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이동관의 사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동관(방송통신위원장)이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사퇴했다. 대통령실은 사의 표명 3시간 만에 면직안을 재가했다. 방통위원장은 탄핵이 아니라 공석 상태가 됐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나흘 전까지만 해도 “자진 사퇴는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내가 그만두더라도 제2, 제3의 이동관이 나온다”면서 “언론 정상화의 기차는 계속 갈 것”이라고 했다.
- 민주당은 11월30일 이동관 탄핵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고 12월1일 표결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민의힘은 철야 농성을 벌이면서 반발했지만 표결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 이동관 사퇴는 윤석열(대통령)의 뜻이라고 보는 게 맞다. 사상 초유의 방통위원장 탄핵을 앞두고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론의 비판과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미다.
이유가 뭘까.
- 일단 윤석열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민주당은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고 탄핵은 가결됐을 것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반년 가까이 방통위원장 직무가 정지되고 방통위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총선 전까지 방송에 손을 댈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 실제로 이날 손준성(대구고검 검사)과 이정섭(수원지검 검사) 탄핵안은 가결됐다.
- 이동관은 지난 석 달 동안 KBS 이사회를 장악한 뒤 KBS 사장을 갈아치웠지만 MBC는 건드리지 못했고 YTN 민영화는 막판에 잠깐 멈춘 상태다.
- 윤석열은 방통위를 비워두기보다는 빠르게 다시 정비해서 이동관이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더 큰 충돌이 기다리고 있다.
3+2라는 무늬만 합의제.
- 방통위는 원래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 5명 상임위원의 합의제 기구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을 지명하고 나머지 3명 가운데 1명을 여당이, 나머지 2명은 야당이 추천하는 구조다.
- 갈등의 원인은 정권이 바뀌는 것과 상임위원의 임기가 맞물리지 않아 추천 권한을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는데 방통위 상임위원은 3년마다 바뀐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올 때는 같은 새누리당 정권이라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넘어올 때는 마침 상임위원들 임기가 끝나는 시점과 맞물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넘어올 때는 상임위원들 임기가 모두 1년 이상 남아있는 상태였다. 문재인+민주당 추천 위원이 셋, 국민의힘 추천 위원이 둘인 상태가 1년 가까이 계속됐다.
- 정부와 여당이 셋, 야당이 둘이라는 구분도 모호하게 됐다.
- 민주당이 최민희(전 민주당 의원)를 안형환(전 방통위 부위원장)의 후임으로 추천하자 국민의힘이 반발했던 것도 애초에 그 자리가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추천으로 임명된 자리기 때문이다. 애초에 야당 몫이니 야당이 추천하는 게 맞다는 게 민주당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이미 민주당 추천 상임위원이 둘이나 있는 상태에서 민주당 추천 위원을 늘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 문재인(전 대통령)이 지명한 김창룡 후임으로 윤석열이 이상인을 지명한 것처럼 정권이 바뀌면 임명 주체가 달라지는 게 당연하지만 방통위원들끼리 임기가 엇갈리는 게 문제다.
- 올해 3월 기준으로 보면 한상혁과 김창룡은 문재인 추천이고 안형환과 김효재는 국민의힘(당시 야당) 추천, 김현이 민주당(당시 여당) 추천이었다. 만약 안형환 후임으로 최민희가 들어오면 국민의힘 추천이 한 명으로 줄어들고 문재인+민주당 추천이 넷으로 역전될 상황이었다.
- 원칙대로는 한상혁과 김창룡 후임을 윤석열이 추천하고 김현 후임을 국민의힘이 추천하고 안형환과 김효재 후임을 민주당이 추천하면 될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김현보다 안형환 임기가 더 늦게 끝났다.
- 결국 감사원과 검찰까지 동원해 한상혁을 강제 면직한 뒤 그 자리에 이동관을 밀어넣었고 김창룡 후임으로 이상인을 임명했다. 그리고 국회 추천 상임위원 세 명을 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추천 두 명으로 파행 운영하다가 이동관이 사퇴하면서 1인 체제가 된 상황이다.
- 국민의힘은 김효재 후임으로 이진숙(전 대전MBC 사장)을 추천했고 민주당은 김성수(전 민주당 의원)와 최진봉(성공회대 교수), 김성재(전 언론재단 본부장)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정해진 바는 없다. 최민희는 7개월 가까이 내정자로 남아있다가 자진 사퇴했다.
이동관이 석 달 동안 한 일.
- 윤석열이 이동관-이상인 두 명으로 방통위를 파행 운영했던 건 토론과 합의를 건너뛰고 방송 장악을 빠르게 마무리하려는 의도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실제로 이동관은 석 달 동안 KBS 사장을 갈아치웠고 뉴스타파 김만배 인터뷰를 문제 삼아 방송사들에 자료 요구를 하고 방통심의위에 가짜뉴스 심의센터를 만들라고 지시하는 등 그동안 방통위가 지켜왔던 최소한의 원칙과 균형을 거침없이 무너뜨리고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를 유린했다.
- 한상혁이 면직된 뒤 이동관이 임명되기까지 석 달 동안 직무대행 김효재가 남영진(당시 KBS 이사장)과 권태선(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정미정(EBS 이사) 등 해임을 밀어붙인 것도 이동관의 자리를 깔아준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 법원이 권태선의 해임 무효 가처분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사이에 MBC 사장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 YTN 민영화도 막판에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일단 미룬 상태일 뿐 승인 직전까지 갔다.
이제 어떻게 되나.
- 윤석열이 방통위를 접수한 건 한상혁 퇴임 이후 반년 정도밖에 안 됐다. 윤석열이 이동관을 끌어내린 건 오히려 이동관이 하던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 방통위는 행정안전부와 다르다. 이상민(행정안전부 장관)이 탄핵돼도 행정안정부는 굴러갔지만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다. 두 명 이상의 위원이 의결하고 과반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만약 방통위원장이 부재 상태가 되면 다른 위원들을 임명한다고 해도 여야 두 명씩 대치 국면이 된다. 그렇다고 야당 추천 위원을 받지 않을 방법도 없다.
- 윤석열은 해가 가기 전에 다음 방통위원장 후보를 내세울 것이고 그동안 미뤘던 여야 추천 상임위원도 임명을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 방통위원장는 인사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새해로 넘어갈 수밖에 없고 국회 추천 위원들도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보이콧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방통위의 업무 공백은 한동안 불가피하다.
문제의 본질은.
- 방통위 시스템이 한계가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 정부와 여당이 위원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무늬만 합의제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아예 야당 추천 위원을 받지 않고 100% 정부와 여당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영 방송을 유린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입증됐다.
- 이동관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일 뿐, 문제의 본질은 방통위 시스템이다. 방통위를 장악하면 공영방송 이사회를 지배하고 사장을 갈아치우며 논조와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이동관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통합해 출범했으나 실제로는 막강한 이권을 배분할 권한을 쥐고 방송과 통신을 쥐락펴락하는 여론 장악의 첨병으로 활동해 왔다.
-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공영 방송의 정치적 중립과 공영성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개편을 논의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 5년을 흘려보낸 게 아쉽지만 이동관의 지난 3개월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훨씬 더 참담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 이동관이 말한 것처럼 이동관을 내보내면 또 다른 이동관이 온다.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단을 해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이동관은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에 아웃됐을 뿐이다.
- 방통위가 공백 상태가 된 지금이 방통위 개편을 논의할 마지막 기회다. 총선이 지나고 나면 손을 댈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반대로 총선 이후라야 개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지금 상태에서는 어떤 개편안을 내놓아도 대통령이 거부해 버리면 그만이니.
오히려 총선 이후라야 개편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금 상태에서는 어떤 개편안을 내놓아도 대통령이 거부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