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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칼럼] 기왕이면 ‘서울주택도시개발촉진공사’가 어떻겠나?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라는 SH의 새 이름, 그 퇴행에 관하여. (⌚7분)

대관람차에 SH공사가 500억 원을 투입한다고? 이미지는 서울링(대관람차) 제로 조감도(상상도).

출범 당시 이름은 도시개발공사였다. 공사가 지은 아파트 측면 벽에 ‘개발’이라는 큰 글씨가 쓰인 걸 본 기억이 선명하다. 어감이 안 좋아서였을지, 외래어로 이름을 붙이는 대세를 따른 것인지, 언제쯤엔가 브랜드는 바꿔 칠했다. 회사의 이름이 바뀐 것은 2004년이다. 등기상 이름마저 영문 발음을 한국어로 옮겨 ‘에스에이치 공사’라고 등록하며 세계화에 부응(?)하였다.

2016년이 되자 공식적으로는 서울주택도시공사로 바뀌었으나, ‘SH공사’라는 브랜드나 이름은 계속해서 썼다. 발음이 편하고 짧으니까. 도시에 주택이 더해지고, 개발이 빠지고, 부르기 쉬운 영문 이니셜로 이름을 대신하는 흐름은 한국 현대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홈페이지 캡처.

공사와 연구원 및 법률 이름에 나타난 현대사의 흐름

이런 변화는 다른 지방공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인천도시공사는 2003년 인천도시개발공사로 출발해서 2011년 인천도시공사로 바뀌었다. 중앙공기업도 그랬다. LH공사의 전신은 랜드(L)와 하우징(H) 담당 공기업이었던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다. 이중 토지공사는 1975년 ‘토지금고’로 출발하여 1979년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되었다가, 1기 신도시가 마무리된 1996년에 SH보다 빨리 ‘개발’을 떼고 ‘한국토지공사’가 되었다.

연구 기관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1978년에 출범한 국토개발연구원은 1999년에 ‘개발’을 떼고 국토연구원이 되었고, 1992년에 서울 시정개발연구원으로 시작한 조직은 2012년에는 서울연구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부산은 1992년 동남개발연구원으로 설립되었다가 1994년엔 부산발전연구원, 2019년에 부산연구원이 되었다. 광주-전남이나 대구-경북의 경우 통합-분리되는 역사와 함께 ‘개발’이나 ‘발전’이라는 표현이 있다가 사라졌다.

💡 통합-분리와 개발-발전

1991년 출범한 전남발전연구원은 1995년에 광주전남발전연구원으로 확대되었는데, 2007년에는 전남발전연구원과 광주발전연구원으로 분리되었다. 이 둘은 2015년에 다시 통합하는데, 이때 광주전남연구원으로 통합되어 ‘발전’이 사라지고, 2023년에 다시 분리될 때는 각각 전남연구원과 광주연구원이 되었다.

어찌 보면 대구-경북의 연구원이 가장 시대를 앞서간 것 같다. 1991년 ‘대구권 경제사회발전연구원’이라는 (어떻게 보면 가장 포괄적이고 융합적이고 본질적인?!!) 이름으로 출범한 이 조직은 이듬해 대구경북개발연구원으로 개칭하였다가, 2004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점(서울연구원보다도 8년 빠르다!)에 ‘개발’을 떼어낸다. 2023년에 대구정책연구원이 분리해 나가면서는 경북연구원이 되었다.

비슷한 흐름은 법률 쪽에서도 볼 수 있다. 예컨대 1972년에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은 2003년 전면 개정되며 ‘건설’도 ‘촉진’도 떼어내고 ‘주택법’이 되었다. 기존의 주촉법은 ‘주택의 건설을 촉진하고, 주택을 원활하게 공급함으로써 국민 주거 생활의 안정화를 목적으로 제정·운영’된 것이고, 이제는 변화된 경제적·사회적 여건에 맞추어 ‘주거복지 및 주택관리 등의 부분을 보강’하려는 것이 개정과 개명의 이유라고 한다. (한편, 1980년에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은 여태 살아남았다. 2014년에 없어질 뻔했는데 이때 이야기도 슬로우뉴스에 있다: ‘아듀 택촉법’.)

주택법으로 이름은 짧아졌지만, 법이 다루는 영역은 더 커졌다. 예컨대 주택종합계획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이 몇 가지 추가되었다. 주촉법 시절에 명시된 내용은 1. 주택에 관한 기본 정책, 2. 주택 건설, 3. 택지 수급, 4. 주택자금의 조달 및 운용, 5. 기타 필요한 사항 등이었다. 기본 정책과 기타 사항을 빼면 핵심은 2~4호의 세 가지에 대한 것이다. 집 짓는 계획, 땅, 돈.

‘주택법’에서는 여기에 △ 저소득자ㆍ무주택자 등 주거복지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대한 주택 지원에 관한 사항과,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주거 환경의 조성 및 정비에 관한 사항 등이 추가되었다. 의미를 곱씹어 보면, 이제는 건설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집을 지을 계획과 이를 위한 땅과 돈 이야기뿐만 아니라 1) 사람에 대한 주거 복지와, 2) 이미 지은 주택에 대한 관리, 그리고 개별 주택뿐만 아니라 3) 주변 주거 환경, 그리고 첫 건설뿐만 아니라 오래된 집의 재개발 등 4)정비에 관한 사항도 이제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름이 짧아졌다고 하는 일이 줄어든 것이 절대 아니었다.

개발과 발전의 차이?

이렇게 우리 현대사의 법률, 기업, 기관 이름에 나타났던 ‘개발’, ‘발전’과 ‘건설’은 현재 우리의 외형적∙내면적 모습을 열정적으로 주조(鑄造)해 내고, 이제는 역사 속 흔적으로 사라졌다.

이러한 대한민국을 학자들은 ‘디벨롭멘탈 스테이트(Developmental State)’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발전의 계획을 세우고 앞장서서 추진하는 국가를 일컫는 말인데, 어떤 이들은 이를 ‘발전국가’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개발국가’로 번역하기도 한다.

개발과 발전의 차이는 뭘까? 무슨 차이일까? 강원도의 연구기관은 강원‘개발’연구원(1994)으로 출발하여 강원‘발전’연구원(2001)이 되었다가 강원연구원(2017)이 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강원연구소.

개발은 뭔가 좀 토건적이고, 즉 주로 땅을 파헤치고 (그 입지의 잠재력을 뭔가 건설하는 것에서 찾고) 산출물의 물리적 측면, 즉 하드웨어에만 관심을 쏟는 어감으로 많이들 받아들인다. (택지개발촉진법 덕분일까?) 발전은 뭔가 소프트웨어(까지)를 다룬다는 느낌을 준다. (대구권 경제사회발전연구원?)

그런데 사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용례를 넘어, 뭔가 부정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따라다닌다면 ‘개발’이라는 단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사실 개발의 어원이 그렇게 ‘토건’적인 의미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뭔가 잠재력과 같은 개인의 능력에 대해서는 ‘개발’ 대신 ‘계발’이라는 표현이 있다고도 나오는데, 개발 역시 잠재력이 나올 수 있도록 열고(開) 발(發)전시킨다는 의미다.

개발이나 발전이나 영어로 하면 둘 다 디벨롭멘트(Development)이고, 쌓여있는 것을 풀어헤친다는 의미다. (접두사 de- 대신 en-을 쓸 경우에는 반대로, ‘덮어서 담는’ 것이니 봉투 envelope라는 의미가 되지 않는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엄연히 개발과 발전이 주는 어감의 차이가 있다. “개발”은 주로 토지, 자원, 기술, 산업, 경제 등 유형적인 것, 또는 물리적인 것들의 발전에 사용되며, 없던 것에서 새로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발전’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 기존의 것을 개선하고 향상해서 과거보다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대구-경북이나 강원의 연구원들이 ‘개발’에서 ‘발전’이라고 이름을 바꾼 이유도 아마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처음에는 없는 상태에서 새로 형태를 갖추는 ‘개발’을 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무형의 컨텐츠도 중요해지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발전’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니었을까.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차이는, 개발은 ‘목적어’, 발전은 ‘주어’와 연결 짓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경제’를’ 개발하는 것이고, 경제’가’ 발전하는 것. 이렇게 보면 ‘개발’은 수단-도구화한다는 의미와, ‘발전’은 주체적으로 잠재력을 발현한다는 의미와 연결하여, 뭔가 은연중에 발전이 좀 더 긍정적인 것처럼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발전이라는 표현에도 뭔가 조급함이 느껴진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언제나 뭔가를 개선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무조건 ‘발전’을 들이밀며 뭔가 현 상태는 기본적으로 미개하거나 저발전의 단계에 있는 것처럼 깔고 들어갈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 그냥 연구한다고 해도 그럼 ‘퇴보’를 위해서 연구할 리는 없으니, 뭔가 부정하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본다는 의미로, 아무 수식어가 없으면 또 어떻겠는가.

그리하여 서울연구원, 경기연구원 등으로 이름이 간소화된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감의 표현이요, 개발뿐만 아니라 관리, 그리고 한 생애주기 이후의 새로운 정비, 또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넘는 지속가능성까지도 포함하여 시야가 넓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택건설촉진법’이 ‘주택법’으로 이름이 짧아졌어도 하는 일은 더 늘어났듯, 연구원과 공기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연구 분야는, 사업 분야는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한편, 발전이나 개발에는 상대적으로나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든다면, 가치판단이 배제된 ‘전개’라는 용어도 있긴 하다. 주로 어떤 상황 변화에 대해 붙이는 말이다. 예컨대 00정책의 전개 과정, 이라고 하면 이게 꼭 발전했다는 의미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연구원이나 공사 이름을 서울전개연구원이나 경기전개공사라고 지을 순 없을 것이니(왜 안되냐고 하신다면.. 당신이 옳습니다), 자연스럽게 ‘전개’라는 수식어는 탈락했다. 이제는 아예 개발이니 발전이니 하는 말이 없어도, 개발과 발전은 물론, 그 이상의 넓고 깊은 의미를 길어 올리고 빚어내는 시대다.

왜 갑자기 2025년 ‘개발’이 다시 부활했을까?

개발을 위한 발전, 발전 없는 개발

그런데 오세훈 시장은 2025년 여름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어서 다시 ‘개발’을 소환해 냈을까?

SH공사의 7.11 보도자료를 보면,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가운데에 ‘개발’을 다시 붙이게 된 목적은 “서울시민의 주거 복지 향상과 서울의 글로벌 경쟁력을 견인하는 개발 전문 공공기관으로서 역할과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동안 서울이 개발을 소홀히 했는지 모르겠는데, 주거복지, 그레이트 한강,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핵심 사업 추진 역할을 명확히 하겠다는 구절을 보니 조금 이해가 가긴 한다.

SH공사로서는 김헌동 당시 사장이 2023년 경기도 택지개발에 나서겠다고 했다가 경기주택도시공사 등 경기도 내외의 많은 이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는데, 서울 시내 개발 가용지도 떨어져 가는 마당에, 공사 업무의 질적 전환을 꾀하는 건 말이 쉽지 참 어려운 과제이고, 먹거리는 확보해야겠으나, 사업 영역을 넓혀보고 싶은 심정이라면 그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동의는 안된다. 당연히 필요하면 개발할 수도 있다. 그게 한강이든 용산이든 남산이든 서울 땅이면 SH의 영역이다. 그런데 교통이나 관광은 다른 공공기관이 있지 않나? 한강버스가 수상택시라면 서울교통공사가 담당할 일이고, 유람선이라면 서울관광재단이 있는데, 왜 SH가 나서는 걸까? 돈이 많아서?

심지어, 전액 민간 자본으로 세운다던 대관람차에는 SH공사에서 출자금으로 500억을 투입한다고 한다. 지금 SH는 임대주택은 충분히 짓고 지금 이러는 것인가? 매입임대주택 사업 실적이 처참하던데, 설마 거기서 불용한 예산으로 지금 대관람차를 짓겠다는 걸까?

SH공사가 참여하겠다고 하는 한강 관련 사업들. 이걸 하기 위해서 공기업의 이름에 ‘개발’을 부활시키겠다고 한다. 출처: 서울시의회 최재란 의원 2023.11.3. 보도자료

그리하여 좀 더 자세히 뜯어보니, 이건 오세훈 시장이 엇나가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동안 시의회에서 숱하게 지적을 받자, 아예 비뚤어지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예컨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나 한강버스, 수상관광호텔, 마리나, 서울링(대관람차) 등의 개발사업은 SH공사의 설립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데, 공사가 너무 그런 사업에 많이 동원되는 것 아니냐고 하니, 아예 공사의 사업 목적과 이름을 바꿔버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니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 이해는 가지만, 공기업 이름에 다시 ‘개발’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에 동의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학칙을 어기지 말라고 했더니, 자퇴를 해버리겠다는 격 아닌가. 이러면 곤란하다. 학생을 비하하는 비유를 하게 되어 정말 곤란하다.

하지만 조례는 통과되었고, 정관 개정과 등기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니, 공사의 이름은 바뀌었다. ‘개발’이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개발’을 되살리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시대의 흐름일까?

그러면 이제 서울연구원과 국토연구원도 다시 서울개발연구원과 국토개발연구원이 되고, 중앙정부 소속이든 지자체 소속이든 ‘개발’이나 ‘발전’을 떼어냈던 다른 연구 기관, 공기업들도 다시 이름에 ‘개발’을 복구하게 될까?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봐왔던, ‘발전’의 방향이 그런 방향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개발은 발전이 없는 개발이고, 그런 (발전이 없는) 개발을 향해서 발전해 온 것이 민선 8기 서울시정의 전개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S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출범식 및 비전 선포식. 2025.07.11.

영어로 하면 디벨롭먼트가 세 번이나 나온다. 디벨롭이 풍년이다.

‘A Development without Development: The Development of Mayor Oh’s policy – 발전 없는 개발: 오세훈 시정의 전개 과정’

마지막으로, 기왕에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개발’을 되살릴 것이라면, 이런 개발이 행여나 정체되는 일이 없도록, ‘촉진’도 같이 붙이는 것을 강력 추천 드린다. “서울주택도시개발촉진공사”.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개발만 가지고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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