막이 있지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비교적 무난하고요. 올레길을 휠체어 전용 코스로 처음에 디자인한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새로 조성하자면 비용 등의 이슈도 있고, 너무 손을 대면 자연이 훼손될 수도 있으므로 일단 만들어진 올레길에 턱을 없애는 등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개선 중입니다.
평: 처음 휠체어길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안: (장애인분께서) 혹시 휠체어로 갈 수 있느냐고 제주올레로 문의가 왔어요. 이때 ‘아 신경을 못 썼구나’ 싶어서 서귀포·제주시와 협의하고, 기존 코스 중에 정비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지체장애인협회와 함께 2011년 6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오픈하게 됐어요.
평: 휠체어길 만들 때 어떤 준비과정을 거쳤는지요?
안: 먼저 저희 제주올레 탐사팀이 루트 점검을 하고, 적절한 코스는 장애인협회 분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실제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지. 뭘 보완해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보강해서 표식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올레길 표식은 파랑과 오렌지색인데, 올레길 휠체어뿐 아니라 색각 장애인도 고려해서 색각과 상관없이 볼 수 있는 색인 노란색 표식도 추가했어요.
평: 장애인협회랑 함께 일한 게 인상적이네요.
안: 이용자 눈높이와 편의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당연히 그분들의 경험을 통해 알아야 했던 것이죠.
평: 제주올레길에 모자 쓰고 달리는 휠체어 표식을 지민이가 아주 좋아했어요.
안: 기존 장애인표식을 쓰기보다는, 제주올레만의 장애인표식을 통해 오시는 분들이 기분 좋게 다닐 수 있도록 디자인팀에서 제작했습니다.
[box type=”note”]휠체어 전용 길을 조성하려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드니, 일단 있는 길이라도 개선하여 장애인 접근 방법을 만들어 냈다는 게 좋은 접근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민이와 서울 시내 지하철을 다녀봤는데,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는데 안내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는 것이 아쉬웠거든요.[/box]
평: 앞으로 제주올레 휠체어 길을 더 정비할 계획은 있으신지요?
안: 코스는 지속해서 정비할 예정이에요. 올레길은 사람들이 사는 곳 주변에 만들어진 것이라, 표식이 날아가기도 하고 없던 턱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청각 장애인을 위한 오디오가이드북을 내기도 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이 이용하는 방법을 더욱 보완할 계획입니다.
올레길 전체에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한 의미의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하는 게 원칙인데, 올레길의 원래 취지가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니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게 중요하지요. 장애인들도 올레길을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주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box type=”note”]장애인들도 즐거운 경험을 주자는 인식이 반가웠습니다. 비장애인에 준하는 경험을 주는 노력이란 말이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어차피 휠체어론 못 오니 처음부터 배제한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즐길 수 있게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비장애인으로써 이런 점을 알지 못했는데 지민이가 장애를 가지면서 휠체어를 밀어주다 보니 비로소 알 수 있었으니까요.[/box]
평: 일본에 다녀오셨다는데?
안: 규슈올레 전반적인 컨설팅을 제주올레에서 해 주고 있어요. 현재 규슈올레는 17개까지 오픈했고 앞으로 30개까지 만들 계획이랍니다. 이번에 오픈한 코스는 미나미시마바라 코스인데 3년 동안 응모해 떨어졌다가 이번에 합격했어요. 너무 아스팔트가 많아서 걷기에 적합하지 않은 관계로 3년 동안 안되었는데 이번에 길을 오픈하게 되어 주민들이 매우 기뻐 울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평: 규슈올레에도 장애인용 휠체어 길이 있는지?
안: 아직 장애인 길은 없어요. 그러나 규슈올레가 전반적으로 제주올레를 계속 벤치마킹하고 있는 중인 데다가, 제주올레도 오픈 4년 만에 휠체어코스를 만든 것이니, 아마 규슈도 시간이 지나면 휠체어 코스가 생기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평: 감사합니다. 휠체어 길이 더 정비된다고 하니 지민이와 제주 자주 올게요!
안: 지민이가 올레길 휠체어 길을 완주해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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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국장님과의 짧은 인터뷰 후, 몇 가지를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첫째, 시설을 처음 지을 때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을 염두에 두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기준과 법령을 통해 비장애인들에게도 시설 건축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어야 한다. 법령 없이 지어진 기존 시설을 장애인을 위해 후속 보완할 때는 실 이용자인 장애인의 조언이 필요하다.
둘째,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기존 시설을 교통약자를 위해 개선하려는 사람의 노력은 더 중요하다.
셋째, 개선 후에는 지어진 시설을 장애인들이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안내가 필요하다.
제주올레길… 휠체어 길도 완주하고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요.
이제 10살이 된 지민이는, 여전히 엄마의 ‘로또’입니다. 매일 다른 시각으로, 다른 세상을 보고 알게 해주는,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간절히 원하고 꿈꾸고 행동할 수 있게 해 주는 마음의 로또입니다.
그동안 지민이의 스토리를 보시고 많은 분이 연락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편에서는 지민이가 꿈꾸는, ‘휠체어 장애인도 염려 없이 여행하고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구체적인 실행에 함께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