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어는 인풋? – 4. 외국어 습득엔 ‘순서’가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크라센의 제2언어습득 이론의 중심에는 인풋 가설이 있습니다. 사실 그의 이론 전체를 이 가설의 이름을 따서 부르곤 하지요. 지난 관련 연재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그는 인간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는 일정한 단계가 있다는 자연 순서 가설(Natural Order Hypothesis)을 주장하였는데요. 이에 따라 1단계, 2단계, 3단계 난이도의 언어 항목이 있다면 1단계에서 3단계로 점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야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 학습자가 특정 영역 (예: 의문문, 부정문 등의 문법 요소)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를 i로 표시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를 i+1으로 표시하지요. 여기에서 i+1은 학습자의 현재 수준보다 살짝 높은 난이도의 언어를 의미합니다. (그의 가설은 i와 i+1을 정하는 기준을 상세히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점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 두고두고 비판받는 지점입니다.)
학습자가 i에서 i+1로 넘어가는 메커니즘이 그의 ‘인풋 가설’의 핵심을 이룹니다. 그에 따르면 단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은 한 가지입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죠.
“i단계에서 i+1단계로 갈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i단계의 학습자가 i+1 단계의 인풋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이해’라 함은 언어를 습득하는 사람이 해당 인풋의 형태가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일을 말한다.”
이를 풀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학습자가 특정한 영역에서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늘은 관계대명사 what의 용법을 공부하자’와 같이 문법 요소를 명시적으로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수준보다 살짝 높은 수준의 문장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래의 문법번역식 교육에서 강조되던 문법을 쪼개어 차근차근 배우는 접근법과는 반대입니다. 여전히 많은 문법책들은 문법 항목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문법서들의 목차를 생각해 보면 이 방법이 어떤 건지 감이 잡히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크라센에 따르면 이런 방식은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i 수준에서 다음 단계인 i+1으로 가기 위한 적합한 방식은 문법의 구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의미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i+1에 다다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문법과 문장구조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의미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이 다음 단계로의 진입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지적입니다.
문법 학습과 의미 이해는 상반된 과정?
자연스럽게 많은 인풋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영어교육 전문가 혹은 학습자는 없을 겁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언어재료를 광범위하게 접하는 일이 나쁠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문법을 열심히 배우고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연습을 하는 게 헛된 일일까요? 이것은 그가 주장하는 의미의 파악을 통한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에 해로운 것일까요? 만약 i단계에서 i+1 단계로의 진입이 의미를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통이 있어야 특정 영역의 언어능력을 키울 수 있는 걸까요?
분석적 이해와 자연스러운 소통 경험을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
크라센이 비판한 형태중심의 교육 즉 문법교육으로 돌아와 봅시다. 문법은 말을 쪼개어 가르칩니다. 말을 그냥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게 아니라 분석하며 배우는 것이지요. 분석하며 배운다고 해서 ‘가정법’이나 ‘분사구문’ 같이 어려운 문법용어를 꼭 쓸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자리에 올 수 있는 대명사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거나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는 방식으로 문법을 배울 수도 있지요.
이번에는 발음과 읽기 영역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소리와 문자의 대응관계를 설명해 주는 파닉스(Phonics)를 배울 때 우리는 지적인 능력을 동원합니다. 계속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소리와 특정한 문자가 연결되는 다양한 방식을 의식적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다양한 소리를 접하는 방식의 학습이 있다면 소리와 문자가 대응하는 방식들을 분류하고 이를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의 학습도 있는 것이지요.
문장을 익힐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문장을 무조건 듣고 따라 하면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지만, 영어의 어순이나 관계대명사절에 대해 논리적 이해를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즉 언어를 경험하는 것과 분석하는 일은 결코 상반된 학습방법이 아닙니다. 특히 절대적인 언어경험이 부족한 외국어 학습 상황에서 지적이고 논리적인 이해는 인풋의 부족을 상쇄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입니다. 모국어를 배운다면 문법 공부나 소리 분석은 필요가 없죠. 그냥 사는 게 공부고 그런 게 쌓이다 보면 말이 되니까요. 하지만 외국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크라센의 인풋 가설은 ‘자연스러운 소통’이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우를 범합니다. 그 길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자연스러운 소통을 전가의 보도를 넘어 언어학습의 모든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형태에 대한 학습은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영어를 수십 년 공부하고도 관사와 전치사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학습자들에게 ‘의미를 주고받는 소통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관사와 전치사를 접하지 못해서, 경험하지 못해서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건 아닐 겁니다. 오히려 적절한 분석과 명확한 이해가 없이 의사소통만 강조해서 생기는 문제에 가깝겠지요.
문법 학습과 의미를 위한 소통의 상생모델을 향하여
다양한 학습방법과 소통의 경험이 충돌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학습과 소통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학습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법을 배웠다면 써먹을 수 있게 하고, 이해가 바로바로 안 되는 구문이 있다면 분석해 보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분석적 이해와 자연스러운 의미교환을 대척점에 놓을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로 파악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어학습의 열쇠는 ‘다량의 인풋이냐 문법이냐’와 같은 이분법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적성에 맞게 이 둘의 상생관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형태 없는 의미가 있을 리 없고, 의미 없는 형태는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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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Claire Kramsch 선생님 수업에서 들은 이 한 마디가 여전히 제 심장에 남아있습니다. 너와 나를 가르고, 마음에 상처를 내며, 목을 뻣뻣이 세우는 영어가 아니라 성찰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도록 만드는 영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 ²
- 외국어를 배우는 두 가지 목적
- 영어는 인풋? – 1. 자막, 넣고 볼까 빼고 볼까
- 영어는 인풋? – 2. 크라센, 인풋 이론을 체계화하다
- 영어는 인풋? – 3. ‘학습’하지 말고 ‘습득’하라
- 필사, 영작문에 도움이 되나요?
- 영어는 인풋? – 4. 외국어 습득엔 ‘순서’가 있다?
- 영어 이름, 꼭 따로 필요할까?
- 한국식 영어 발음, 꼭 고쳐야 할까요?
- 영어교육과 홍익인간의 관계
- 쓰기의 마법: 생각과 글쓰기의 관계
- 언어는 습득하는 게 아니라고?
- 네이티브 이데올로기 그리고 네이티브의 윤리
- 영어는 인풋? – 5. 인풋 가설의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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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크라센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맞습니다. 원서 읽기로 인풋만 많이 하면 저절로 문법이 깨우쳐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