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한상진이 “차라리 김우룡이 그립다”고 말하는 이유.
편집자 주.
– 이 글은 6월22일 방송된 ‘내 그럴 줄 알았다: 뉴스AS’를 중심으로 추가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기사입니다. ‘내그알’의 이재석 기자와 안귀령 앵커, 뉴스타파 한상진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 이 기사는 신동아 2010년 4월호 기사 “김우룡과 MBC, 8개월 전쟁: 김재철 사장, ‘큰집’에 불려 가 조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 정리했다”의 뒷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진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쾌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이동관(전 방통위원장)이 가고 김홍일(전 방통위원장)이 가니 이진숙이 왔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청문보고서가 채택되거나 말거나 윤석열(대통령)은 이진숙을 임명할 거고, 이진숙이 가면 비슷한 누군가가 올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 3년 차인 2010년의 일이다. ‘방통대군’이라고 불렸던 최시중(당시 방통위원장)이 방통위를 장악하고 있었다. 최시중은 이명박 캠프 특보를 지낸 김인규와 구본홍을 KBS와 YTN을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보내고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에 김우룡을 꽂았다.
방문진은 MBC 지분 70%를 보유한 대주주다. 엄기영(전 MBC 사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물러난 뒤 방문진은 그해 2월 이명박의 고려대 후배인 김재철을 MBC 사장으로 임명했다.
김우룡이 드러낸 진실.
- 그 김우룡이 신동아 인터뷰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니다. 처음에는 김 사장이 좌파들한테 얼마나 휘둘렸는데. 큰집도 (김 사장을) 불다가 ‘조인트’ 까고 (김 사장이) 매도 맞고 해서(만들어진 인사)다.”
- “쉽게 말해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냐가 첫 번째 기준이었다. (내가) 청소부 역할을 해라 (하니까) 김재철은 청소부 역할을 한 것이고, (이번 인사로) MBC 좌파 대청소는 70~80% 정리됐다.”
김우룡은 왜 그랬을까.
- 신동아 보도는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기사가 나간 뒤 김재철이 김우룡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고 김우룡은 잡지가 깔린 뒤 이틀 만에 사퇴했다.
- 한상진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MBC가 이슈의 중심에 있는데 정작 아무도 방문진을 취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우룡에게 전화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 다 써줄 테니 만나자고 했더니 선뜻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 이 인터뷰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첫 인터뷰 기사를 들고 가니 데스크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한 번 더 만나보라고 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김우룡은 MBC 인사 다음 날 더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한상진은 “김우룡은 확신범이었다”고 평가했다.
- 기사가 나간 뒤 동아일보도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왜 이런 인터뷰를 했는지 경위서를 써야 할 분위기였는데 김우룡이 사퇴하면서 특종상을 받을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만큼 동아일보와 신동아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이 기사가 왜 중요한가.
- 방통위-방문진-MBC의 수직적 지배구조를 드러낸 인터뷰였다. 이 지배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 보수 정권의 공영 언론에 대한 오래된 피해망상과 제도적 결함을 드러낸다.
- 보수 진영의 언론 탄압은 훨씬 더 노골적이고 훨씬 더 뻔뻔해졌다.
- 야만의 시대를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도로 그 자리에 와 있는 느낌이다.
김우룡 사퇴 이후 벌어진 일.
- 신동아 발간이 3월 17일, 김우룡의 사퇴는 19일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김재철을 지키고 김우룡을 버린 이유가 뭘까. 김재철을 심은 것으로 김우룡의 쓸모가 다했기 때문이다.
- 김우룡은 막말을 사과했지만 좌파 대청소 발언을 부정하지 않았다.
- 김우룡이 방문진 이사장을 달 때 67세였다. 이명박(당시 대통령)의 고려대 2년 후배였고 김재철도 역시 고려대 12년 후배였다. 이른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 내각이라 불리던 이명박의 핵심 네트워크였다.
- 김우룡이 말한 것처럼 김재철은 조인트를 까이고 온 뒤 정신을 차렸다. [PD수첩]을 “반정부 투쟁의 본산”이라고 했다. 일 잘하던 기자와 PD들을 비제작 부서로 내몰았다.
- 김재철은 클로징 멘트로 유명했던 신경민(앵커)을 경질했고 김미화와 김제동, 윤도현 등 방송 진행자들을 대거 하차시켰다.
- 한미FTA 기획과 한진중공업 파업 등을 다룬 보도는 보류됐다. 상당수 기자와 PD들이 치욕에 떨고 분노하면서도 침묵했다. “쫓겨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정치적인 이슈를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 검찰은 광우병 보도를 명예훼손으로 규정하고 2009년 3월 소환에 불응하던 ‘PD수첩’ PD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모두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 그리고 그 이듬해(2011) 12월 종편이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는 방통심의위를 내세워 징계 남발하면서 언론을 틀어쥐었다.
- YTN과 KBS에도 낙하산 사장이 내려왔다. 노무현(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YTN에서는 “굳이 자세히 쓸 필요가 있겠느냐”, “톤 다운”하고 “드라이하게 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 그렇게 박근혜 탄핵 때까지 7년 가까이 공영 방송의 흑역사가 계속됐다. 손석희(당시 JTBC 사장) 시절 JTBC 신뢰도가 50%에 육박했지만 MBC 시청률은 1% 미만으로 떨어졌다.
- 세월호 참사 때 이정현(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에 전화를 걸어 “하필이면 대통령이 방송을 봤다”면서 방송을 빼라고 압박하고 안 받아들여지니 김시곤(당시 KBS 보도국장)을 끌어내린 사건도 있었다. 이정현은 나중에 새누리당 대표까지 지냈다.
- 방송 장악의 역사를 처벌하지 못하니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정현은 방송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벌금 1000만 원에 그쳤다.김재철은 방송 장악은 무죄를 받았고 노조 탄압은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14년 전의 데자뷔.
- 한상진은 “그래도 김우룡 같은 사람들은 낭만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소신 있게 당당히 말했고 문제가 되니 책임을 지겠다면서 사퇴했다.
- 그런데 지금은? “류희림(방통심의위 위원장) 같은 사람은 그냥 버티잖아요?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이 그때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훨씬 더 뻔뻔한 것 같아요.”
뭐가 달라졌나.
- 지금 방문진 이사장은 한겨레 출신 권태선이다. MBC 관리 감독을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가 가처분에서 이겨서 아직 남아있다. 임기는 올해 9월까지다.
- 윤석열 정부의 의도는 투명하다. 권태선을 내보내고 김우룡 같은 사람을 앉히려는 것이고 지금 안형준(MBC 사장) 자리에 김재철 같은 사람을 앉히고 싶은 것이다. 이미 최시중 자리에 런동관(이동관)과 런홍일(김홍일)을 앉혔다가 런진숙(이진숙)을 앉히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이진숙도 탄핵안이 올라오면 사표를 내고 튈 가능성이 크다.
- 이진숙이 임명되고 9월에 방문진 이사를 바꾸고 나면 또 낙하산 사장 심고 사표 받고 블랙리스트 돌리고 좌파 대청소를 하려는 계획이다.
- MBC를 찍어누르려는 건 그만큼 MBC가 눈엣가시라는 이야기일텐데 역설적으로 MBC가 가장 신뢰도 높은 언론으로 꼽힌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 김우룡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조인트 까고 좌파 청소를 시킬 수 있는 지배구조가 더 큰 문제다. 알아서 명령을 받들 사람을 꽂으면 조인트를 깔 필요도 없다.
- 우리는 방통위 3:2 구조나 KBS의 7:4 구조, 방문진의 6:3 구조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선의에 기대는 합의제 시스템의 한계다. 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작정하고 폭주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최악을 가정하고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결론.
- 14년 전 바로 잡았어야 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