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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하우스 오브 카드’라고 불리는 드라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한국 정치를 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 가까운 과거 시점의 대체 역사물이다.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실제로 현실과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큰 줄거리(스포일러 포함.)


  • 박동호(국무총리)이 대통령을 독살하려다 실패한다. 장일준(대통령)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박동호가 긴급 체포되기 7시간 전이다.
  • 장일준이 쓰러지면서 박동호가 권한 대행이 된다. 권한 대행만 돼도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헌법 71조와 84조.)
  • 박동호는 최연숙(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내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털어놓으면서 “세상을 뒤엎을 시간”을 한 달만 달라고 한다.
  • 장일준은 아들 장현수의 비리를 덮으려 강영익(대진그룹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 정수진의 남편 한만수는 강상운(대진그룹 부회장)에게 여러 차례 뇌물을 받았다. 정수진은 몰랐던 걸로 나온다.
  • 박동호가 장일준의 비리를 파헤치려 하자 정수진(부총리)이 장일준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죽인다.
  • 정수진은 박동호가 장일준을 죽였다(죽이려 했다)는 걸 알고 박동호는 정수진이 장일준을 죽였다는 걸 안다.
  • 박동호가 대통령이 되고 정수진을 국무총리로 임명한다.
  • 박동호는 강상운(대진그룹 부회장)을 장일준 살인범으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낸다.
  • 박동호가 장일준과 재벌의 유착을 파헤치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좁혀온다. 강상운이 “장일준이 마지막 만난 사람은 박동호”라고 폭로한다.
  • 정수진은 박동호 탄핵을 밀어붙이고 박동호는 강영익(대진그룹 회장)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에 복귀한다.
  • 박동호는 “내가 장일준을 죽였다”고 밝히면서 선수를 친다.
  • 박동호는 탄핵과 무관하게 내란죄로 체포될 상황이다. 정수진이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다. 박동호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박동호는 왜 그랬을까, 세 가지 의문.


  • 첫 번째 의문은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죽여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느냐다.
  •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장일준이 박동호에게 말한다.
  • “동호야, 니는 늪에 빠짔데이. 살려달라고 손 내밀지 마라. 그 손 잡은 놈도 같이 빠질기다. 도와달라고 비명도 지르지 말래이. 그 소리 들은 놈도 똑같이 다칠기다.”
  • 박동호는 누명을 썼다. 그런데 뇌물 수수 혐의를 벗겠다고 대통령을 죽이는 게 말이 되나. 대통령을 죽이고 권한대행이 되면 체포되지 않는다.
  • 박동호는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굳이 대통령을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탄핵에서 돌아온 뒤에 기자들 앞에서 자백도 했다.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기 때문에 살인을 실토해도 체포될 일 없다는 건가.)
  • 두 번째 의문은 과연 그렇게 해서 세상을 뒤엎었느냐다.
  • 누명을 벗는 게 박동호의 목표가 아니었다면 더 이상하다. 강상운과 정수진은 감옥에 갔고 대진그룹에서 뇌물을 받은 의원들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 이게 과연 대통령이 두 명이나(장일준과 박동호) 죽어야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을 죽이고 내가 한 달짜리 대통령(권한대행)이 돼야 한다? 비장한 각오가 무색한 결말이다.
  • 세 번째 의문은 과연 박동호의 죽음(자살)으로 진실이 밝혀졌느냐다.
  • 설령 정수진이 박동호를 벼랑 끝에서 떠밀었다고 한들 박동호가 장일준을 죽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장일준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게 정수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각각 살인미수와 살인일 뿐. 정수진을 감옥에 보내는 게 이 엉망진창 드라마의 결말이 돼도 되나.
  •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이란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박동호는 과연 더 큰 거짓으로 거짓을 이겼나. 결말까지 보고 나면 실체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독특한 캐릭터.


  • 인권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장일준)과 그 뒤를 이은 검사 출신의 대통령(박동호).
  • 전대협 출신이지만 재벌과 결탁한 총리(정수진) 부부.
  • 강직한 검사(이장준)와 정치 검사(정필규).
  • 이들이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건 의도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다.

클리셰.


  • 녹음 파일이 계속 나온다. 스마트폰 털리면 다 털린다. 서로서로 도청한다.
  • 병원에서 대통령을 죽이고 있는데 아무도 와보지 않는다.
  • 생중계되는 몰래카메라로 악당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도 익숙한 클리셰다.
  • 서기태가 왜 죽었는지도 의문이다. 명색이 국회의원이 누명을 썼다고 자살하겠나.
  • 재벌 총수가 정부 인사를 쥐락펴락한다. 감옥에 가도 스테이크를 먹고 화상 통화를 한다. 박동호는 “대진그룹이 대통령을 손에 넣었다”고 했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설명이 없다.
  • 태블릿 PC도 나온다. 의도적으로 검찰에 흘렸는데 알고 보니 조작된 내용이었다.
  • 죽은 대통령 부인을 끼고돌면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팬덤만 확보하면 웬만한 허물을 덮고 갈 수 있다.
  • 시민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 충직한 보좌관들도 클리셰다. 이 친구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사나.
  • 애초에 전자담배로 대통령을 독살한다는 설정부터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반전의 반전.


  • 이 드라마는 공식처럼 반전에 반전을 연결한다. 롤러코스터처럼 계속해서 출렁거리니 개연성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다.
  • 드라마 시작 7분 만에 대통령이 쓰러지고 3회에서는 그 대통령을 죽이려던 총리가 쓰러진다. (자작극이었다.) 그래서 애꿎은 재벌 2세가 감옥에 간다.
  • 정수진은 박동호가 체포될 때까지 장일준의 수술을 늦추려 한다. 박동호 체포 10분 전에 박창식(여당 대표)이 의사들을 몰고 와 장일준의 수술이 끝난다.
  • 장관들이 박동호를 권한대행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버티는데 최연숙이 장일준 부인을 데리고 와 장일준이 박동호를 권한대행으로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 지지율이 뒤처지고 있는데 경쟁 후보 진영에 가짜 당원들을 집어넣어 막판에 뒤집는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 죽은 대통령 부인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협박당해 말을 바꾼다.
  • 탄핵안이 가결되기 직전인데 헌법재판관의 불륜 사실을 협박해서 결과를 뒤집는다.
  • 비서 스마트폰을 빼앗아 협박하는데, 그 스마트폰은 며칠 전 바꾼 새 스마트폰이다.
  • 공안 검사 출신의 야당 후보가 북한의 아버지에게 현금을 건넸다는 사실이 드러나 패배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총살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살아난다. 알고 보니 그게 총리 후보자와 야당 후보가 짜고 친 고스톱이었고 재벌 총수가 다리를 놨다.
  •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은 총리의 남편이 자살한다. 총리는 그 남편에게 모든 죄를 떠넘긴다.
  •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대통령. 그 옆에 있던 총리가 살인범으로 몰린다. 탄핵까지 갔다가 돌아왔고 이미 살인 혐의를 시인한 대통령. 이 정도면 자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총리가 굳이 대통령을 떠밀 이유가 있나.
  • 정작 박동호가 장일준을 죽이면서까지 하려고 했던 게 뭔지 알 수가 없다. 한 달 동안 권력과 자본의 유착을 폭로하면 현직 대통령을 죽인 게 정당화되나.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는 정치의 실종과 부재를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 정치에 대한 기대가 딱 이 정도 수준이다.
  • 강박적인 반전의 연속인데 그래서 중간부터는 좀 식상해진다. 좀비 영화 같은 느낌이다.

결론.


  • 기술적인 반전을 반복하면서 도파민을 끌어 올리지만 다 보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신념과 욕망이 충돌하는 정치 현실을 다룬 드라마 같지만 비장한 도입부에 걸맞은 스토리가 없다. 박정희를 쏜 김재규 정도는 돼야 할 텐데 박동호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이 드라마의 한계다.
  • 애초에 헌법 기관으로서의 대통령과 공직자 개인으로서의 대통령을 혼동한 스토리.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해서 헌법 기관을 공격하는 건 그것 자체로 내란이다.
  • 전형적인 선과 악의 구도를 무너뜨린 게 이 드라마의 킬링 포인트다. 안타깝게도 박동호도 그 지옥을 만든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게 마지막 반전이다.
  • “공정한 나라, 정의로운 세상.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자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어. 미래를 약속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어떤 미래가 오든 자신이 주인이 되려 하는 자들이야.”
  • 설경구가 워낙 연기를 잘해서 헷갈리지만 박동호의 말이 이 드라마의 키워드다. “나는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 적 없다. 나를 위해서 했지.”
  • 김용완(감독)의 설명을 들으면 조금 이해가 된다. 신념에 잠식돼 괴물이 된 인물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숭고한 부분을 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 하지만 박동호의 신념이란 게 결국 부패한 대통령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나. 타살로 위장한 자살을 ‘숭고한 책임’이라고 부를 수 있나.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운 드라마였다.
박정희 시해 장면을 재연하는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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