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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이 글은 아주 약한 수준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당신이 죽였다'(2025, 넷플릭스)는 첫 회부터 강렬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은 폭력적 통제 속에 갇힌 아내, 신고해도 달라지지 않는 경찰의 관행, 피해자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한국 가정폭력의 구조적 조건들—이 모든 것이 초반부 장면 하나하나에 촘촘히 배어 있다.

이 작품이 초반에 보여주는 긴장감은 단순한 스릴러적 공포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읽어온 현실의 잔혹한 반복에서 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대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왜 가정폭력이 매년 비슷한 패턴으로 재생산되는지, 제도와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가해자를 보호하는지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그러나 시즌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서사는 점점 구조적 문제의식을 견지하지 못한다. 작품은 초반부에 분명히 제기했던 핵심 질문—‘폭력은 왜 가능했는가?’, ‘국가는 왜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가?’, ‘희수는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탈출할 수 없었는가?’—을 뒤로 미루고, 대신 장르적 스릴러의 프레임에 서사를 과도하게 종속시킨다.

폭력의 사회적 조건은 인물 간의 비밀, 반전, 숨겨진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축소된다. 결국 작품은 구조적 폭력 비판 드라마가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스릴러적 긴장감을 위해 소비하는 서사로 회귀해버린다.

이 글은 ‘당신이 죽였다’가 초반부에 제기한 문제의식을 왜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는지, 그 결과 무엇이 지워졌는지, 나아가 이 작품이 한국 OTT 드라마의 한계를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별도 설명이 없는 한 이 글에서 사용한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당신이 죽였다’ (2025, 넥플릭스)입니다.

초반부의 섬세한 문제 제기

‘당신이 죽였다’ 초반부는 분명히 뛰어나다. 많은 작품이 가정폭력을 단순한 사건의 시발점 정도로 처리하는 것과 달리, 이 드라마는 희수의 일상에 깊이 스며든 폭력의 흔적을 섬세하게 쌓아 올린다. 폭력은 단순히 육체적 가격이 아니라, 습관화된 통제, 감정적 압박, 경제적 의존, 주변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완성된다.

  • 남편의 표정 하나에 긴장하는 희수
  • 무언가 잘못될까 봐 계속 주변을 살피는 행동 습관
  • 남편이 돌아오기 전 집안 정리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장면
  • 신고를 고민하다가도 되돌려버리는, 수없이 반복된 자기검열

이런 장면들은 가정폭력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 구조, 그리고 한 사람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서서히 소멸시키는 과정이라는 점을 제대로 포착한다. 그러나 작품이 중반부 이후로 들어서면 이 섬세한 구축이 의미를 잃기 시작한다. 폭력의 사회적 원인, 제도적 실패, 구조적 조건을 분석하던 서사는 어느 순간부터 ‘반전 스릴러’의 장르적 자극에 밀려난다. 폭력의 구조를 끝까지 붙잡지 못한 것이다.

‘악마 남편’으로 축소된 가정폭력의 구조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언제나 ‘특수한 개인’의 문제로 취급된다. 그런데 ‘당신이 죽였다’는 초반에는 이 전형적인 프레임을 넘어가려 했음에도, 후반부에는 다시 그 익숙한 틀로 돌아가 버린다.

희수의 고통은 사회적 조건—경제적 의존, 가족주의, 경찰의 무력함, 주변 사람들의 묵인—에서 기인한 것임에도, 드라마는 그 고통을 어떤 비극적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여자 정도로 축소한다.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가부장적 문화와 제도적 실패는 점점 주변화된다.

이 과정에서 희수의 고통은 심리적 불안, 개인의 약함, 트라우마적 흔적으로 치환되고, 폭력의 구조적 원인은 반전 장치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 초반의 사회비평적 잠재력이 후반부로 갈수록 빠져나가는 것이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분명히 비판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드라마가 남편 캐릭터를 너무 평면적으로, 거의 괴물처럼 그려낸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로도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남성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드라마적 장치로 남편이 ‘괴물화’될 때, 오히려 구조가 지워진다. 즉, 관객의 정서적 자극이라는 상업적 고려에 의해 스테레오 타입으로 과도하게 ‘악마화된 남편’은 구조적 비판을 방해한다.

폭력은 사회적 재생산 장치 속에서 만들어진다:

  •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
  • 가부장제
  •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제도
  • 경찰의 잘못된 대응 관행
  • 주변 가족의 침묵

그러나 이런 맥락을 충분히 그려내지 않으면, 폭력은 다시 ‘이상한 사람 하나가 저지른 끔찍한 일탈’로 축소된다. 남편의 폭력성을 구조적 존재가 아니라, 그저 ‘특별히 잔혹한 남자’의 성격 문제로만 설명하면, 가정폭력은 다시 사회적 문제에서 배제되고 만다. 이 ‘괴물화의 편의’는 작품의 가장 큰 한계다.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시스템의 실패’

실제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는 신고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가정 문제’라며 돌려보내는 경찰, 임시조치의 허술함, 가해자 접근금지 요청이 늦게 처리되는 행정 절차—이 구조적 실패가 수많은 피해자의 생명을 위협해 왔다.

‘당신이 죽였다’는 초반에 이 문제를 분명히 제기한다. 그러나 그 문제제기는 드라마가 후반부에 반전과 액션 중심 구조로 이동하면서 점차 흐려진다. 사실 작품이 정말 사회적 책임성을 갖고 있었다면, 희수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한 건 다음 질문들에 대한 장기적 답이어야 했다:

  • 피해자 보호 시스템은 왜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가?
  • 왜 신고 이후에도 폭력은 멈추지 않는가?
  • 왜 피해자센터, 쉼터, 상담기관이 실질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가?
  • 왜 주변의 지지망은 언제나 두텁지 못한가?

하지만 후반부의 서사는 이러한 구조적 질문을 더 이상 확장하지 않는다. 대신 스릴러 장르의 사건 전개가 중심이 되고, 국가의 책임은 주변부로 밀린다.

스릴러의 과잉/여성 서사의 상실

OTT식 스릴러의 관성은 강력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적 구성은 시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의식이 희생되기도 한다. ‘당신이 죽였다’가 바로 그 사례이다. 작품은 초반의 중요한 질문들을 따라가기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스릴러의 방향성을 좇는다:

  • 숨겨진 비밀
  • 반전
  • 충격 전개
  • 캐릭터 간의 심리전

이런 장치들이 일정 수준은 필요하지만, 작품은 스릴러적 긴장감을 서사의 목표로 삼아버린다. 그 결과, 초반의 사회적 현실과 문제의식은 장르적 쾌감을 위한 배경으로 소비된다. 가정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 바로 이것이다.

가정폭력 서사는 생존, 탈출, 회복이라는 핵심 질문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죽였다’는 희수가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폭력에 갇혔고, 그 조건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충분히 탐구하지 않는다. 희수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명확하다:

  • 경제적 독립 가능성
  • 법적· 제도적 보호의 실효성
  • 사회적 안전망과 주변의 지지
  • 가부장적 통제에서 벗어날 공간

그러나 이 드라마는 구조적 조건보다는, 극적 사건과 후반부 반전에 능력이 집중된다. 그 과정에서 희수의 생존은 개인의 의지, 특정한 사건의 우연성, 장르적 극단 상황에 의해 설명된다. 이는 여성의 자립적이고 능동적인 생존 서사를 약화하는 방식이다. 희수가 생존하는 과정이 구조와 사회를 비판하는 장면이어야 했음에도, 작품은 그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거나 반전의 장치로 전환해 버린다.

OTT 시대의 드라마: 스릴러 재료로 휘발되는 폭력의 구조

희수가 남편에게 받은 상처, 폭력의 흔적, 반응하지 못하고 얼어붙는 순간들—이 모든 것은 원래 구조적 폭력을 고발하는 증거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 증거들은 서스펜스를 위한 오브제’로 기능한다. 즉, 폭력(의 구조)은 스릴러 재료로 휘발한다. 그것은 스릴러 장르의 도구일 뿐이다.

  •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열쇠
  • 플롯 전개를 위한 장치
  • 반전을 위한 실마리

이 방식은 피해자를 다시 한 번 도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폭력의 구조적 원인은 희미해지고, 플롯의 긴장감만 살아남는다. 사실 ‘당신이 죽였다’의 문제는 이 작품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OTT 드라마가 공통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이 있다:

  1. 초반에 사회적 문제를 제기한다.
  2. 시청자 관심을 끌기 위해 구조적 문제를 장르적 스릴러의 동력으로 사용한다.
  3. 중후반부로 갈수록 장르적 긴장감이 우선된다.
  4. 초반의 사회비평적 질문들은 회수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는 스릴러 장르의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플랫폼이 선호하는 ‘몰입형 서사’의 압력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 서사에서 이런 선택은 큰 문제를 낳는다. 가정폭력·젠더 폭력 같은 주제는 장르적 소비가 아니라, 구조적 비판과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OTT 플랫폼은 사회적 비판보다는 몰입과 긴장, 반전을 우선한다. ‘당신이 죽였다’도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르적 쾌감을 위해 소모된 가정폭력의 고통

‘당신이 죽였다’는 초반부에 분명한 문제의식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가정폭력의 구조적 조건, 국가의 실패, 주변의 침묵, 젠더 권력의 비대칭성—이 모든 핵심적인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갔더라면, 이 작품은 한국 OTT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강력한 사회 비판극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결국 장르적 쾌감, 반전, 서스펜스의 흐름에 구조적 비판을 종속시켰다. 희수의 고통은 스릴러적 장치로 소비됐고, 폭력의 원인은 다시 개인의 비정상성으로 축소되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실패는 단순히 이야기의 완성도 문제나 ‘용두사미’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가정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끝까지 책임 있게 다루지 않고, 장르적 서스펜스의 재료로 ‘소모’시켰다는 점이다.

이 한계는 ‘당신이 죽였다’가 가진 모든 잠재력을 약화시켰고, 결국 이 작품은 사회적 비판의 결을 스스로 지워버린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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