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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16. 내가 만난 학부생과 학부 조교들

나는 지금까지 많은 학부생, 학부 조교들과 함께 일했다.

학기마다 학과사무실에 2명, 연구소에 1명이 배정되었으니 내가 대학원생 조교로 근무했던 2008년부터 2012년까지를 헤아려 보면 대략 30여 명에 이른다.

  • 아프리카 사람에게 꼭 시집가겠다던 10학번 K
  • 재주가 많아 사무실에서 비트박스를 선보이던 09학번 D
  • 남자친구가 과사무실에 쳐들어와 장미꽃 100송이를 바치게 한 07학번 J
  • 끝없는 책 나르기 중 “이게 똥이지 책인가?” 했다 선배에게 혼난 03학번 C
  • 내가 우울해 보였는지 오후 2시에 “술 한 잔 하러 가요, 형님” 했던 04학번 S

그렇게 저마다 사연도 많고 개성 넘치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S가 나에게 술 한잔 하자던 그날은 나도 ‘에라 될 대로 돼라’ 하고 연구소 문을 닫고 2시부터 술 먹으러 갔다. 3년간 단 한 번의 일탈이었다.

Elisabeth Audrey, CC BY ND https://flic.kr/p/5d3b7b
Elisabeth Audrey, CC BY ND

“잡일 돕는 아이”… 대학원생은 잡일 ‘담당’, 학부생은 잡일 ‘보조’

학부생 조교가 하는 일은 사무실과 연구소의 업무 보조, 예컨대 수업 자료를 복사하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고장 난 컴퓨터를 고치고, 메뉴얼에 따라 청소하고… 말하자면 온갖 ‘잡일’이었다. 좀 더 풀어 말하면 대학원 조교가 잡일을 ‘담당’하고 학부생은 잡일을 ‘보조’하는 모양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9시부터 5시까지 모든 공강 시간에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근로 장학금 80만 원을 받는다. 선발권은 학과장이 가지고 있고, 그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다. A 교수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우선 뽑았고, B 교수는 자신이 좋게 본 학생을 아예 내정했고, C 교수는 조교실장에게 선발을 위임하기도 했다.

연구소 조교의 경우는 연구소장이 내게 마음 맞는 학부생이 있으면 추천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학부생 조교로 선발된 학생들은 모두 진심으로 기뻐했고, 자신들이 선택받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해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실하게 일해 주었다.

2008년 봄, 석사 1기 시절, 나는 학과 사무실의 대학원생 막내였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의무적으로 학과 사무실이나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학부생 조교들 역시 공강 시간을 제외하고는 사무실에 몸이 매여 있었다.

JD, CC BY  https://flic.kr/p/bXANVG
JD, CC BY

학부생 조교들은 평균 15∼20학점을 들었으니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근무했다. 그러면 한 학기가 16주인데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는 근무가 없으니 대략 13주, 도합 260시간 넘게 일하고 80만 원을 받아 간다. 지금도 이러한 시스템이니 최저시급 5,210원에는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나는 조교실장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학부 조교들이 일하는 시간을 모두 합해 보면 최저 시급도 못 받는 것 같네요.”

“알아. 그런데 우리는 뭐 받고 일하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당연히 또 그렇게 하는 거지.”

그 말을 요약해 보면 대학원생도 같은 처치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러니까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구조의 밑바닥에 있는 ‘개인’이었고, 조직의 관행과 싸울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아, 그렇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는 조교실장 역시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 학과는 형편이 나았다. 계절학기까지 알뜰하게 출근시키는 학과도 적지 않다고 했다. 나는 욕이 튀어나왔다.

지켜지지 않는 규정, “한 학기 근무시간은 00시간으로 정한다” 

나는 학부 시절 친하게 지내던 04학번 S를 연구소 조교로 추천했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 전에 학생복지처에 들러 학부생 조교 근로규정집 같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교직원이 답했다.

“아, 그거 인터넷 게시판에 있으니 다운 받으세요.”

대략 3∼4쪽 되었던 것 같은데, 여러 가지 규정들이 세밀하게 나와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었다.

“학부 조교의 한 학기 근무 시간은 00시간으로 정한다.”

모든 직장에 근로규칙이 있는 것처럼 대학에도 근로장학생 규칙이 있었다. 대략 계산해 보니 우리 관행대로 그들을 부리면 중간고사 이전에 근로 시간을 모두 채워 퇴직시켜야 했다. 무척 화가 났다. 이렇게 근로규정집이 있고 최대 근로시간이 명시돼 있는데, 그 누구도 이것을 찾아보려 하지 않고 지키려 하지 않는다.

Son of Groucho, CC BY https://flic.kr/p/d2yu1o
Son of Groucho, CC BY

이것은 명백한 노동 착취이다. 대학원생 조교들 역시 같은 처지에 놓여 있지만, 학부생 조교들과의 관계에서는 ‘중간관리자’의 입장이다. 적어도 그들이라도 지켜주는 것이 옳다.

S에게 근로규정집을 보여주고 우리 연구소의 근로방침을 함께 말해 주었다.

“나는 근로규정에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공강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근무를 서야 한다는 관행을 나 혼자 이겨낼 수가 없다. 결국, 너에게 최저 시급 이하의 근무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거지. 싫다면 그만둬라. 미안하다…”

S는 공강 시간에 딱히 갈 데도 없고 연구소에서 공부하며 근무를 서겠다고 쾌활하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고, 글을 쓰는 지금 2014년에 와서 돌이켜 보면 몹시 부끄럽다.

잘못된 것을 알고도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고, 나를 믿고 함께 일하겠다고 온 학부생 조교에게 관행을 강요했다. 조금 한가한 날 “오늘은 일찍 퇴근해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결국, 나도 비겁한 인간인 것이다.

결국 나도 비겁한 인간이다 

웃으며 들어왔던 S는 웃으며 나가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고될 줄 몰랐다고 했다.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전국 대학으로 발송할 때는 S와 함께 밤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책이 도착하면 주차장에 내려가서 7층 연구소까지 들고 나르고, 학교 마크가 있는 봉투에 이중 포장을 하고, 라벨지를 하나하나 붙이고, 시내 우체국에 가서 전국으로 발송했다. 남은 책을 담아둘 박스를 항상 구해야 했는데, 우리는 함께 편의점, 카페, 학생식당 등을 찾아다녔다.

박스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을 본 후배들이 S에게 이렇게 농담 식으로 말을 건넨 적 있다고 했다.

“오빠, 박스 주우러 다니세요?”

S는 연구소에 들어와 반쯤 진심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저 이제 학교 어떻게 다녀요? 좋아하는 애였는데 진짜 책임질 거예요?”

그렇게 야근을 하고 나면 나는 그와 함께 치맥이나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했다.

S는 함께 술을 마시며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조교 근무를 겪은 학부생들이 자연스레 대학원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꿈꾸어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처우 개선이 우선될 때 가능할 것이다.

Alex, CC BY https://flic.kr/p/84ThFe
Alex, CC BY

대학은 이제 정규직 뽑을 필요 없다 

학과 사무실과 연구소가 이렇게 학부생 조교를 ‘착취’하는 동안 학교의 각 대학 본부 사무실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다. 어느 부처를 가도 먼저 인사하는 것은 학부생 조교들이다. ‘이걸 이 아이들이 왜 하고 있지?’ 싶은 일도 한다. 도서관의 서가마다 책을 나르고 정리하는 역할 역시 학부생들이 도맡는다.

사무실, 연구소, 기숙사, 대학의 어디를 가든 학부생 근로 장학생들이 있다. 결국, 값싼 학부생의 노동력으로, 대학 사무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대학원생의 몸값은 환산하기 민망할 만큼 더욱 저렴하다.

대학은 기업보다 한발 앞서, 비정규직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냈다. 이제는 정규직 교직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조금 젊은 얼굴이 보인다 싶으면, 예외 없이 2년 계약 비정규직이다. 작년에 안면을 튼 동갑내기 교직원이 있어서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20대 30대 교직원 중엔 아무도 정규직이 없더라고요.”

입사한 지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벌써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수 선발에 있어서도 ‘정년 트랙’, ‘비정년 트랙’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일컫는 대학가의 신조어다. 정년을 채운 교수들이 퇴임하면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지우고 비정년 트랙 강의전담교수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해임’한다.

John Walker, CC BY https://flic.kr/p/82h9kL
John Walker, CC BY

대학은 나름의 신자유주의적 생태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심지어는 졸업생의 값싼 노동으로 행정의 최전선을 채운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명목조차 없는 4개월짜리 계약서를 받아든 시간강사들이, 2년짜리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강의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그리고 그 물결 안에서 나는, 함께 일한 학부생 조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방관하는 가해자였고, 학부 조교들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을 떠안았다. 수료 후 시간강사가 된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는… 비겁한 인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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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잘 봤습니다. 학교마다 조교 근로규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 학내에 멀쩡히 비치해두면서도 안 지키는지는 처음 알았네요. 그렇다고 이런걸 고발해봤자 내부고발자 조까 하는 한국에서 보상해주는 거라고는…

    강사법에서 보험관련 문제가 해결되면 이쪽도 개선해야 할 것 같군요.

  2. 사실 그나마 국가에서 직접 돈을 지원하는 근로장학쪽은 그나마 상태가 낫죠.(다만 이것도 본격적으로 늘어난게 이명박정권떄 반값등록금논란이 하도 거세지면서 그걸 잠재우려고한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도 높은편이고…하지만 학교내에서 자체적으로 고용하는쪽은 여전히 함정이 많으니…

  3. 지나가다가 저랑 비슷한 또래의 교원 지망인 것 같아 쭉 읽어보았습니다. 저 역시 지금 박사 졸업 앞두고 있고요, 조교도 했고, 연구생에 RA, 산학 등 비슷하게 커리어가 쌓인 것 같습니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필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제 밥 못 찾아먹는’ 전형적인 연구자 타입입니다. 본인을 피알하고 유리하게 이끌 방법이 필요합니다. 연구자는 연구의 질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연구를 팔 수 있는 프로모션도 중요합니다.

    글을 보면, 현재의 상황에 불만이 너무 많습니다. 불만이 많다고 끙끙거리고 현실을 삐딱하게 보면 그 상태가 지속될 뿐입니다.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을 찾아보십시오.

    한국 사회라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주목을 받을수록, 인정을 받을 수록 본인의 가치가 급속도로 올라갑니다. 가치가 높을수록 해당하는 달콤한 열매도 따 먹을 수 있겠죠? 그 가치를 어떻게 올리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너무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순응하면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좋아하는 대학에 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이상만을 간직한 채, 여러 루트를 찾아 빠른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

    지금 대학 구조조정 중이라 아마 자리 잡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저와 비슷한 30대 중반을 향해 가시는 것 같은데, 시간도 얼마 없습니다.
    힘내십시오. 저 역시 힘내겠습니다.

  4. 댓글의 ‘현실적인’ 충고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안타깝게도 학계에는 실제로 과도하게 고지식해서 ‘제 밥 못 찾아먹는’ 분들이 종종 보이니, 그런 분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조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고지식하긴 하지만 바보들은 아니죠. 이삼년 대학원생으로 있다보면 눈치도 백단이 됩니다. 주목받고 인정받아 달콤한 열매를 어떻게 따먹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그렇게 하지 않고 필자처럼 번뇌하는 이유는 댓글에서 추천한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자가 언급한 구조적인 문제의 답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와 답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해결할 힘이 자신에게 없기 때문에 자조적인 글이나마 이렇게 끄적이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학문을 잘 어필해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그 분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그만큼에 대한 노력의 대가를 받는게 마땅하지요. 그런데 그러면 학계에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될까요. 아니 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까지 오지랖이냐구요? 아마도 이 지점에 대한 대답이 학자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되겠지요. 저는 그 오지랖, 혹은 공공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도 자신의 전공연구 못지 않게 사회에 대해 학자가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자들이 앞장서서 공공선을 부르짖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자기 연구할 시간도 부족하지요. 게다가 아직 학계에 안정적으로 안착하지 못한 대학원생이나 시간강사의 신분이라면, 강요하기 미안한 일입니다. 그러나 필자처럼 용기있게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글에, 전략적인 방법론을 해결책으로 자신있게 제시하는 글을 보니 씁쓸하기는 합니다. 좋은 의도 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부디 개인적으로 성공하시더라도, ‘최소한의 이상’에 학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있길, 그래서 좀 더 나은 학문풍토조성에 귀감이 되시길 바랍니다.

  5. ‘현실적으로 순응하면서’라는 말은 달콤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면 자기 자신까진 확실히 잡아낼 수 있겠죠.
    그러곤 ‘제 밥 못찾아먹는’ 전형적인 연구자 타입들은 불평이나 해댄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꼰대가 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삐딱하고 안쓰러운 것들. 노력 안한 것들이 되버립니다. 무가치한 패배자들을 욕하고, 대학원생들은 착취하고, 빨아먹는 평범한 인간이 되겠죠.

    ‘나에겐 의지가 없다, 용기가 없다, 나도 그런데 너도 닥치고 살아라’
    이런 말들을 현실에 충실히, 열심히 산다는 말로 꾸미는 것보다
    힘내지 않고 불평하며, 고뇌하고, 번민하는 사람 한 명이 늘어날 때
    보다 힘을 낼 가치가 있는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학자들이 앞서서 공공선을 논할 필요는 없다는 점엔 공감합니다.
    저도 그렇듯 소시민적 인간은 소시민으로 살아야 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저런 식으로 힘내십시오란 말은 하지 않도록,
    남의 용기를 파먹고 자라난 꼰대가 되지 않도록 강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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