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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북살롱 목요일 언니,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 얼룩소 설립자,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저자 정혜승의 종횡무진 독서 탐험기.


“4시간만 일해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놓고 왜 8시간씩이나 일하는가?”

오늘 마냐의 북라이딩에서 함께 읽을 책은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입니다. 책은 ‘사라진 시간’, ‘사라진 의미’, ‘시간과 의미 되찾기’라는 세 영역으로 구성되고, 그 속에서 가짜 노동을 비판하고, 삶의 의미를 건져낼 진짜 노동과 대안을 모색합니다. (편집자)

  •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옮긴이 이수영.
  • 자음과모음, 2022년 8월 8일.
  • 원제는 Pseudoarbejde: Hvordan vi fik travlt med at lave ingenting.

마냐의 북라이딩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예센


약 100년 전 석학은 다 틀린 것일까? 케인스, 바로 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30년이 되면 주 15시간 일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머지 자유 시간을 어찌 사용할지 ‘삶의 기술 그 자체’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일주일에 사흘은 10시부터 4시까지 일하고, 나흘은 정원을 돌보며 살 것으로 예측했다. 버트란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하루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그렸다. 급기야 1960년대 미국 상원은 주 14시간 노동 시대가 2000년에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가짜 노동]은 더 적게 일해야 마땅한 시대의 우리 노동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점을 추적한 덴마크 학자들의 저작이다. 실제 성과와 상관없이 바쁘고 능력 있는 회사원으로 보이기 위한 업무가 ‘가짜 노동’(pseudowork)이다.

저자들은 노동시간이 줄어들다 말았다고 개탄한다. 그런데 덴마크는 1900년에 60시간, 1915년 56시간…1990년에 주 37시간으로 줄었다. 거기서 더 안 줄어든 게 문제다. 주 52시간 때문에 나라 망할 것 처럼 떠드는 나라 국민으로서 저자들에게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2022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36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많다. 우리보다 많이 일하는 국가는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뿐이다.

일 많이 하는 나라, 대한민국.

텅 빈 노동


2015년 미국 사무직 주요 업무는 일과시간의 46%뿐이라는 조사가 나왔다. 142개국 노동자를 상대로 갤럽이 조사했는데 열심히 일한다(13%)는 이들보다 무성의(63%)하게 일하는 이들이 많다. 출근이든 직장이든 싫다는 이들도 24%나 된다. 직장인 21%는 상사로부터 어떤 동기 부여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대충 일한다. 스웨덴 작가 롤란드 파울센은 ‘텅 빈 노동’이라 불렀고, 런던정경대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허튼 직업’(bullshit job)’을 연구했다. 2013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조사에서 1.2만 명 응답자 중 절반이 “내 직업은 중요하지 않고 의미도 없다”고 괴로워했다.

빈둥거리기, 시간 늘리기, 일 늘리기, 일 꾸며내기. 텅 빈 노동의 네가지 유형이다. 바쁜 척 헛짓하는 일, 무의미한 업무는 가짜 노동이다. 저자들이 내세운 사례는 좀 극단적인데, 동시에 그럴듯 하다. 스웨덴 민간 항공관리국은 근무시간 75%를 포르노 보는데 쓴 7명을 해고했다. 포르노 사이트 방문의 70%가 주중 근무시간에 이뤄진단다. 덴마크 가격비교 사이트의 경우, 월요일이 대목인데 90%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에 주문한다.

미국인 37%는 “업무와 관련 없는 것을 검색하며 일과를 보낸다”고 고백했는데 과연 우리는? 업무와 관련 있는 것을 검색하다가, 옆의 링크를 클릭하고, 보다보면 또 다른 뉴스, SNS로, 쇼핑몰로 빠져든 경험이 없을 수 있을까? 얼마 전 어느 스타트업 대표가 회의 시간에 주식거래 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무려 국회에서 이상한 사이트 보다가 사진기자에게 걸리는 일이 종종 있지 않았던가?

국회에서 모바일 게임한 권인숙 의원(위), 국회에서 핸드폰으로 비키니 모델 본 권성동 의원(아래). 각각 YTN, SNL코리아 방송 화면 캡처.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헬싱키 세무서 직원은 일터에서 돌연사한 뒤 이틀 뒤에야 발견됐다. 자신의 업무를 중국에 외주를 준 채 근무 시간에 유튜브와 이베이를 검색하던 미국 IT 회사 직원 사연이나 2012년 은퇴하면서 14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독일 엔지니어 사례 등은 놀라운데 놀랍지 않기도 하다.

프랑스 향수회사에서 연봉 8만 유로를 받던 관리자 프레데리크 데나르는 2016년 고용주를 상대로 40만 유로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는데 “4년 간 따분할 정도로 적게 일했다”는 이유였다. 번아웃(burnout)이 아니라 지루해 죽을 것 같은(boreout) 증세가 새로운 용어로 등장했다. 프랑스 분위기는 새삼 놀랍지만, 경제학자 코린느 마이어는 프랑스전력공사에서 일한 것이 얼마나 시간낭비였는지, 업무가 얼마나 멍청하고 무의미했는지 폭로하는 책 [게으름아, 안녕?]을 써서 회사로부터 고소당했다. 책은 25만 부가 팔렸다.

그런 업무가 문제라고?!


이른바 “현황 조사, 인맥 관리, 고객 지원, 통상 점검, 연구 조사, 시장 분석, 사정 평가. 이런 일들이 어떤 절차로 구성되고,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저자들은 어떤 종류의 일에 편견이 있어보인다. 예컨대 “인사, 홍보, 마케팅, 영업, 경영전략,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준법감시, 정보기술 혁신, 연구개발, 물류 회계관리, 조달, 직원교육담당, 보상, 품질확인, 감사, 브랜딩, 교정, 공유서비스 프로젝트 관리, 이동성 사업개발”은 지식사회가 새로 만들어 낸 일자리이고, 필요성을 스스로 만들었거나 거품이 끼어있다고 주장했다.

저런 업무를 했던 내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대목이 지나면 1~2월 할 일이 없어 공허한 시장 조사나 하던 게임 회사 홍보 마케팅팀의 사례를 든다. 시장조사 안 해도 된다고? 지나치게 실용적인 덴마크 전문가들 같으니라고. 특정 업무의 거품을 싸잡아 단정 지을 일은 절대 아니지만 각자 거품 여부는 살펴볼 일이다.

관료제의 무한 확장에 가까운 파킨슨의 법칙은 솔깃하다. 영국 해양사학자 파킨슨은 20세기 중반 영국 제국주의가 쇠퇴하면서 군함은 62척에서 20척으로, 장교는 31% 줄어드는데. 기지에서 일하는 인력은 40%, 행정팀은 78% 증가한 상황을 목격했다. 10시간이 주어지면 10시간 일하지만 똑같은 일에 25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만큼 걸리는 게 일터의 파킨슨 법칙이다.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에 관한 책.

컴퓨터와 인터넷은 문서를 직접 전달하는 수고를 대신하고, 여성들이 노동시간에 진입해 잉여 노동력이 있는데도 여전히 과로가 문제라면 쓸데없는 노동이 늘어난 탓이다. 테일러리즘이라는 단어를 만든 프레더릭 테일러는 농땡이에 맞서서 스톱워치로 직원들의 동작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감시가 주 업무인 관리직이 늘어났다고. 더 많은 관찰일지를 타자기로 정리해줄 비서가 늘었고, 꼼꼼히 점검할 서류와 사안이 늘어나면서 경영진도 늘고….

저자들은 기업 임원들의 행태에도 삐딱한데, 관리 업무의 중요성이 과대 평가된 것을 다들 쉬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CEO들은 직원 임금보다 평균 200배를 가져가는데, 서로 터무니없는 봉급을 합리화하는 데 능숙하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덴마크 재정기획부 사무관들은 2007년 대국민 사과에 버금가는 칼럼을 기고했다고 한다. “우리를 용서해요.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어요”, 공공부문 관리를 위해 이런저런 계약을 체결했는데, 더 많은 목적, 지표, 자료가 추가되면서 형식주의와 관료제만 심해졌단다. 그리고 그걸 사과했다니!!!

근태를 관리하는 대신 직원에게 믿고 맡긴 넷플릭스 사례도 등장한다. [규칙 없음]이라는 책에 감탄했던 사람이지만, 이게 모든 기업과 조직에 적용 가능하지는 않다.

우리의 가짜 노동을 들여다보자


대학에 몸담은 저자들과 그 친구들이 열받은 사례도 생생하다. 더 많은 학생을 받다 보니 강의 수준은 떨어졌고, 학생들은 강의 시간 내내 스마트폰만 보다 간다. 어떤 교수는 같은 강좌를 수십 년씩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대학의 연구 웹페이지도 도마 위에 올랐고, 극소수만 다운로드 받는 자료들을 평가용으로 숫자만 채워 올리는 행태도 지적됐다. 매년 약 250만 편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지만 예컨대 인문학 논문 중 84%가 5년간 전혀 인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적에는 찔리는 대목이 꽤 있다. 책의 사례처럼 일부러 이메일을 새벽 2시에 보내지는 않았지만, 새벽에 보낼 때 더 뿌듯한 기분을 만끽하지 않았던가? 그 많던 회의는 정말 효율적이었나? 각자 상상해 보자. 70쪽짜리 연례보고서는 사실 10쪽이면 충분하지 않았나? 쓸데없는 파워포인트 자료, 폰트와 글자 크기, 줄 간격 맞추느라 시간 다 쓰는 문서 작업은 필수적인가? 정부나 공공기관 로고를 매번 바꾸는 건 헛짓 아닌가? ‘비전 2020’ 같은 프로젝트에 수백만 달러를 들이지만, 비전 작업을 자신의 성과로 챙기던 기관장이 바뀌면 다 무용지물인걸? 굳이 첨부파일을 열어볼 필요 없는 메일도 차곡차곡 쌓이지 않는가? 그저 참조(cc)를 붙여 책임만 분산하고자 하는 메일들 수백 통에 익사하는 중 아닌가?

나는 독서클럽에서 멤버들과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온갖 가짜 노동 사례가 쏟아졌다. 상품기획과 마케팅, 테크니컬 마케팅이란 부서가 각각 따로 뭘 하고 있지? 무슨 지원팀, 리서치팀, 글로벌팀, 여러 팀이 각각 출장자와 주재원 보고 취합해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게 일인데 중복되는 업무가 없을 리가. 이건 한편 이해가 된다. 승진으로 임원 자리가 늘면 거기에 맞춰서 조직도 늘려줘야 하니까 비슷한 업무를 여러 조직으로 쪼갠다. 어떤 경우, 들키면 안 되는 잘못을 숨기려다 보니 정보 교류가 막혀서 업무를 중복으로 하게 된다. 관리만 하는 임원은 실제 일을 잘 모르고, 일을 안 한다.

가짜 노동을 깨닫는 게 어려운 이유는 결국 이해관계 탓이 아닐까? 성실한 일꾼이자 대체 불가능한 직원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척은 나쁘지 않았다. 가짜 노동을 인정해버리면 자칫 인생을 낭비했다는 좌절에 빠지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족보다 직장 우선으로 살면서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감당하는 게 오히려 공포인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가짜 노동은 개인의 도덕성과 자존감에 해롭다. 하나 마나 한 일들은 지루하고, 실존적 고통에다 수치심까지 부른다. 이대로 괜찮은가? 무의미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조치는 생각보다 많다. 일단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자신이 참아낼 수 있는 선을 생각해 보라는데, 이미 직업이 있다면 실제 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짜 노동 징후를 발견하면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단다.

회의는 줄일 수 있다. 혹시 하염없이 다른 사람 의견만 듣는 요식행위는 아닌지, 너무 오래 끌고 있는 게 아닌지, 허술하게 준비한 것은 아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인 회의는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아무도 읽지 않을 보고서에 매달리는 것도 낭비다. 주 4일 근무하는 IIH 노르딕이라는 회사의 회의 시간은 무조건 20분. 그 대신 ‘깊은 작업 시간 25분’을 정해놓고 있다. 적게 일할수록 매출이 늘었고, 직원 병가는 절반으로 줄었다. 멀티태스킹은 잘못된 신화다. 주 1일 철저히 오프라인으로 일해보면 결과물이 낫다는 연구도 있다.

iihnordic 홈페이지 화면 중 캡처.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것은 기본.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돕는 게, 교사는 가르치는 게 본업이다. 직장인 병원이나 학교를 위한 잡무는 줄여야 한다. 자유시간은 현명하게 보내자. 학위나 자격증은 이미 충분하니 소설을 읽고, 베토벤을 듣고, 합창단을 해보라는 조언이다. 한가한 덴마크 지식인 느낌이 없지 않은데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노동과 보상의 룰부터 바꿔야


가짜 노동 싫은 건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안뜰이 깨끗하면 빗자루질이 끝난 것이니 집에 가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하루 8시간을 채워야 하니까. 20세기 노조는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노력 대신 정규직을 요구했고, 노동시간이 임금 기준이었다. 필요한 업무가 끝나도 집에 못 가고 시간을 때워야 하는 이유다.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시대, 결국 나눠서 하는 것이 답이다. 이때 노동시간 기준 보상 시스템이 문제가 된다. 시간당 임금을 계산하는 구조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다. 저자들은 결국 기본소득까지 꺼내 든다. 아직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답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갈 길 먼 거 맞다. 그런데 얘기조차 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 노동자인 우리 모두의 영혼을 위해 가짜 노동은 줄이고, 노동시간도 줄이고, 보상과 분배 시스템도 바꾸고, 인간다운 삶을 재정의해야 한다. 게으른 노동자 프레임에 현혹되지 말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만 봐도 부는 엄청나게 늘었다. 적게 일해도 괜찮아지려면 발상을 바꿔보자.

남겨진 질문들


우리의 일터에서 가짜 노동?

  • 책에서 가장 공감하는 가짜 노동 사례는 무엇인가요? 실제 목격하거나 경험했나요?
  • 내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껴본 적 있는지? 대체 어떤 일을 하면 존재 의미를 느낄지?
  • 일의 본질 문제는 그렇게 할 일이 많지 않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 유용한 피티, 생산성 있는 회의는 어떻게 가능하죠?
  • 관리직이 나빠요? 홍보 인사 다 줄여야 해요? 감사는 시간 낭비?

가짜 노동을 줄인다면?

  • 빈둥거리기, 시간 늘리기, 일 늘리기, 일 꾸며내기, 어떻게 막아요?
  •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는데 일은 더 많이 하고 계속 더 바빠지는 기이함, 제동을 걸 방법은요?
  • 밥벌이가 영혼에 해로울 때, 어떻게 버티죠? 묘수가 있을까요?
  • 결국 분배의 규칙이 바뀌어야 하는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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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좋은 책 소개 너무 좋아요. 감사해요.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네요. ㅎㅎ 우리 회사 직원들과 관리자들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나, ……그러나……그러나…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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