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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이데올로기 그리고 네이티브의 윤리

네이티브 중심주의의 폐해와 소통의 쌍방향성에 대한 소고

 

 

은밀한 것과의 싸움은 늘 어렵습니다.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악당이야 잡으면 그만이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상식적 믿음’에 저항하기는 힘들죠.

영어교육 및 외국어교육 전반에서 가장 강력한 신념은 아마도 ‘네이티브’가 언어의 기준이며, 언어 사용의 적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은 원어민 집단에 있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네이티브처럼 말하기’나 ‘네이티브 되기’와 같은 마케팅 슬로건에, 표현에 관한 질문이 있을 때 서슴없이 ‘잘 모르겠어? 주변에 원어민 없어? 그럼 물어보면 되겠네!’라고 말하는 장면 속에, ‘진짜 영어와 가짜 영어’라는 이분법 속에 네이티브 이데올로기는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네이티브? 

본 글에서 ‘네이티브’는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aker)’의 준말로 원어민 화자 즉, 특정 언어를 자신의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필자)

이를 좀더 들여다 보면 한국어의 소유권은 한국인에게 있고, 불어의 주인은 프랑스인들이라는 생각에 닿아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 주인들이 지정한 룰을 충실하게 따라야만 해당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듯, 해당 언어를 배우려면 반드시 그 언어의 모국어 화자와 같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freestocks.or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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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어는 누가 소유하고 있을까요? 사실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언어의 소유권과 관련된 주장이 가진 논리는 스스로 무너지는 듯합니다. 영어는 국제어이자 세계어이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의사소통을 위한 공통어(lingua franca)로서 사용하는 인구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 영국, 캐나다인 등이 일상에서 영어를 쓰기보다는 한국인, 중국인, 유럽 대다수 국가의 사람들이 소통과 무역 등을 위해 영어를 쓰는 일이 훨씬 비일비재하지요.

네이티브와 표준어 그리고 사회적 차별

한국어에서 서울말 중심주의, 외국어 특히 영어교육에서의 네이티브 중심주의는 은밀한 차별의 근원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네이티브처럼 말 못하는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느끼는 일입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소설 제목이 떠오르는 상황이죠.

‘Ugly pronunciation'(추한 발음)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걸 보면 제 말이 단순한 억측은 아닐 듯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언젠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외양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영어 원어민 발음을 가진 젊은이가 옆 자리의 친구와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A: “Are you talking about those Chinese people?.”
    (그 중국 사람들 이야기하는 거야?)

B: “Yeah, their pronunciation is, just, so, ugly.”
    (어. 발음이 그냥 너무 구려.)

모르는 사람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마음속으로 쏘아붙였죠.

‘왜 그리 못났냐. 니들 마음이 진짜 어글리하다.’

거의 모든 영어 학습자가 네이티브처럼 될 수 없는 사회문화적, 경제적, 생물학적 조건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이티브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요. 아니 한국어 원어민 화자로 살아가면서 다른 언어의 원어민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영어 실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몸에 새겨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네이티브에 대한 선망과 선동은 비교육적일 뿐 아니라 반과학적입니다.

누군가 소위 ‘네이티브의 발음과 언어능력’을 갖게 되었다면 그건 그들의 운이고, 사회경제적 자본의 힘입니다. 그 능력 가지고 좋은 일 하시면서 즐겁게 사시면 됩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그런 능력에 대해 충분한 물질적, 문화적 보상을 해주지 않던가요.

언어 학습의 목표는 네이티브 = 소통 실패는 학습자 탓? 

네이티브 이데올로기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소통의 부담을 오로지 학습자에게 전가하는 태도와 관행입니다. 네이티브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학습자의 책임이라는 믿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죠.

물론 상대가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라면 원활한 소통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의사소통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누구나 동의하고요.

그런데 영어의 경우에는 비원어민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높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죠.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소통 대화 토론

이런 생각은 커뮤니케이션 개론 첫 장에 나오는 소통의 근본 성격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소통은 언제나 쌍방향(two-way)이다.’

 

같은 모어를 쓰는 사람들 간의 소통이건, 원어민과 비원어민 간의 소통이건, 소통은 언제나 주고받음입니다. 일방향 소통은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소통이란 여러 사람들 간에 경험과 생각을 교환하는 행위니까요.

소통의 쌍방향성, 그리고 네이티브의 윤리

그렇다면 소통의 성공은 공동의 책임입니다. 한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어떤 상황이건 소통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양육자는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합니다. 외국어 교사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특정한 부분을 길게 발음하기도 하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네이티브의 윤리’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습자/비원어민으로서의 책임’이 아니라 ‘네이티브로서의 책임’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한국어가 서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심판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이거 틀렸군’, ‘저건 웃기네’, ‘저런 표현을 도대체 누가 쓰나?’, ‘어휴 2년 넘게 살았다면서 뭐 이따위야?’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외부 자극에 대해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말벌이 날아오면 피하고, 우스꽝스러운 발음을 들으면 ‘풋’하고 웃게 되지요. 저 또한 최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낭독한 오디오북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난다면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기계적 자극-반응의 노예가 되는 것 아닐까 합니다. 그런 한계를 인정하지만 언제나 그 한계에 저항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세 가지 실천을 생각해 봅니다.

  1. 우습고 어이없는 발음과 문법을 만날 때 심판자의 역할을 맡고 싶은 유혹을 제어하기
  2. 상대의 ‘부족한’ 실력을 원어민의 지식과 경험으로 보완하기
  3. ‘원어민 대 비원어민’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 대 인간’으로 평등하게 소통하려 노력하기
Everton Vil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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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어민은 죄인이 아닙니다. 네이티브는 벼슬이 아니고요. 그저 우리가 처한 삶의 다양한 양태일 뿐이죠. 괜히 쪼그라들 필요가 없습니다. 도울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우면 되고요. 계속 배우면서 조금씩 나아지면 것으로 족합니다. 결국 말을 배우는 것은 원어민 혹은 비원어민이 아니라, 깊은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함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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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성우
초대필자, 응용언어학자

성찰과 소통, 성장의 언어 교육을 꿈꾸는 리터러시 연구자입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라는 관점에서 영어교육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산문집 [어머니와 나]를 썼고, ‘영어논문쓰기 특강’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작성 기사 수 : 7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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