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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솟 르포 ⑤] 한국 유학 중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 민족 출신 목사 S. S와의 인연으로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 난민촌 ‘매솟’에 방문한 작가의 현장 기록. (⌚7분)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S의 갑작스러운 부탁 때문이었다. 이날은 B빌리지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S가 내게 그들을 위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부탁해왔다. 그곳에 거주하는 대부분은 60세 이상 노년층으로, S와 그의 아내 샤는 일주일에 한 번 B빌리지를 방문해 어르신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 손님으로 내가 그들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S가 내게 부탁하며 한마디를 남겼다. 그들은 가족을 잃거나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는 것. 나는 한국에서 극단적 선택 이후 남겨진 이들의 애도 과정을 담은 소설을 썼기에, S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 바란 듯했다. 한국어로 쓴 글을 영어로 바꾸고 포인트를 나눠 정리해 S에게 보냈다. 한국어-영어-버마어로 번역을 거쳐 그들에게 전해질 이야기를 담은 채 B빌리지로 향했다.

난민촌이자 난민촌이 아닌 곳

B빌리지도 매타오 클리닉처럼 지도에 나오지 않는 마을이었다.¹ 건물이 태국과 확연하게 달랐는데, 반 층 정도 땅에서 띄워 대나무를 엮어 만든 미얀마식 전통 가옥이었다.² 미얀마는 토지가 비옥해 벌레나 뱀, 지네 등이 많은데, 이렇게 땅에서 조금 띄워 뱀이나 지네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아래에는 닭이나 오리 등을 키운다고 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벽과 야자수 잎을 말려 덮은 지붕은 통풍이 잘 돼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게 특징이었다. 그런데 이 건축 양식은 단순히 ‘효능’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얀마에 몇 번 다녀온 적 있는 일행이 말했다.

“군부 때 정글에 있는 마을이 폭격을 당하거나 군에 의해 점령돼 불에 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건물을 빠르고 쉽게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대나무로 집을 만드는 것도 있죠. 잘 지어도 어차피 불에 탈 테니까요. 그래서 집에 많은 집기를 두지도 않는 모습을 미얀마에서 봤어요.”

군부는 소수민족 마을을 표적으로 방화·폭격을 반복했다.³ 그들은 터전이 사라지면 대나무를 엮은 판을 사 다시 집을 짓는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대나무 판을 올리고, 천장은 슬레이트나 야자수 잎을 사용한다. 짐은 많지 않다. 사라질 것들이니까. 미얀마 건축 양식은 집이라는 안정감을 잃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해온 흔적이었다.

신발을 벗고 건물 위에 올랐을 때, 대나무가 체온을 떨어뜨렸다. 한낮이지만 창이 없어 집 안은 어둑했다. 태양열 전지를 이용하지만 넉넉하지 않아 전기 이용이 어렵다고 했다. S는 이곳에 머무는 이들 모두가 난민이라고 했다. 운 좋게 태국 정부에 인정받아 ID카드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이 빌리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태국은 1951년 유엔 난민협약에 서명하지 않아 미얀마 출신 난민에게 공식적인 법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고 있고 난민 지위를 인정받거나 태국 정부 발급 ID카드를 소지한 경우는 일부에 불과해 이동과 취업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 현실이었다.⁴

대나무로 만들어진 빌리지 건물 내부. 2026.6.27. B빌리지, 매솟. 사진 이수연.
슬레이트 천장과 이어진 벽면에 약품이 가득한 봉투가 걸려있다. 2026.6.27. B빌리지, 매솟. 사진 이수연.

샤가 버마어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S가 영어로 통역해줬다.

“이 집에는 7명이 살고 있어요. 징집 때문에 손자가 오면서 7명이 됐죠. 미얀마에서 여기까지 넘어오려면 정글을 지나야 하는데, 길을 찾기 무척 어려워요. 목숨을 걸어야 하죠. 그래서 정글에 있는 마을에 커넥션이 있어야 하고 그들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면서 정글을 통과하는 거예요. 길에 익숙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그들 중 미얀마 정부의 프락치도 있어요. 그저 신뢰하고 그들을 따르는 거죠.”

다른 집의 여성은 우리를 보자 자랑스럽게 태국 ID카드를 꺼냈다. 이곳에 온 지 20년이 되었고 그 시간을 인정받았다고. 20년이라면, 그 사이 미얀마의 봄이 있었다.⁵ 왜 그때 돌아가지 않았냐는 물음에 S가 말했다.

“미얀마에 집이나 재산이 없으니까요. 이분은 미얀마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군부가 농장을 점령하고 살던 곳에서 쫓아냈어요. 돌아갈 곳이 없는 거죠.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미얀마로 돌아가면 손주가 군대에 징집되니까 남아 있는 거죠.⁶ 여기 말고 다른 집은 폭격으로 집이 사라져 못 돌아가고 있어요.”

B빌리지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고 어떠한 울타리도 없었다. 지도에 나오지 않지만, 길만 알고 있다면 누구든지 다닐 수 있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그들은 ID카드가 없기에 병원에 가기 위해 500밧이라는 큰돈을 지불하고 검문소를 피해야 하며, 월세로 매달 1,000밧을 내야 했다.

만약 월세를 내지 못하면 집에서 쫓겨날 수 있고, 때때로 경찰이 방문해 뒷돈을 챙겨가기도 했다.⁷ 누구나 다닐 수 있기에 반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셈이다. 그들은 이곳이 난민촌보다 못한 환경이라 말했다. 월세와 불시 검문 등 돈이 끊임없이 필요하고, 어떤 이는 5,000밧이 넘는 빚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에.

끊이지 않는 외로움, 그리고 연대

빌리지를 지나 입구로 다시 나오자 프로그램 준비가 한창이었다. 40평 정도 되는 학교에선 아이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이사이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역시 난민이며 B빌리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태국어와 영어를 배운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B빌리지 내 학교건물, 나무로 천장을 가린 곳이 운동장 겸 마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2026.6.27. B빌리지, 매솟. 사진 이수연.

학교 옆, 운동장이라고 하기에 다소 작고 강당이라 하기엔 슬레이트뿐인 공간에서 60세 이상 여성들이 둘러앉았다. 서로 일주일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나누며 대화하고, 샤를 따라 작은 율동으로 몸을 풀었다. 고령의 여성이 유독 많은 것은, 남편이 사망했거나 돈을 벌기 위해 매솟이나 방콕으로 떠났기 때문이라 했다. 그들은 주로 건설, 농업, 어업, 제조업에 종사하며 강도 높은 노동을 했다.⁸ 그러나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간의 오지랖과 잦은 웃음. 아파트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하는 모습이 겹쳤다.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S와 샤. 매주 금요일마다 방문한다. 2026.6.27. B빌리지, 매솟. 사진 이수연.

이내 S가 나를 불렀다. 그들을 위해 준비한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나는 한국말을 하고, S가 미리 번역된 영어를 보고 버마어로 바로 통역해주는 방식이었다. 다소 젊은 외국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까 싶었는데, 모두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사뭇 진지한 표정과 슬픔을 아는 눈빛이 차례대로 오갔다.

“저는 누군가의 슬픔을 없애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달라도 슬픔은 우리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자, 샤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곳에 있던 여성 한 명은 저번 주에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한참이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이 선명하다고. 떠나간 이유를 묻진 않았다. 슬픔에 이유까지 묻고 싶지 않아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아들을 잃었다는 여성이 가까이 다가왔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꼭 잡아주었다. 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며 S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녀는 내 어깨를 감싸듯 안았고 나 역시 가까이 붙어 미소 지었다. 버마어를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내게 계속 무언가 말해줬다. 위로인지, 감사인지 모를 말들을.

그들의 삶은 B빌리지에 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도, 증조모부터 증손주까지.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어르신을 위한 노인정도 모두 B빌리지 안에서 움직인다. 대부분 집에서 일을 하고, 약이 필요하면 돈을 마련해 검문소를 피해 간다. 떠나온 곳은 더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과 내가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손을 잡은 온기는, 나와 같았으니까.

🔖 각주


¹ 매타오 클리닉(MAETAO)은 매솟 르포 ②에서 소개한 미얀마 난민 지원 단체로, B빌리지와 마찬가지로 공식 지도에 등재되지 않은 비공식 거주 공간 인근에 위치해 있다. 태국 내 미등록 난민 거주지는 공식 난민캠프와 달리 법적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 UNHCR Thailand. “Persons of Concern.”

² 미얀마 전통 고상 가옥(Stilt House).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건축 양식으로, 미얀마 농촌 지역에서는 대나무와 야자수 잎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지면에서 띄워 짓는 구조는 홍수, 해충, 야생동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³ Fortify Rights. “Myanmar Military Burned Villages.”
— OHCHR. “Myanmar: Attacks on Civilian Infrastructure.”

⁴ 태국 내 미얀마 난민의 법적 지위.
— UNHCR Thailand. “Statelessness and Documentation.”
— Human Rights Watch. “Ad Hoc and Inadequate: Thailand’s Treatment of Refugees.”

⁵ ‘미얀마의 봄’은 2011년 군부 통제 완화 이후 시작된 민주화 이행기를 가리킨다. 2015년 아웅산수지가 이끄는 NLD(민족민주동맹)가 총선에서 압승하며 민간 정부가 출범했으나, 2021년 2월 쿠데타로 다시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 Thant Myint-U. The Hidden History of Burma. W. W. Norton & Company, 2019.

⁶ 미얀마 군부는 18세에서 35세 남성과 18세에서 27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무 징집령을 발동했다. 징집을 피하기 위해 태국 등 인접국으로 탈출하는 청년이 급증했다.
— “Myanmar Junta Announces Mandatory Military Conscription.” Reuters, February 2024.
— Human Rights Watch. “Myanmar: Conscription Law Threatens Civilians.” 2024.

⁷ 태국 내 미등록 이주민·난민에 대한 경찰의 비공식 금품 요구는 국경지대에서 광범위하게 보고되는 관행이다.
— Amnesty International. “Fleeing for Their Lives: Myanmar Refugees in Thailand.”
— Asia Pacific Refugee Rights Network. “Protection Gaps for Refugees in Thailand.”

⁸ 미얀마 남성 이주 노동자 현황. 태국은 미얀마 최대 이주 노동 목적지로, 태국 내 미얀마 이주 노동자는 등록 기준 약 200만 명, 미등록자 포함 시 최대 400만~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집계 기준과 시점에 따라 편차가 크다.
— ILO. “Labour Migration from Myanmar.” ilo.org
— World Bank. “Migration and Remittances: Myanmar.” worldban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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