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의 철학과 지향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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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수업에서의 영어교육 금지에 관한 정책이 발표된 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교육과 공교육의 관계, 영어교육 시작 시기에 대한 태도,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영어교육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등과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로 곧 치뤄질 교육감 선거에서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어 구사가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가 된 우리사회에서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지 효율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가 빠지고 ‘어떻게’만 남은 앙상한 논쟁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왜 국가의 책임하에 실행되는 공교육이 왜 영어교육에 관심을 갖는지 짚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들로 시작해 보죠.
- 한국 영어교육의 공식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 정부는 왜 (이런 저런 한계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영어교육을 어느 정도 책임지려 하는 걸까요?
- 우리사회와 영어교육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요?
영어교육, 홍익인간, 인격도야, 그리고 인간다운 삶
이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영어교육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등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현 영어교육 정책에 대해 다면적인 평가와 비판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그 범위를 좁혀 국가 교육과정의 관점에서 이 질문에 답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교육 당국 자신이 밝힌 철학과 지향을 살펴보는 것이죠. 이를 위해 교육과정을 펼쳐 총론 첫머리의 “추구하는 인간상”을 그대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질문을 연이어 던져 봅니다. 삐딱한 말투가 아니라 진지한 마음으로 던지는 질문들입니다.
- 우리 영어교육은 홍익인간을 가르치고 있나요?
- 영어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인격 도야의 기회를 주나요?
- 영어교육은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나요?
- 영어를 배우는 일은 민주시민의 자질 배양에 도움이 되나요?
- 학생들은 영어를 배우면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해 가나요?
- 지금 우리의 영어교육은 민주국가 건설과 인류공영을 위한 사람을 키워내나요?
질문을 던지다 보니 다른 사회제도가 종종 그렇듯 영어과 교육과정의 목표 또한 유명무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느 국가, 어느 도시이든 교육과정의 이상과 실제 사이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영어교육의 상황은 간극이 아니라 ‘무시’라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홍익인간의 정신이 영어교육의 목표로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와 시민의 요구에 따라 교육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이 그저 입발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교육과정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개선하고, 그렇게 변화한 교육과정의 철학은 함부로 무시되어선 안되죠.
영어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역량들
자 그 다음으로는 2015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학습자 역량을 살펴보겠습니다.
위에서 볼 수있듯이 새로운 교육과정은 의사소통, 공동체, 심미적 감성, 지식정보처리, 창의융합 사고, 자기관리 역량을 강조합니다. 역량을 중심으로 한 교육목표는 과정중심 평가와 함께 2015년 교육과정의 기둥을 이루고 있죠.
교육과정은 영어과의 세부 항목, 즉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기능이나 어휘교수와 이들 역량이 어떻게 긴밀히 연결될지 기술하지 않습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 주체는 물론 교사들입니다. 학생의 역할도 있지만,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건 교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은 관련 연수과정을 통해 역량중심 교육, 과정중심 평가, 교육과정 재구성 등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한편 교육과정과 영어교사들을 잇는 가장 중요한 매개는 교과서와 교사용 지침서입니다. 이들을 만드는 출판사와 집필진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 기준을 면밀히 검토하여 교과서의 내용과 구조를 결정합니다. 각급 학교의 영어과 교사들은 여러 교과서 중 하나를 선택하여 수업과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즉, 국가교육과정은 출판사와 집필진을 매개로 교과서로 구성되고, 이는 다시 교사들의 전문성을 통해 해석되고 구체화되어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교육과정의 철학과 지향은 서서히 탈각되고, 각종 시험 대비가 최상의 가치로 자리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3으로 갈수록 이 경향은 더더욱 심해지죠.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영어교육의 목표가 현재와 같이 도구적 의사소통과 시험 대비가 아니라 나 자신, 그리고 타인,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라면 어떨까요. 평화와 인권, 공감과 연대라면요. 정말 홍익인간을 이루기 위한 교육이라면 영어교육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분명 많은 선생님이 그런 수업을 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학생이 영어를 배울수록 교육과정의 목표와 멀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안녕’보다 아름다운 “아뇽”을 기억하며
언젠가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친구 하나가 저와 헤어지면서 던진 “아뇽” 한 마디(‘안녕’의 발음이 서툴러 “아뇽”이 되었죠)가 몇 년이 지나도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것은, 그가 한국말을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한국어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따스하게 만져주었기 때문이었죠.
만약 언어가 도구여야 한다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인간과 역사를,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시험과목이라고 해서 이런 가치를 방기할 권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성찰과 소통, 성장의 영어교육을 꿈꾸는 바보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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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Claire Kramsch 선생님 수업에서 들은 이 한 마디가 여전히 제 심장에 남아있습니다. 너와 나를 가르고, 마음에 상처를 내며, 목을 뻣뻣이 세우는 영어가 아니라 성찰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도록 만드는 영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 ²
- 외국어를 배우는 두 가지 목적
- 영어는 인풋? – 1. 자막, 넣고 볼까 빼고 볼까
- 영어는 인풋? – 2. 크라센, 인풋 이론을 체계화하다
- 영어는 인풋? – 3. ‘학습’하지 말고 ‘습득’하라
- 필사, 영작문에 도움이 되나요?
- 영어는 인풋? – 4. 외국어 습득엔 ‘순서’가 있다?
- 영어 이름, 꼭 따로 필요할까?
- 한국식 영어 발음, 꼭 고쳐야 할까요?
- 영어교육과 홍익인간의 관계
- 쓰기의 마법: 생각과 글쓰기의 관계
- 언어는 습득하는 게 아니라고?
- 네이티브 이데올로기 그리고 네이티브의 윤리
- 영어는 인풋? – 5. 인풋 가설의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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