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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JTBC 김도훈 기자가 전한 소식을 요약하면 이렇다.[footnote]JTBC 뉴스룸, ‘코로나 장발장’ 달걀 18개 훔쳐…18개월 실형 구형 (김도훈, 2020. 7. 1.)[/footnote]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한 남성이 배가 고파서 달걀을 훔치다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에 사는 A 씨는 지난 3월 23일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고시원을 찾았다. 고시원 입구에는 달걀 한 판이 놓여 있었고, A 씨는 달걀 18개를 훔쳐 달아났다. 고시원에서 하나에 300원씩 팔던 구운 달걀로, 금액으로 따지면 5천 원 어치다.

해당 고시원은 A씨가 3달 전까지 머물던 곳이다. A 씨는 일용직 일자리를 잃은 후 월세를 내지 못해서 고시원을 떠났다. 무료 급식소도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는 바람에 열흘 동안 굶었고, 물로 허기를 달래며 비참하게 살았다. 그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달걀을 훔쳤을 것이다.

A 씨는 5천 원어치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이유로 징역 18개월을 구형받았다. 죄의 무게를 더 크게 둔 이유는 A 씨가 절도 전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홉 번에 걸쳐 700만 원 절도, 그로 인한 13년의 수감생활. A 씨가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열흘을 굶은 사람이 달걀 5,000원어치를 훔쳤다고 이런 형량을 받은 사실은 안타깝다. 이 사건은 한국의 ‘코로나 장발장’으로 불리고 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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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7월 6일) 손정우의 소식을 전하는 한 기사를 접했다. BBC 한국 특파원 ‘로라 비커’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한국 검찰은 너무 허기진 나머지 달걀 18개를 훔친 남성에게는 1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구형했고, 세계 최대 아동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도 동일한 형량을 받았다”고 기사는 적었다.[footnote]엄밀하게 말해서 A 씨는 법원의 선고가 아닌 검찰의 구형이 징역 1년 6월이라는 점에서 선고된 형량이 1년 6월인 손정우와는 차이가 있다. 대체로 검찰이 구형하는 형량보다 선고 형량은 낮게 내려진다. (편집자)[/footnote]

손정우는 7명의 특급 변호사를 두고 재판 과정을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죄의 무게. 과연 어느쪽이 더 무거운 것일까? 배고파서 훔친 5,000원 어치의 달걀 18개와 44억원 어치의 22만여 개(8TB)의 아동 성 착취물 동영상 유통.

죄의 무게와 정의의 무게… 오늘은 무엇보다 공명정대 해야 할 법의 심판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 눈여겨 보게 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 송강호가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라며 날라차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지금의 한국은 그 야만의 시대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우린 얼마나 반성하고 얼마나 발전한 걸까?

절망 속에 숨죽여 눈물지을 많은 분들께 큰 힘을 보태드리지 못해 너무나 죄송한 하루다. 분노보단 허탈함이 느껴질만큼 참담하다.

범죄자 '손정우를 위한' 정의는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피해자를 위한 정의는 실현되었는가? (출처: OhLizz, CC BY)
범죄자 ‘손정우를 위한’ 정의는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피해자를 위한 정의는 실현되었는가? (출처: OhLizz,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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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후기: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에 관하여

참고로 7월 6일은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제작 및 운영자인 손정우의 미국 송환 여부가 결정된 날이었습니다. 결과는 많은 분들께서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법원은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제시한 불허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1. 주권국가로서 사법절차를 주도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점
  2. 성 착취 사건 수사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
  3. 범죄인 인도 제도의 목적이 (손정우를 미국에 보내 더 엄중하게 처벌받기를 원하는 여론에 공감하지만) 범죄인을 더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은 아닌 점

그동안 한국은 손정우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습니다(슬로우뉴스 기사 참고). 손정우가 ‘웰컴 투 비디오’를 제작, 운영하면서 받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는 관련 사건 피고인이 받은 형량을 비교해보면 명확합니다.

  • 음란물 유포, 성폭행 혐의 등 영국인 카일 폭스는 징역 22년형 선고
  • 아동 음란물 수령 및 돈세탁 등 미국인 니콜라스 스텐겔: 징역 15년 & 종신 보호 관찰형
  • 영상을 1회 다운로드하고 해당 웹사이트에 1차례 접속한 미국인 전 국토안보수사국 요원 리처드 니콜라이 그래코프스키: 징역 70개월, 보호관찰 10년

미국 사법당국의 손을 빌려서라도 손정우의 남은 범죄(범죄수익 은닉)를 제대로 처벌하길 원했던 많은 이들은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송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을 원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청원은 만 하루도 되지도 않았지만, 현재 시각(7월 7일 오전 7시 50분 경) 28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0416
청와대 국민청원

참고로 그동안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인 경찰과 검찰, 법원이 손정우의 여죄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리 열심히 수사하고, 기소하고, 판결해 손정우를 엄하게 처벌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범죄수익 은닉’에 관한 우리형법의 법정형 최대 형량은 미국의 1/4 수준인 5년 이하의 징역에 불과합니다.

주권국가로서 우리나라가 사법절차를 주도해야 한다면서 수사 당국의 성착취 범죄 수사 차질을 걱정하는 강 판사의 논리적이기 짝이 없는 이른바 ‘법관의 양심’이 과연 국민이 바라는 더 큰 정의, 피해자를 위한 더 더 커다란 정의의 이상에는 얼마나 부합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법이 감정이 되어선 안 되지만, 법이 법관의 메마른 머리 속에 갇혀만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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