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생산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전 국민이 매일 1개씩 마스크를 소비할 수 있을 정도의 생산능력을 갖추는 건 명백히 불가능하다. 그랬다간 평시에는 공급이 수요를 아득히 초월해버릴 테니까.
‘최선’은 없다. 매일 한 개씩 전 국민에게 마스크를 나눠줄 수 있다면 최선이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 가정이다. 이건 누가 잘못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최선’이 그저 망상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마스크, 공포만 부추기는 언론
언론은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 명백히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최선’을 해내라고 정부를 힐난하면서, 오히려 마스크 부족에 대한 대중의 공포만을 부추기고 있다. 그 공포가 마스크 품귀 현상을 더욱 심하게 만들고, 그럼 언론은 더 신이 나서 정부를 힐난한다. 언론은 공포를 파는 차원을 넘어, 공포가 끊임없이 공포를 재생산하는, 그야말로 공포의 팬데믹을 팔고 있다.
‘비판’이 언론의 본령임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진짜 말 그대로, ‘대책 없는 비판’이 언론의 본령이 되어선 안 된다. 언론이 펜대를 휘둘러 ‘대책을 없애버리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대책을 만들라곤 않을테니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나.
갑작스런 감염병 사태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공적 분배를 최대한 늘리고,
- 의료진 및 취약 계층에게 우선 배분하고,
- 이를 위해 마스크 사용 지침을 위험군 중심으로 변경하며,
- 덜 위험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겐 면 마스크나 일회용 마스크의 일광 소독 후 재사용을 권하는 것.
결국 이런 것들이다. 조금 늦었다고 평가할 순 있어도, 결국 지금 당국이 하고 있는 일이 다 이런 일들이다.
그런데 지금 언론이 하고 있는 일은? ‘마스크 없다! 정부 뭐하냐? 지침은 왜 바꾸냐? 왜 마스크 못쓰게 하느냐?’면서 비위험군들까지 덩달아 마스크 사재기에 나서게 하고 있다. 자원은 한정적이고, 위기 상황에선 그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비판’이 본령이라는 데 매몰되어 그저 비판만 하면 그게 곧 언론인의 양심인 양 자존감만 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부 말바꾸기? MBC 주장은 사실일까?
공중파 뉴스조차도 이런 대열에 편승했다. MBC는 지난 3일, ‘마스크 안 써도 된다? … 환자 늘자 느슨해진 기준’이란 제목으로 리포트를 방송했다.
리포트의 요지는 정부의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마스크 착용 지침’이 계속 바뀌고 있단 것이다. MBC가 말하길,
- 처음에는 KF94 마스크를 쓸 것을 권하더니,
- 환자가 좀 늘자 나중엔 KF80을 권하고,
- 환자가 급증하자 이젠 건강한 일반인은 굳이 마스크를 쓸 필요도 없다고 정부가 말을 바꿨다고 한다.
MBC 리포트는 진실한 사실일까? 해당 리포트의 신뢰도를 평가해보자. 우선 결론을 말하면,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지침은 크게 변한 적이 없다.
1. KF94 이상 마스크를 권했다?
[adsense]MBC는 1월 29일 당시, 식약처 관계자가 “KF94 이상 마스크를 권했다”며 이를 ‘기준이 느슨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말일까? 당시 질본 브리핑을 살펴보자.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 통상적으로 의료인이 사용하는 KF94 마스크가 많은 부분을 막을 수 있다.”
당시 식약처의 입장도 살펴보자.
“KF94, KF99 등급의 마스크가 바람직하다. 특히 병원 의료진 및 관계자는 해당 등급의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당시 KF94 이상의 등급을 권고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와 ‘병원 의료진 및 관계자’를 위한 지침이었다. 당시 나온 질본의 공식 보도자료를 봐도 마찬가지다.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와 ‘호흡기 질환자 진료시’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건 지금도 당연히 마찬가지로 권장되는 부분이다.
2. 식약처 관계자 인터뷰의 ‘진짜’ 내용
그럼 “KF94 이상 마스크를 권한다”는 1월 29일자 식약처 관계자의 인터뷰는 어디서 나왔을까? 자사, 그러니까 MBC의 1월 29일 자 기사에서 나온다. 그때 인터뷰에서 식약처 관계자가 KF94 이상 마스크를 권장하긴 했다. 그런데 기사를 조금 더 보면, 이 기사는 정작 이렇게 이어진다.
“사람들과 그다지 많이 접촉하지도 않는다면 굳이 고성능의 비싼 마스크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식약처 관계자의 나머지 발언도 이어진다.
“차단 성능만 가지고 저희 마스크 성능을 입증해서 허가하고 있지만, 실제 나의 몸의 맞는 호흡량이나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적정한 형태의 마스크를 선택하는 게 중요할 거 같습니다.”
MBC 자사의 1월 29일 보도조차도 요지는 ‘KF94만 쓰라’는 게 아니었다. KF94가 감염 차단에는 가장 좋지만, 상황에 따라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3. 정은경 중대본 본부장의 말
2월 4일에도 마찬가지다. MBC는 당시 정은경 본부장이 “일회용 마스크는 재사용하지 말라”고 말했다며, 이 또한 ‘기준이 느슨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때도 마찬가지다. 질본 공식 브리핑에서 정은경 본부장은 “기침 등의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 “의료기관 방문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하고 있을 뿐이다.
4. 김강립 중수본 부본부장의 말
MBC는 2월 6일 김강립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의 발언을 인용해, 또 지침이 느슨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당시 김강립 부본부장의 발언은 이와 같다.
“손 씻기가 중요합니다. 씻지 않은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지 마십시오. 일반 국민들의 경우에는 굳이 KF94, KF99와 같은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의료진에게 권장되는 마스크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KF80과 같은 보건용 마스크나 방한용 마스크로도 충분히 감염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역시 지침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 당국은 계속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경우’와 ‘호흡기 환자를 진료할 때’ KF94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고해왔을 뿐, 일상생활에서 늘 KF94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한 적이 없다.
5. 권준욱 중대본 부본부장의 말
그리고 MBC는, 3월 3일에는 “급기야 건강한 일반인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지침이 또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 MBC가 인용한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발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반시민들의 경우에는 마스크 착용보다는 2m 거리 이내에서 15분 이상의 접촉을 피하는 ‘거리두기’가 훨씬 중요하다. 마스크 겉면을 만지면 손으로 본인의 눈 ·코 ·입의 점막을 통해서 바이러스를 고스란히 전파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손 씻기가 최우선이다.”
이거 위에서 봤던 얘기 아닌가? 맞다. 2월 6일 김강립 부본부장이 거의 똑같은 얘기를 했었다. “손 씻기가 중요하다. 일반 국민들은 굳이 보건용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이 얘기를 순서만 조금 달리 한 것 뿐이다.
6. 마스크 재사용 지침
[adsense]마스크 재사용에 대한 지침도 살펴보자. MBC는 ‘마스크 재사용도 이제는 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정부 지침을 힐난한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재사용 지침을 내리면서,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와 마스크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은 현 상황에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 밝혔다.
또 마냥 재사용하라는 것도 아니다. “일시적으로 사용한 경우 동일인에 한해 재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용한 후에는 환기가 잘 되는 깨끗한 장소에 걸어 충분히 건조한 후 재사용해야 한다”며 사용 지침을 두었다.
사실, 질본은 오히려 마스크 권장 대상을 더 늘렸다. 질본은 최근에는 “감염 위험성이 있는 경우, 고위험군의 경우”에 마스크 작용을 권하고 있다.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경우, 호흡기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에 비해 대상이 넓어진 것이다. 이처럼 마스크 권장 대상을 늘린 건 ‘신천지 대량 감염’ 이후 커진 지역사회 감염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혼잡하지 않은 야외, 환기가 잘되는 개별공간에선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지 않으며”, 건강한 사람이 KF94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코로나19 감염 의심자를 돌보는 경우” 정도로 한정하고 있다. 보건용 마스크를 권하는 경우도 “건강취약계층, 기저질환자 등이 환기가 안 되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경우”로 한정했다.
사재기와 공포만 조장하는 언론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질본의 공식 지침이 큰 맥락에서 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호흡기 질환자, 의료인,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는 경우 보건용 마스크를 권장한다. 일반인은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할 필요는 없으며, 손씻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 이게 공식 지침이었다. 질본은 오히려 지역 사회 감염 우려가 늘어나면서 ‘기저질환자’, ‘건강취약계층’ 등으로 마스크 착용 대상을 늘렸다.
이런 공식 지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다들 마스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마스크 착용보다는 손씻기가 가장 중요한 수칙임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가 ‘마스크 착용’에 중점을 맞췄던 건 물론이고, 지하철 역사 등에서 쉬이 만나볼 수 있는 안내방송, 포스터 등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유독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고, 이 ‘마스크 사재기’ 행렬이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언론이라면 조금이라도 거기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해야지,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는 역할을 해선 안 되지 않나. MBC는 근거 없이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고, 정부 당국의 ‘마스크 지침’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포장해 ‘마스크 사재기’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이런 기사가 나오면 나올수록 마스크 품귀 현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오히려 기저질환자나 취약계층에게 돌아가야 할 마스크가 딱히 마스크가 필요하지도 않은 건강한 사람들의 사재기에 빼앗기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 누구나 마스크를 쓰고 싶어 한다. 어쨌든,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고, 대중교통에서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괜히 불안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마스크 생산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 이상, 이 한정된 자원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분배될 수 있어야 한다. 공포 심리가 확산되며 환자들, 고위험자들, 기저질환자들, 노인들, 일선 의료인들에게 필요한 마스크가 부족해지고 있다.
흔들리는 건 정부 당국의 공식 지침인가? 아니면 그걸 잡고 흔드는 언론 그 자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