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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선수의 맹활약으로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지리그(MLB)가 최근 충격적인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해당 시즌 홈경기에서 ‘전자기기’를 이용해 상대팀의 사인을 훔쳐봤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휴스턴 구단의 창단 55년만의 첫 우승이라는 쾌거가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의미다.

이 소식은 전 세계 야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어, 메이저리그의 ‘사인 훔치기’ 스캔들은 향후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아마도 이번 스캔들은 정정당당한 경쟁을 지향하는 스포츠계가 사실은 공정하고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사인 훔치기 스캔들'의 장본인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사인 훔치기 스캔들’의 장본인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승자독식, 결과만능사회 

그런데 이처럼 승리와 목표를 위해 불법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을까? 국내 스포츠계만 해도 우승과 승리, 목표를 위해 승부를 조작하거나, 심판을 매수하고, 약물을 복용하고, 사인을 훔치는 사례가 종목을 불문하고 꾸준하게 발생해왔다.

비단 스포츠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매일 접하는 뉴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뇌물, 횡령, 배임, 청탁 등 온갖 불법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불법과 부정이 만연해 있는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1등과 승리,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선거제도와 대학입시제도 등 대부분의 사회제도가 승자독식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항상 순위에 집착하고, 승리만을 원하고,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때로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정하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순위권 '밖'의 인생, 인간은 '나가리'인 사회.
순위권 ‘밖’의 인생, 인간은 ‘제외’되는 사회.

문화콘텐츠 시장의 순위 집착

만약 가까운 누군가가 어떤 분야에서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를 받게 될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만 바라볼 수가 있을까? 이렇게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음악과 영화, 드라마, 출판 산업 모두 음원차트와 박스오피스, 시청률, 베스트셀러라는 각각의 ‘순위 지표’로 인기와 성적을 평가한다. 어떤 산업보다도 다양성과 주관적인 가치가 중요하지만, 대중성이라는 미명 아래 가장 획일적인 방식으로 콘텐츠와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가수와 배우, 감독과 작가 등 업계 종사자는 물론 그들의 팬들까지 눈에 보이는 순위를 무시하기 어렵게 된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국내 문화콘텐츠 시장은 지나치게 ‘순위’에 집착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10명 중 9명(88%)이 현재 우리나라 문화콘텐츠 시장은 순위 경쟁에 너무 민감한 것 같다고 바라봤으며, 대중들이 문화콘텐츠 순위에 너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이 80.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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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순위지표’ 구조에서는 자본력이 강하고, 업계 영향력이 큰 집단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무리 완성도가 높고, 평가가 좋은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하고, 제작사와 기획사의 힘이 약하면, 높은 순위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높은 순위에 오른 콘텐츠가 미디어에 자주 노출이 되고, 안전한 선택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높은 순위를 차지한 콘텐츠를 선택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순위지표의 영향력은 공고해지게 된다.

실제 대다수(92.4%)의 대중들이 우리나라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순위 지표’가 영향력이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절반 이상이 평소 순위가 높은 문화콘텐츠에 더 많은 관심이 갖게 되고(58.7%), 주로 순위가 높은 문화콘텐츠를 더 많이 감상한다(51.7%)고 밝혔다. 문화콘텐츠 시장에서는 1등만 기억되는 경향이 존재한다(74.6%)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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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함’을 바라는 청년세대의 문제의식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국내 음악계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음원 사재기’ 논란은 결국 순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대중문화산업의 현실이 만들어 낸 참혹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등만이 인정을 받고, 자본의 영향력이 곧 성공의 기회로 이어지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과 도덕적 해이가 생겨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대중들이 공정성과 도덕성, 정의로움에 민감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문화콘텐츠의 주 소비층인 청년세대의 경우 공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무엇이든 노력과 실력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매우 강한 집단이다.

또한, 부정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일궈낸 성과에 가차없이 칼을 들이대며, 예전 같았으면 유야무야 덮어졌을 사건들의 진위여부를 어떻게 하든지 밝혀내고자 한다. 이번 음원 사재기 논란이 그저 의혹에만 머무르지 않고, 크게 공론화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제 음원차트는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음원차트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명 중 1명(25.4%)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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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중가요와 가수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순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젊은 층일수록 음원차트를 신뢰하지 못하는 태도가 뚜렷하다. 그만큼 많은 대중들이 음원차트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보내는 것으로, 순위 지표로 콘텐츠를 줄 세우기하는 것은 사라질 필요가 있다(64.6%)는 주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음악산업계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볼 문제이다. 더 나아가 이번 음원 사재기 논란을 기회삼아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공정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지금 시대이기에 가능한 화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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