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이재용 회장 등 피고인들의 모든 혐의에 대해 또다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한국 기업의 가치에 비해 주가가 구조적으로 저평가되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교과서와 같은 사건이지만, 법원은 삼성물산 합병의 실체는 외면한 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과 경제 정의 확립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이번 판결,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가 비평했습니다.

삼성물산 합병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교과서

기업 가치 제고, 이른바 밸류업에 대한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투자한 기업의 주가가 오르기를 바라는 것이야 인지상정이지만, 마냥 큰 수익을 바라는 투자자의 불평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우량기업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도 본질가치나 성장잠재력에 비해 주가가 구조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경영진이 오로지 회사를 위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는 경영진이나 이사회가 보유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배주주가 여전히 기업집단 전반에 지배력을 가지면서 회사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우려가 경험적으로 축적돼 있다.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하 ‘삼성물산 합병’)은 이러한 불신이 뿌리 깊게 형성된 이유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도식화는 슬로우뉴스(이정환)

판결, 합병이 이재용뿐 아니라 회사에도 이익된다고?

삼성물산 합병에 관한 형사 판결(1심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2. 5. 선고 2020고합718 판결, 2심 – 서울고등법원 2025. 2. 3. 선고 2024노635 판결)은 합병의 핵심 목적이 이재용 회장으로의 그룹 지배권 승계에 있었다는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합병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무렵부터 합병의 핵심 목적과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시장과 투자자의 냉철한 평가가 끝나 있었다. 이 회장으로의 지배권 승계가 삼성물산 합병의 핵심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한 투자자는 거의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형사 판결이 자본시장의 평가나 투자자 예측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 법원이 삼성물산 합병의 실체에 관해서는 눈을 감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편, 1심은 지배력 강화나 경영권 안정화가 회사와 주주들에게도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2심 역시 이를 수긍하는 취지에서 이 회장으로의 지배력 강화가 회사에도 이익이라는 1심 판단에 따르면서, 무엇이 더 합병의 핵심 목적인지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판결에서 더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사의 이익과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정답이 없다. 굳이 이론적 견해를 가져올 필요 없이 이번 판결과 같은 시각은 국내 대기업집단에서 만연한 소유-지배 괴리(실제 소유한 지분에 비해 훨씬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함), 지배주주에 의한 사익편취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이 회장은 구 삼성물산 지분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고, 제일모직 지분만 약 23% 소유하고 있었다. 이 경우 두 회사 간 합병은 전형적으로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하게 진행될 위험이 큰 거래이다. 이는 곧 구 삼성물산과 그 주주의 손해를 의미한다.

실제로 당시 구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기금에 막대한 손해를 입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주도적으로 외압을 행사했고,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또한, 외국계 기관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메이슨 캐피탈도 삼성물산 합병으로 입은 막대한 손해를 우리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중재판정을 받았다.

이 두 외국계 기관은 중재판정으로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게 됐지만, 국민연금을 비롯해 다른 구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해보전도 어려운 처지이다. 이들로서는 삼성물산 합병이 회사와 주주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이번 판결을 결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합병 당시 강조했던 시너지가 실제로 기업가치에 충분히 반영되기는커녕, 삼성물산 주가는 10년 전보다 크게 하락한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혐의

이번 사건에서 중요했던 다른 혐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 회계분식이다. 로직스는 미국 제약업체인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삼성물산 합병 전까지 줄곧 ‘종속회사’로 분류해 왔다. 종속회사는 회사(로직스)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 말 그대로 경제적 관점에서 종속된 회사(에피스)로 이해할 수 있다. 종속회사는 연결재무제표에서 하나의 경제적 실체(연결실체)로 보고되고, 실제 취득금액으로 회계처리를 하게 된다. 반면, 회사가 지배력까진 행사할 수는 없어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관계회사’로 분류하게 된다. 나아가 관계회사에 대해서는 이른바 지분법회계를 통해 지분율만큼 관계회사 손익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로직스는 삼성물산 합병 이후인 2015년 말 기준으로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영향력만 행사하게 됐다고 보고,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처리를 변경했다. 바이오젠이 합작 주체로서 에피스 지분을 매입할 권리(콜옵션)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이유였다.

여러 쟁점이 있지만, 가장 핵심은 실제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로 인해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느냐에 있었다. 회계정보는 말 그대로 정보일 뿐, 회계정보 자체만으로 없던 경제적 사건이 발생할 수는 없다. 즉, 어떠한 경제적 사건이 먼저 발생해야만 이를 재무제표 등에 나타낼 목적하에 회계정보를 작성할 수 있다. 반면, 회계정보가 경제적 사건보다 먼저 작성된다면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고, 투자자에게 왜곡과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회계정보부터 작성할 수는 없어

이번 형사 사건에서는 로직스 측이 공장 바닥에 숨기기까지 했던 노트북이나 서버 등에 대한 증거능력이 대거 부인됐다. 그러나 금융당국 처분이나 행정소송 등 관련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사실관계에 따르면,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변경의 시발점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아니라, ‘삼성물산 합병’에 있었다. 삼성물산 합병에 관한 회계처리를 하면서 바이오젠 콜옵션 평가 이슈가 대두됐고, 로직스가 에피스를 계속 종속회사로 분류할 경우 동 콜옵션으로 인해 대규모 손실 및 자본잠식 발생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이미 로직스의 회계처리 변경은 적정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로직스는 실제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회계처리 변경을 검토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손실과 자본잠식이라는 결과를 우려해서 회계변경을 검토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먼저 작성할 회계정보부터 정해둔 것이다. 로직스가 지배력을 특정 시점부터 상실했다고 회계처리한다면, 해당 시점에 에피스 지분을 공정가치로 평가하게 되므로 자본잠식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심지어 행정소송에서 확인된 당시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로직스는 처음에는 지배력 상실이 아니라 콜옵션을 평가할 수 없다는 논리를 세우기도 했다. 또한, 콜옵션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바이오젠과의 합작계약 변경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어려워지자 로직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법이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및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를 주요 근거로 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였다. 만일 실제로 당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했다면, 목적이나 과정의 부당함과 별개로 결과적으로 로직스의 회계처리가 잘못됐다고 문제 삼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했던 2015년 말에는 바이오젠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고, 나스닥 상장도 무산됐다.

이번 판결은 결과적으로 볼 때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가 경제적 실질에 부합했고,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러나 회계정보를 작성하게 된 배경이나 목적, 그 과정이 부적절한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도출된 회계정보 자체는 적정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정보가 적정하다고 용인된다면, 회계정보에 대한 시장의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 합병 평가, 밸류업∙자본시장 활성화 척도

핵심적으로 문제 된 쟁점 이외에도, 당시 삼성 측은 계열사인 삼성증권 리테일 조직을 동원해 개별 주주에게 부적절하게 접근해 합병 찬성을 설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번 판결은 PB(프라이빗 뱅커) 등이 주주를 상대로 직접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한 것이 아니라, 삼성물산 등 회사를 ‘지원’한 것에 불과하고, 일부 심한 부적절한 행위는 조직이 아니라 개인 차원의 일탈이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대로라면,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나 주주권익 보호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번 판결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법 개정 논의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입법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법을 어떻게 고치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국은 여전히 정경유착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지배주주가 경영진과 이사회를 제치고 주요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후진적인 시장으로 인식될 뿐이다. 이번 판결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고, 경제 정의를 세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부디 상고심에서는 온당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기를 바라며, 경제 정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 본다.

광장에 나온 판결: 278번째 이야기

⚖ 이재용 ‘삼성물산 불법합병’ 2심 판결비평
⚖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 판사 백강진(재판장), 김선희, 이인수 2025.2.3. 선고 2024노635 [판결문 보기]

※ 1심 판결비평 “이재용 위한 탈법적 합병, 상식을 벗어난 ‘무죄’ 선고 이유는?” [다시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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