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새 필드] 한국학이 활발한 영국 셰필드에서 대중문화를 공부한 박미숙 박사와 함께 TV, 드라마, 영화 등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추가할 새 필드는 ‘골든걸스’입니다.
목차.
텔레비전만큼 ‘지금, 여기’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없다. 텔레비전을 통해 웃고 울으며 몸과 마음을 튜닝한다. 한편 텔레비전은 항상 천덕꾸러기였다. 잉여와 시간 낭비의 상징이자 바보상자이며,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죄의식과 쾌락을 동시에 느끼는 심리)의 대상이다.
그런 텔레비전이 내 삶의 등대가 된다면 어떨까. 그 중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준다. TV에 진정성이 있다면 그건 동시대 대중과의 공감이다. 이 글은 [골든걸스]가 그런 공감의 미학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돌아보려고 한다.
사회적 캠페인(1세대 예능) → 개인적 성장(최근 예능)
텔레비전은 영상을 통하여 있을법한 일상 생활이나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 혹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재를 재구성하여 전달하고 시청자는 그것을 본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간접 경험하는 세계에서 ‘리얼리티 예능’은 모든 정보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예능 제작자와 촬영장의 출연자들이 만들어내는 공감을 뜻한다.
과거 2000년대 초 소위 감동 예능 1세대, 가령 [일밤-이경규가 간다] (1996-1999), [일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2000-2005), [느낌표-아시아 아시아] (2003-2005), [남자의 자격] (2009-2013) 등은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의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도움을 독려하는 캠페인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최근 예능 프로그램은 개인적이고 성취 지향적이다. 1세대 감동 예능이 단일 주제 아래 최대한 많은 사례를 보여주려 했다면 요즘 예능의 감동 코드는 기승전결 서사 구조로서 세련된 연기력을 겸비한 장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연자들이 프로젝트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게 ‘진짜’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시청자의 감동 코드 역시 약자에게 무엇을 베풀었던 것에서 출연자 스스로 감동하는 방향으로 옮겨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유통기한 상품이 된 아이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이어져 온 ‘감동 예능’ 이후 텔레비전 예능은 성적 매력을 찬양하는 동시에 공개적인 성욕 추구는 금기시하는 이율배반이 공존했다. 그 속에서 아이돌은 합법적인 매체인 TV와 합법적인 표현 수단인 팬덤을 통해 어리고 순수한 섹시 심볼로 찬양되었다.
이러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의 청춘 예찬은 지속적인 수요 창출과 최신 트랜드를 추종하게 만드는 소비 사회의 속성을 반영한다. 기획사에 의해 기획된 아이돌 스타는 태생적으로 기획 ‘상품’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나이가 들며 유통기한이 지난 제조품처럼 취급받는다.
그러나 최근 아이러니하게도 소녀 예찬을 하던 장본인 중 하나인 프로듀서 박진영이 다시 대중에게 잊혀진 중년의 여성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다.
박진영의 아이러니한 기획, 골든걸스
[골든걸스]. 프로듀서 박진영은 평균 38년, 도합 151년 경력을 가진 국내 최정상 보컬리스트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가 K-팝 최정상 프로듀서와 함께 걸그룹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여정을 그리며 1막을 마쳤다. [골든걸스]는 걸 그룹 커버 무대를 시작으로 신곡 ‘원 라스트 타임(One last time)’ 발표 후 단독 쇼케이스, 게릴라 콘서트, 가요 대축제까지 연이어 소화하며 급기야 2023 KBS 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번 기획 상품은 사회적 의미가 이전과 다르다. 구태의연한 기획은 시청자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전에 본 듯한 프로그램이라도 어떻게 인물과 아이템, 이미지와 볼거리를 제공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그리고 프로듀서 박진영의 기획 의도는 분명했다.
그의 기획은 이제까지 했던 프로그램과는 다른 시도였고 그 가치가 빛났다. 박진영은 [골든걸스] “음악적 갈증있던 차에 그 답을 1980년대 가요에서 찾고 그 당시 전성기를 누린 기성 가수들을 모아 걸그룹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기획은 KBS 양혁PD를 만나 현실화했다.
나이 든 여성,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회적 기피 대상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나이 든 여성은 사회적으로 기피 대상이며 사회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수순에 가까웠다. 기량과 재능은 나이에 묻혔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 같은 시기를 지나며 경력 단절을 슬프지만 받아들이며 사회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기혼 여성의 고용 현황에 따르면 워킹맘은 1년 전보다 1만 3000면 감소했으나, 연령 계층별 고용률은 50~54세 67.3%, 45-49세 61.0%, 35~39세 52.7%로 나이가 많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경력 단절 이유를 보면 30~50세 여성이 육아(42%), 결혼 (26,2%) 임신,출산(23.0%) 등의 순으로 높았다. 그뿐만 아니라 경력 단절 기간도 3년 이상이 증가하고 10년 이상은 40.0%, 5년 미만 24.1% 3~5년 미만은 13.2%이었다. 또한, 경력 단절 여성이 재취업에 걸린 시간은 8~9년으로 추산됐다. 경력 단절 이후 새로 구한 일자리는 기존 직장에 비해 임금도 낮고 고용 안정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감하고 어울리며 성장하는 ‘왕년의 디바’
[골든걸스]는 평균 나이 59.5 살의 네 명이 걸그룹으로 데뷔, 활동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왕년의 솔리스트 디바들이 걸그룹이 되어 옆 사람과 조금씩 교감하며 어울림의 미학을 배우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은 성장에 나이 제한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골든걸스]의 인기와 화제성은 사소한 듯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뒤로 밀린 ‘경력 단절’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관한 유쾌하고 진지한 접근과 가슴 뭉클한 순간을 또 다른 무기로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어떤 도전을 하는데, 최적의 시기가 는 없다”는 골든걸스 멤버의 말처럼 사회가 개인의 성장을 기획 상품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있다.
2024년, 평범한 우리에게도 도전할 기회 열리길…
그러나 걸그룹으로 꿈을 다시 한번 실현하는 멋진 왕년의 디바와는 달리, 우리들 대부분의 꿈은 텔레비전 시청이라는 예능을 통해 간접 실현될 수밖에 없다. 해가 갈수록 지난날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보잘것없는 현재가 되어 자존감을 짓누른다.
고용 유연화와 평생직장의 실종은 불안한 미래를 키우고, 자기 계발 강박증을 유발한다. 경력 단절 여성들뿐만 아니다. 사회라는 혹독한 전장에 들어선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우리는 한 해를 그렇게 살아냈고, 우리의 꿈은 가끔 텔레비전 예능 세상 속에서 위로받고, 간접적으로 실현되었다.
하지만 2024 새해다. 새해는 그게 무엇이든 보다 공격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