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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어쩌다 세계는 이 지경에 왔을까. 역사는 반복된다. 석유를 둘러싼 지난 100여 년의 역사적 충돌은 오늘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반복된다. (⌚6분)

📚마냐의 북라이딩🚴

반복되는 역사,
석유를 둘러싼 지난 100여 년의 사건들

🔗 헬렌 톰슨, ‘질서 없음’ (2025), 윌북.

어쩌다 세계가 이 지경에 왔을까.

망가진 세계를 이해할 세 가지 프레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이른바 국제 질서에 대해 새삼 의문을 품게 했다.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라이언 일병’ 구조에 환호하면서 수천,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태에 모두가 무책임하고 무감각하다. 하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듯 세상의 기존 질서는 이미 곳곳에서 휘청이고 있었다.

러·우 전쟁, 미·중 패권 전쟁, 중동 분쟁과 민주주의의 위기,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 등 지정학적, 경제적, 정치적 충돌은 혼란스럽고 무질서(disorder)하게 보인다.

헬렌 톰슨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혼란스러운 안개를 걷어내고 ‘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을 보라고 제안한다. 에너지와 금융, 민주정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거대한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석유를 둘러싼 에너지 패권 전쟁은 달러 기반 화폐 질서의 혼란과 맞물리고, 극단 세력이 약진하면서 또 다른 전쟁에 불이 붙는 악순환에서 나름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을까?

미국은 왜 중동에서 계속 충돌할까

‘질서 없음’은 정치경제학 교수가 썼는데 역사책 같다. 지난 100여 년 석유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만 따라가도 오늘날 중동 지역 분쟁을 다시 보게 된다. 미국은 왜 중동에서 계속 충돌할까. 이란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핵심이었다. 작년 가을에 번역된 이 책이 원래 2023년에 출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언서나 다름없다.

“중국의 중동 에너지 의존은 미국이 페르시아만에서 철수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2021년 중국과 이란이 25년 경제 파트너십을 맺기로 하면서 더 없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과거 중동을 둘러싼 유럽의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영국이 승리하는 데 이란이 핵심이었듯이, 석유와 가스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석유와 가스에 계속해서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이 직면하는 어려움 속에서 이란은 앞으로도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건 1908년이다. 1차 대전 이후 석유가 풍부한 구 오스만 제국의 중동 영토가 지정학적 전리품이 됐다. 미국은 당시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를 안 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 먹었다. 중동에서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공간을 열어준 사건은 2차 대전이다.

언제나 관건은 선진국들이 어떻게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느냐. 프랑스는 에너지 자립해 보겠다고 1956년 알제리에서 석유 발견되자 사하라 쪽 통제권을 확보했다. 영국은 쿠웨이트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수에즈 위기가 터졌다. 영국과 프랑스가 통제하던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이 국유화해 버렸다.

영·프는 이집트와 불편했던 이스라엘까지 불러들여 1956년 수에즈를 점령했다. 그때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전쟁에 반대한 이유가 인상적이다. 그는 재선 앞두고 한국전쟁 휴전으로 평화의 사도 이미지를 얻었던 참이라 전쟁에 반대했다. 소련도 펄쩍 뛰며 런던과 파리에 핵 공격 운운했던 엄청난 위기였다. 이 수에즈 위기를 해결한 건 아이젠하워의 석유 협박이었다. 원유 공급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영국과 프랑스가 한 달 만에 철수했다.

수에즈 위기 혹은 제2차 아랍-이스라엘 전쟁(1956).
1956년 11월 5일,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포트사이드 초기 공격 당시 수에즈 운하 옆 유류 저장 탱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반복되는 역사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른바 ‘6일 전쟁’) 때 프랑스 드골은 이스라엘 지지를 철회하고 친아랍으로 선회했다. 영국 주둔군이 철수한 중동에서 사우디와 이란이 서구 에너지 안보의 기둥이 됐다. 그 둘은 라이벌 관계였고 여기에 미국이 얽혔다. 사실 미국은 중동 주둔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군사적 책임을 지는 게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예루살렘 서쪽 벽(‘통곡의 벽’)을 점령한 직후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방위군(IDF) 공수부대원 들을 촬영한 역사적 사진. (앞쪽 왼쪽부터) 시온 카라센티, 이츠하크 이파트, 하임 오슈리. 사진은 데이비드 루빈저.

그래서 본격 주둔 대신 트루먼이 세운 CIA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 잔재가 이란 쿠데타와 혁명,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에서 온갖 충돌로 이어졌다. 각국의 국내 정치 문제도 중동을 출렁거리게 했다. 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이 시리아에서 러시아에 맞서야 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러시아가 ISIS 싸움에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란 전쟁 여파로 유가가 폭등하자 트럼프가 러시아 석유 제재 완화를 언급했는데 역시 반복되는 역사다. 원래 석유 전통 강자가 러시아와 중동이다. 1930년대부터 프랑스는 수입 석유 절반을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냉전 시절에는 서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소련 석유를 수입하면 안 된다는 합의가 유지되다가 수에즈 위기 이후 깨졌다.

소련 석유의 부상과 미국∙유럽의 역학

미국과 서유럽은 중동 석유에 매달렸다가 소련 석유에 눈 돌렸다가 입장을 계속 뒤집었다. 소련 석유가 떠오르자, 중동의 미국 석유회사들은 아랍 정부들과 협의하지 않은 채 가격 낮췄고, 분노한 사우디,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가 뭉친 게 석유수출국기구(OPEC)다. 소련은 1974년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독일이 러시아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걸 마지못해 용인했다. 대안을 내놓기에는 당시만 해도 미국이 충분히 공급할 수 없었고, 중동에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단도 없었다. 프랑스도 미국 주도의 국제에너지기구 참여를 거부하면서 석유소비국으로서 미국이 서유럽과 경쟁하던 시절이다. 당시 닉슨이 사우디와 관계를 개선하고 이란과 동맹도 강화했던 것도 맥락이 다 있었다. 이후 이란 혁명으로 분위기는 급변했다. 2000년대 초 유럽 중부, 남동부 국가들은 터키를 경유해 이란에서 가스를 수입해서 러시아 의존도 낮추려고 했는데 미국 압력으로 포기했다.

2010년대에 미국은 세계적 석유 및 가스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털고 중동에서 나오는 전략적 결정을 한다거나, 중동보다 중국을 전략적 우선순위에 놓고, 기후변화에 대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오바마의 확신은 석유와 가스 강국 미국이 일으킨 지각변동이었다. 당시 미국은 국내 생산량이 늘어나자, 사우디와는 지금보다 거리를 두고 이란과는 지금보다 덜 대치적 관계가 될 수 있게 하면 지정학적으로 득이 되리라 기대했다. 오바마가 달러 권력을 이용해 이란과 거래하는 비 미국 기업들을 제재해서 핵 협상을 끌어낼 당시 NATO 주요국들은 모두 이란 가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NATO는 원래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가 중동에 달려 있고 냉전으로 양극화되어 있던 세계에서 출발했다. 다극화된 세상에서는 매번 이해관계가 달라졌다.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 다국적 감시하자고 할 때도 유럽 국가들은 일축했고, 최근 상황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저자는 수에즈 위기 이후 독일이 소련,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게 된 것이 NATO를 구조적으로 분열시키는 단층선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 균열이 결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폭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 + 달러 ‘패키지’

석유가 달러로 결제되던 시절부터 석유와 통화는 패키지다. 저자는 1970년대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오일 쇼크가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연결해서 보여준다. 달러 중심의 불안정한 금융 시스템이 탄생하면서 유럽의 통화공동체 ‘유로’가 만들어지고, 국경 없는 자본 이동을 촉진하며 ‘메이드 인 차이나’ 시대를 열었지만, 그 안에 내재한 모순이 결국 2008년 금융 위기를 야기했다든지, 이후 중국의 경제 전략 수정과 미국의 견제가 맞물리며 현재의 미·중 관세 전쟁으로 이어졌다든지, 세상의 인과관계는 생각보다 촘촘하다.

전 세계적 경제 위기의 상징이 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Helge V. Keitel, Lehman Brothers, CC BY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에 세운 분리장벽 아래를 걷고 있는 팔레스타인 소녀 (출처: Rain Rannu, “Wall between Israel & Palestine”, CC BY, 2008. 3. 11.)

에너지와 금융의 격변이 국가의 과세 능력을 약화하고 경제적 국가 공동체주의를 붕괴시키는 것도 일련의 흐름 속에 있다. 국가가 더 이상 시민의 경제적 삶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불만이 쌓이면서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고,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 같은 포퓰리즘과 극단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책은 세 가지 프레임에 맞춰 삼등분 구조인데, 나는 최근 상황에 맞물려 있는 석유 파트에 더 몰입했다. 학자가 쓴 벽돌 책답게 금융 파트는 내 수준에서 조금 벅찼다. 민주주의 대목은 다음 기회를 노린다.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속내를 100년 세월 속에 투명하게 발견하는 것이 성과다.

지배 세력을 부유하게 만든 석유 자원 탓에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그 땅의 역사가 비통할 따름이다. 영국 학자는 제국의 지위를 내준 이후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늘하다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 한때 제국 영국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 걸 확인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서구는 이렇게 작동해 왔구나, 이제 그 시절이 지나가고 있구나, 분명하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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