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배울 때 우리는 보통 ‘문자 그대로의 의미'(literal meaning)와 ‘비유적 의미'(figurative meaning)를 구분합니다.
이 둘 중에서 의미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문자적 의미이며 은유나 직유, 환유 등의 비유적 표현은 말글을 꾸미는 수사적 장치라고 배우지요. 그러나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문자 그대로의 언어’가 우선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비유적인 것’이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언어는 기본적으로 비유적(metaphorical)입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영어교육의 관점에서 인지언어학의 주요 분야 중 하나인 인지 메타포(conceptual metaphor)에 대한 맛보기를 시도해 보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맛보기’라는 표현도 비유적이네요.)
A. 우리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김광석의 노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먼저 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처음 부분을 살펴봅시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이 가사, 참 아름답습니다. 마음이 아려 오지요. 한글로 되어 있어 감상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바로바로 의미가 전달됩니다. 하지만 우린 정말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술술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가사라도 낯설게 읽기를 통해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이 특정 문화를 이해하려고 할 때 ‘화성인이 이 상황을 접했다면 어떤 요소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까?’와 같은 사고 실험을 하듯, 모국어 화자가 가진 텍스트에 대한 직관과 지식을 잠시 숨겨보는 것이지요.
B. 외국인이 김광석 노래 가사를 이해하는 과정
예를 들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위 가사를 이해하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의 흐름을 엿볼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 한국어에서 “하루”라는 시간은 (화자에게서) “멀어져” 갈 수 있구나. 마치 입안의 담배 연기가 대기로 흩어져 버리듯이.
- 전에 배운 “멀어지다”는 사람이나 자동차 같은 게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거였는데, 시간에도 쓸 수 있는 거였네.
- 기억이 “작기만 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뇌의 크기가 작다는 뜻은 아닐텐데. 채운다는 걸 보니, 기억을 일종의 용기 혹은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 다음 가사를 보니 기억만 채우고 비우는 게 아니라 “가슴”도 “비어 가는”구나. 하긴 나의 모국어에서도 비슷한 표현들이 있는 것 같아…
어떤 언어를 안다는 것
위의 사고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언어를 안다는 건 단순히 단어를 문법적으로 연결해서 정확히 말하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어에 스며들어 있는 비유적 표현과 그 개념적 의미를 이해함과 동시에 자유자재로 비유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 언어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유적인 표현은 언어에서 예외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본질적 특성에 가깝습니다.
이런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 지성사를 관통해 왔던 메타포에 대한 관점을 깨뜨린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마크 존슨(Mark Johnson)의 저작 [Metaphors We Live By](한국에는 [삶으로서의 은유]로 번역됨)에 상세히 소개됩니다. 이 저서를 시작으로 80년대 ‘인지 메타포 이론'(conceptual metaphor theory)이 형성되고 이후 인지언어학의 가장 중요한 분과로 자리잡게 됩니다.
영어 은유의 쓰임 (예시 1.)
자, 그렇다면 다음 문장들을 통해 영어 은유의 구체적인 쓰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Lakoff & Johnson, 1981)
1. They are at a crossroads in their relationship. 그들은 관계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2. This relationship isn’t going anywhere. 그들의 관계는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 (즉,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다. 교착 상태이다.)
3. They’re in a dead-end relationship. 그들은 관계의 막다른 길에 있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관계라는 개념은 종종 관찰 가능한 언어로 기술됩니다. 즉 추상적 개념이 경험 가능한 구체적 상황에 빗대어 설명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위의 세 문장은 “관계의 발전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갈림길에 놓이면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고 (1번 문장), 관계가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한다면 관계의 발전이 없는 것이며 (2번 문장), 막다른 곳에 이르면 전진은 불가능하기에 관계도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3번 문장).
논쟁과 관련한 전쟁 비유들 (예시 2.)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논쟁은 전쟁에 자주 비유됩니다. 예를 들어 “논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다”, “논쟁에서 상대방을 까부수다” 혹은 “논쟁에서 승리하다” 등의 표현은 모두 논쟁을 일종의 전투나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학파간 ‘전쟁’이 있고, 정치 담론의 대립 또한 자주 전쟁에 비유됩니다.
영어에서도 “He attacked my idea”, “I defended my position”, “I won the argument” 등의 표현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이해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논쟁은 꼭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전쟁이어야 하는 걸까요? 만약 상상력을 발휘해서 논쟁을 춤추는 행위에 비유한다면 어떤 표현이 가능하게 될까요? “그들의 논쟁은 스텝이 잘 맞지 않았다”거나 “이번 논쟁은 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라는 표현이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상력은 논쟁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할 수 있겠지요.
은유는 언어의 핵심 메커니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관계의 발전은 물리적 전진이다” 혹은 “논쟁은 전쟁이다”는 단순히 언어적 명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사고방식, 즉 인지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인지언어학자들은 은유가 언어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루며, 따라서 한국어와 영어와 같은 특정 언어뿐 아니라 모든 언어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어떤 문화의 언어인가에 따라서 어떤 은유를 사용하는 지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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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Lakoff, G. & Johnson, M. (2003). Metaphors we live by. (2n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