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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이관후(49·국회입법조사처장)는 ‘대의민주주의’를 연구한 학자다.

지난해 11월 20일 제10대 국회입법조사처장에 임명됐다. 취임 보름도 되지 않아 12·3 비상계엄을 맞닥뜨렸다. 1987년 체제 이후 최악의 헌정 유린 사태에서 국회는 민주주의 최후 보루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여·야는 다시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다.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여·야 대표가 손을 맞잡은 장면은 잊힌 지 오래다. 협치는 언감생심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강성 지지층 입김에 휘둘리며 상대를 절멸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이관후를 만났다. 이날은 비상계엄 1년인 날이다. 임기 1년 소회와 한국 정치 전망을 물었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이 지난 3일 국회도서관에 위치한 조사처 사무실에서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49.7%를 득표한 후보와 49.8%를 얻은 후보가 있다면, 한국 학생은 49.8%를 받은 후보가 이겼다고 말한다. 반면, 유럽 학생은 대부분 비겼다고 얘기한다.

이관후(국회입법조사처장), 2025.12.3.

계엄·탄핵을 가장 가까이서 본 정치학자.

— 지난해 11월 20일 취임 후 보름도 안 되어 12·3 비상계엄이 터졌다. 공교롭게도 오늘(12월 3일)이 비상계엄 1년이 되는 날이다. 소회가 궁금하다.

“작년 11월 20일 입법조사처장에 임명됐을 땐 임기 중 큰 선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국회 싱크탱크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계획을 갖고 시작했는데 보름 만에 계엄이 났다. 아시다시피 지난 1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동료 정치학자들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뛰어난 정치학자는 아니지만, 계엄과 탄핵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본 정치학자는 맞는 것 같다’고.(웃음)”

— 지난해 비상계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떤 상황에서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나?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집에 있었다. 느닷없는 계엄 선포에 바로 택시를 타고 국회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국회는 이미 봉쇄돼 있었다. 국회 소통관 옆 담장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의사당 쪽으로 가고 있는데 헬기서 내린 군인들을 길에서 딱 마주쳤다. 나도, 군인들도 놀랐던 것 같다. 의사당으로 막 뛰어 올라가 의장실에 들어갔더니 계엄 해제를 어떻게 할지 의장실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논의하던 참이었다. 계엄 해제될 때까지 의장실 스태프들과 여러 회의를 나누며 대응을 준비하는 데 여념없었다.”

— 비상계엄 당시 모든 국민 눈은 국회에 집중됐다. 국회는 즉각 대응에 나섰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약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그 뒤로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닥친 비상계엄만 정신 없던 것이 아니라 그 이후 대통령 탄핵, 체포 영장 집행 실패, 구속 취소, 헌법재판관 임명 갈등 등 여러 논란이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이 과정에 어느 한순간이라도 삐끗했으면 정말 큰일 났겠구나 싶다. ‘계엄 해제 1주년’ 같은 날은 우연히 온 것이 결코 아니다. 가장 큰 동력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시민 의지와 행동이었다.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국회가 틀리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오래가지 못한 이재명 한동훈의 악수(握手).

— 아이러니하게도 여·야가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 바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이다. 이재명(현 대통령)과 한동훈(전 국민의힘 대표)이 악수한 장면도 인상 깊다. 국회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일부만 참여했지만 민주당·국민의힘 두 정당이 ‘비상계엄은 대단히 잘못됐다’는 데 합의를 이루고 나서 새 출발할 수 있었다면 2016년 이후로 10년 만에 큰 정치적 컨센서스(consensus·의견 합의)가 생겨났을 거라 생각한다. 정치적 지향이나 이념은 다르지만, 적어도 헌정 체제와 민주주의 수호에 있어서는 양당이 합의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비상계엄 직후 이런 합의를 통해 국민 통합 씨앗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확인됐듯,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입법부를 무시하는 극단적 정치를 하다가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고, 상상할 수 없는 불법 비상계엄으로 응수했다. 극단적 수단을 택한 건 윤석열 개인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이르게 된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 극단적 정치 양극화 문제를 빼놓고 설명할 순 없다.”

— 문재인 정권도 ‘박근혜 탄핵’으로 집권할 수 있었는데, 임기가 지나면서 ‘탄핵’을 찬성했던 지지 연합은 점점 느슨해지거나 분리·해체돼 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탄핵을 찬성하는 합리적 보수까지 아우르는 정치 대신 청산과 심판의 정치를 택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지난 세 번의 대선은 진보와 보수가 5대 5로 팽팽하게 대립한, 적대적 대선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느 쪽도 승복하기 어렵다. 국민은 두 쪽으로 분열될 수밖에 없다. 많은 정치학자는 2016년 탄핵 국면에서, 말 그대로 ‘촛불 연대’, ‘촛불 연립 정부’ 등이 이뤄졌다면 통합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비상계엄 국면도 비슷했다. 2016년 당시 박근혜 탄핵을 지지하는 여론이 90%가 넘었고, 지난해 비상계엄 직후에도 압도적 국민 다수가 비상계엄은 잘못됐다고 일치된 의견을 드러냈다. 국민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

— 거대 양당이 강성 당원 발언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거 규정이나 방침을 개정하려 한다. 국회의원들이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모습이 공통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 정치 흐름이 옮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에 대한 우려는 없는지 묻고 싶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가 서로 대립한다고 보는 견해엔 반대한다. 대의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직접 참여에 언제든 열려 있고, 그런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와 항상적 긴장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대표성 위기가 왔다면, 즉 ‘대표들이 피대표자(시민) 의지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대표자-피대표자’ 간 신뢰 관계가 깨지면, 대표자에게 권력을 잠시 위임한 주권자가 견제와 제재에 나서는 건 자연스럽다. 대표자뿐 아니라 피대표자도 언제나 정치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직접 참여와 개입이 민주 원리를 보장하는 제도로써 운영되고 있느냐에 있다. 토론과 숙고, 소수자 인정 등 민주주의 원칙이 통용되는 상황에서 직접 참여가 이뤄지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만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멸절 대상으로 간주하는 방향의 직접 참여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리하면, 정당 민주주의 시스템에 결함이 생겨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참여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느냐, 이 부분을 되돌아봐야 한다. 다수결 그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이 지난 3일 국회도서관에 위치한 조사처 사무실에서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사법 개혁? “다양성, 개방성, 투명성을 이야기하자.”

— 학계나 언론이 정치 개혁 대상으로 승자 독식 문제, 정치 양극화를 꼽는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제 개편이나 권력 구조 개헌 같은 제도 변화가 필연적이라 보는가?

“대체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부정하는 정치학자는 없을 것이다. 제도 개선은 필요하지만 2010년 이후 15년여 동안 너무 제도에만 매몰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합 정치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할 것이냐, 아니면 연합 정치를 하려는 끊임없는 노력 속에 끝내 제도 개선을 이뤄낼 것이냐,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49.7%를 득표한 후보와 49.8%를 얻은 후보가 있다면, 한국 학생들은 49.8%를 받은 후보가 이겼다고 말한다. 반면, 유럽 학생들은 대부분 비겼다고 얘기한다. 유럽 학생 관점에서 선거 결과가 0.1%P 차이로 나오면, 누가 이긴 게 아니라 ‘연립 정부’ 구성이 필수인 것이다. 50% 정도 지지를 얻은 사람이 모든 권력을 갖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우열을 쉽게 가리기 어렵다면 연립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과 관례로 자리 잡는다면 제도 개선은 그저 따라오는 결과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한다. 정치? 선거? 가장 대표적으로 승자 독식 규칙을 관철하는 공간이다.

연립 정부를 전혀 할 생각 없는 정치인들에게 연립 정부를 강요하는 제도 개선은 가능하지 않고, 작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과거엔 DJP 연합, 선거제 개편을 위한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 등 연합 정치로 가기 위한 노력이 존재했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 20년 동안 1%P만 더 득표하면 권력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승자 독식 정치가 더 공고해졌다.”

— 정부·여당은 사법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내란 전담 재판부와 법 왜곡죄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은 사법부를 압박하고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법부 반발과 비판적 여론에 공감하면서도 법원도 법의 규율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사법부의 권한 강화나 이익 증대를 위한 입법 로비 활동도 논란이 되곤 했다. 사법 개혁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법원이든 검찰이든, 사법 개혁을 한다고 하면 ‘독립성 강화’를 외친다. 검찰과 법원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개혁이라는 것이다. 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논리에만 너무 치우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혁’을 말할 때 더 큰 방점은 ‘민주성 제고’에 있다. 민주적 통제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통제하느냐 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다양성 확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 거버넌스가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검사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판사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들의 소신을 말할 수 있느냐. 여기서 독립성과 민주성이 비롯한다고 본다.

또 하나는 국민이 동의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사법 개혁도 그렇고, 의정 갈등 때도 그랬지만, 항상 당사자들과 협의하여 개혁을 추진한다고 말한다.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당사자주의가 된다. 사법 개혁은 당장 재판을 진행하거나 받는 사람만 관계자가 아니다. 재판 받을 권리가 있는 모든 국민이 이해당사자다. 전문 영역이라는 이유로 전문가와 당사자가 모든 걸 결정하려 하면 ‘독립성’이나 ‘민주적 통제’ 같은 엉뚱한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에게 ‘개혁’을 물어보면 다양성, 개방성, 투명성 이런 얘기를 할 것이다.”

극심한 정쟁에 입법의 최후 보루된 조사처.

— 12·3 비상계엄에서 국회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장관 등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국방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 장관 공석으로 국무회의 의사·의결 정족수 문제가 불거졌다. 국무총리·여당 대표의 ‘국정 공동 운영’ 담화의 위헌성 문제도 있었다.

12·3 비상계엄과 이후 탄핵에 이르는 과정에서 입법조사처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비상계엄 국면에서 헌정사 초유의 일들이 많이 벌어졌는데, 당시엔 어디다 물어볼 곳이 없었다. 법제처는 정부 소속 기관이고, 다른 전문 연구기관에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대표적 사안이 대통령 권한대행 중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의결정족수였다. 이것 외에도 말씀하신 것처럼 국회가 독자적으로 많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20가지가 넘는 사항을 거의 매일 같이 검토해야 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결정 등에 비춰봤을 때 우리가 틀린 것은 한 건도 없었다. 헌정 위기 상황 속에서 입법조사처가 위기 극복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자부심을 갖고 있다.”

—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등 정당 싱크탱크는 한국 정치에서 주요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다소 쇠락한 모습이다. 입법조사처가 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대체했다고 봐도 될까? 입조사처 위상과 역할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정당의 정책 역량은 더 후퇴한 것 아닌가 싶다. 현 정당 연구소들은 정책보다는 선거 지원 기관, 당 내 여론조사 전문 기관 정도로 약화한 모습이다. 여야 간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정책 역량이 상당히 퇴보했다. 10년 전 각 정당의 정책위의장 위상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정당들이 정책보다 정쟁에 더 많은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각 당 정책연구소나 정책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하면, 입법조사처는 거시적 국가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 입법조사처의 직무(역할)

⨕ 국회의 위원회 또는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사항의 조사·분석 및 회답
⨕ 입법 및 정책 관련 조사·연구 및 정보의 제공
⨕ 입법 및 정책 관련 자료의 수집·관리 및 보급
⨕ 국회의원연구단체에 대한 정보의 제공
⨕ 외국의 입법동향의 분석 및 정보의 제공

원래 하고 싶었던 연구는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 기후 변화 같은 국가적 의제다. 정당 역할이 부족하다 보니 입법조사처가 법안 검토나 쟁점 정책 분석에 매여 있다. 우리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 체제다. 그런데 상임위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 여야가 말싸움하다가 한쪽이 퇴장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법안소위 상황도 마찬가지다. 심도 있게 법안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데 파행이 잦다 보니 법안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 조사관들한테 ‘정쟁이 심해지면 입법조사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입법조사처가 입법의 최후 보루’라고 강조하고 있다.”

— 입법조사처는 지난 10월 ‘제14차 의회조사기구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세계 17개국 의회조사기구가 모였다. 어떤 논의가 있었나? 기후위기 대응 입법 정책 동향, 불평등 완화와 의회 역할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나눴다고 들었다.

“주제를 기후 대응, 불평등 완화 등으로 정했던 까닭은 의회 안정성에 있다. 어느 나라나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크게 왔다 갔다 한다. 미국도 정권이 교체되자 기후 정책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의회는 이런 이슈에 관심을 갖는 정당이 어느 정도 의석을 계속 차지하고 있기에 비교적 안정성이 있다. 우리도 기후특위 같은 기구가 만들어지면 정부가 바뀌더라도 국회는 계속해서 모니터링하며 자료를 생산한다.

이런 주제는 각국 의회가 지속성 있게 협력할 수 있겠다 싶었다. 참여 국가 중 동남·중앙아시아의 민주주의 후발국이 많다. 그런 나라들은 정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의회의 입법 전문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고민하는 나라들이다. 내년이면 15년째가 된다. 의회조사기구들의 국제 협의체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몇몇 나라 의회에서는 입법조사처 활동에 굉장히 큰 관심을 갖는다. K-데모크라시 브랜드로써 앞으로도 계속 입법조사처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제14회 의회조사기구 국제세미나 개회식 기념 촬영. 2025.10.21. 국회 유튜브 캡처.

“질적 불평등 완화에 초점 맞춘 정책 필요.”

— 입법조사처는 ‘다차원적 불평등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 함의를 말해 달라. 연구 결과는 최근 13년간(2011∼2023년) 한국 사회에서 소득 격차는 완화됐지만 부동산 등 자산 격차가 벌어져 전반적 불평등 수준은 심해졌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불평등이 심해졌느냐, 아니면 나아졌느냐를 두고 최근 몇 년 간 상당히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다. 둘 다 사실일 수 있다. 불평등에는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은 개선됐지만 어떤 부분은 더 악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여러 불평등을 동시에 살펴봤다. 검증해보니 실제 소득에 관한 지니계수의 경우 20년여 동안 계속 나아지는 것이 확인됐다. 1997년 IMF 이후 한국의 사회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인식 하에 정부와 국회가 소득 재분배 정책을 꾸준히 해온 결과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좀 더 평등해졌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답한다.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 완화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과 비교하면, 자산 불평등에 대해서는 그동안 제대로 된 관심을 쏟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는 2011년 0.176에서 2023년 0.190으로 상승했다. 소득 불평등은 점진적으로 줄고 있으나 자산·교육·건강 등 3개 분야 불평등은 모두 심화하는 양상이었다.

“교육도 보면, 고등 교육기관 진학률과 같은 양적 불평등은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2010년대 중반 정도 되면 대학 진학률이 대략 75%로 꾸준히 상승하다가 지금은 거의 변화가 없다. 대학을 가고 싶은데 못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자녀가 상위권 대학을 가는지 여부가 소득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한국의 교육 불평등 해소는 양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목적을 뒀지만, 질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지엔 고민이 적었다. 건강의 경우도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 농어촌 간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건강보험 제도가 전 국민에게 일정 정도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양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수도권과 지방 도시, 농어촌 간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이제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적 불평등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과 입법이 필요하다.”

— 국민연금이나 정년 연장 등은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 이슈지만, 언제든 세대 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이런 초대형 난제는 우리사회가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건가?

“연금이나 정년 연장 의제 같은 어젠다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 사회 신뢰 체계가 붕괴해서다.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면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체계가 무너졌다. 특히 능력주의 공정 담론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사회 연대성이 산산조각 깨졌고,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정치 역할이 여기에 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공공선을 위한 선택으로써 연대·신뢰를 회복하는 정치가 시급하다. 인구 구조는 크게 변화하고 있고, 수도권 지방 간 격차도 너무 크다. 제조업 리빌딩이 필요한 격변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계속 밀어붙이면 한국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공동체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신뢰 체계 회복, 이게 정치의 가장 큰 숙제다.”

이관후는 누구.

  • 서강대 정치외교학 학부, 석사. 영국 런던대(UCL)서 ‘대표(representation)’ 개념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
  • 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제16, 17대 국회서 보좌진으로 근무.
  •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 지냈다.
  • 2024년 11월 역대 최연소로 제10대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에 임명.
  • 책 ‘양극화에 도전하는 시민’, ‘압축 소멸 사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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