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인터뷰]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그들만의 성과급 투쟁이 일자리 소멸 앞당길 것… 1만 원씩 내서 사회연대기금 만들고 비정규직과 손잡아야.” (⏰13분)
한석호(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63)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토끼와 거북이에 비유한다. 지난 30년간 대기업 정규직은 ‘토끼뜀’으로 임금을 높였고, 노조 바깥의 하청·비정규직 소득은 ‘거북이 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임금은 적절하게 조절하되, 바깥 노동의 소득은 사회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게 한석호의 주장이다.
지난달 타결된 노사의 성과급 협상으로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은 연봉 1억 원 기준 최대 6억 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게 됐다. 이후 주요 대기업 노조들은 SK하이닉스·삼성전자 노조가 그랬듯 ‘영업이익의 N%’를 요구하며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자타 공인 야전 노동 운동가 출신 한석호는 11일 슬로우뉴스 인터뷰에서 “노동자 계급 간 임금 격차가 과도한 것은 문제다. 평등주의에 입각한 적절한 임금 조율이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불평등을 방치한 결과 새로운 소득 질서가 만들어졌다.”
한석호

이게 왜 중요한가.
- 대기업 노조의 ‘내 임금만 올리기’ 성과급 투쟁이 한국 사회에 어떤 상흔을 남길지 기록할 필요가 있다.
- 한석호는 “성과급 파동은 경영계가 AI 로봇을 더 빨리, 더 대량으로 투입할 명분을 줬다”며 “AI 로봇과 인간의 적정한 노동이 공존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인간 임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율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 “이번 성과급 파동을 거치며, 성과 있을 때 그만큼이나 받아갔으니 회사가 어려울 때는 너희도 책임져야 한다는 정서가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되면 경영계가 AI로 노동을 대체하겠대도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 한석호는 화염병과 쇠 파이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혁명주의자였다. 그랬던 그가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주제로 조선일보와 연속 보도를 기획하고, 윤석열 정부 상생 임금위원회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해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와 진보, 기업과 노조, 양쪽의 경계선에 선 이유도 궁금했다.
대기업 임금 ‘토끼뜀’ 뛰는데, 중소기업은 ‘거북이 걸음.’
— 삼성 성과급 사태에 관해 “성과급 상한을 폐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가 기여한 바에 따라 보상을 많이 받는 게 왜 문제냐는 반론도 있다.
“노동자 계급 간 임금 격차가 과도한 것은 문제다. 평등주의에 입각한 적절한 임금 조율이 필요하다. 과거 1980~1990년대 노동 운동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 노동자가 열심히 투쟁해서 임금을 쭉 인상하면, 그보다 못한 사업장 임금도 따라 오른다는 전략이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임금을 다 따라가진 못해도 전 사회적으로 임금 인상 효과가 어느 정도 있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전략이다. 중소기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이미 80%다. 노동자들에게 더 주고 싶어도 줄 수 있는 게 없다. 은행 빚이나 사채를 끌어와야 하는데, 성장으로 빚을 메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지불 능력 있는 대기업 임금은 토끼뜀 뛰는데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
📌 노동소득 분배율
한 경제(또는 기업)가 창출한 부가 가치(소득) 중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의 비율. 한 예로 어떤 중소기업의 연간 부가 가치가 10억 원이고, 인건비 총액이 8억 원이라면, 노동소득 분배율은 80%다. 나머지 2억 원(20%)이 이윤, 이자, 감가상각 등 자본의 몫이다.
— 노동시장 이중 구조와 관련해 “노동자 상위 10%와 하위 50%는 하나의 계급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는, 분단 계급이 됐다”고 진단했다.
“불평등을 방치한 결과 새로운 소득 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흔히 ‘불평등’이라 하면 ‘1대 99’만 이야기한다. ‘10대 90’, ‘20대 80’ 불평등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불평등을 얘기하던 진보 주류가 상위 20%, 10% 안에 들어가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나. 양대 노총 주력인 대기업과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10% 안에 있다. 1 대 99 불평등은 구조의 불평등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인한 불평등이다.
반면, 10대 90의 불평등은 일상의 불평등이다.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을 ‘1대 99’가 아니라 ‘10대 90’ 불평등에서 느낀다. 손흥민과 류현진의 승리엔 박수를 치며 함께 기뻐하지만, 옆에 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다. 10대 90 불평등은 내 눈에 자꾸 보인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는 이 사회를 곪게 만든다. 내 삶뿐 아니라 내 가족 삶, 내 자식 삶 속에서, ‘10%’ 타인과 비교되다 보니 자괴감과 박탈감을 느낀다.
청년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고, 대기업 입사 경쟁은 박 터진다. 오로지 10%에 들기 위함이다. 사회적으로 정규직 임금을 조율·조정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자 계급 단결은 균등한 처우에서 나온다. 1억 대 임금을 받는 사람과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절대 단결할 수 없다. 민주노총 조직력과 투쟁력이 약화한 이유도 노동시장 이중 구조로 인한 계급의 분절에 있다.”
정규직 임금을 사회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이유.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협약’에 일부 주주 단체들은 효력을 무효화하는 소송에 나섰다. 주주뿐 아니라 전 국민이 ‘성과급 파동’을 나의 일처럼 바라봤다.
“노동, 노동자에 대한 국민 심리가 더 각박해진 모습이다. 난 감옥을 세 번 다녀왔다. 감옥을 마지막으로 갔을 때가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때였다. IMF 이후 정리해고가 단행되면서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그래도 그때는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저런 식으로 집단 해고를 하면 안 된다는 국민 정서가 작동했다.
지금은 완전 뒤집혔다. 이번 성과급 파동을 거치며, 성과 있을 때 그만큼이나 받아갔으니 회사가 어려울 때는 너희도 책임져야 한다는 정서가 자리 잡았다. ‘AI 로봇으로 대체해버려라’는 여론도 심상치 않다. 박탈감이 분노로 전환했다. 노동자들이 거액 성과를 가져가는 게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을 뜻한다.)를 느낄 정도의 사건이었다. 성과급 이슈로 기자들 전화를 많이 받았다. 기자들도 매체를 불문하고 ‘현타가 온다’고 하더라.”
— 기업 입장에서 인간 노동을 AI와 로봇으로 대체할 유인이 커진 것 같다.
“성과급 파동은 경영계가 AI 로봇을 더 빨리, 더 대량으로 투입할 명분을 줬다. 한국 사회도 이를 재촉하는 쪽이다. ‘인간 노조들 요구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 미국 공장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일자리가 AI 로봇으로 한 번 대체되면 인간은 그 자리로 다시는 못 들어간다. AI 산업 발전으로 AI 관련 새 일자리가 만들어져도 AI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비해서는 얼마 안 될 것이다.
성과급 파동의 후과는 우리 자식 세대가 치러야 한다. AI 로봇과 인간의 적정한 노동이 공존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인간 임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율하는 데 있다. ‘적절한 임금 수준을 수용하겠다’는 것이 전제돼야 AI와 공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은 내가 가져갈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갖겠다고 막무가내 투쟁을 벌인다. 이렇게 되면 경영계가 AI로 노동을 대체하겠대도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 “산별 교섭으로 임금 격차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산별 교섭’은 가능한 이야기인가?
“우린 워낙 기업별 교섭 체제에 익숙하다. 산별 교섭은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강하다. 그래도 가능성이 하나 있다고 본다. 경영계의 결단이다. 노동계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현 기업별 교섭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집단이 노동계 주력인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이기 때문이다. 노동계 힘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경영계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경영계가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경영계는 국가 차원의 경영 전략을 정립한 경험이 부족하다. 오로지 자기 기업의 경영에만 혈안이 돼 있다. 우리 경영계는 유럽이나 일본 기업과 같은 대국적 경영 전략이 부재하다. 각자 기업 경영만 해오다가 ‘영업이익의 N%’ 성과급 파동에 부닥치게 된 거다.
삼성전자 노사가 어렵게 합의를 이뤘지만 내년에는 괜찮겠나? 그 사이 SK 노사가 성과급을 놓고 쟁탈전을 벌일 거다. ‘삼성이 6억 성과급을 받았으니 우리는 7억은 받아야 한다’고 떠들 것이다. 삼전닉스 말고도 여러 대기업에서 ‘우리도 더 줘, 더 줘’ 이런 판이 벌어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경영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경영계, 이제라도 ‘초기업 교섭’에 나서야.
— 산업별 교섭 체계 구축뿐 아니라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노동시장 이중 구조 완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상위 10%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그 돈으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서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처우 개선에 쓰고, 영세 상인 지원에도 쓰고,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쓰자”고 주장했다.
“10여년 전 민주노총에 있을 때부터 주장했던 얘기다. 현대차 연봉이 평균 1억 원을 넘어도, 공무원 30년 한 사람이 8000만 원을 넘게 받아도, 노조 주류들은 자기들이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민주노총 주력 조합원들은 상위 10%’라고 칼럼에 썼더니 발칵 뒤집혔다. 노동자 개인의 연간 중위소득이 2500만 원 정도 했을 때니, ‘노조 밖’ 상황은 더 심각했다.
우리가 월 1만 원씩 걷어 사회연대기금을 만들고 노조 울타리 바깥의 노동자들과 손을 잡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1만 원씩 내면 기업도 안 내고는 못 배긴다, 정부도 세금 투입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민주노총이 주도하자, 그러면 국민으로부터 잃었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연대기금 규모를 생각하면, 만능열쇠는 될 수 없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비정규직이 됐든, 하청 노동자가 됐든, 청년 실업자가 됐든, 특성화고 학생이 됐든, 노인 노동자가 됐든, 이들 손을 잡아주는 ‘연대’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만 진리로 삼는 대한민국에서 연대의 씨앗을 틔우는 작지만 중요한 움직임이다. 안타깝게도 양대 노총이 뭐라 하든 지나가던 개도 관심이 없다. 그게 현실이다. ‘자기 임금만 챙기고 공동체 발전엔 관심 없는 집단’이란 비판, 아프지 않나?”
— 기존의 노동 운동 관점에서 보면, 기금은 ‘투쟁의 성과물’ 아닌가? 상위 10% 소득을 동결하고 기금을 만들자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노동 운동 내에선 그걸 왜 우리가 내느냐고 반발했다. 이들에게 기금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뺏어야 할 무언가다. 대통령 재산 뺏어서 기금 만들 건가? 국가 돈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기금 출자는 안 된다 길래 그러면 증세 운동이라도 하자고 제안했다. 전 국민 증세라도 독려하자 했는데, 그것도 국가 몫이란다. 나는 가난한 사람도 1원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난하다고 계속 수혜만 받으면 거지 근성만 커진다. 가난한 계층이라도 자기가 가진 것에 일부를 내놓는 공헌을 해야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다.”
— 정년 연장에 대한 생각은? 양대 노총은 ‘65세 정년 연장 즉각 법제화’를 요구하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법으로 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년 연장이든, 정년 폐지든, 퇴직 후 재고용이든 노사가 기업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정부가 연장 고용 시 혜택을 주는 식으로 방향을 유도할 순 있다. 노동계가 강하게 요구하니 민주당은 법제화하려는데 우려스럽다. 설사 정년을 연장한대도 연장하는 5년 만큼은 같은 임금을 줘서는 안 된다.
일례로 임금을 50~70%만 받겠다고 하고 65세 정년을 법제화한다고 해보자. 2~3년 뒤엔 노조가 투쟁을 통해 복구시켜 놓을 것이다. 정년을 법제화하면, 기업은 청년을 신입으로 뽑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 같은 경우 초봉 5000만~6000만 원인 신입이 4~5년만 지나면 연봉 1억 원이 되지 않나? 지금은 장년과 청년이 일자리를 놓고 갈등하고 있지만 AI 로봇 발전 수준에 따라 ‘인간 노동’을 아예 없애버리는 쪽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년 연장 법제화? 정규직 임금 개편 없이는 불가하다.
— 노란봉투법📌에 대한 생각은? 사용자를 정의하는 노조법 2조 개정이 노동 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난 기존 노동계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노조법 3조는 빨리 처리하더라도 2조는 뒤로 묵혀 놓고 그 대신 ‘초기업 교섭’을 강제하는 법제화가 필요했다. 초기업 교섭이 이뤄지면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처지가 달라 노동계 내에도 갈등이 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착할 문제다.
노란봉투법 시행 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교섭권 분리’를 핵심으로 들고 나왔는데, 원청·하청 노조의 교섭권이 분리되고, 상급단체가 다르다고 분리되고, 같은 하청인데도 일의 성격이 다르다고 분리되고…. 노동 운동을 뒤틀어지는 모양새다. ‘기업별 노조’라는 기존 틀을 더 강화하는 모습이다.
만약 원청·하청 노조 간 이권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진다면, 양대 노총은 어디 손을 들어줄 건가? 하청 노조 편 들면 원청 노조가 상급단체에서 뛰쳐나갈 거고, 원청 노조 편 들면 하청 노조들은 생존이 위태롭다. 기업들도 노조법 3조는 빠르게 수용하되, 노조법 2조와 관련해 전폭적 하청 처우 개선을 약속하고 노동계 불만을 누그러뜨렸어야 했다. 정부나 국회 쪽 사람들에게도 ‘초기업 교섭’이라는 대안을 주문했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 노란봉투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 3조를 개정한 법. 하청·특수고용 노동자도 진짜 사장(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했고(2조 개정),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개인별로만 물리도록(3조 개정) 했다.

“노동 운동은 실패했다” 내가 경계인이 된 이유.
— 윤석열 정부 상생 임금위원회 전문가 위원으로 활동했다. 민주노총이 사퇴를 요구하는 등 노동계 반발이 거셌다. 왜 참여했나?
“나는 소싯적 혁명적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갖고 체제 전복을 위한 노동 운동을 했다. 그때 기준으로 지금 민주당은 소(小)부르주아 정당, 국민의힘은 독점 부르주아 정당으로 타도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노선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내가 잘못된 노선을 갖고 있었던 거다. 세상을 바꾸더라도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바꿔야 하며, 반대 측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국힘이든, 민주당이든,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 자기 역할을 똑바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노동 운동은 화염병, 쇠 파이프, 총파업으로 세상을 제압하려 했지만 그것으로는 안 되는 거다. 노동 운동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체제의 점진적 개량을 위해선 상대가 국힘이든, 보수든, 자본이든 우리는 타협을 해야 한다.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강했다.”
— 상생 임금위원회의 성과랄 게 있었나?
“특별한 성과가 있던 것은 아니다. ‘상생 임금’ 개념과 노동시장 이중 구조라는 화두를 꺼낸 수준이다. 호봉급,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꾼다고 할 때 위원회 안에서 순화하는 역할을 했다. 현장과 동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흐지부지됐는데, 그것도 역할이라면 역할을 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기업들을 억누르면서 국정 과제였던 납품단가연동제📌를 통과시켰다. 이재명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임금 등도 연동할 수 있게끔 칼을 제대로 휘두르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있어 아쉽다.”
📌 납품단가연동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대기업(원청)이 중소기업(하청)에 주는 납품 단가도 자동으로 올려주도록 의무화한 제도.
—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 안 되는 근로기준법 조항이 아직도 20개가 넘는다. 여러 조항이 있지만, 나는 두 가지는 풀자는 입장이다. 연차 휴가와 연장·휴일·야간 가산수당 정산은 적용해야 한다. 다만, 바로 적용하면 영세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지기 때문에 단계적 적용이 필요하다. 김문수 위원장은 자기 입장을 고수했는데, 윤석열이 버럭버럭 성질을 내며 ‘소상공인이 다 내 편인데 다 적으로 돌릴 셈이냐. 앞으로는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했단다.”
— 보수와 진보, 기업과 노조, 양쪽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 경계인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1년 세 번째 감옥살이에 들어가서 1년 7개월 공부하다가 나온 후, 노조 ‘바깥’에 있을 때 많은 걸 느꼈다. 네 식구가 생계적으로 어려운 때였다. 노조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많이 보였다. ‘밑바닥 노동자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노조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여유조차 없는 거다. 그런 문제 의식으로 노조 ‘안’을 보니까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조 주력은 상위 10%에 진입했고, 주식은 다 하고 있고, 은행과 회사의 저리 대출을 활용해 아파트 투기를 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노동 운동으론 답이 없구나 싶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단결하자, 계급은 하나다, 이런 구호는 개똥 같은 소리 아닌가.
노동 운동에서 총파업은 어마어마한 무게를 갖는 단체 행동이다. 한국 사회는 민주노총이 ‘총파업’ 이야기하면 다들 코웃음부터 친다. 총파업이 아니라 집회 아닌가? 최소한 자기 산하 노조의 70~80%는 파업에 참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 총파업은 모두가 외면하는 잡음이 돼 버렸다. 우리 사회의 불운이자 비극이다. 노동 운동이 적절히 자기 역할을 해야 기업 경영과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은 ‘내 임금 많이 줘’ 이것 말고는 없는 망가진 운동이 돼 버렸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하려 한 정규직 전태일.
— 젊은 층은 초과 이윤이든, 초과 세수든 기본적으로 정부가 ‘재분배’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갖는 듯하다. 나눈다는 것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더 이상 연대의 가치를 논하는 게 의미가 싶을까 싶을 정도로 삶이 각박해지고 있다.
“2030 세대가 죽을 때까지 능력주의, 성과주의를 고수할 거라 보진 않는다. 사회 지도층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적절한 불평등과 평등 수준을 찾을 것이다. 그들도 지나친 불평등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 거액 성과급을 받은 SK 하이닉스 직원이 보육원 도서관 리모델링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기부도 한다. 젊은 세대도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안다.
다만 이 세대는 진보의 위선에 질린 상태다. 스웨덴은 총리 등 진보의 리더들이 임대 주택에 산다. 그러니까 공공 임대 정책이 국민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우리 리더들은 그렇지 않다. 다주택자를 악마화하면서 집 팔아야 한다더니, 고위 공직자들이 아파트 여러 채를 소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우리 86세대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극우 마초 아니었나? 극우 국가주의자였다가 대학생 때 1980년 광주를 겪으며 진보 국가주의자가 됐다. 86세대는 평등의 가치를 위해 내 삶을 어떻게 하겠다, 이런 게 없었다. 내 것은 하나도 내놓지 않고 국가에 모든 걸 요구한다. 입으로만 떠든다. 20~30대들이 ‘꼰대’ 비난을 하는 이유다.”
— 전태일을 재해석해 왔다.
“그동안 노동 운동은 전태일 정신을 ‘투쟁’과 ‘분신’으로 설명했다.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을 하면서 전태일 정신을 투쟁과 분신에 가두면 안 된다고 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생전에 ‘제발 열사 표현 쓰지 말고 분신 얘기도 하지 마라’ 했다. ‘전태일을 하늘에 두지 말고 가난한 노동자 곁에 두라’는 말씀이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 이름 옆에 ‘열사’ 표현을 쓰지 않는다. 태일이 형, 태일이 오빠, 태일 삼촌, 이게 자연스럽지 않나? 전태일은 재단사였다. 지금으로 치면 정규직이다. 미싱사는 중규직, 시다는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전태일은 중규직과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려고 했다. 오늘 필요한 게 이런 전태일 정신 아니겠나.”

한석호는 누구.
- 1964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83학번. 독재 타도 위해 학생운동.
- 1987년 6월 항쟁 때 명동성당투쟁동지회 결성하다 구속.
-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사면돼 인천서 현장 노동자 조직 사업 참여.
-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선봉대를 이끌었다.
- 금속산업연맹 조직실장,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시절 조선일보와 공동 기획 ‘12대88의 사회를 넘자’를 주도했다.
- 고등학생 딸과의 3년간의 산행을 기록한 책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