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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쓴다는 것: [서울에 내 방 하나]를 쓰며

에세이는 잘 읽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삶, 내가 궁금한 어떤 독특한 삶이 아닌 이상 소소한 남의 일상 이야기들을 읽기엔, 내가 전혀 모르는 세상의 다른 지식과 이야기들을 주워 담기에도 시간은 늘 모자랐으니까. 예능PD가 되어 관찰예능의 전성기를 목도하고, 두 권의 에세이집을 내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브이로그의 대홍수를 보면서야 이해하고 있다.

‘아, 사람들은 비슷한 듯 다른 타인의 소소한 일상을 많이 궁금해 하는구나.’ 

나에게 타인의 삶을 본다는 것은, 잘 만들어진 휴먼드라마 장르 영화 정도의 영역이었다. 일상 중에서도 어떤 색깔의 순간을 포착해내고, 그걸 좋은 배우의 연기와 영상미로 담아내서, 감독의 시선으로 벼려낸 작품. 그 정도로 고르고 골라낸 정수가 아닌 투박하기 그지 없는 삶의 조각들도 이야기가 될 수 있다니.

그래서 첫 책인 [살아갑니다]의 북토크를 하러 갔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원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로 무언가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은 잘 하는 편이다. 학교를 다닐 때도 발표는 곧잘 했고, 한 학기 출강했던 대학의 전공 강의도 교수평가는 잘 받았다. 해직 시절에는 불러주는 곳마다 달려가서 공영방송 투쟁과 한국의 언론지형에 대해 치열하게 떠들었다.

살아갑니다 나를 버티게 하는 청춘의 조각들 | 권성민 에세이 권성민 지음 | 오마이북 | 2016년 10월 19일 출간

권성민 지음 | 오마이북 | 2016

잡담, 예능 그리고 에세이

그러니까, 뭔가 전달할 내용이 있고, 이걸 이해하기 쉽게 말로 전달하는 것은 좋다. 근데 에세이집의 북토크라니. 에세이집에 담은 건 내 신변잡기인데, 이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사람들을 앉혀놓고 무슨 얘길 해야 되지? 내 사는 얘기?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북토크 자리에 가서 설 때까지도 도대체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리를 채우고 앉은 사람들 앞에 서니 어찌어찌 뭐라고 떠들었던 것 같긴 한데, 무사히 마치긴 했지만 무슨 얘길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정말 진땀 나는 시간이었다.

지금 결혼한 아내는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나를 몇 번 만나더니 신기하다는 듯 나에게 “너는 정말 잡담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라고 했다.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결이 있다고. 마지막에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할 게 아니면 아예 이야기를 시작도 안 한다고. 그랬다. 어릴 때부터 어디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고, 과외를 하고, 누군가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데 거의 모든 ‘발화’를 쓰며 살아온 나는 강의와 강연에는 익숙했지만, ‘잡담’에는 정말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에세이’로 하는 ‘북토크’란 나에게 한없이 잡담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소설도 시도 아니고 특정한 주제가 있는 교양서도 아니었으니 [살아갑니다]는 에세이로 분류되긴 했지만, 방송에서 예능이란 장르가 그렇듯, 책에서도 에세이란 장르는 여집합에 더 가깝다. 드라마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면 예능이다. 예능이란 장르에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처럼 잘 정돈된 음악쇼도, [개그콘서트] 처럼 대본이 있는 정통 코미디 콩트도, [무한도전] 같은 캐릭터 쇼도, [가시나들] 같은 사실상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상물도 다 들어간다. 이걸 한 장르의 이름으로 부르는 건 솔직히 억지다. 너무 명확한 다른 분류에 딱 들어맞지 않는 건 그냥 다 예능일 뿐이다. 내가 예능PD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에세이도 그렇다. [살아갑니다]에 들어간 글들도 워낙 제각각이었다. 처음부터 기획을 가지고 차근차근 쓴 글이 아니라, 여기 기고하고 저기 연재했던 글들을 책 한 권에 묶어냈으니 통일성이 있었을 리가 없다. 영화 얘기도 했다가, 사회학 얘기도 했다가, 정치 얘기도 했다. 어떤 글은 너무 학문적이라 편집자님이 반 정도는 잘라냈고, 어떤 글은 너무 감성적이라 전혀 반대의 이유로 뺄 것인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같은 사람이 쓴 글이라는 점 말고는 아무 통일성도 없는 글들을, 나름의 키워드와 주제로 묶어낸 편집자 님의 솜씨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 것이 에세이인지라, 그냥 이곳저곳 손 닿는 곳마다 습관처럼 글을 써온 나 같은 사람도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어떤 자격도 분류도 필요 없는, 그냥 ‘글’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첫 책을 내고 그렸던, 책을 만들었던 과정에 대한 만화. 정말 다양한 글이 묶였다.

첫 책을 내고 그렸던, 책을 만들었던 과정에 대한 만화. 정말 다양한 글이 묶였다.

‘타인’에 관해 쓴다는 것 

신변잡기를 글로 써서, 불특정다수가 읽도록 한다는 것은 다분히 위험한 일이다. 세상 그런 ‘TMI'(불필요한 과잉 정보)가 없다. 내 글을 잔뜩 읽고 온 사람을 처음 만나면,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 정보의 불균형. 머릿속에서 나름 재밌는 얘기다 싶어 꺼내 놓으면 이미 어딘가에 썼던 얘기일 수도 있다. 내가 알고 경험한 것들을 글 쓰는데 탈탈 털어버렸다면,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그만큼 밑천을 드러내는 일이다.

신변잡기의 유의미한 경험이란 오로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위험한 이유다. 반드시 타인이 엮인다.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의 누군가를 소비해 버릴 수도 있다.

‘생활툰’을 연재하는 작가들은 자신의 일상을 과장하고 희화화 할 수 밖에 없고, 그들이 늘 애타게 찾는 소재는 주변인들로부터 오기 때문에 까딱하다가는 남을 허락도 없이 바보 만들어 인간관계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무언가 재미있는 경험을 할 때마다 ‘나 이거 그려도 돼?’하고 당사자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지만, 때마다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되는 것도 참 유난스러운 일이다.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건 그런 과정에 뻔뻔해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남 얘기 많이 하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교육을 끝없이 받는데, 생활툰이며 에세이며 ‘남 얘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쓸 수 있다. 한참 칼럼을 연재할 때 PD들의 심각한 노동환경을 글로 옮기느라 주변 PD들의 사례를 익명으로 적어 넣은 적이 있었다. 좁은 PD업계에서는 누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고, 허락 없이 적어 넣은 사례들이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너무 늦었을 때였다. 당사자들의 상처를 듣고 너무 부끄러워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끊임 없이 조심하고 있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내 기준으로 거르고 걸러 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철렁한 이야기일지.

그 뒤로는 내 눈에도, ‘나는 복잡한 피해자로, 타인은 단순한 가해자로’ 그리는 생활툰들은 아무리 좋은 메시지여도 읽히지 않는다. 사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렬하게 부각하려면 이게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메시지가 강한 것으로 유명한 여러 작품들에서 이런 광경을 자주 본다. 하지만 그 ‘단순한 가해자들’도, 아마 주인공만큼이나 복잡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복잡한 인간인 것처럼, 가해자도 그럴 것이다. (Matthias Ripp, CC BY) https://flic.kr/p/opGxp5

그 ‘단순한 가해자들’도, 아마 주인공만큼이나 복잡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Matthias Ripp, CC BY)

결국 나 자신 

하지만 무엇보다 소비하기 쉬워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남 얘기’가 아닌 ‘내 얘기’다. 사람이 아마 가장 솔직해지기 어려울 때가 ‘내 얘기’를 할 때일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고, 윤색되고, 왜곡되고, 미화된다. 사실 경험은 원석이고, 그것이 글로 옮겨질 때는 어떤 식으로든 재가공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원석으로서의 경험은 전달될 수 없다. 시선이 들어가고 해석이 들어간다. 그러니 글로 옮겨진 경험에 색이 입혀졌다고 불만을 표할 필요는 없다. 그건 필연적인 과정이다.

나에게 그것은 많은 경우 가난이었다. 가난은 어쩌면 주관적인 영역이라,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겐 국가가 지정해준 객관적인 기준이 있었으니 부정할 일도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았던 공립고등학교의 학비도 면제 대상이었고, 대학 때도 가계곤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되었다. 적어도 ‘가계’는 확실히 ‘곤란’했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성적장학금으로 대체해 스스로 자존심을 지켰지만, 어쩌다 성적이 너무 떨어져 가계곤란 장학금 마저 받지 못하는 학기에는 내 손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벌어야 했으니 고된 생활이었던 것은 맞다. 월세 17만 원짜리 방에서 오래 생활했고, 때로 돈이 너무 없을 때는 학생회관 라면코너에서 1,700원짜리 라면을 구입한 학생들을 위한 밥과 깍두기 자율 배식대를 라면 없이 몰래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알바비와 장학금을 넉넉하게 모은 학기에는 해외여행을 가기도 했고, VIP 좌석에서 뮤지컬을 보기도 했다. 풍요롭기만 한 생활은 분명 아니었지만, 온전히 누리지 못한 생활도 아니었다. 치열하게 산 것은 맞다. 하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내 대학생활은 언제 돌아봐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들이었다. 이제와서 돌아보자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던 중에도 나는 한없이 행복해했다.

가난은 ‘스펙터클’이다 

얼마 전 ‘도시 빈민’을 다룬 르포 서적을 읽었는데, 주된 내용이 쪽방촌과 고시원이었다. 사회학자가 쓴 그 책에 의하면, 대학시절의 나는 도시 빈민으로 분류되고, 그 중에서도 꽤나 안 좋은 쪽에 해당했다. 빈민이라니. 그랬구나. 그렇게 부르자니 새삼 기분이 묘했다.

가난

이제 겨우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일컫는 말에는 ‘불행’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거의 잠을 못자고 학업과 생활을 치러냈던 나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 사이에 기준이 높아졌던 걸까. 내가 그저 너무 낙관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진 걸까. 요즘 같은 분위기에 그 생활을 똑같이 했다면, 어쩌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지는 않았다. 스스로 ‘가난’이라 부르지도 않았지만 ‘가난’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경험들을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았다. 글로 옮긴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 뒤다. 더 이상 가난하지 않게 된 시점이다. 언제 그랬냐는듯 꽤 높은 소득을 받게 된 직장인이 되고 나서다.

가난은 스펙터클이다. 스펙터클은, 나는 경험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강렬한 경험을 대리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도 공연도 그래서 스펙터클이다. 나는 좌석에 앉아 있지만, 강렬한 감정의 고양을 경험한다. 그게 어느 방향이든 경제 상황의 극단적인 대비도 스펙터클일 수밖에 없다. 범부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갑부들의 생활은 그 자체로 식지 않는 인기 콘텐츠다. 저 멀리 맥컬리 컬킨이 주연했던 [리치리치] 때부터 오늘 날의 카다시안 가족까지, 기본 원리는 같다. 더 이상 제목이 ‘리치리치’처럼 노골적이지 않을 뿐.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빈곤 포르노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이 그 정도까지 떨어지지는 않을 열악한 경제 상황의 삶을 궁금해 한다. ‘리치리치’와 다른 점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 이 두 방향의 대비가 만들어낸 힘이 [기생충]이란 영화를 떠받친 다리 중의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관심을 관음으로 비하할 필요는 없다. 빈곤은 사회 문제고,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조심성이 전제된 아래, 실상을 알고 상황을 공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연민과 동정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나는 게으른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연대와 책임은 연민과 동정에서 출발한다. 사람의 감정이 무조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작동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은 스펙터클이라는 것이다. 강렬한 대리경험. 그 스펙터클은 꼭 [리치리치]나 [난민]처럼 극단적일 필요도 없다. 아예 꿈꿀 수 없는 정도는 아니어도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몇십 만 원 짜리 ‘스시 오마카세(すし おまかせ)’1를 먹고 리뷰해주는 영상이 인기인 것도 같은 맥락이고, 잊을만 하면 고시원 생활상이 콘텐츠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후자는 공감에 기반해서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https://ja.wikipedia.org/wiki/%E5%AF%BF%E5%8F%B8#/media/%E3%83%95%E3%82%A1%E3%82%A4%E3%83%AB:East_West_sushi_01.jpg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가난은 ‘잘 팔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난’은 잘 팔린다. 스펙터클은 잘 팔린다. SNS에 언제나처럼 글을 쓰던 나는, 학생들의 무상급식 문제가 뜨거워지는 것을 보며 고생스러웠던 내 대학시절을 떠올렸고, 그 경험에 비추어 무상급식에 대한 내 생각을 글에 담았다. 그리고 그 글은 어마어마한 관심과 공유를 받았다. 서로 다른 언론 지면에 몇 차례 인용됐다. 거기엔 정작 대학시절 당시에는 크게 의미부여 하지 않았던 내 가난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뒤로 어떤 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고생스러웠던 유년의 경험, 십대의 경험들까지 자주 소환됐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에 잘 맞는 경험이 많았다.

그것을 가난이라고 부르자면, 나는 가난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그것은 더하고 뺄 것 없는 온전한 내 경험이고, 거짓 또한 아니며, 동시에 강렬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것으로부터 양분을 길어올리는 것은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가난이 묻어있는 글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고, 어느 순간 이것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전한 자기 경험이라 한들, 더는 그 상황에 처하지 않은 이의 시선은, 위험할 수 있다. 대상화할 수 있다. 벌써 ‘나는 그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라고 떠올리는 것부터가 그렇다. 가난이란 스펙터클이고, 그래서 잘 팔리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나도 이것을 그저 ‘팔고 있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물론 글이란 결국 내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내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거기서 길어오는 양분은 훨씬 더 조심스럽게 들여다 봐야할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를 가져다 쓰며 조심스러운 것만큼이나 조심스러울 일이다. 어쩌면 가난했던 과거의 나는, 타인만큼이나 타인일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배운 문제의식들은 계속 붙들어 가겠지만, 표현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에 내 방 하나], 고생스럽게 홀로 섰던 20대의 이야기가 일부 담긴 이 책은, 이 시절을 직시하는 마지막 글 모음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책을 쓰며 ‘마지막이니까 적극적으로 써먹어야지’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많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말했듯 내 얘기를 하며 소비하기 쉬워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그렇게 소비하고 대상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또 모른다. 조심스럽게 옮겨 적은 시선 어딘가에 타인만큼이나 타인이 되어버린 10여 년 전의 내가 들어가 있을지.

그렇다고 내가 살아온 경험이 바뀌는 것은 아닌지라, 앞으로 영영 ‘고생스러웠던 기억’을 다시는 소환하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할 수는 없다. 결국 글이란 게 다 거기서 나오는 건데 지키지도 못할 말은 하지 말자. 하지만 훨씬 덜하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적어도 ‘내가 겪어 봤는데 말야’하는 어떤 나쁜 어른들을 닮지는 말아야지.

북트레일러를 직접 만들며 혼자 사는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살고 일하는 공간마다 찾아가며 느낀 것은, 와 다들 참 잘해놓고 산다, 였다. 집마다 참 예쁘고, 취향이며 미감이 드러난다. 그네들의 삶도 온전히 풍요롭지만은 않겠지만, 혼자 살던 내가 그랬듯 누릴 것들을 열심히 누리고 사는 것이다.

그래도 내 20대는 많은 면이 구질구질했는데, 그래서 책에 쓴 서울의 홀로살이는 종종 구질구질한 냄새가 나는데, 영상 속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제목에서 그런 구질구질함을 연상했던 사람들이 영상을 보며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저 예쁜 집의 면면 뒤에 가려진 치열함을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영상 뿐이니까.

그러니까, 내 삶은 역시나 자리를 많이 옮겨온 것이다. 주변의 혼자 사는 사람들을 불쑥불쑥 찾아가 인터뷰해도 그 시절의 구질구질함을 떠올릴 수 있는 구석은 별로 없다. 하지만 동시에, 영상 속에 다 넣지 못하고 잘라낸 많은 말들 속에서, 내가 했던 치열한 고민들과 닮은 조각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영상을 만든다는 것은 책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떠올린다. 아 소소한 타인의 삶이 주는 재미. 그래 이런 거였어.

요즘엔 에세이를 훨씬 더 많이 읽는다. 재미있는 책이 많다.
어쨌거나 나도 두 권의 에세이집을 낸 사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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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스럽게 홀로 섰던 20대의 이야기가 일부 담긴 이 책은, 이 시절을 직시하는 마지막 글 모음이 될 지도 모르겠다.


  1. ‘스시’는 초밥이고, ‘오마카세’는 ‘맡기다’는 뜻이다. 일식 셰프에게 자신이 먹을 음식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 혹은 그런 식당을 가리킨다. 즉, 셰프가 자신의 명예를 걸고 내놓는 최고급 초밥 한상 차림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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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민
초대필자.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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