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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조마카: 저 조이(Zoey)라고 불러주시면 안 돼요?

엄마: 왜?

우조마카: 우조마카(‘Uzomaka’)를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요.

엄마: 걔네들이 차이콥스키(Tchaikovsky)나 도스토옙스키(Dostoievsky), 미켈란젤로(Michelangelo) 같은 이름을 발음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당연히 우조마카(Uzomaka) 발음도 배울 수 있어.

위에 소개한 우조마카의 이름 이야기가 아래 동영상에 담겨 있다.

YouTube 동영상

한번도 영어 이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 자신에 관해 대단한 자긍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언어와 정체성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 이름은 내 이름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이 발음을 조금 틀려도 별 상관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꽤 많은 영어권 화자들은 나를 ‘씅우’에 가깝게 불렀다(필자의 이름은 ‘김성우’ – 편집자). 발음을 고쳐주다가 잘 안되어서 ‘sing-sang-sung’에서 마지막 ‘sung’에 가까워!라고 억지 설명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친구는 계속 나를 “씅우”로 불렀다. (한숨)

영어 원어민들과 자주 만나야 하는 상황에 있는 아이의 입장에서 우조마카(Uzomaka) 어머니의 견해를 100% 수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친구들이나 교사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그때마다 ‘왜 내 이름을 제대로 못 부르지?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하나? 내 이름이 너무 우습게 들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소통 상황에서 상당한 심리적인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음을 잘못하는 것은 그 이름을 발화하는 사람의 노력이나 상대를 대하는 태도, 언어 간 거리 등의 문제이지, 내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영어 모국어 화자가 발음하기 어려우니 당연히 영어 이름이 있어야 한다거나, 영어 유치원에서는 반드시 영어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의 이름, 나아가 서로 다른 언어의 권력관계에 대한 선입견을 은연 중에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chuttersnap on Unsplash)
(출처: chuttersnap on Unsplash)

언젠가 수업 중에 영어 이름 이야기가 나와서 한 학생에게 물었다.

“혹시 영어 이름이 있나요?” 

“네. 제니퍼(Jennifer)요.”

“아, 제니퍼(Jennifer).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아무 생각이 없는데요?”

“왜요? ㅎㅎㅎ”

“그냥 처음에 영어유치원 갔는데 선생님이  제니퍼(Jennifer)가 어떠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거든요.”

“아아 @%^#$@!”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만나는 문화 간 소통(crosscultural communication) 상황에서 요구되는 의사소통능력의 관점에서도 영어 이름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급속히 증가하는 다문화적 경험 속에서 발음이나 어휘, 문법 등의 언어적 요인으로 종종 충돌하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상호 협상(mutual negotiation)이지 일방적인 적응(unilateral adjustment)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름부터 부르기 쉽게 하자’는 생각은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호칭에서부터 협상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일방적인 말은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의사소통은 언제나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출처: Kawtar CHERKAOUI on Unsplash)
일방적인 말은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의사소통은 언제나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출처: Kawtar CHERKAOUI on Unsplash)

특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때문에 생겨나는 영어 이름에 대한 욕망이나 사용 행태를 싸잡아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은밀한 힘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쉽게 한국 이름 하나씩 지어주세요’라고 요청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쉽게 “너 영어 이름 뭘로 할래?”라고 묻는 부모나 교사들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영어 이름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적당한 이름을 검색해 보고, 이름의 발음과 느낌, 숨어있는 어원 등에 대해 자녀 혹은 학생과 이야기하는 과정을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겠다.[footnote]¶ 영어로 된 아이 이름을 검색하고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사이트 ‘babynames.com’ [/footnote]모국어 이름이 주어진 것이라면 외국어 이름은 신중하게 선택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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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영어공부

언젠가 Claire Kramsch 선생님 수업에서 들은 이 한 마디가 여전히 제 심장에 남아있습니다. 너와 나를 가르고, 마음에 상처를 내며, 목을 뻣뻣이 세우는 영어가 아니라 성찰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도록 만드는 영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 ²

  1. 외국어를 배우는 두 가지 목적
  2. 영어는 인풋? – 1. 자막, 넣고 볼까 빼고 볼까 
  3. 영어는 인풋? – 2. 크라센, 인풋 이론을 체계화하다
  4. 영어는 인풋? – 3. ‘학습’하지 말고 ‘습득’하라
  5. 필사, 영작문에 도움이 되나요?
  6. 영어는 인풋? – 4. 외국어 습득엔 ‘순서’가 있다?
  7. 영어 이름, 꼭 따로 필요할까?
  8. 한국식 영어 발음, 꼭 고쳐야 할까요?
  9. 영어교육과 홍익인간의 관계
  10. 쓰기의 마법: 생각과 글쓰기의 관계
  11. 언어는 습득하는 게 아니라고?
  12. 네이티브 이데올로기 그리고 네이티브의 윤리
  13. 영어는 인풋? – 5. 인풋 가설의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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