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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돔 팬미팅에서 ‘푸른산호초’를 부르는 뉴진스 하니.

2024년 6월 26일 뉴진스의 도쿄돔 팬 미팅에서 제이팝의 전설인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뉴진스의 호주 출신 하니가 재현한 것을 기념해 2023년 7월 [슈퍼 샤이 Super Shy] 공개 직후에 쓴 글을 깁고 다듬어 다시 공개합니다. (편집자)


요즘 국내 뉴스가 하도 흉흉해 아이돌 보는 즐거움이 한풀 꺾인 상황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급박한데 때깔 고운 케이팝이나 반전 넘치는 K-드라마에 몰입하기 쉽지 않다. 엔터테인먼트라는 것도 물난리나 경제 침체 속에서는 다 헛짓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잘 나가는 ‘한류 비즈니스’의 묘한 모순이기도 하다.

케이팝의 대세이자 미래로 불리는 ‘뉴진스’가 또 한번 신곡을 공개하고 나섰다. [슈퍼 샤이]. 나는 [디토 ditto] 이후 뉴진스 노래나 뮤비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중이다. 지나친 세대 차이 느낌 때문이다. 꼬맹이들의 뽀송뽀송한 피부가 돋보이는 1080 HD 화질을 뛰어넘어 4K UHD 고화질에 담긴 춤과 노래가 매력적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어려운 부담감도 적지 않다. 무언가 묘하게, 아재가 시선을 두기엔 항상 복잡한 심경을 동반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1980년, 컬러TV


미디어의 발전은 스타의 형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을 나열해 보면 1930년대 유성 영화의 보급, 1960년대 TV의 보급, 2000년 초고속 인터넷 등장이 아닐까 싶다. 특히 영화 매체의 등장은 글로벌 스타를 만들어 냈고, 이후 유성영화로의 발전은, 외모와 노래가 다 되는 다재다능한 인재를 스타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눈에도, 찰리 채플린과 말론 브랜도, 그리고 이후 제임스 딘은 전혀 다른 성격의 배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미디어의 변화는 바로 흑백에서 컬러로의 진화였다. 1960년대 이후 미디어는 컬러(색)와 고화질 경쟁으로 휩쓸리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하게 미국에서 시작이 되었다. 1960년대 미국은 풍요의 시대였고 컬러 기술 혁명의 시대이기도 했다. 영화와 TV가 빠르게 컬러로 전환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1969년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발사부터 전 과정은 컬러필름으로 촬영되었다. 물론 미국을 뺀 대부분 나라에선 흑백 화면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라이프]라는 컬러 잡지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은 배경엔, 천연색으로 인쇄된 생생한 보도 사진이라는 장점 때문이었다.

흑백에서 컬러로. 포토 저널리즘의 상징 [라이프]. 오래된 과월호들은 수집 가치가 높다.

이러한 과정에서 뮤직 스타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즉 아이돌(idol)이 등장한 것이다.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선 비틀스가 그 첫 주인공일 듯싶다. 물론 그때만 해도 컬러보단 흑백 TV가 중심이었지만 갓 보급이 시작된 컬러 방송으로 영화와 TV가 경쟁하던 시기였다. 영국에서 날아온 주근깨 더벅머리 청년들이, 신선한 사운드와 잘생김으로 미국 소녀들을 열광시킨 것이다.

대중적 아이콘의 등장. [라이프] 표지를 컬러로 장식한 매릴린 먼로와 비틀스.

1970년대 초 본격화된 컬러TV는 값비싼 수상기 가격으로 기대만큼 빠르게 보급되진 못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전자 산업의 발달이 컬러TV 보급을 늘렸는데, 선진국 일본은 1970년대 중반, 중진국인 한국은 1980년 초가 컬러TV의 원년이 된다. 이러한 컬러 TV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는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탄생한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게, 당시 일본은 TV 방송산업의 첨단이었다.

1980년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 를 발표한 마츠다 세이코(松田 聖子)가 그 주인공이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아이돌 가수 마츠다 세이코(松田 聖子). 1962년생.

컬러TV = 아이돌 탄생


물론 1970년대에도 일본에는 ‘아이돌’의 원조라고 불릴만한 스타들이 없진 않았다. 전설의 아이돌 ‘야마구치 모모에’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일본은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풍요의 시대’라 부르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1980년대 들어서자마자 가히 ‘일본의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데,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전자 산업이 일본에 완벽히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욱 선명해진 TV 화면을 통해선 이전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 1962년생, 후쿠오카 출신의 방년 18세의 마츠다 세이코는, 두 번째 곡인 ‘푸른 산호초’를 통해 어마어마한 반향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전의 아이돌과 비견할 수준이 아닌 센세이셔날 그 자체였다. 특히 1980년 공개된 ‘푸른 산호초’는 선명한 화면을 통해 노래에 ‘색감’을 본격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어떤 색인가? 파릇파릇한 ‘청춘’의 색 말이다. 과거 야마구치 모모에는 ‘어른스러운’ 음색과 천재성이 일품이었지만, 아이돌의 전형까진 아니었다. 그러나 세이코는 외모, 목소리, 눈빛, 아우라 자체가 생동하고 약동하는 꽃다운 아이돌,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제이팝과 케이팝의 모든 여성아이돌의 ‘원형(Archetype)’을 바로 푸른 산호초의 그녀가 제공한다. 이른바 ‘오리지널리티’인 것이다.

고화질, 뉴진스


미디어의 화면이 선명해질수록 ‘아이돌’의 나이는 어려지는가? 이는 무척이나 검증이 어려운 주장이긴 하다. 역사적으로 18세 여성 아티스트의 수요는 항상 있었다. 심지어 아시아 여성은 서구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1962년생 세이코의 데뷔년도는 1979년 만 17세 몇 개월이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이 당시 종종 10대 초반이나 10대 중반의 여아들이 가수로 데뷔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아이돌’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들은 대개 아동용 동요 아니면, 어른스러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은, 고화질의 미디어가 10대 후반의 미묘한 ‘젊음’을 표현하기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얘기다. 우리는 《트와이스》나 《뉴진스》의 등장을 통해 이미 이 가설을 충분히 체험하고 있다. 고화질로 담을 수 있는 건 역시 ‘젊음’의 힘일 것이다. 화질이 바로 그 바로미터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디지털 시대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화질이 HD를 너머 4K에 이르자 새로운 스타를 원한 것이고, JYP와 하이브의 명민한 경영진은 더 뽀송뽀송한 피부를 지닌 ‘훨씬 어린’ 스타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궁극의 산물이 2022년 데뷔 무렵 만 16세~18세였던 《뉴진스》 가 아닐까 싶다. 데뷔 순서를 놓고 본사 하이브와 옥신각신하던 민희진 어도어 CEO가 이렇게 일갈했다던가? ‘하루라도 서둘러 데뷔시켜야 한다.’ 그러니까 그분은 4K 고화질 시대가 원하는 스타의 본질을 정확하게 캐치했던 셈이다. 바로 선명한 화면이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푸릇푸릇한 젊음의 아름다움 말이다.

뉴진스 인스타그램. 2024.04.21.

고화질, 세이코


제이팝 신화의 서막을 열어젖힌 1980년의 세이코와 1982년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 이들의 오래된 신화가 첨단 유튜브 시대에 여전히, 그것도 바다 건너 한국에서 지속되는 이유는 당시 일본의 공중파와 영화가 상당한 고화질로 촬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의 세이코와 아키나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4K 화면으로 부활하여, 시청자들에게 1980년대 일본의 위용을 전달하고 있다. 만일 흑백 화면이거나 화질이 낮았다면, 이들은 여전히 한국 시청자들과 그리 가까운 존재였을 리 없고, 쇼와의 아이돌이라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최근 1983년,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하와이에서 촬영된 세이코의 영화 ‘플루메리아의 전설: 천국의 키스(プルメリアの伝説)’라는 작품을 활용해 한국의 한 유튜버가 ‘푸른 산호초’ 뮤직비디오를 만든 게 화제다. 당연히 당시엔 뮤비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무려 40년이 흐른 뒤 외국의 팬이 만든 팬 뮤비인 셈이다. 그런데 4K 영화 화질로 부활시켜 상상 속 뮤비를 만들고 나니, 어째서 세이코가 그 당시에 혁명적이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기술의 발전, 화질 혁명, 색깔의 혁명을 구현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아이돌이었던 것이다.

원곡 발표 후 40년 만에 만들어진 팬 뮤비.

세이코와 그녀의 프로듀서는 이미 당시에도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간파했던지, ‘푸른 산호초’ 이후 나오는 노래는 죄다 제목에 ‘색깔’이 들어가게 된다. ‘붉은 스위트피’ ‘하얀 파라솔’ ‘여름의 문’ ‘바람은 가을 색’ 등등, 당연히 TV에 등장할 때 세이코는 색색이 화려한 옷을 입고 무대는 총천연색 조명으로 감싸며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 총천연색 빛의 중심엔 10대 후반, 생명력이 충만한, 귀여움의 끝판왕의 생명체가 존재한다. 그야말로, 아이돌 혁명이었다.

추신.


  1. 마츠다 세이코와 가장 닮은 케이팝 아이돌은 당연히 《뉴진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한다. 아이돌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을 실현하듯 2024년 도쿄 돔 무대에서 하니가 이러한 가설을 현실화했다.
  2. 다만 《뉴진스》의 색깔, 고화질 혁명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여전히 ‘아이돌’ 문화는 논쟁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3. 현 시기 아이돌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초고속 인터넷 속도는 2000년 이후 한국이 가장 빨랐다. 기술의 뒷받침 없는 최첨단 대중 문화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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