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지난 1년간 국내 14개 금융사와 함께 실시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CST·Climate Stress Test) 결과를 18일 콘퍼런스에서 발표했다.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는 기후 변화 충격을 몇 개의 시나리오로 설정하고, 각 시나리오가 실물 경제와 금융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한 것이다.

기후 리스크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내 제조업은 물론이고 금융 시스템 안정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리 손실 규모를 파악해 금융 기관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이게 왜 중요한가: 금융권 위기도 크다.

  • 이번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는 한은과 금감원, 금융사, 기상청이 협력한 국내 최초 프로젝트다. 기후 변화에 금융계의 위기감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고, 테스트 결과로 경각심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병윤은 “현장의 금융 회사들은 기후 리스크를 실제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는 기후 리스크에 대한 금융 현장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적극 대비하게 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론은 간명하다. 기후 변화에 무대응할 때보다 탄소 중립에 적극 투자할 때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더 오르고 금융권 손실도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단기 비용을 치르고 장기 편익을 누리라는 권고이기도 하다.
  • 콘퍼런스 발제를 맡은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과장 김재윤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한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따라가면 2050년까지는 성장이 둔화하지만 2050년 이후에는 친환경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경제가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 반면, 기후 변화에 무대응하면 탄소 감축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성장 경로가 좋지만 2050년 이후부터 성장이 둔화하고 2080년 이후엔 역성장한다는 게 김재윤의 설명이다.

글로벌 기후 대응에 따른 4가지 시나리오.

  • 한은은 4가지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 첫째 ‘1.5도 대응’이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경로다.
  • 둘째 ‘2도 대응’이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현재 대비 80% 감축하여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억제하는 경로다.
  • 셋째 ‘지연 대응’이다. 2030년까지 기후 대응 정책을 도입하지 않다가 2030년 이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감축하는 경로다.
  • 넷째 ‘무대응’이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별도의 기후 대응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경로다.
  • 비교 기준이 되는 ‘기준 시나리오’는 기후 리스크 충격 없이 과거 인구 증가 추세를 반영해 성장하는 경로를 말한다.
  • 이 시나리오를 근거로 현재(2024년)부터 2100년까지, 시나리오 선택에 따라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수치화했다.

폭염일수 9일→71일, 재앙의 시간이 다가온다.

  • 무대응하면 평균 기온이 큰 폭 상승하고 강수량도 상당 폭 증가하지만 1.5도·2도 대응 등 기후 대응 정책 추진 시에는 온도 상승 폭 및 강수량 변동 폭은 제한적이다.
  •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무대응 경로 하에서 21세기 말(2081년~2100년 평균) 현재(2000년~2019년 평균) 대비 6.3도 상승하며 폭염 일수는 현재 연평균 8.8일에서 21세기 말 70.7일까지 증가한다. 폭염 일수는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연중 일수다.
  •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은 무대응 시나리오하에서 21세기 말 현재 대비 16% 증가하고,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 있는 최대 강수량, 즉 ‘극한 강수량’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현재 대비 40~80% 증가한다.

방관하면 2100년 GDP 21% 감소.

  • 기후 리스크는 장기간에 걸쳐 성장과 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기후 대응에 적극적일수록, 관련 정책을 조기에 시행할수록 부정적 영향은 축소된다는 결론이다.
  • 1.5도 대응 시 탄소 가격 상승 영향으로 2050년경 GDP가 기준 시나리오 대비 13.1% 감소하고 생산자 물가는 6.6% 상승하나 그 이후에는 친환경 기술 발전 영향으로 GDP 감소 폭과 생산자 물가 상승 압력이 완화(2100년경 GDP 10.2% 감소, 생산자 물가 1.9% 상승)한다.
  • 반면, 무대응하면 2050년까지는 기후 리스크 영향이 미미하나(GDP 1.8% 감소, 생산자 물가 0% 상승), 기후 피해가 지속 확대돼 2100년경 GDP가 기준 시나리오 대비 21% 감소하고 생산자 물가가 1.8% 상승한다.

농업·식료품·부동산, 2100년 주가 33.7% 하락.

  •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은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리스크(Transition Risk·전환 리스크)가 생긴다. 정유, 화학, 시멘트, 철강, 자동차, 발전업이 대표적 전환 리스크 취약 업종이다.
  • 반면 농업, 식료품, 건설, 부동산, 음식점업은 온도 상승 및 강수 피해 증가(Chronic Risk·만성 리스크) 등에 취약하다.
  • 한은은 전환 리스크 취약 업종의 경우 탄소 가격 상승으로 2050년경 큰 폭으로 하락한 이후 친환경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 비용 절감으로 점차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5도, 2도 및 지연 대응 시 전환 리스크 취약 업종의 주가는 2050년경 기준 시나리오 대비 각각 41.3%, 23.5%, 52.9% 하락한 후 점차 회복한다는 것이다.
  • 이와 대조적으로 만성 리스크 취약 업종의 주가는 2050년까지는 큰 변화가 없다가 2100년에 다다를수록 기후 피해가 늘어 하락 폭이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무대응 시 주가는 2050년 이후부터 점차 하락해 2100년경에는 기준 시나리오 대비 33.7%까지 하락한다.
  • 태풍, 홍수에 따른 보험 손실 금액은 기후 대응에 소극적인 무대응 시나리오에서 가장 컸다. 1.5도 대응 등 기후 대응에 적극적일수록 손실 금액 증가 폭이 제한됐다.
  • 무대응 시나리오에서는 풍수해에 따른 보험 손실 금액이 기후 변화 심화로 인해 2100년경 2023년 대비 46.6% 증가했다.
  • 1.5도, 2도, 지연 대응 시나리오에서도 풍수해 보험 손실 금액이 증가하나 증가 폭은 2100년경 각각 20.7%, 29.6%, 32.6%로 제한됐다.

금융권 최대 46조 원 손실.

  • 무대응 시나리오에서 기후 리스크로 인한 금융계의 손실 규모는 무려 45.7조 원에 달했다. 고온, 강수 피해 증가 등 물리적 리스크 영향이 확대한 결과다.
  • 지연 대응 시에는 급격한 탄소 감축에 따른 전환 리스크 확대로 인해 금융권 예상 손실 규모가 약 40조 원으로 증가했다.
  • 반면, 1.5도, 2도 대응의 경우 금융권(은행 7개사, 보험 7개사 기준) 예상 손실 규모는 27조 원 내외로 제한됐다.
  •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본 비율은 현재 규제 비율인 11.5% 밑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BIS 비율은 은행 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은행의 위험 자산 대비 자기 자본 비중을 뜻한다.
  • 1.5도 대응 시 BIS 비율은 고탄소 산업 관련 대출의 신용 손실 확대로 2050년경 8%까지 하락하나 이후 신용 손실 규모가 축소되면서 2100년경에는 11.5% 수준으로 회복했다.
  • 2도 대응의 경우 하락 폭이 제한적이나(2050년 BIS 13.1%, 2100년 12.3%) 지연 대응의 경우 2050년 6.5%까지 하락하고 2100년에도 10.6%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 반면, 무대응의 경우 BIS 비율은 2100년경 규제 비율보다 낮은 10% 수준까지 하락했다.
  • 김재윤은 “무대응이나 지연 대응 경로에서는 일부 몇 개의 은행만 손실을 보는 게 아니라 대다수 은행에서 확실히 손실이 발생한다는 걸 발견했다”며 “은행들은 기후 리스크를 해지(위험 상쇄)하고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 포트폴리오 운용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지방을 먼저 덮친다.

  • 콘퍼런스의 또 다른 발제자 황재학(금감원 금융시장안정국 ESG시스템리스크분석팀 수석조사역)은 “테스트 결과 은행 신용 손실의 70% 이상이 고탄소 배출 제조업과 자연재해 손실 민감 업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중요한 점은 국내 산업 단지나 주요 제반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다. 고탄소 배출 업종이 밀집되어 있는 지방권에 각별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 이날 금감원장 이복현도 “탄소 배출 제조 기업 등이 밀집한 지방에 경제적 타격과 금융 회사 손실이 증가함에 따라 지자체와 지방 소재 금융사의 관심이 요구된다”면서 “지방 소재 금융사, 지자체와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역 중소기업이 제조 현장에서 탄소 감축을 위해 필요한 컨설팅 제공을 확대하고 저탄소 전환 설비 투자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복현은 기후 리스크 감독 방안으로 △저탄소 전환 금융 활성화 및 녹색 여신 관련 인센티브 부여 △지자체 등과의 협력 강화 △전사적 기후 리스크 관리 시스템 도입 유도 등을 제시했다.
  • 이병윤은 “이번 테스트에 주로 대형 금융사들이 참여했는데 실제 기후 리스크에 취약한 기관은 소형 금융사들”이라며 “지방은행이나 저축은행은 회사 규모가 작기 때문에 기후 리스크에 대비하는 투자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기후 리스크에 더 취약하다”고 짚었다.
  • 금감원이 소규모 금융 회사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후 리스크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게 이병윤의 생각이다. 중소기업이 저탄소 기술을 도입하거나 업종 전환에 나서고 지방 금융사가 이를 지원하거나 대출할 땐 금융 감독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말말말 : 환경부 장관의 무서운 축사.

  • 이날 환경부 장관 김완섭은 축사로 섬뜩한 말을 남겼다.
  • “작년에 비가 참 많이 왔다. 기상학자들이 말하길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가 오면 자동차 운행이 어렵다고 한다. 아무리 와이퍼로 닦아도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폭포수가 내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0.9회의 폭포수 비가 내렸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연평균 3회 내렸다. 2024년은 한 해에만 9번 내렸다.”
  •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장 나승호도 최근 연구 결과 등을 통해 기후 위기 심각성을 강조했다.
  • “연평균 기온은 세계가 1.09도 올라갈 때 우리나라는 1.06도 올라갔다. 전 세계 바다 표층 수온이 0.5도 올라갈 때 우리나라는 1.23도 올라갔다. 해수면도 전 세계가 1.7mm 올라갈 때 우리는 3mm 올라갔다. 우리나라는 기후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망과 과제 : 탄소 가격 급상승 견딜 체력 있나.

  • 1.5도 대응 시 우리나라 탄소 가격(톤당)이 2030년 150달러(2025년 3월 현재 기준 약 22만 원), 2050년 1700달러(약 250만 원)까지 상승해야 한다고 추정한다. 단기적으론 탄소 감축 비용 상승이라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유종현은 “우리의 실제 탄소 가격과 목표 탄소 가격 사이 간극이 굉장히 크다. 대략 9000원~4만 원 정도가 우리나라 현재 탄소 가격인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및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5년 뒤 이 가격을 5배~10배 상승 시켜야 한다”고 경고했다.
  • 유종현은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탄소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현재 시장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탄소 가격 경로에 관한 정보를 시장에 제공하면 금융사는 이를 통해 포트폴리오 변환 등의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기후 리스크는 은행과 보험사의 주요 잠재 손실 요인이다. 기후 대응 정책은 시행 초기에는 고탄소 산업의 자산 가치 하락으로 금융 기관 손실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친환경 기술을 촉진하고 기후 변화를 억제해 손실을 일정 수준 내로 관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김재윤은 “은행과 보험사 같은 경우 ‘무대응’이나 ‘지연 대응’에서 손실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만약 무대응이나 지연 대응 경로로 가게 되면, 기후 리스크는 일종의 시스템 리스크로 악화할 수 있다. 이는 금융 안정에 확실히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 늦지 않았다. 기후 대응 정책을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 금융 기관의 경영 건전성 제고와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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