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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북살롱 목요일 언니,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 얼룩소 설립자,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저자 정혜승의 종횡무진 독서 탐험기.


오늘 ‘마냐의 북라이딩’에서 함께 읽을 책은 [가짜뉴스의 고고학: 로마 시대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허위정보는 어떻게 여론을 흔들었나, 최은창 지음, 동아시아: 2020]입니다. 출판사가 만든 카드뉴스가 책의 주제의식과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더군요. 그 일부를 인용하면요.

이 책은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구별하고, 가짜뉴스가 뉴스 형태로 정치적·경제적 수용자를 속이는 정보라면, 허위정보는 악소문, 선동, 가짜뉴스, 오도성 정보까지 포괄하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봅니다. 가짜뉴스뿐만 아니라 소문과 선동 등 다양한 허위정보가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적하고, 가짜뉴스의 역사를 발굴하며, 그런 가짜뉴스를 낳은 사람들의 삶과 문화, 행동 양식을 살펴봅니다. 나아가 가짜뉴스의 대응책을 고민하죠. 그래서 ‘가짜뉴스의 고고학’입니다. (편집자)

마냐의 북라이딩

가짜뉴스의 고고학

최은창

뿌리 깊은 가짜뉴스의 역사


1782년, 뉴욕 지방에서 700개가 넘는 인간 머리 가죽이 담긴 가방이 발견됐고, 인디언들이 산모의 배를 가르고 아기들을 꺼냈다는 가짜뉴스가 영국에 전해졌다. 이 거짓말을 퍼뜨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미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했다. 영국군이 인디언들과 결탁해 미국의 애국자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로 영국내 반전여론을 만들어내려 했다.

2022년, 서울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중국, 북한, 더불어민주당, 민노총, 언론노조, MBC와 골수 주사파가 세월호 사건 처럼 기획했다“는 ‘받은글’이 카카오톡을 통해 퍼진다.

인류는 가짜뉴스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가짜뉴스의 고고학]은 역사를 뒤흔든 수많은 가짜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되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고들었다. 로마시대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가짜뉴스로 여론을 바꾼 사례부터 소셜미디어와 플랫폼의 가짜뉴스까지 인류는 늘 휘둘렸다. 책에 나온 많은 사례 중 벤저민 프랭클린을 앞세운 건, 가짜뉴스 비법을 흉내낸 것이라 미안하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정치와 언론이 담합: 권력 도구로써의 가짜뉴스


가짜뉴스 뿌리가 깊은 것은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처럼 가짜뉴스 주범은 종종 멀쩡했다. 정치인과 종교, 당대의 권력자들이 가장 즐겨쓴 통치 수단이 가짜뉴스다. 유대인들이 아기를 납치해 피를 마신다는 루머는 프란치스코회 수도회가 이용했다. 유럽 가톨릭은 종교적 권위를 위해 증거를 조작하며 마녀사냥을 500년이나 이어갔다.

1962년 3월 12일부터 시작된 미국 매사추세츠 ‘세일럼 마녀재판'(1692)를 묘사한 그림. 이 일련의 재판을 통해 총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마녀로 고발돼 총 25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19명이 처형되었고, 5명이 옥사했으며, 1명은 고문 중 압사당했다. 

저자는 문맹률 높았던 15세기 무렵까지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거나 여론의 흐름을 좌우하려 했던 자들은 교육 받은 소수의 지배계층”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가짜뉴스에 기여한 건 벤저민 프랭클린을 비롯해 언론이다.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호 탑승자들이 모두 안전하다고 보도해 실종자 가족들이 환호하게 만든 것도 언론이다. 가짜뉴스와 달리 정론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는게 우리 언론이지만, 그 과거와 현재에 대한 평가는 싸늘하다.

“전통미디어는 가짜뉴스의 몸통으로 인터넷을 지목하면서 온갖 잡다한 사이비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의 시궁창’이 문제라고 소리 높인다. 그러나 익명의 개인이나 유튜버들은 편파적 언론기사, 오보의 잔해들, 부정확한 사실적 주장들, 정치인의 계산된 발언을 씨앗 정보로 삼아서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9쪽)

가짜뉴스의 고고학, 최은창 지음, 동아시아: 2020 중에서

실제 언론이 “권위주의 시대에 정치권력과 결탁해 가공의 위협을 부풀려 지배의 정당성을 제공”한 사례는 넘쳐난다.

옐로우 저널리즘의 유래, 돈 되는 가짜뉴스


“자네는 그림을 그려, 전쟁은 내가 준비하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에 앞서 화약고인 줄 알았던 쿠바가 잠잠하다는 삽화가의 보고에 미국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이렇게 답했다. 이해관계에 맞춰 없는 전쟁도 만들어 내는 게 언론이었다. 쿠바 하바나항의 미국 전함이 침몰해 수백 명이 사망하자, 스페인군이 공격했다고 1면으로 치고 나간 허스트는 100만 부를 팔았다.

전함 침몰 과정에 외부 공격이 없었다는 팩트가 미국 해군 조사로 밝혀진 건 1974년의 일이다. 당시 허스트와 조지프 퓰리처의 가짜뉴스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맞다, 그 퓰리처다. 언론이 가짜뉴스를 자제하게 된 건, 아무리 봐도 명예훼손 줄소송 압박에 따른 경영 판단인듯 하다. 조지프 퓰리처의 아들 랠프 퓰리처가 최초의 팩트체크 조직을 만들 무렵, 회사는 20년간 총 1700만 달러의 손배 소송에 시달렸다. 뉴스는 진실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미국-스페인 전쟁(1998년 4월-12월)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퓰리처상’의 그 조지프 퓰리처(왼쪽)과 우리에게는 미국의 신문왕으로 알려진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오른쪽). 역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삽화. 이들이 입고 있는 노란색 원피스는 당시 유행했던 만화 ‘엘로우 키드’ 캐릭터의 복장이다. 여기에서 옐로우 저널리즘이 유래했다. 즉, 당시 선정주의적 가짜뉴스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신문업의 일상이었다. 삽화는 레온 배릿(Leon Barritt).

하지만 가짜뉴스는 여전히, 아니 더 스케일 있게 돈이 된다. 허스트나 퓰리처도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날조된 속설로 부수를 늘렸지만 요즘은 누구나 가짜뉴스로 돈을 벌 수 있다. 널리 알려졌듯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마케도니아 청년은 가짜뉴스 웹사이트를 운영해 하루 2000달러를 벌었다.

가짜뉴스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이 생태계도 철저히 상업화됐다. 러시아 회사를 통해 2분 분량의 유튜브 조작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비용은 621달러, 800단어 짜리 중국어 가짜뉴스는 30달러다. 5.5만 달러면 언론보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가짜뉴스를 뿌릴 수 있고, 40만 달러면 12개월 동안 고의적 캠페인을 지속할 수 있다. ‘퀵팔로우나우’를 통해 2500명이 리트윗하게 만드는 비용은 25달러에 불과하다.

가짜뉴스 근절 어려운 이유, 정부도 가짜뉴스 생산


가짜뉴스 근절이 어려운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다. 가장 신뢰해야 할 각국 정부가 가짜뉴스 생산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다. 베트남전이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시작됐다는 보도는 미국 정부가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었다. 1990년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이 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였다고 눈물로 증언한 소녀는 알고 보니 미국 주재 쿠웨이트 대사의 딸로 현장에는 가보지도 않았다. 홍보회사 힐앤놀튼이 쿠웨이트측 의뢰에 1000만 달러를 받고 연기 연습까지 시켜서 카메라 앞에 세웠다.

구 소련의 KGB는 에이즈가 미국이 만들어낸 질병이란 가짜뉴스를 뿌렸다. 미국 CIA는 언론인들에게 조작된 정보를 보도하라고 협박하는 ‘앵무새 작전’을 벌였다. 여기에 1950년 이후 400여 명이 동원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 25년 걸렸다. 중국에서는 정부로부터 수당을 받고 가짜뉴스를 올리는 이가 100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러시아의 IRA(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는 트럼프를 지원하는 가짜뉴스 정치광고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청문회에서 페이스북의 컨텐츠 99%는 진짜라고 항변했지만, 그 나머지 1%도 하루 100만 시간 분량의 동영상과 사진 2000만장에 달한다. 러시아 IRA는 FDA(Federal News Agency)를 설립하고 200명의 저널리스트를 고용해 온라인 프로파간다 뉴스 웹사이트를 16개나 운영하는 ‘트롤링 공장’이 됐다.

thierry ehrmann, CC BY

플랫폼 회사들도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2018년 하반기에만 페북은 15억 개에 달하는 가짜 계정을 삭제했다. 하지만 2019년에도 22억 개를 다시 삭제해야 했다. 가짜 프로필을 만드는 시도는 하루 650만 건씩 이뤄진다고 한다. 트위터는 전체 계정 15%가 자동으로 쓰고 나르는 ‘봇’으로 추정되는데, 역시 규제 속도가 가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진실에 밀려나는 허위? 가짜뉴스에 밀려나는 사실의 권위


가짜뉴스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공격해 “뉴스는 믿을 게 못 돼”, 넌더리치게 만들고 팩트의 권위까지 추락시킨다. 가짜뉴스가 끝내 진짜가 되는 일도 혼란을 보탠다. 일제시대에는 “황군의 위문을 위해 처녀와 과부를 모집해 만주에 보낸다”는 위안부 얘기가 가짜뉴스라 했다. 1980년 광주에서 진압군의 잔학행위도 유언비어라 했다. BBK가 MB 것이라는 가짜뉴스는 10년 만에 진짜가 됐다. 당시 검찰출입기자였던 나도 MB 것이 아니라는 가짜뉴스를 도운 셈이다.

NYT의 가짜뉴스 7계명을 보면 사람들은 평범한 뉴스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므로 건강, 성 정체성, 인종, 질병 등 민감한 소재를 선정해야 하며, 대범하게도 충격적인 거짓말을 날조하는 편이 성공 확률이 크다고 한다. 사회 분열과 연결된 소재가 흥하다보니, 국내에서는 북한 관련 안보, 지역감정, 5.18 역사왜곡, 최저임금 등 경제정책 등에 대한 불신과 연결시킨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1. 평범한 뉴스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므로 건강, 성 정체성, 인종, 질병 등 민감한 소재를 선정해야 한다
  2. 대범하게도 충격적인 거짓말을 날조하는 편이 성공 확률이 크다
  3. 거짓말의 주변은 작은 진실의 파편으로 둘러치면 수월하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4. 가짜뉴스 생산자는 자신의 이름을 숨겨서 조작 행위를 추적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5. 가짜뉴스를 전파해줄 ‘유용한 바보’를 이용한다. 트럼프!
  6. 가짜뉴스 정체가 탄로 나도 모든 것을 부인한다
  7. 만들어낸 가짜 뉴스의 논리에 부합하는 사례들을 모아 추가하고 장기전을 펼친다.

참고: NYT 가짜뉴스 7계명 유튜브

법을 공부한 저자답게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미국과 한국의 판례 추이를 꼼꼼하게 챙겼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다. 예전에 인터넷 정책을 다룰 때 ‘불온통신’ 처벌 조항에 대한 2002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금과옥조로 모셨다. 공공의 안녕질서, 미풍양속 같은 상대적 개념을 잣대로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판단하면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결정이 웅장했다.

당시 헌재는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서 허위가 진실에 밀려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런데 강력한 알고리즘 사회는 관심사에 따라 사람들이 다른 물(커뮤니티)에서 놀도록 했다. 같은 유튜브라도 완전 다른 세상이다. 허위정보를 보면, 계속 허위만 보게 된다. 사상과 의견의 경쟁이 아예 불가능한 시대에도 허위정보 처벌이 계속 위헌일까?

쉽지 않은 해법…


저자는 가짜뉴스와 프로파간다에 대한 방대한 사례를 통해 사상의 자유시장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유지될지 찾아가는데 결론이 쉽지 않다. 저널리즘 신뢰 회복, 정확한 보도 관행, 팩트체킹 강화, 뉴스 정보에 대한 비판적 수용은 기본. 결국 플랫폼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나는 다시 질문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는 어떻게 변할까? 메타에서 헤매고 있는 페이스북은? 유튜브는 가짜뉴스 채널이 돈을 벌지 못하게 하는 재판관의 역할을 확대할까? 카톡 받은글은 어찌하나? 데이터 조작과 딥페이크로 진화하는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게 어디까지 가능할까? 어떤 정부는 검열하고 어떤 정부는 조작하는 시대, 전 세계에서 갈등과 분열이 더 첨예해지는 시기에 언론은 달라질까?

플랫폼에 대한 기대도, 언론에 대한 기대도 사실 높지 않다. 다만 가짜뉴스에 대한 일벌백계, 그리고 최소한 혐오와 차별을 퍼뜨리지 못하게 하는 차별금지법을 기대한다. 시민에 대한 기대도 버리지 않겠다. 조금 더 현명해지는 건 시민 몫이다. 수천 년 가짜뉴스 속에서도 안 망한 이유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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