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오송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러 삼성서울병원 측의 뒤늦은 정보 공개와 방역 관리 소홀 등의 책임을 물으며 질타했다.
박 대통령은 송재훈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부 좀 투명하게 공개됐으면 한다.”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주시기 바란다.”
“메르스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 주시기를 바란다.”
이에 대해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보건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최대한 노력을 다 해서 하루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잘 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보수적으로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잘 해주기시 바랍니다.”
이 둘의 대화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박근혜: 투명하게 공개하라. 확실하게 방역하라. 책임지고 하라.
- 송재훈: 대통령과 국민께 죄송하다. 하루빨리 끝내겠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상황이다. 그 이유를 열거해보자.
1. 대통령의 부적절한 상황 인식
진료는 병원과 의사의 몫이고, 방역은 국가의 몫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진료의 문제가 아니라 방역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고, 진료가 뚫린 것이 아니라 방역이 뚫린 것이다. 따라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그런데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민간의료기관장을 불러 방역이 뚫린 것에 대해 질타했다.
대통령이 지적한 세 가지 요구사항, 즉 ‘정보의 투명 공개’, ‘확실한 방역’, ‘방역에 책임지는 것’ 모두 정부의 역할이고 의무다. 정부가 해야 했을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민간의료기관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방역은 국가의 몫’이라는 사실을 대통령이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2. 책임 떠넘기기와 의료인의 사기 저하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정부는 책임을 의료진들에게 돌릴 것이다.’
메르스 사태 초기에 정부가 연속되는 오류를 범하자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송재훈 원장이 대통령에게 머리 숙인 사진은 그 우려가 현실화했음을 의미한다. 전국 많은 의료진이 실망하고, 사기가 크게 저하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메르스 검사를 두 차례나 거부하고, 격리 범위를 축소하는 등 초동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부가 사태를 키워온 당사자다. 정부는 국민의 거센 비판과 불신을 자초했다.
반면 민간의료기관들은 정부가 막지 못한 방역의 구멍을 막아내느라 매일 땀 흘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책임의 당사자인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이라는 민간의료기관장을 불러 질타를 한다. 정부가 자기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그 책임을 민간의료기관에 떠넘기려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현장 의료진을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좌절시키고 있는 셈이다.
3.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메르스 사태를 맞은 지금,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다. 아니 그 이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회복은 정부가 진정한 사과를 할 때 시작한다. 정부의 진정한 사과만이 국민으로 하여금 ‘이제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고, 그래야 국민이 정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과는 민간의료기관장이 정부 대표자에게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 앞에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는커녕 TV 카메라 앞에서 민간의료기관장을 불러 질타하는 방식을 택했다. 솔직한 인정과 사과 없이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오늘 오전 취임 후 첫날을 맞은 황교안 총리가 ‘국민께 송구하다’고 짧게 사과했지만, 그것으로 하루 전 대통령이 민간의료기관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4. 만나지 말아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송재훈 원장을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셋 중 하나다.
- 송재훈 원장을 불러 위로하고 격려한다면 ‘삼성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 정부 실책에 대해 사과한다면 ‘대통령이 삼성에 무릎을 꿇었다’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 이번처럼 질책하고 사과받으면 ‘국가 책임을 민간의료기관에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만나지 않았어야 했던 것이다.
다음날 삼성서울병원에만 ‘원격진료’ 허용
그리고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난 바로 다음 날,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원격진료가 무엇인가.
핸드폰으로 진료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안전성을 점검하지도 않고 밀어붙이다가 지난해 의사 총파업까지 불러일으켜 의료대란의 직전 상황까지 몰고 갔던 것이 바로 원격진료가 아니었던가. 당시 원격진료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당사자는 대통령과 삼성이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난 다음 날, 현재 불법인 원격진료를 한시적으로 삼성서울병원에 허용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송재훈 원장이 사과하러 간 것이 아니라 감사인사를 하러 간 것.’
그러자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비아냥과 원망이 쏟아졌다. 원격진료를 허용하기 위해 명분 쌓기용으로 부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대통령은 애초에 송재훈 원장을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
현재 메르스는 완료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다.
정부는 6월 안에 메르스를 반드시 잡는다고 낙관하고 있지만 절대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메르스를 누가 잡을 수 있을까. 이제는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지금은 모든 국민과 의료진들이 합심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우리는 과도한 메르스 공포를 걷어내야 하는 과제와 현실이 되어버린 메르스 불황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까지 더불어 안고 있다.
온 국민이 불안에 휩싸인 위기의 시기에 여전히 두려움에 떠는 국민과 땀 흘리는 의료진에게 필요한 대통령의 한 마디는 무엇일까. 그 말은 아마도 이런 말이 아닐까?
‘지금까지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대통령이 말로 그치지 않고, 실제 그가 국민과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마음이 국민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대통령의 진실한 마음만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국민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대통령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심 어린,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 그런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대통령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삼성병원은 왜 안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