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용 칼럼] 혁신이 차별과 배제를 불러와선 안 된다. ‘포용적 혁신’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해야 한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인 필자가 직접 겪은 ‘한컴독스 AI’의 접근성 문제에 관한 제언. (⌚6분)

“문서가 열리지 않아요”

얼마 전, 한 단체에서 이메일로 한글문서(HWP) 파일을 보내왔다. 휴대폰으로 열어보려 했지만, 별도의 뷰어 앱을 설치하지 않으면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앱을 새로 깔기도 번거로워 결국 PC에서 확인해야 했는데, 웹 브라우저에서는 바로 열리지 않아 다운로드를 거쳐 로컬 프로그램으로 실행해야만 했다.

비슷한 상황은 내가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한글문서를 보내야 하는 경우에도 종종 발생한다. 한 번은 보도자료를 발송하면서 한글과컴퓨터의 개방형 포맷인 hwpx 파일로 보냈더니, 한 기자로부터 “문서가 열리지 않으니 hwp로 다시 보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결국에는 hwp 형식으로 다시 변환해 보내야 했다. 이제는 아예 애초부터 hwp만 쓰는 습관이 굳어져 버렸다. 이렇듯 한글문서가 모바일·PC·웹 등 다양한 환경에서 호환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여러모로 시간이 허비된다.

“어디서나 펼쳐지는 오피스세상”이지만, 일단 뷰어 프로그램은 설치한 뒤에 로컬에서 다운받아 보세요?

문서 작성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문서를 작성·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지식과 정보가 쌓인다. 문서 작성은 크게 두 가지 과정이 결합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1. 글쓰기: 사고를 텍스트로 옮기는 분석적·창조적 행위
  2. 구조화와 포매팅: 글을 목적과 장르에 맞게 배열하는 기술적 행위

이러한 문서 작성은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해 왔지만,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그 양상도 급격히 변해 왔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출판’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손쉽게 문서 작성과 편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웹의 출현으로 문서를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공동 편집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AI 기술이 문서 작성의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있다. 예컨대, AI가 초안을 대신 써 주거나 문서를 자동으로 요약·분석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문서 작성의 문턱을 낮추고 현대 사회가 지금의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제는 이 모든 기술이 각기 다른 시점에 다른 주체들에 의해 발전했기 때문에 파일 포맷과 접근성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장벽이 되었고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문서의 호환성과 접근성’이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

문서 작성, 접근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문서 작성 능력은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커리어 형성에 직결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서비스나 인프라를 얼마나 원활히 누릴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당연히 문서 작성에 대한 접근성이 차단된 개인에게는 그만큼 적은 기회가 주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시각장애인 교사로서, 이런 문서 접근성의 부재가 개인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절감한다. 예컨대 학교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 원안 서식이 한글문서 형식으로 제공되는데, 온통 표로 구성되어 있어 스크린 리더가 구조를 읽어내기 어렵다. 그 결과 다른 문서 편집기(메모장, 구글문서 등)로 우회 작성한 뒤 복사·붙여넣기 하는 식으로 업무 효율이 크게 저하된다.

한컴독스 AI 출시 소식은 시각장애인 교사인 나에겐 그야말로 반가운 ‘뉴스’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던 중 2024년 9월, 한글과컴퓨터가 웹 기반 편집기인 한컴독스 AI를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유료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이용해 보니 스크린 리더가 본문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메뉴를 탐색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웹이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기본적인 접근성 표준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결국, 나는 이러한 부분을 시급히 시정해 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공공부문과 교육 현장에서 한글문서가 사실상 표준처럼 쓰이는 현실에서, 웹 환경으로 전환하려 해도 여전히 장애인을 배제하는 방식이라면 더 큰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글과컴퓨터 세 차례 답변 (“정확한 안내 어렵다”는 최종 답변까지 한 달)

1. 한글과컴퓨터 [Web발신] 안녕하세요 한글과컴퓨터입니다. 부재로 문자 안내드립니다. 스크린리더(화면낭독 프로그램)은 한글에서 완벽하게 호환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문의하신 접근성 확인 등등은 담당 부서 이관하여 확인이 필요합니다. 한글에서 해당 프로그램 사용시 발생하는 오류 메시지 동작 오류가 있다면 고객센터 재문의 하시어 당사 공용메일로 동작 오류 화면 사진 찍으시어 송부해주시면 담당 부서로 확인 가능합니다. 확인이 필요하시다면 재문의 부탁드립니다. (2024.09.12.)

2. 한글과컴퓨터 [Web발신] 안녕하세요 한글과컴퓨터입니다. 담당 부서 답변 안내입니다. 엑스비전 테크놀로지와 협업한 제품은 웹한글 기안기입니다. 웹한글 기안기와 웹한글은 서로 다른 제품입니다. 웹한글은 웹접근성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향후 웹접근성 기능이 탑재될 예정이나 그 시기와 범위가 현재 미확정입니다. (2024.09.26.)

3. 한글과컴퓨터 [Web발신] 안녕하세요 한글과컴퓨터입니다. 담당 부서 연락 요청으로 전달하였으나 전화 업무를 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연락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객님께서 문의주신 사항 관련하여 개발 부서 전달된 이후 향후 개발 검토 예정이나 기간이 확정되지 않아 정확하게 안내드리기 어렵습니다. 추후 안내드릴 사항이나 업데이트 관련 사항이 있다면 공지 혹은 안내드릴 예정이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10.11.)

그럼에도 한컴독스의 잠재력을 기대하는 이유

내가 한컴독스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기대를 거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 플랫폼이 제대로 개선된다면 큰 변화를 이끌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웹 기반 문서 편집기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1. 운영체제나 기기에 상관없이 실시간 협업이 가능하다.
  2. 폐쇄적 포맷(hwp/hwpx)을 벗어나, PDF나 HTML 등 개방형 포맷으로 손쉽게 변환할 수 있다면 호환성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다.
  3. 구글문서나 MS 365처럼 해외 서비스를 쓰기 어려운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한국형 솔루션으로 도입할 경우, 효율성과 보안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특히 접근성이 제대로 확보된다면, 장애인·비장애인을 불문하고 동일한 웹 환경에서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다. 만약 한컴독스가 직관적 UI와 실시간 협업까지 갖추어 한글문서의 기존 문제를 뛰어넘는다면, 공공부문 문서 작성 문화 역시 자연스럽게 혁신될 수 있을 것이다.

웹 기반 혁신과 AI 통합이 가져올 미래

더 나아가, 웹 기반 편집은 이미 협업 면에서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문서 작성의 방식이 또 한 번 혁신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있다.

  1. 자동 초안 작성이나 맞춤 요약: 사용자 지시에 따라 AI가 문서 작업을 대폭 자동화하고 핵심 요지를 명료하게 요약해 줄 수 있다.
  2. 웹 검색 연동: AI가 방대한 웹 데이터베이스를 실시간으로 참조해 문서를 자동 업데이트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즉시 보완해 줄 수 있다.
  3. 보조기술 지원: 스크린 리더, 음성 인식 기술 등이 AI와 결합하면, 복잡한 구조의 표·차트나 인포그래픽이 포함된 문서를 해석하거나 작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웹과 AI가 결합하면 문서 작성은 단순한 오피스 작업을 넘어, 지식 생산과 협업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방적 포맷과 접근성이 우선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한컴독스가 이 부분을 잘 구현한다면, 한글문서가 사실상 표준이었던 공공부문도 빠르게 웹+AI 기반 문서 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접근성'(접근권)은 장애인의 특권이나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다.

더 포용적인 문서 생태계를 향해

문서의 호환성·접근성 부족은 나와 같은 장애인 사용자는 줄곧 경험해 온 문제이지만,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한글과컴퓨터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웹 기반 편집과 AI 연계를 활발히 도입하고 있지만, 우선적으로 개방성과 접근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으면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전체가 기술 발전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내가 한글과컴퓨터에 ‘포용적 혁신’을 기대하는 이유다.

만약 한글과컴퓨터가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웹 접근성·개방형 구조·AI 결합까지 충실히 구현해 낸다면, 한국 사회의 문서 작성 문화는 훨씬 효율적이고 개방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 장애인 교사인 내가 겪는 불편을 개별적 사례가 아니라 더 나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대표적 사례로 봐주길 바란다. 포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혁신이 결국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한컴독스가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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