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칼럼] 누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증명의 대상도 질문도 방향도 틀렸다. 12.3 전후로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윤석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7분)
어이없지만 한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무슨 죄가 있어서인지, 2024년 12월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통령과 장군들의 슬픈 모습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가끔은 그래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부하들의 죄는 묻지 말아 달라고 하는 군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태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은 꾸준히 부하들 탓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의가 남들에 의해 왜곡되었다며 말입니다. 심지어 그는 ‘내란과 탄핵 공작’을 당하고 있다고까지 합니다(2025.2.6. 헌재 6차 변론).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저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한번 가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계엄이 나라를 살리기 위한 충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야당에 대한 경고성 조치였으며,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국회의원을 끌어내거나 의결을 방해하는 등의 국헌 문란은 전혀 기획하거나 지시한 바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럼 탄핵 심판은 어떻게 해야 할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도 결론은 같습디다. 그의 해명이 사실이라도, 그는 파면되어 마땅합니다. 왜 그런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계속 바뀌는 윤석열의 계엄 목적
계엄 사유나 목적에 대한 대통령의 말은 계속 바뀝니다. 처음엔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기 위해서라 했다가, 중간엔 야당에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가, 나중엔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12월 3일의 선언시에 밝힌 계엄의 목적은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 수호
-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일거 척결
- 자유 헌정 질서 지키기
그런데 다음날 12월4일, 여당 대표와 총리와의 면담에서는 무엇 때문인지 한발 물러서서 ‘야당에 대한 경고성 계엄’이라고 합니다. 탄핵안이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의 4차 변론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은 계엄이 야당에 대한 경고용이었다는 주장을 이어가는데요, 어쩐 일인지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는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었으며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서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최후 변론에서는 또 무슨 말을 할지요?)

누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야당 및 소추인(탄핵을 가결한 국회측)은 피소추인(직무정지된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증명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려 했으면서 이를 덮으려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에 대응하여 피소추인 측은 국헌문란의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12월 3일 밤에 일어난 일들은 자신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증명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적군을 상대하는 것을 전제로 무장한 병력이 시민이나 국내 정치인을 상대로 국회에 출동하게 되면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치지요. 중요한 것은,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어떤 명령과 지시가 있었는지가 아닐까요.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든, 야당에 경고하기 위해서든,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군 통수권자가 군대를 국회로 보낼 때는 ‘헌정이 문란해지지 않도록 하는’ 각별한 어떤 조치와 명령이 있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을 군 통수권자가 먼저 밝혀야지요.
예컨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말을 대통령이 했다’고 다른 사람들이 증명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은 건드리지 말라는 지침을 확실히 내렸다’고 대통령이 증명해야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즉, 대통령이 잘못하여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소추인이 증명할 것이 아니라, 군인을 출동시키면서 ‘국헌문란이 없도록’ 제대로 지침을 주었는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피소추인 윤석열이 증명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졌는지) 몰랐다고요? 그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군대를 움직였다면, 그 자체로 파면감이고요.

윤석열이 해야 했던 일 (하지만 하지 않은 일!)
그가 정말 나라를, 민주주의를 걱정했다면, 취임 선서에서 밝힌 대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생각이었다면, 그는 무장한 병력을 움직이기 전에 다음과 같이 해야 했습니다.
- 혹시나 그의 계엄 선언에 담긴 충심을 오해하고, 이 틈을 타서 정치인들을 체포하려는 군인은 나오지 않을지, 체포해서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행방불명 시키려는 엉뚱한 짓을 벌일 과격한 책동은 어떻게 막을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 혹시나 요원을 의원이라고 잘못 알아듣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려는 짓을 군인이나 국정원 요원들이 벌이지나 않을지, 사전에 제대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 혹시나 군사독재나 친위쿠데타를 평소 열망하여, 이번 기회에 전면에 나서서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비상입법기구를 설립하여 나라를 망치려는 짓을 누군가 하지나 않을지, 경제부총리나 국방부 장관을 불러다 단단히 주의를 주고 대비책을 마련해 두라 했어야지요.
- 그뿐만입니까? 계엄을 선언하기 전에, 계엄사령관을 시켜 포고령을 발표하기 전에, 꼼꼼히 챙겨야 했습니다. 혹시나 반체제 세력들이 계엄 선포 과정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지나 않을지,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 계엄 직전의 국무회의를 개최할 때도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덕수 총리는 국무회의에 절차적, 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망치려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 같기도 한 저 국회 세력들’도, 황급히 새벽에 모여 계엄을 해제하는 과정에서도 다 지킨 절차를, 왜 계엄 날짜를 고른 우리의 대통령은 차분하게 준비하지 못했을까요.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한 것일까요?
- 또는 “국회에 가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질서유지이지 국회 활동 방해가 아니니까, 혹시라도 유리창을 깨거나 단전 단수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혹시나 요원을 의원으로 잘못 알아듣지 말라”는 말까지 미리 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선의 군인들이 저지를 구체적인 국헌문란 행위를 상상하기야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장관이나 사령관들에게는 최소한의 주의를 줬어야지요. “오해를 사기 얼마나 좋은 상황이냐, 절대 오해 살 일을 하지 말라“고, 일개 국정원 차장이나 일선 지휘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장군이나 원장이나 장관들에겐 이야기해야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출동 전에 모아 놓고 정신교육을 시킬 상황이 못 되었다면, 전화로라도 확실히 주지시켜야 했습니다. 특히나 전화를 받은 이가 저녁때 술을 한잔한 것 같았다면, (나중엔 술 마신 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무장한 병력을 움직이려는 마당에) 더더욱 확실하게 설명했어야지요. 국헌 문란이 없도록 말입니다.
아니, ‘어차피 오래갈 계엄은 아니니까 위법한 내용이 있어도 그냥 발표한 포고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정치인들이나 의사들을 처단하는 군인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누가 중간에 농간을 부려 챙겼는지는 모르지만, 애초에 출동 명령 같은 것이 없었으면 고이 부대에서 잠자고 있을 실탄들도 국회까지 실려 들어갔다는 것 아닙니까.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진짜, 아무도 처단 안 당했고 아무도 실탄을 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하마터면 지금 대통령은 살아서 탄핵 심판을 당하지 못할 뻔한 것도 아닙니까.
실제로 보십시오. 국회 유리창이 깨지고, 선관위에 난입하고, 국회 지하에서 단전이 일어나고…. 국헌문란 행위가 얼마나 많이 벌어졌습니까. 이러한 사태는 각하께서, 아무리 숭고한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더라도, 그 취지를 제대로 실무자들에게 설명도 하지 않고 선포해 버린 순간 예정되었던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헌법 수호? 12월 3일 이후 무엇을 해야 했나요?
백번 천번 양보해서, 12월 3일 전에는 그렇다 칩시다. ‘그의 예상대로’ 계엄은 일찍 해제되었습니다. 그 뒤 직무 정지되기까지 대통령에겐 열흘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국헌 문란의 의도가 없는 대통령이었다면 그럼 이때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저 같으면 그 열흘 동안 국정원 간부들, 방첩사, 특전사. 수방사 등등의 장군들을 불러,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국회 침탈 등)을 했는지 밝혀내서 국민께 보고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중차대한 시기에 무엇을 했나요?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변론하게 된 상황에서는 어땠습니까? 저 같으면 증인석에 앉은 군인들의 증언을 상대로, 이번에 벌어진 사태에서 제가 무관함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국회나 선관위에 들어가서 의원을 끌어내고 자료를 무단으로 열람하며 전기를 끊는 것이 임무라는 무시무시한 왜곡이 발생했는지를 찾으려 애타게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1월 23일 헌재의 4차 변론에서는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자백도 나왔습니다. 포고문은 자기가 썼고, 비상 입법 기구를 준비하라는 이상한 쪽지도 자기가 썼다는데요, 자신의 의도와 달리 계엄이 국헌 문란으로 흐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대통령은 놀라워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고, 참 태평하시더군요.
자신의 의도와 달리 왜 계엄이 이렇게 변질되었는지,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충분히 오해 받을만할 상황을 왜 만들었는지, 석연치 않은 부분을 밝히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어떤 특정 대답을 듣고 나니 목적을 달성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헌법을 수호하려는 대통령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유소에선 담배 피우지 못하게 하고, 계단엔 난간 만드는 이유
난간이 없는 계단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게 해 놓고 사고가 안 나기를 기대해서는 곤란합니다. 시설의 안전 책임자라면 더더욱 안될 말입니다. 불가피하게 사람을 보내야 할 때에도 미리 위험하다고, 조심하라고 알려주고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날 밤 10시 반에 그는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서 계엄을 선포한다는 방송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회를 무력화할 수 있는’ 무장 병력에 출동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마터면 부하들이 내란범이나 반란범이 되는 상황으로 별다른 설명도 없이 내몰았다는 말을 듣기 딱 좋은 상황 아닙니까.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 자신도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뉴스로도 접하고 보고도 받았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태평한가요?
저 같으면 제가 먼저 통화 기록, 통화 내용을 찾아서 공개하겠습니다. 절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형법 제91조 국헌문란의 정의 중)” 행위는 일절 하지 말라고 지시한 증거를 열심히 찾아서 보여주겠습니다. 애초에 그런 명령을 문서로도 남겨놓고, 계엄 전 국무회의에서는 시작할 때부터 강조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못했다면 중간에라도 다른 조치라도 하고, 이제는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애타게 노력하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위험천만한 임무에, 오해를 받기 딱 좋은 상황에 군인을 출동시켜 놓고, 그리고 나서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열흘이 지나도록 무얼 했습니까. 그 이후엔 헌법재판소에서 57일에 걸쳐 11차의 변론을 하는 동안, ‘잘못하지 않았다’는 변명만 하지 ‘잘못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파면이 아니면 진짜 어떡합니까.
오늘이 최후변론이라고 합니다. 정말 들어보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