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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인터뷰 51.] 한국 사회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쿠팡에 관하여, 한번 더.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말하는 인간과 노동. (⌚10분)

여는 말: 침묵할 수 있는 권력

어쩌면 말보다 무서운 권력은 ‘침묵’일지도 모른다. 쿠팡 ‘오너’ 김범석이 그 침묵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누구도 김범석의 ‘아가리’를 열지 못한다. 일부 지식 노동자는 김범석 아가리를 여는 대신에 신체 일부를 인신공격 도구로 동원하는 찌질한 대리전을 수행한다. 그 모습을 본, 조선일보로 스카우트된 한 문화부 출신 기자는, 마치 궁전 삐에로처럼 어리광 한가득한 칼럼을 쓰며 흐뭇해한다. 그 조선일보 칼럼을 보며 김범석도 흐뭇했을 거다. 다들 밥은 먹고 다니시는가…

부르디외(1930-2002)는 사르트르가 주창한 프랑스 ‘앙가주망'(engagement; 참여 약속, 특히 지식인의 사회 참여) 전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사상가다. 그는 1997년 귄터 그라스와 함께 지식인이 사회 문제에 침묵하는 걸 비판하면서 지식인들에게 “아가리를 열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전후 독일의 살아 있는 양심으로 불린 그라스는 2006년 자신이 열일곱 소년 시절 자발적 나치였음을 고백한다…인생이란 이렇게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하며 씁쓸하다.

이상헌(ILO고용정책국장)은 그런 삶의 모순과 아이러니를 잘 아는 경제학자다. 이미 여러 번 쿠팡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더 이야기해야 한다. 이상헌뿐만 아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아가리’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쿠팡 문제가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쿠팡은 한국 사회의 ‘어떤 기준점’ 같은 게 돼버렸다.

이상헌. 2025.12.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50]

이제 쿠팡은 한국 사회의
‘어떤 기준점’ 같은 게 돼버렸다

질문∙정리: 민노
답변: 이상헌

💡 알림 안내

이 글은 2025년 12월 05일(금)에 진행한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 등으로 맥락화하고, 본문은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일인칭 관점에서 정리했습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이상헌 박사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 여는 말: 민노(질문자)
🔖 본문: 이상헌(답변자)

핵심은 ‘독점적 지위’

쿠팡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독특한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

  1. 우선 소비자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를 획득했다.
  2. 배달 노동 분야에선 노동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한다.

즉, 쿠팡은 소비자와 노동자 양쪽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뒤로 빠져나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특히 노동 문제는,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쿠팡의 독점적 지위가 유독 더 잘 발현되는 영역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해법은 단순하다. 쿠팡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 독점적 지위를 손대지 못하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증상에 대한 일시적 처방은 가능하겠지만, 그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할 수 없다. 그래서 기존 노동법이 아니라 공정거래법 같은 수단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쿠팡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독점 문제를 드러내야 하고, 그러려면 공정위가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지배는 있지만 책임은 없다

하지만 쿠팡은 가만히 있지 않다. 머리가 좋다. 가정해 보자. 내가 돈 1억 원이 있다면, 소비자 개인정보 보호에 돈을 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그 돈을 쓸 것인가. 쉽게 말해 소비자 후생을 위해 돈을 쓸 것인가, 정치적 로비력을 높이는데 돈을 쓸 것인가. 쿠팡이 보기에는 후자가 더 ‘경제적’일 수 있다. 전자는 비교적 큰 문제가 생겨도 소비자를 ‘집토끼’로 생각하면, 쿠팡이라는 울타리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정치적 어려움은 그 리스크를 미리 예측하기도 어렵고 실질적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다.

쿠팡은 특이하게 한국에서 법인을 만들고 미국에 상장했다(쿠팡Inc.). 아마도 이런 문제들을 미리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면 생길 수 있는 문제가 탑 오너십(김범석)에 연결되지 않도록. 더불어 주식 차액 등의 고려도 있을 수 있다.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 김범석 쿠팡 공동창업자. 쿠팡Inc. 이사회의장 겸 CEO. 김범석은 이천 덕평 쿠팡물류창고 화재가 있던 날(2021.06.17) 한국 쿠팡법인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쿠팡Inc는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보유한 모회사다. 김범석은 차등 의결권을 확보해 8% 지분으로 74%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지배는 있지만, 책임은 없다. 쿠팡뉴스룸.

우선 김범석에게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것보다 더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상황도 오너십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령, 사모펀드가 기업들을 사고파는 일들 중에서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보다 더 한 반사회적 행태들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아무런 법적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마존, 구글, 애플 같은 기업은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탈세’한다. 쿠팡은 이미 이런 글로벌 기업의 추세에 한국 기업으로서는 ‘빨리 올라탔다’고 봐야 한다.

계속 강조하지만 핵심은 ‘독점’이다. 그걸 해결하는 방식은 현 제도로는 ‘공정위’다. 하지만 공정위원장 정도의 의지가 아니라 행정 수반이자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쩌면 대통령의 의지로도 힘에 부칠 수도 있다. 기재부가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언론이 조직적으로 프레이밍할 수 있다. 정치 권력 전부가 힘을 보태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범석 ‘개인’의 입을 열고, 국회에 물러와서 추궁하고 야단치고 하는 건은,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을 수는 있지만, 별 의미가 있을까 싶다. 국회의원이 김범석에게 호통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통쾌할 수는 있어도… 김범석 ‘개인’은 달이 아니라 손가락에 불과하다. 김범석이 국회에서 욕먹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쿠팡의 독점적 지위와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플랫폼은 독점을 지향한다

플랫폼은 ‘독점 지향’이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쟁적으로 보이지만, 점차로 시장이 정리되면서, 인수합병이 아주 적극적으로 이뤄진다(G마켓+ 옥션, 이베이+G마켓, 신세계+G마켓, 신세계+알리바바 등의 사례).

쿠팡의 독점은 거의 완성 단계로 보인다. 다른 경쟁 업체들은 쿠팡만큼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쿠팡의 고객 이탈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는 JP 모건의 평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한국에서 쿠팡은 이미 대체 불가능한 플랫폼이고, 둘째, 한국 국민은 개인정보 유출 이슈에 민감하지 않다. JP모건의 지적은 경험적으로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정위가 지적한 20단계에 이르는 쿠팡 탈퇴 난이도는 부차적인 이슈다.

그렇게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나면 업종을 늘리고 품목을 늘린다.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쿠팡이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급여를 주는 건 맞다. 확대기에는 다른 플랫폼과 경쟁에서는 승리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좀 괜찮을 수 있는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파괴한다. 그래서 쿠팡이 일자리를 ‘더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일자리를 빼앗아 온 거다. 그동안 빙산의 일각이 보였다면, 지금은 그 수면 아래 구조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본다.

플랫폼, 대리전, 입장들

  1. 소비자.
  2. 쿠팡 납품 업체들.
  3. 배달∙물류 노동자.
  4. 플랫폼 기업.

원래 플랫폼 기업(4)의 아이디어는 3자(1∙2∙3)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있다. 이때 플랫폼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플랫폼을 매개로 소비자와 납품업체 그리고 노동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원래 목적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플랫폼이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수단에 불과했던 플랫폼’에 점차로 소비자도 납품업체도, 노동자도 의존한다. 그렇게 플랫폼에 독점적 힘이 생기면, 역학 관계가 전복된다. 이제 플랫폼은 세 당사자들이 ‘활용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 세 당사자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그런 지배력이 생기면, 플랫폼을 지배하는 사람(김범석)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세 당사자들을 자신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1. 어떤 사람은 소비자 입장에서
  2. 어떤 사람은 납품 업체 입장에서
  3. 어떤 사람은 노동자 입장에서 볼 수 있다.
  4. 그런 입장이 논쟁에 반영되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너무 재밌다(왜냐하면 자기는 쏙 빠질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소비자의 쿠팡 탈퇴 러시가 일어나면, 매출이 줄고, 납품 기업이나 배달∙물류 노동자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 사람들이 ‘쿠팡 때리지 마라’ 대리전을 펼친다. 일시적으로 쿠팡은 뒤로 물러나서 관망하고, 그런 시간이 흘러가고 법적으로 어떤 실효적 제재도 성공하지 못하면, 어느새 두리뭉실하게 다시 원상회복한다. 그게 독점의 힘이다.

민노씨가 말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맥락에서 한 지식 노동자가 한 용접 노동자를 비난하는 글을 마치 ‘불구경’하듯 쓴 조선일보 기사는 플랫폼 입장에서 마치 자신이 김범준이 된 양 밑을 내려다보듯이 글을 쓴다. 이런 류의 논쟁이 있으면, 자기의 입장,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입장들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들 자신들의 ‘정의감’으로 글을 쓰고 논쟁에 끼어드는 건데,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책임의 중심에 있는 쿠팡을 드러내는 방식의 논쟁이 필요하고, 스스로 각자의 입장에서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논쟁을 진행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최근 논의를 나는 꽤 긍정적으로 본다. 좀 자리를 잡는 느낌이랄까. 노동의 문제와 독점력을 서로 연결해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쿠팡의 독점적 지위와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논리적인 연결성, 궁극적으로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유출 사건’은 한국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어떤 기준점’

꽤 오래전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이 있었다. ‘쿠팡을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삼성을 생각한다’가 초래한 사회적인 공론화 이후 한국 사회가 조금은 나아졌다고 본다. 지금은 삼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 경제 정체에서 조금은 변화했고, 지금은 그 자리를 쿠팡이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쿠팡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는 보면 ‘하나의 준거점’처럼 보인다. 정치∙경제∙문화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중요한 지시점,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싶은지…1980년대 후반 이후 상당 기간 한국에서 모든 것의 기준점은 ‘삼성’이었다. 가령 노동 문제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문제라고 했을 때의 그 삼성이 늘 화두였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대 한국의 기준점은 쿠팡이다.

쿠팡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쿠팡 노동자 문제의 해법 그 단초가 생긴다. 나는 아무래도 경제학자다. 그리고 특히 노동의 문제를 좀 더 근심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쿠팡에서 비롯하는 노동 문제, 특히 죽음에 대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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