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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전통이 사림(士林)의 존재감이다. 그나마 조선이 나라답게 작동했던 시절이 훈구파와 사림파가 적절하게 견제하며 권력을 주고받았던 때가 마지막이었다. 물론 이러한 균형은 여러 차례의 잔혹한 사화(士禍)로 막을 내렸으며, 이후는 교조화된 노론과 외척 세력이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면서 체제 몰락으로 이어졌다.

지식이라는 형이상학적 권력을 제도화한 게 대학(大學)이라는 기관인데, 당연히 중세 종교사회와 연관이 깊다. 성직자는 당대 최고 지식인이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국가보다는 ‘신 앞의 자유’가 존중받아야 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필요했다. 갖은 투쟁과 협상을 통해 국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또 이러한 사림이 존재하기 위해선 권력과 물리적인 거리가 필요했다. 서울에 대학이 존재하면 당연히 시류와 정세에 영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보한 자율(autonomy)을 바탕으로 유럽 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다. 조선에도 향교와 서원이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었더랬다.

군부로부터 학생을 지킸던 김준엽


대학이 국가체제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말은,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선배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80년대엔 정보 경찰들이 사복 입고 학교를 사찰했어.”
“걔들이 써클실 비품함을 뒤지고, 난리도 아니었지.”
“말도 마, 전투경찰은 저기 민주광장까지 치고 올라와 학생들 잡아갔었어.”

1984년 4월 23일에 게재된 전두환 정권의 전방부대 교육에 항의하는 대자보를 바라보는 학생들. 제공 서울대 기록관.
1984년 4월 23일에 게재된 전두환 정권의 전방부대 교육에 항의하는 대자보. 제공 서울대 기록관.

그러나 1990년대엔 전경들은 교문을 차마 넘어서지 못했다. 민주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고대에선 [장정] (長征)의 저자 김준엽 총장이 늘 최고의 총장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전두환 정권의 타협 제의를 뿌리치고, 학문의 자유와 고귀함을 지켰으며, 결정적으로 학생을 보호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유신 정권과 그 잔당인 전두환이 몰락한 배경엔, 전투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대학 캠퍼스를 짓밟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준엽(1923년 8월 26일~2011년 6월 7일, 향년 87세). 독립운동가. 교육가. 오른쪽 사진은 고려대 총장 취임식 모습(재임: 1982년~1985년). 1985년 졸업식을 끝으로 고대 총장직에서 군부로부터 쫓겨났다.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광복군 시절 모습.

1984년 가을, 학생들은 학도호국단이라는 어용 학생회를 없애고 총학생회를 부활시켰다. 이에 대응해 정권은 학생회 간부들을 제적시키라고 종용했으나 김준엽이 버티며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대학들은 고려대 눈치만 살폈다. 이후 11월에는 민정당사 점거 농성 사건이 있었다. 김준엽은 관련 학생들을 제적시키라는 정권의 압박에 끝내 학생을 지키며 버티다 정권의 미움을 샀다. 이 때 학생들 처리 문제를 밤늦도록 논의하다 교수들이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제적이면 학생으로선 사망선고인데 제자들의 죽음의 위기 앞에서 밥이 넘어가냐!”며 호통을 치고 끝내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김준엽 고려대 총장 시절 일화 중에서

서울대 총장은 국무총리급 의전을 받으며, 한국 대학의 모든 총장은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주 많은 총장은 그 권위가 국가, 즉 정부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 특혜는 적어도 1000년간 학문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인류의 선각자들 때문이지, 본인들이 잘나서 주어진 혜택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대학의 총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권위는 학생과 연구자 보호를 위해 써야 함은 상식이다.

한신대 우즈베키스탄 학생 ‘강제 출국’ 사건


한신대학교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희생과 기여를 한 대학이다. 나 같은 90년대 학번도, 한신대의 위대함을 어느 정도는 안다. 적어도 신학대학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나라 독재정권과 가장 치열하게 싸운 종교인과 지식인을 다수 배출한 대학이었다.

그런데 2023년 한신대는 삼류대로 전락한 모양새다.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 온 22명의 학생을 깔끔하게 손절한 것이다. 심지어 잘못은 대학이 하고, 학생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규정 위반조차 경미하다. 1천만 원 잔고 3개월 유지. 이 정도 범법이 ‘추방’ 사유라면, 미국이나 유럽에 건너간 수많은 한국 유학생들도 이미 수백 차례 쫓겨났을 지 모르겠다.

중세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숨어들어 간 범법자들이 있었다. 국가기관이 재학 중에는 차마 구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법을 잘 지키는 국가가 된 건지 당황스럽다. 한신대 총장은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면, 그 권력을 활용해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눕더라도 우즈벡 유학생을 지켰어야 했다. 그게 총장의 임무니까. 그런데 그 어떤 교수나 대학 관계자가 그런 용기를 발휘했다는 뉴스를 접하지 못했다. 한신대는 삼류대가 맞다.

한신대 우즈벡 학생 강제출국 사건을 최초 단독 보도한 한겨레. 2023. 12. 12.
  • 2023년 11월 27일 오전, 한신대어학당에서 공부하는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23명은 “외국인등록증을 받기 위해 출입국관리소에 가야 한다”는 학교 측 말을 믿고 버스에 올랐다.
  • 하지만 버스는 출입국관리소가 아닌 인천공항을 향했다.
  • 버스 안에서 한신대 교직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평택출입국사무소로 가면 여러분들은 감옥에 가야 돼요. 그래서 국제교류팀장님 원장님 저, 여러분들과 이제 상의를 해서 인천공항으로 가서 우리가 미리 나갈 거예요(출국할 거예요). 그래서 3개월 뒤에 여러분들이 통장잔고를 채워서 다시 들어와야 돼요. 만약에 여러분이 이걸 어기면, 그냥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감옥에 있다가 강제출국을 당해요. 다시는 대한민국에 못 들어와요. 지금은 마음이 좀 아프지만, 이렇게 통제에 따라서 우즈베키스탄에 갔다가 다시 오기를 희망합니다. 자, 지금부터는 핸드폰을 다 수거합니다. 핸드폰을 옆에 있는 경호원 선생님들에게 전달하세요.”

인용 및 출처: 한겨레, [영상] “여러분 감옥 가야 한다”…한신대 ‘강제출국’ 버스 안에서, 2023. 12. 12.

한국 대학은 장사꾼인가?


“그래서 3개월 뒤에 여러분들이 통장잔고를 채워서 다시 들어와야 돼요.” (한신대 교직원)

우즈벡 학생들을 거짓말로 유인해 강제 출국시키는 과정에서 한신대 교직원이 한 말. 출처는 한겨레.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분명히 한신대 관계자는 책임 추궁이 두려웠을 것이다. 추상같은 법무부의 위세에 짓눌렸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 한신대 관계자들 대부분은 우즈벡 학생들을 ‘그저 돈 내는 학원생’ 정도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100% 다. 그게 아니라면 저리 쉽게 유학생을 단체로 버스로 실어 날라, 캠퍼스 밖으로 내팽개치진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장사치 마인드’로 접근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우즈벡 어학당 학생 통장 잔고를 빌미로 우리 어학원-대학 연계프로그램 비자 쿼터를 줄이면 우리 대학은 막심한 손해 아닌가? 그렇다면 통장 잔고 3개월-1000만 원 유지하지 못한 우즈벡 학생 23명을 어떻게든 쫓아내자! 그렇다면 우리 대학 장사에 피해가 없을 거다!’

행정 책임자부터 총장까지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한국의 상당수 대학은 비자와 수업료 장사에 몰두하고 있다.

강약약강(強弱弱強)… 원희룡의 흑역사


“우리 사법연수원생들을 우습게 보느냐?” (원희룡, 당시 29세)

원희룡 전 장관은 1993년(당시 29세) 사법연수생 신분으로 친구와 함께 술에 취해 가게 앞에서 노상 방뇨하던 중 이를 나무라는 가게주인 최 씨(당시 50세)를 친구와 함께 집단폭행하고, 파출소에 연행되자 오히려 30분 동안 파출소 기물을 부수며 소란을 피운 경력이 있다.

사업연수원생 원희룡의 난동은 급기야 사회면에 기사화한다. 하지만 차마 그를 엄벌하지는 못했다. 실제 사법연수원생 신분은 실제로 준공무원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고, 당시 폭력 경찰과 비리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망도 덜 한 때였다. 물론, 경찰로선 훗날 판검사가 될 ‘영감님’에 대한 배려도 있었을 테고…

원희룡의 흑역사… 노상방뇨, 집단폭행, 공무집행방해… “우리 사법연수원생을 우습게 보느냐!”

물론 지금의 사회적 윤리 기준으로 보면, 노상방뇨는 별론으로 집단폭행에 파출소 기물을 파손하는 공무집행방해죄까지 범했음에도 연수원을 ‘무사히’ 수료하고 검사로,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니 놀라울 정도다.

이번 ‘한신대 사태’가 충격적인 건, 우즈벡 학생들 대다수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3개월 조건부 비자라지만, 비자는 정부가 입국을 허가한 서류고, 이들이 대학에 등록해 수업받는 학생들이라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들을 거짓말로 유인하고, 단체로 버스에 실어 우즈베키스탄에 버려버린 것이다. 하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부 당국과 대학 당국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학생 비자로 입국했다면, 그 학생은 이후 큰 문제가 없다면 비자는 갱신되는 게 옳고 최대 10년까지도 한국에 거주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애당초 비자를 주면 안 된다. 물론 어쩌면 정부는 ‘불법 체류 노동자가 될 위협을 차단했다’고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한신대, 진보적 지성의 요람에서 학생을 버린 학교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에 대한 고려대와 부산대의 대응도 아쉬움으로 떠오른다.

절차적으로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지만, 총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 문제로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인턴 증명서 등이 합격 여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지만, 서류 조작이 발견된 이상 합격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학교 실수로 입학했고, 정규 교과과정을 모두 이수한 상태에서 학위를 박탈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다. 이런 입장 정도는 밝힐 수 있지 않았을까.

학교는 수사기관도 사법기관도 아니다. 교육기관이다. 학교의 자율성, 오랫동안 공동체가 자신의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학교에 부여한 그 권한으로 학생을 우선 보호하는 게 먼저다. 꼬리 자르기는 대학이 아니라 저급한 정치의 몫이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학은 학생을 보호하고, 구성원이 학문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은 저급한 정치를 일삼는 삼류 장사꾼이 되었다.

장준하(1918년 8월 27일~1975년 8월 17일). 독립운동가. 정치가. 언론인. 사회운동가. 1949년 한신대에 편입해서 신학을 공부했다. 1993년 제1회 한신상을 받았다.
‘늦봄’ 문익환(1918년 6월 1일~1994년 1월 18일). 목사. 통일운동가. 사회운동가. 1947년 한국신학대학(한신대의 전신) 신학과를 졸업했다. 한신대 신학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쳤다.
뒷줄 오른쪽부터 윤동주(시인)와 문익환. 한신대는 문익환은 물론이고 김수행, 정운영 등 당대의 진보적 지식인(특히 마르크스 경제학)이 교수로 활동해 진보적 학풍이 강한 곳이었다. 그리고 특히 문익환과 장준하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윤동주를 사상적 지주로 삼는 교직원들이 많았다.

2023년 한신대 사태는 너무 구슬프다. 이 사태는 한국 대학의 사망 선고처럼 느껴진다. 우즈벡 학생들도 죽을 때까지 이 부당한 치욕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하에서 장준하, 문익환, 정운영 선생이 울고 계실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인재를 끌어들이고, 아시아 유학생을 받자는 얘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1천만 원 잔고 3개월 유지가, 대학의 자율성과 학생의 인권을 짓밟아도 좋을 만큼 심각한 범죄일까?

대학생 유학 비자에 관해서도 전면적으로 다시 고민해야 한다.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소도 철저하게 반성하고 개선안을 내놔야 한다. 한신대 교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

2023년 11월 27일, 한신대학교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죽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죽음은 사회 전체로 전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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