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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숙의 새필드] 영국 셰필드에서 대중문화를 공부한 필자와 함께 대중문화에 비친 우리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추가할 새 필드는 2024년 한 드라마 속 사적 복수 안에 비친 우리 모습.

복수란 무엇인가?

사전에 복수란 해를 입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해를 돌려주는 행위다. 하지만 그 사전적 정의는 얼마나 껍데기인가. 얼마나 무의미인가. 현실의 복수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왜냐하면 완벽한 복수란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령 뉴스와 드라마 그리고 영화 속 복수를 보라. 이들이 다루는 복수는 대체로 성공하지만 결국은 처음부터 성공이라는 건 없다. 그 피해가 이미 채워질 수 없는 반지의 구멍, 영원히 주인을 찾을 수 없는 반지의 구멍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영혼이 찢긴 피해자에게 사회는 무관심하다.

그럼에도 복수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지옥, 그 허무를 대체로 현대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묘사한다. 이런 허무를 대표하는 영화는 당연히 [올드 보이]와 [악마를 보았다] (2010, 김지운)인데, [악마를 보았다]의 경우 제목에 “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라는 수식이 생략됐다.

이병헌이 연기한 극 중 주인공은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그 구멍을 채울 수 없다. 하지만 계속 최민식이 연기한 그 악을 추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계속 선량한 사람들만 죽어가고, 악은 확장한다. 심연을 바라보는 자는 조심해야 한다, 심연도 그를 바라본다는 것을. 이 니체의 오래된 경고처럼 이병헌은 자기 자신의 악마를 보았고, 결국 어디로 갈지 모른 채 오열하며 영화는 끝난다. 

[악마를 보았다] 중에서

그렇다면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의 복수는 어떤가. 우선 최근 한국 드라마 속 복수의 계보와 흐름을 잠깐 살펴보자.

2010년대, 공권력 판타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를 응징하는 공권력?

복수’에 관한 드라마는 2010년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뚜렷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꾸준히 등장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OCN을 필두로 한 케이블 채널 등이 소위 ‘장르 드라마’로 일컫는 수사드라마의 제작을 선도했다는 점 역시 ‘복수’ 드라마의 출현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OCN의 [나쁜 녀석들] (2014)은 경찰과 여러 범죄자가 손을 잡아 공권력으로 제압하기 어려웠던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또 [38사기동대] (2016, OCN)의 경우, 사기 전과범과 세금 징수 공무원이 불법 탈세를 일삼는 이들에게 합동으로 사기꾼을 속여 징세하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이 드라마들은 탈법 혹은 불법적 행위를 통해서라도 정의를 구현함으로써 범죄자들을 징벌하겠다는 공권력에 대한 기대와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은 신뢰하기 어려운 공권력에 대한 TV드라마가 보여준 전형적인 판타지다.

범죄자들을 모아서 범죄를 처단한다? 목적 지향의 공권력 판타지.

2020년 이후, 사적 복수의 장르화

그러나 2020년 이후의 ‘복수’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우리에게 복수에 관하여 ‘사적’으로 조금 더 은밀하고 세밀하게 묻는다. 그리고 행간에 피해자는 왜 사적 복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묻는다.  

‘사적 복수’ 서사는 늘 흥미롭다. [더 글로리] (2022)는 기본적으로 예외적인 ‘능력자’의 신데렐라 판타지에 가깝긴 하지만, 박연진(임지연)의 학교 폭력은 실화를 기반으로 김은숙 작가 특유의 감칠맛 나는 대사와 함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진이 최후에 교도소에서 눈물을 흘리며 날씨를 소개하는 장면에선 처연함과 통쾌함의 감정이 교차한다. [살인자 ㅇ 난감] (2024, Netflix), [비질란테] (2023, Disney+), [마스크걸] (2023, Netflix ), [국민사형투표] (2023, MBC) 그리고 [모범 택시 1, 2] (2021, 2023, SBS)와 최근 [노 웨이 아웃:더 룰렛] (2024, Disney+) 같은 드라마가 계속 이어진 것도 복수가 이미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장르이며, 이들 드라마가 이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처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과감한 표현을 통해 재현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방영 채널과 온라인 플랫폼의 확장이라는 조건이 크게 작용했다. 이와는 다르게 공공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지상파 채널들은 이러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화제성이나 시청률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을 점차 찾기 어려워졌다. 그 가운에 지상파에서 방영한 [모범 택시] 시리즈는 그 변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나친 선정성과 잔혹성으로 비판 받기도 했지만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모범 택시1] (2021)은 최고 16%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노웨이 아웃] 묘사한 2024년의 복수극

디즈니 +의 [노 웨이 아웃:더 룰렛]은 희대의 강간 살인범 ‘김국호 (유재명)’의 목숨에 200억 원의 공개 살인청부가 벌어지면서 이를 둘러싼 출구 없는 인간들의 치열한 싸움을 그린 드라마이다. 8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하나의 에피소드를 비중 있게 끌고 가며 모든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다채로움과 이들의 스토리를 관통하는 대국민 살인청부라는 ‘이벤트’를 창조해 장르적 재미까지 더했다.

이 드라마의 큰 미덕은 다양한 범죄 수사물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며 관련 장르의 흐름을 선도해온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예를 들어, [타인은 지옥이다] (2019, OCN)와 같이 절대악에 빙의 되거나, 싸이코 패스 성향으로 죄를 저지르는 이들에 관한 작품과 달리, 악행은 부각하고 가해자의 서사는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자 개인의 서사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의도는 드라마의 시작을 열었던 ‘김국호’에 대한 공개 살인 청구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김국호’는 살인마 조두순을 연상케 하며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범죄자의 특징을 거의 그대로 복사해 오고 있다. ‘김국호’의 모델이 된 조두순은 18건의 범죄 사건을 저질렀으며 그중에서도 ‘나영이’(가명)로 상징되는 악랄한 아동 성범죄자다. 그는 겨우 징역 12년의 ‘공적 복수’ 기간을 통과하고, 공식적인 형법 시스템을 통해 용서받았다.

좀 더 자세히 (이하 스포일러)

📢 이하 ‘약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한편 [노 웨이 아웃:더 룰렛]은 가해자의 관련 서사를 제거하는 동시에, 현실을 복사라도 하듯 범죄자의 악행을 뚜렷이 부각하는 여러 의도적 설정 등은 그 범죄가 왜 생겼는가에 관한 맥락보다는 범행 자체의 잔혹함과 범죄자의 악마성을 주목하게 만든다. 그런데 범죄자의 악행과 그를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하면 결국 그 범죄가 발생하기까지 가해자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살피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한 개인에 대한 증오와 강력한 응징에만 관심이 모여진다면 유사한 사건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 수사 관련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 가운데 하나는 사건의 실체에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부패한 공권력이다.  [노 웨이 아웃:더 룰렛]에서도 가면남의 돈 10억을  받은 윤창재 (이광수) 의 돈을 가로채는 형사 백중식 (조진웅)이 등장한다. 사기로 돈을 잃은 형사 백중식은 귀 잘린 윤창재의 돈으로 빚을 갚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귀 잘린 남자는 형사 백중식을 쫓고 형사의 딸을 볼모로 데려간다. 이러한 장면은 공권력의 한계와 사적 복수의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또한, 백중식은 딸에게  위해를 가한 김국한을 죽이고 싶지만 억누른다.  심지어 시시각각 위험에 처하는 김국한을 보호하는 인물이다. 즉, 형사 백중식은 공권력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타락한 형사 vs. 악마 범죄자, 2024년 우리에게 복수란 무엇인가.

사적 복수의 정당성에 관하여

[노 웨이 아웃:더 룰렛]은 사적 복수의 당위성을 당당히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적 처벌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현 형벌제도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범죄가 양산되었다고 결론 짓는다.  ‘죽어 마땅한 자’를 죽이는 ‘가면 남’과 현상금에 달려드는 인간의 욕망을 보며 시청자인 우리는 복수의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상징으로서의 드라마는 그런 ‘과장된 정의감’을 통해 현실의 좌절된 욕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 졸라 많이 왔네. 참 열심히 산다 그치?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한테 잘 해. 아빠는 갈 데가 없네.”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에서 희대의 강간 살인범 김국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갈 데가 없다” 는 거였다. 이 대사는 [노 웨이 아웃]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고, 또 이 작품이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김국호라는 가해자의 최후를 그려냄으로써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이상 ‘약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왜 사적 복수가 일어나는가?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에서 나오듯 사법제도는 형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간단히 말해 죄를 지었고 죗값을 치렀다. 김국한은 강간과 살인이라는 죄를 지었고 검거 되었고12년이라는 형을 받고 출소했다. 이것이 전부일까? 여기서 ‘진짜 현실을 사는’ 시청자는 근심하고 분노한다. 쉽게 답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적 복수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쉽지 않다. 그 과정은 지난하고 오히려 법에 저촉되는 행동으로 또 다른 가해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게다가 현대의 고도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고 힘 있는 범죄자들은 법기술자들로 불리는 대형 로펌이나 심신미약과 같은 제도의 빈틈 속에서 숨어 안녕하시다. 그런 현실을 전복하는 드라마의 쾌감, 폭발하는 욕구를 누가 어떤 도덕률로 훈계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내가 피해자라면. 내가 피해자라면 어떨까. 나영이는 이 드라마를 보고 통쾌함을 느꼈을까. 상처 받은 영혼이 조금이라도 치유됐을까.

피해자인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피해 이전의 상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시간을 아무리 훌륭한 드라마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마음, 연대와 연민, 공감을 우리에게 줄 수는 있다. [노 웨이 아웃]는 복수라는 폭발적인 감정을 과장된 캐릭터를 통해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그것이 피해자의 마음에까지 닿을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복수에 관한 드라마를 영화를 볼 때 떠올려야 하는 건, 내가 현실에서 충족받지 못한 피상적이고 과장된 정의감정의 충족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나일 수도 있었을 어쩌면 내 가족일 수도 있었을 피해자, 피해자 가족의 상처다.

사적 복수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회는 이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 질문해야 한다. 성범죄자와 사이코패스의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 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대중에게 고발하는 미투 운동, 그리고 유명인의 학교 폭력에 대한 고발 등은 픽션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그때 그 반지의 구멍을 조금은 메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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