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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계엄 이후 몰랐거나 무심히 넘겼던 내 마음을 달래준 누군가의 일기.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그리고 조희대…감히. (⌚6분)

📕마냐의 북라이딩📚

12.3 이후
고통으로 연결된 우리의 일기

황정은, [작은 일기] (2025)

“화가 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속이 뒤집힌다. 남의 삶을 조금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 목숨을 이런저런 전선으로 내모는 계획을 세우면서, 사람을 납치해 고문하고 없애라 명령하면서, 수많은 목숨이며 삶을 전쟁에 쓸어 넣을 계획을 세우면서, 그 머리와 가슴에 ‘사람’이 없을 수 있을까. 자신 말고 누구도 피 흘리는 생명체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는 그게 될 것이다. 타인의 삶과 고통에 닿는 감각이 발달하지 않은 삶, 그럴 의지도 없는 마음으로는 그럴 수 있다.”

비상계엄이라고?

속이 뒤집혔던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도 싸늘해지고, 감격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다가 버럭 솟구치는 분노에 떨었던 시간. 다 끝났으니, 지나갔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기 전까지 별생각 없었다.

들고 다니기 쉽게 작고 가벼운 책이라, 믿고 보는 황정은 작가라 그냥 집어 들었다. 지하철에서 펼쳤는데 어라, 제목이 비유가 아니라 진짜 일기였다. 첫 장이 12월3일이다. 평범한 하루 단상이 이어지다가 오후 열 시 이십삼분 계엄. 책의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나의 기억도 함께 소환됐다. 퇴근길 버스에서 친구 구정은이 폰을 들여다보며 ‘비상계엄이라고?’ 한마디 하며 심각해졌다. 나는 국제 문제 전문가인 정은에게 어느 나라 얘기냐고 물었다. 어디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미 소식인 줄 알았다.

비상계엄을 발표하는 윤석열.

하루하루 짧게 기록한 일기는 지독하게 사적인데 몹시 사회적이다. 그 시간을 되짚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내려서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계속 책장을 넘겼다. 단번에 거의 다 읽었다. 계엄과 탄핵 이후 쏟아진 기록들이 꽤 많았지만, 솔직히 펼쳐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다 아는 것만 같았다. 그 이야기에 더 붙잡히고 싶지 않았다. 툴툴 털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겁이 났고, 화가 났고, 답답했고, 속상했고, 다쳤던 모양이다. 나와 다르지 않았던 어느 시민의 마음을 솔직 담백한 기록을 통해 들여다보는 게 위로가 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비상계엄이, 탄핵까지 그 지리한 공포의 시간이 내게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나도 몰랐거나, 무심하게 넘겼던 내 속을 누군가의 일기가 달래주고 있었다.

진짜 보수가 억울할 일

서부지원 폭동을 감싸는 이들을 보며 작가는 기록했다.

“2025년 버전의 백골단을 국회로 들인 사람들이니 그럴 만하다, 싶으면서도 내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따르 고자 했던 사회적 합의가 엉망진창이 되는 모습을 요즘 매일 보고 듣고 겪는다는 생각에 우울하다. 이런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이 있고. 나는 딱히 상식의 편도 아니었는데, 이 사회 상식의 수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근데 이제 그 말투가 생각나 씨발도 입에 올리지 못하는.”

나도 우울했다. 무력했다. 고통스러웠다. 평화적 촛불로 정권을 교체했던 시민의 자부심이 무너졌던 무렵이다. 나라가 하루아침에 엉망진창인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제대로 달래주지 못한 채 그냥 덮고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회복했지만,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그 상흔이 남아있다.

“저녁엔 퇴근하는 김보리를 마중 나간 김에 메밀국수를 먹으러 갔다. 매운 양념에 비빈 콩나물을 먹고 싶어서 비빔메밀을 먹었다. 국수를 먹으면서 랩이 터진 것처럼 욕을 했다. 매국과 내란의 얼굴들, 파렴치며 몰염치가 그네들 힘이다, 꼴도 보기 싫다, 곱게 늙어서 더 징그러운 폭력들, 샹, 샹. 국가’와 ‘나라’를 주제로 열렬히 말하고 가만히 생각 하니 내가 보수인가 싶었다. 이 계엄을 옹호하는 입장들을 ‘보수’라 칭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봉건, 내란, 위헌 중에 골라봐.”

2025.1.19 서울서부지방법원 극우 폭동 사태.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그리고 조희대)

국수를 먹으면서 랩이 터진 것처럼 욕하는 작가의 모습에 내가 겹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에게 분노하며 나의 욕 사전이 빈약한 것에 더 화가 났다. 샹, 샹. 욕을 더 찰지게 퍼붓고 싶었다. 욕 들어 마땅한 이들에게 닿지 않는 나의 욕, 그들의 죄를 비난하기에 부실한 나의 욕. 작가의 말처럼 계엄을 옹호하는 이들을 어떻게 ‘보수’라고 부르나. 진짜 보수가 억울할 일이다. 그들은 염치가 없고, 수치를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합법적 평화적으로 저항할지 고민하는데, 그들은 초법적이었다.

“초법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온갖 위법한 일을 저지른 자들이 법의 보호를 이토록 꼼꼼하게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무력감을 안긴다. 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 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 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비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하는, 되니까 되는,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 따로 있다.”

저들은 어떻게 저리 뻔뻔할 수 있을까. 한결같이 이 사회의 단물을 다 받아먹고 부귀영화와 명예까지 다 가져놓고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마음을 졸이며 살아도 별일 없이 산다는 너희”가 우리를 우롱하고 조롱했다. 작가는 그들을 호명했다.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할 이름들.

“이름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이제 지귀연. 공부를 잘한다는 건 뭘까. 내란 이후로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의 면면을 이렇게 속속 확인하고 보니 이 사회의 ‘공부’가 틀렸다는 걸 새삼, 정말로 뼈가 아프게 알겠다. 이제 이 사회에서 어떤 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 왔다는 건, 그를 양육한 보호자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인적 자원이 충분했다는 것 말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사회의 공부가 잘못됐다는 것은, 이 사회가 칭송하는 성공이 이상하다는 것은 이제 더 가릴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른인 주제에 아이들에게 계속 그 공부를 압박한다. 이대로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무력하게 비켜서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작가가 끄집어낸 ‘고마운’ 기억들

하지만 세상만사에는 언제나 다른 면이 존재한다. 작가가 끄집어낸 기억들이 고마워서 새삼 울렁거렸다.

남태령.
마중 나간 사람들.
배웅까지 완성한 사람들.

차마 일기로 옮기지 못하고 “뭐라고 쓰든 남태령에서 나온 말들에 비하지 못할 것”이라는 대목에 맹렬하게 수긍한다. 광화문에서 퀴어 청소년의 발언을 들으며 “이 무수한, 낯모르는 사람들의 뭘 믿고 자신의 소수자성을 말했을까. 듣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내가 뭐라고 이 용감한 말을 받나, 싶으면서도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고 작가는 기록했다. 작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한 언어로 풀어주는 사람, 맞다. 우리는 거리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때로는 온 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시위대 가운데 스며들 때 가라앉았다. 존재 만으로 위로가 됐던 이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정대만 깃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나오는 길에 정대만 깃발을 든 기수를 보았다. 깃대에 기대 선 듯한 모습으로 좀 지쳐 보였는데 무대에 오른 발언자가 ‘투쟁으로 인사하겠다’고 말하자 대답하듯 깃대를 흔들었다. 발을 딱 벌리고 서서 기를 버티는 모습이 늠름해 보였다. 다가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놀랄까 싶어 그만두었다. 12월부터 이어진 집회 내내 그 에게 품은 고마움이 있다. 매번 광장에 갈 때마다 그의 깃발을 눈으로 찾곤 했고 거의 빠짐없이 그 깃발을 보았다. 광장에 나설 때마다 그걸 보고 방향을 옳게’ 찾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낀 순간이 여러번이었다. 다른 깃발도 많지만 내게는 이 시국 광장의 표지가 그였다. 열렬한 응원.”

절박했고, 간절했던 마음만큼이나 복잡한 순간도 여럿이다. 작가는 섬세하게 따박따박 기록했다. 윤석열이 초래한 국가 상태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언급하는 발언들에서 “이 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했다.

분노한, ‘우리‘로 단일하다고 간주하는 집단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소외감. 소수를 향한 다수의 불편.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강화되는 정상성 요구, 단일한 집단이 되려는 욕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로 광장에 모인 거대한 집단이 보수적인 정상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단지 그 자리에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닥치라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을 쓸 것. 특히나 분노한 사람들 속에서.

고통으로 연결된, 단단해진 우리

작가는 그날 밤 여의도부터 광화문, 경복궁으로 매번 달려가면서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온갖 소음이 버석거리던 그 시기, 고사리 화분을 책상 근처에 잔뜩 가져다주고 ‘아름다움’을 보고자 했다. 매일 만지고, 물을 주고, 흙 상태를 살피며 일상을 지켰다. 원래 글 쓰던 새벽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타인의 생각과 시선을 내 들끓는 생각과 감정 안으로 들이지 않으면 내가 지나치게 확장된다”고 스스로 경계하고 스스로 보호했다. 저마다 일상을 위해 분투했던 시기다. 일상이 어렵고 귀하다는 것을 깨닫던 겨울부터 여름까지.

헌재가 탄핵 결정을 계속 미룰 때, 작가는 약자를 다시 생각했다. 막막함, 손쓸 수 없음에 따른 무기력과 황당함이 누군가에게 너무 낯익은 상태라는 것을 인정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느꼈고 십년을 넘어 지금까지 느껴왔을 마음일 것이고, 이 사회의 약자들이, 소수자들이 겪어온 괴로움과 어려움을 이제 온 사회가 다 겪고 있다”고. 이딴 세상, 이대로 부서져도 괜찮다고 냉소하기에는 많은 이들이 애쓰고, 너무 많은 이들이 어렵고 아픈 세상.

일기는 비상계엄의 밤부터 탄핵의 벅찬 순간까지 기록하고, 며칠 더 간다. ‘십년 하고도 일년’ 지난 세월호 참사 안산 기억식의 소회, 불법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에 관통당한 경험, 그 고통으로 연결된 감각으로 단단해진 우리.

그리고 조용히 이름만 호명한 5월 1일 일기로 끝난다.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그리고 조희대.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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