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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외전’ 2023 베스트셀러 분석… 북살롱 목요일 언니,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 얼룩소 설립자,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저자 정혜승의 종횡무진 독서 탐험기.


한해 베스트셀러 ‘시장’의 풍경을 정리해 봤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월간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참고했고, 소설은 제외하고 봤는데, 그동안 내가 독서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책들은 베스트셀러 트렌드에서 백만 광년 쯤 떨어진 딴 세상에 있었다. 조금 뻘쭘한 건 괜찮은데, 명색이 작가인 주제에 유행과 완전 따로 놀아도 괜찮나? (하하….)



세이노, 불안한 욕망을 채운 위악적 훈계


무려 1월부터 5월까지 [세이노의 가르침]이 1위를 지켰다. 11월까지도 10위권을 유지했다. 온라인에서는 무료이고, 2019년부터 제본판을 팔았는데 이번엔 ‘70만 부 기념 빨간 표지’ 에디션이 베스트셀러이니, 몹시 굵고 길게 가는 책이다. 자수성가한 1000억원 자산가 ‘Say No’의 글은 위악적이고 거칠다.

‘삶이 그대를 속이면 분노하라’거나, 젊을 때는 건강 같은 건 챙길 필요가 없다면서 “건강하고 비전 없고 무능한 가난뱅이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질타하는 식이다. 1~2월 종합 베스트셀러 2위부터 20위권까지 슬램덩크가 휩쓸었지만 세이노의 왕좌는 흔들리지 않았다. 취향과 관심 차이 탓에 나는 몇 장 넘기지 못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절한 멘토링이었겠지.

판다… 아니 팬덤의 힘


세이노 천하를 끝낸 6월과 7월 1위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해 “이름 말고는 아는 게 없다”는 유시민 작가가 썼으니 전문성이 아니라 보통 사람 눈높이의 저작. 즉 책보다 유시민 작가의 팬덤으로 팔린 책이다. 6월 2위는 [BEYOND THE STORY 비욘드 더 스토리], BTS에 관한 책이니 역시 팬덤 만세! 9월에는 조국과 조민 작가, 아버지와 딸이 각각 [디케의 눈물]과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로 2, 4위를 차지했다.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덤이다. 10월 2위 [트렌드 코리아 2024]도 김난도 작가의 팬덤이 뒷받침하는 책이다.

7, 8, 9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최태성 작가의 [최소한의 한국사], 6월 6위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10월 4위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등도 팬덤을 갖춘 작가들이지만 여름부터 겨울까지 쭉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아기 판다 푸바오] 역시 대단하다.

출판 시장 움직이는 파워 유튜버


11월에 3대 서점 종합 1위를 철학책 최초로 석권한 책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인 고려대 철학연구소 강용수 작가가 유명한 게 아니다. 배우 하석진이 TV 프로그램에서 언급했고, 유튜버이자 [역행자] 저자인 자청이 쇼펜하우어를 소개한 뒤 초대박이 터졌다. 심지어 11월 5위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쇼펜하우어 소품집이 차지했다. 덕분에 최근 3개월 저자 순위에서 쇼펜하우어가 4위다. 1위는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낸 무라카미 하루키였고, 3위는 김난도 작가인 와중에 쇼펜하우어라니.

11월 2위 책은 [더 마인드]. 저자는 유튜버 ‘하와이 대저택’이다. 회사원이던 그가 예전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매달 세금으로 낼 정도로 성공한게 모두 마인드 셋 덕분이란다. 절실함으로 무의식을 바꾸면, 마인드를 건드리면 누구나 성공한다고 했다. 10월 10위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 임소미 작가도 유튜브 채널 ‘쏨작가의 지식사전’으로 50만 구독자를 훌쩍 넘기면서 차세대 역사 스토리텔러로 떠올랐다.

기록하는 법을 작심하고 알려주는 4월 17위 [거인의 노트] 저자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정보대학원 교수도 구독자 수 30만 명의 유튜브 채널 ‘김교수의 세 가지’ 운영자다.

2023년 때 아닌 쇼펜하우어 열풍은 파워 유튜버의 파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사진은 1859년 당시 모습. CC0.

어른의 조언


겸허하고 담담하게 삶의 지혜를 풀어놓는 어른들의 책은 요즘도 통한다. 세이노와 슬램덩크가 온통 순위를 휩쓴 1월의 베스트셀러 4위 [생에 감사해]는 국민배우 김혜자 작가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후 20여 년 만에 낸 두 번째 에세이다. 60년의 연기 인생과 무대 바깥의 삶을 이야기하며,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을 반추했다.

2022년 12월 1위였고, 2023년 1월 18위를 기록한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작가가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2015)의 10만 부 돌파 스페셜 에디션이다. 22년 전 마흔셋에 파킨슨병을 진단 받은 그가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라고 진심을 전했다.

5월 13위에 올랐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는 제일기획 출신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가 축적한 일과 삶의 인사이트를 담았다.

‘혜자 도시락’을 시식하는 국민 엄마 김혜자 배우. 혜자 도시락처럼 김 배우의 조언도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사진 GS리테일 제공.

마음챙김도 여전히 강세


[회복탄력성]의 저자 김주환 교수의 신작 [내면소통]은 3월 9위를 기록한 뒤 한해 내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켰다. 내면의 나와 소통하며 마음근력을 키우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마음의 지혜] 역시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책이다. 살면서 누구나 마주하는 불안과 고민을 모아 사람, 행복, 일, 사랑, 돈, 성공, 죽음 7개의 키워드로 답하는 내용이다.

10월 1위 [퓨처 셀프] 역시 조직심리학자로 자기계발 분야 파워블로거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벤저민 하디의 책이다.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깊이 생각해 보고 지금 그 사람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단다. 그의 블로그는 플랫폼 ‘미디엄’에서 2015~2018년 1위였다고 한다.

교양 한 스푼 더하기


5월 종합 4위, 5월부터 11월까지 사회과학 분야 1위를 차지한 [도둑맞은 집중력]은 올해 온갖 출판상을 휩쓴 책이다. 개인적으로 독서클럽에서도 함께 읽었고, 다들 만족도가 높았다. 기대 이상 좋았던 책으로 리뷰를 남겼다. [도둑맞은 집중력] 트위터 탈출 버튼이라며? 워낙 유행과 거리가 먼 독서를 하는 탓인지, 이처럼 읽은 책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등장하면 반갑다. 덴마크 전문가들이 빈둥거리는 텅빈 노동이 영혼을 망가뜨린다고 걱정하며, 덜 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가짜노동]은 9월 17위에 올랐다. 당시 슬로우뉴스가 붙여준 제목은 ‘가짜노동, 텅 빈 노동’이었다.

4월 3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제목 그대로 음식을 경제학과 접목시킨 책이다. 예컨대 도토리를 먹고 자라는 스페인 남부의 돼지들과 도토리를 즐겨 먹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 문화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식. 산업화의 홍보대사 멸치, 개발도상국의 보호주의 무역과 관련해 새우를 살폈다. 먹는데 진심인 나로서는 완전 취향저격 책인데 왜 놓쳤지?

같은달 10위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은 미국 NBC 방송국의 스타 프로듀서로 SNL, 굿플레이스 등을 제작한 마이클 슈어의 책이다. 이유 없이 친구의 얼굴을 후려쳐도 될까? 친구의 인상한 셔츠를 예쁘다고 해야할까? 카트를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할까? 일상의 윤리적 딜레마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는 평이다.

마이클 샌델도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로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봄에 잠시 순위에 머물렀다.

왜 우리의 노동은 ‘텅~’ 비어 있는가.

부자되는 법, 끝없는 관심


미안하지만 한권도 읽지 않아 뭐라 말 보태긴 어렵다. 다만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잘 나가는 책들은 상당수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친다. 제목만 보면, [주식 시세의 비밀], [사이토 히토리의 1퍼센트 부자의 법칙],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 ‘여의도 닥터둠 강영현이 공개하는 진격의 주식 투자 타이밍’이라는 부제의 [살 때, 팔 때, 벌 때]. 어쩌면 부제가 더 직설적인데 [K 배터리 레볼루션]조차 부제는 ‘ 향후 3년, 새로운 부의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법’이다. [NEW 대한민국 청약지도]는 한 권으로 끝내는 청약 당첨 전략의 모든 것’이라고 했다.

[사장학개론]은 사장들을 위한 책이다. 3월 7위, 4월 5위에 이어 꾸준히 순위를 지켰다. 저자 김승호는 스물셋에 대학 중퇴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온갖 실패를 거쳐 마흔에 전 재산 2300달러를 베팅해 글로벌 외식 기업을 키워낸 인물이다.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며 ‘사장을 가르치는 사장’이라고 한다.

8월 1위 [1%를 읽는 힘]은 파워블로거 메르의 책이다. 삼성과 금융사 등에서 위험관리 전문가로 일하며 축적한 투자 경험으로 경제 흐름 속에 기회를 발견하는 법을 소개한단다.

베스트셀러의 상수, 부자되는 법!

몇 가지 예외


통일부 장관 출신으로 남북관계 전망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계기로 국제 정치를 바라 본 [정세현의 통찰]은 2월 중순에 주간 10위까지 올랐다. 쉽지 않은 주제지만 어떤 경우 통한다. 3월 4주차 3위는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책임자 이인규 전 대검중수부장의 회고록이다.

4월 3주차 4위였던 [프린키피아] 나만 몰랐던 책인가? 아이작 뉴튼 저서다. 960쪽, 66000원 벽돌책인데 김상욱 교수는 “과학의 역사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고르라면 이 책일 수밖에 없다”고 추천했다. 근사한 양장 한정판, 소장용 니즈가 분명 뜨거웠다.

챗GPT는 3월 1주차 10위였던 [챗GPT: 마침내 찾아온 특이점] 이 포문을 열었다. 얇은 책으로 간단히 정리했는데 빠르게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 4월 3주차 15위는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 KAIST 김대식 교수가 챗GPT에게 묻고 또 물으며서 사랑이나 정의, 죽음 등에 대해 형이상학적 대화를 나눴다.

그는 챗GPT에 대해 “인류의 생각과 문장을 반사하는 존재적 메아리이자 거울”이라고 했다. 이후 챗GPT는 오프라인 서점 매대 하나를 가득 채울만큼 엄청나게 쏟아졌다. 와중에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는 전직 AI연구원이 유튜버 자청 등의 추천에 힘입어 [챗GPT 사용법]으로 4.6억 펀딩을 달성했다.

아이작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일명 ‘프린키피아’ (라틴어: Principia) 초판본(1687) 모습. 이 책은 총 3권으로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또 다른 순위


출판사 랭킹은 역사강사 최태성 저자의 역사 교재를 낸 이투스북이 1위다. 2위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로 에듀윌이 차지했고, 메가스터디북스, EBS가 뒤를 잇는다. 출판사 순위는 25위까지 거의 한국사 교재를 낸 곳들이라 이 시장에 새삼 놀랐다.

알라딘은 단순 매출 외에 리뷰와 100자평, ‘좋아요’ 등을 반영한 독서마니아용 ‘북플 베스트’도 내는데, 12월 1위는 정희진 작가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3위는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이야기란다. 물리학에 관심 없는 내게 몇 년 전부터 지인들이 강추하는 작가라 괜히 반가웠다.

나는 평소 사회과학 베스트만 살펴보는데, 4월 2위 [에이징 솔로], 내가 북토크 사회까지 본 책이라고 자랑해본다.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작가가 다시 돌아와줘서 고마운 책. 9월 4위 책인 [가족각본] 역시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작가의 신작이다.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느냐고 묻는 11월 3위 [고통 구경하는 사회]의 김인정 작가는 처음 알게 됐다. 이슬아 작가는 “수전 손택 이후엔 김인정이 있다”고 까지 추천했다. 12월 3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이라고. 사적 팬심을 갖고 있는 김승섭 교수의 신작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도 11, 12월 사회과학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10월 5위를 차지한 [커리어 그리고 가정] 은 2021년 말에 읽고 감탄했음에도 당시 경황 없어 리뷰를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운 책. 저자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타면서 다시 순위에 올랐다.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을 학술적으로 탄탄하게 입증했는데, 대중 눈높이라 감사한 책이다.

분열의 시대, 베스트셀러 책들도 다르지 않다. 각각 딴 세상이다. 일반 베스트셀러와 사회과학 베스트셀러 시장도 다르고, 알라딘 베스트셀러 상위권은 원래 대부분 만화와 교재가 많았다. 내 취향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만의 취향으로 꾸준히 읽고 나눌 수 있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베스트셀러 시장을 분석해보니, 각자 저마다 취향이 있어 좋은 세상이란 것을 거꾸로 확인한다.

내가 진심으로 감동하는 책이 3류 소설이면, 그게 뭐 어떤가. 모든 친구를 사귈 수는 없다. 그저 자신에게 맞는 친구와 사귀듯, 그저 자신에게 맞는 책을 읽으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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