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신재생과 원자력 둘 다 필요하다는 국민의힘… “북극곰 걱정을 넘어 삶의 문제로” 구호가 빠뜨린 것. (⌚6분)
윤석열이 공수처에 체포됐던 지난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트럼프 2기 기후 정책을 분석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나경원(국민의힘 의원) 주최 토론회였다.
나경원은 나름 기후에 진심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 기후환경대사를 지냈고 22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연구 모임인 ‘인구와 기후 그리고 내일(PCAT)’을 설립해서 대표를 맡고 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한국은 아직 내란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지만 세상은 굴러가고 있다.
- 오는 20일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세계적으로 정치와 경제, 외교에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 세계적으로 어렵게 합의한 기후변화 대책도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 한국은 준비하고 있나?

‘기후 타노스’ 트럼프가 온다.
-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1기 재임 시절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경제적 자살 협약(Economic suicide pact)”이라고 불렀다.
- 파리협정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지구적 차원의 합의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수치를 1.5도로 제한하자는 약속이다.
- 트럼프 1기가 ‘오바마 정책만 아니면 된다(Anything But Obama·ABO)’는 기조였다면 2기는 ‘바이든만 아니면 된다(Anything But Biden·ABB)’로 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후변화 대책도 마찬가지다.
- 트럼프가 첫 임기 때 파리협정을 탈퇴했고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복귀했다. 트럼프는 복귀하자 마자 다시 탈퇴할 가능성이 크다.
- JD 밴스(미국 부통령 당선자)는 “기후 변화의 원인이 인간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 셰일 가스 기업 출신의 크리스 라이트(전 리버티에너지 CEO)를 에너지 장관 후보로 내세운 것도 화석 연료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트럼프의 선거 구호 가운데 하나였다. 석유 시추를 더 늘리겠다는 노골적인 역주행 선언이었다.
- 에너지 비용을 낮춰 물가와 주택 비용 등을 낮추고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게 트럼프 2기의 핵심 전략이다. “녹색의 ‘새로운 사기(new scam)’를 집권 1일차에 끝내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미국의 역주행이 불러올 세계적 충격.
- 이날 토론회에서 정기용(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은 트럼프 2기 기후 정책 방향을 네 가지로 전망했다.
- 첫째,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 둘째,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지하고,
- 셋째, 화석 연료 생산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 넷째, 일방적 무역 조치 수단으로 탄소세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 김효은(전 기후변화대사)의 전망도 암울하다.
- 첫째,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NDC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05년 대비 61~66%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 둘째, 국가 차원 기후변화 대응 협력에 난항이 예상된다.
- 셋째, 미국 지원이 줄어들면 국제기구의 기후변화 대응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 당장 인천 송도의 GCF(Green Climate Fund·녹색기후기금)는 미국 분담금 30억 달러가 날아갔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 기후변화는 우리의 집과 직장을 뺏는다.
- 최악의 LA 산불로 고통 겪는 캘리포니아주 주민들은 주택보험에 가입하기 어렵게 됐다. 반복되는 기상 이변에 보험사들이 보장 범위를 축소하거나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 카트리나 이후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이 지난해 미국 남동부를 쓸고 갔다. 공장과 건설 현장이 폐쇄됐고 일자리 증가 폭이 크게 줄었다. 기후변화로 노동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 김효은은 “LA 산불 사태는 기후위기 경각심을 고조시키고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도 시장의 압박을 이길 수 없다.
- 트럼프 2기 정부가 친환경 정책과 기후변화 시장에 손을 완전 놓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정기용의 진단이다.
- 정기용은 “미국이 전기차와 재생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빠지면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서 “트럼프가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실제로 중국의 친환경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 발전 용량을 최소 1200GW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6년이나 앞당겼다. 2035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10년 빠르게 달성할 전망이다.
- 트럼프 1기에도 미국의 청정 에너지 발전량은 7% 늘었고 화석연료 발전량은 4% 줄었다. 전력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12% 줄었다. 트럼프도 재생 에너지 시장의 추진력을 거스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다.
- 트럼프 1기 때는 파리협정에서 탈퇴했지만 모법 격인 유엔 기후변화협약(UN FCCC)은 탈퇴하지 않았다. UN FCCC 교섭에서는 여전히 주요 당사국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다.
트럼프가 촉발한 위기, 한국이 잡을 기회.
- 트럼프 집권 2기가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역발상 접근도 가능하다.
- UN FCCC 당사국총회(COP)에서 미국은 비유럽 선진국 모임 ‘엄브렐라’ 그룹이고 한국은 개발도상국들이 참여하는 ‘환경건전성 그룹’(EIG)에 있다.
- 정기용은 “미국이 이탈하면 엄브렐라 그룹의 단일 대오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때는 ‘엄브렐라’ 그룹이 몰아치는 분위기였는데 이런 분위기가 느슨해지면 다른 그룹의 숨 쉴 공간이 커진다. 트럼프 등장이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이 비선진국 그룹의 의제설정을 주도할 수 있다.
- 한국 정부는 올해까지 2035 NDC를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정기용은 “NDC 제출은 법적 의무인데 지난해 말까지 내기로 한 이행 보고서도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김효은은 “트럼프 임기는 4년인데 그 이후를 봐야 한다”며 “탄소 중립 전략이 글로벌 밸류 체인의 중추라는 시각에서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극곰 걱정을 넘어 삶의 문제로.
-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국가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에서 재생 에너지로 왔다갔다 했다.” 김용건(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 신각수(‘인구와 기후 그리고 내일’ 이사장)는 “신재생과 원자력 둘 다 필요한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취사선택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전략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김소희(국민의힘 의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국가다. 어떤 에너지가 좋고 나쁘다, 싸울 일은 아니다. ‘원자력은 절대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의원 몇 분이 있어서 ‘정치’로 문제를 푸는 게 어렵다.”
- 김소희는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데 북극곰 걱정을 한다’는 식의 트럼프의 반PC(정치적 올바름) 정서가 미국 중산층에서 지지를 받았다”며 “기후 대응을 하려면 정부가 예산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지, ‘북극곰 멸종’ 등으로 정서에 호소하는 건 잘못된 방식”이라고 했다.
- 기후변화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과 연대를 높여야 한다. 김효은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후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이 기후위기 대응 글로벌 NGO로 대거 자리를 옮기고 있다.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블루칼라와 노동조합 등 트럼프가 공략한 계층들의 마음을 왜 사로잡지 못했는지 성찰과 논의가 뜨겁다.
- 김효은은 “기후변화는 당신의 직장을 뺏는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문제다, 이런 메시지를 주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기후변화 대응이냐’는 반응에 어떤 대답을 꺼낼까, 전략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생각해 볼 부분.
- 올해 COP29에서 탄소 중립의 해법으로 원자력 발전을 늘리겠다는 나라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 뉴욕타임스는 “과거에는 원자력을 해결책의 일부가 아닌 문제의 일부로 보는 이들이 많았지만 재생 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이 ‘떠오르는 별(rising star)’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민주당 대표)은 지난해 7월 “기후위기 대응과 실효적 에너지 대책 신설을 위해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재명은 원전 축소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다.
- 한국환경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이 다자주의적 협력을 강화해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고, 기술개발과 녹색금융 지원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분석과 전망.
- “북극곰 걱정을 넘어서자”는 주장과 “삶의 문제로 보자”는 주장에는 간극이 있다. 우리의 문제로 봐야 하는 건 맞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자칫 원자력 발전이 가장 비용 효율적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논쟁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결단과 선택의 문제고 공론의 영역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 한국에서도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비율 등 기후 정책 방향을 두고 끝장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 녹색전환연구소는 “다음 대선에서 기후를 보편적 공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유진(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기후와 에너지 전환 의제가 특정 환경 진영이나 환경에 관심 있는 일부 유권자들의 요구가 아니라 모든 영역에 걸친 보편적인 공약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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