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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308화] 최말자 님 재심 무죄 판결, 젠더폭력에 대한 정당방위 적극 인정 계기되길. (차혜령/변호사) (⌚8분)

🌷 여성의 날(3/8) 3월에 돌아보는 판결

성폭행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범죄자가 되어야 했던 열아홉 살 최말자 님. 6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법원은 그 저항이 ‘정당방위’였음을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번 재심 판결은 단순히 과거의 오판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권이 무엇인지 사법부가 뒤늦게 내놓은 답입니다.

여성의날(3/8)이 있는 3월을 맞아 차혜령 변호사(법무법인 혜석)는 55년 만에 열린 재심까지의 긴 여정을 되짚으며, 이번 판결이 오늘날 여전히 사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젠더폭력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법리적 토대와 보호막이 되어야 하는지 분석합니다.

최말자 씨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990, 김유진). 봉준호 감독이 뽑은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

내가 비평을 의뢰받은 판결은 부산지방법원 2025년 9월 10일 선고 2020재고합5 판결이다. 총 열 장의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1964년 5월 6일부터 있었던 일이니 61년 4개월 4일간에 걸친 일이다. 1부터 20까지 번호를 붙여서 적어 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나’에 자신을 이입하여 읽어보시기 바란다.

재심까지 55년

  1. 오늘 처음 만난 A라는 사람이 나에게 강제로 키스하려고 해서 나는 내 입속으로 들어온 혀를 깨물었다.
  2. A의 혀가 1.5cm 정도 끊어졌다.
  3. 며칠 후 A는 열 명 넘는 친구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 혀가 끊어진 걸 항의하면서 식칼을 들고 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4. A는 나를 중상해로 고소하였다. 
  5. 나도 A를 강간미수, 특수주거칩입, 협박으로 고소하였다.
  6. 경찰은 내가 정당방위 했다고 무혐의로 판단하고, A의 강간미수, 특수주거침입, 협박 혐의를 인정하여 검찰에 송치하였다.
  7. 검사는 나를 소환하여 조사한 그날 바로 나를 구속하였고, 50여 일의 구속기간 동안 4회 이상 피의자신문을 하였다.
  8. 검사가 조사하면서 나에게 ‘A를 불구로 만들었다. 병신을 만들었으니,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면서 욕설하였다.
  9. 검사는 나를 중상해로 기소하였다.
  10. 법원 재판장은 재판 도중 나의 성경험 유무 감정을 명하였고, 공개재판에서 감정결과가 공개되어 언론에 보도되었다.
  11. 법원 재판장은 재판 도중 나에게 A와 결혼하라고 하였다.
  12. 법원은 나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고,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
  13. 판결이 확정된 후 55년 4개월이 지나서 나는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 청구를 하였다.
  14. 재심청구를 받은 부산지방법원은 재심사유가 없다고 기각하였다.
  15. 나는 즉시항고하였다.
  16. 부산고등법원은 나의 항고를 기각하였다.
  17. 나는 재항고하였다.
  18. 대법원은 나의 재항고를 인용하여 부산고등법원의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19. 부산고등법원은 대법원 판결대로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20. 부산지방법원은 재심사건을 심리하여 나에게 무죄판결을 하였다.

1번부터 20번까지를 쓰고 나니 12번과 13번 사이 55년 4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지가 궁금해진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는 억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55년 동안 그 억울함이 잊히지 않아서 다시 재심청구를 한 것일까. 억울함을 풀기 위한 첫걸음까지, 재심청구를 하기 위해서 55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일까 등등.

1번부터 20번 사이에 법원의 판결 또는 결정이 여섯 개(12, 14, 16, 18, 19, 20번) 있었고, 비평 대상 판결은 20번(재심 무죄 판결)이지만, 법적으로 더 의미 있는 판단 또는 판결은 18번(대법원이 12번 판결에 재심사유가 있다고 보아 재심청구를 기각한 부산고등법원 결정을 파기․환송한 판결. 대법원 2024. 12. 18. 선고 2021모2650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이며, 이 일련의 일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단 한 개를 꼽으라면 단연 13번(판결이 확정된 후 55년 4개월이 지나서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 청구)이다.

13번 다음으로 15번(재심청구 기각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17번(즉시항고 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이 의미 있다. 13번, 15번, 17번이 없었다면 대상 판결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13번, 15번, 17번 행동의 주인공은 최말자 님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관해 쓸 수 있는 것은 판결 비평보다는 사람 감동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13번, 15번, 17번의 행동을 한 사람, 그리고 그 행동을 도운 사람들 감동문을 쓰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법원이 재심으로 어떻게 과거의 오판을 바로잡았는지 대상 판결문을 읽어본다.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 없다’ vs. 공소사실

판결문에서 사건의 경과를 육하원칙으로 서술한 문단을 지나면, 우리는 판결문 2항 ‘공소사실의 요지’라는 문단을 만나게 된다.

“피고인(여, 19세)은 1964. 5. 6. 20:00경 피고인의 주거지로부터 150미터 가량 떨어진 노상에서, 당시 초면이었던 피해자 노OO(남, 21세)이 귀가하려는 피고인의 어깨를 잡고 키스를 시도하고, 이를 거절하는 피고인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피고인의 배 위에 엎드려 재차 키스를 시도하는 과정을 수회 반복하던 중 혀를 내밀어 피고인의 입 속으로 넣자 피해자의 혀를 1.5센티미터 가량 물어 끊어 피해자에게 약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하고, 그 결과 발음의 현저한 곤란을 당하는 불구가 되게 하는 중상해를 가하였다.”

1964년 최말자 씨를 기소한 검사가 쓴 ‘공소사실’ 중에서.

1964년 최말자 님을 기소한 검사가 쓰고 1965년 1월 12일 부산지방법원이 유죄로 판결한 이 공소사실이 과연 증명되었는지 2025년에 다시 심리하고 판단한 것(재심)이 이 비평 대상 판결이다.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지금까지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렸왔고, 사회는 이를 당연시하거나 모른 척 했다.

이 공소사실의 요지를 읽으면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내가 피고인과 같은 나이였을 때 법과대학에서 읽은 ‘형법총론’ 교과서에 적힌 다음 구절 때문이다.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이므로 불법(不法) 대 법(法)의 관계이며,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 없다’라는 명제가 기본사상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재상, 『형법총론』 ‘정당방위’ 중에서.

우리 형법 제21조 제1항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의 정당방위 성립요건 중 ‘상당한 이유’는 ‘방위의 필요성’을 뜻한다고 하여 다른 피난방법이 없을 것(보충성)을 요구하지 않고, 정당방위를 하여 침해된 법익이 정당방위로 지킨 법익의 가치를 초과하지 않을 것(균형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형법 해석론이다. 형법 제21조 제1항의 문언과 해석론, 그리고 형법 교과서의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명제를 나란히 읽은 다음, 이 판결문의 공소사실 요지를 붙여 읽으면 자연스러운 의문이 제기된다.

  • 열아홉 살 미성년자(당시 민법상 성년은 만 20세였다)가 ‘어깨를 잡고 강제 키스’,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배 위에 엎드려 강제 키스’하는 상대방을 향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 강제추행 기수 또는 강간 시도 상태(피고인은 노OO을 강간미수로 고소하였었다)라면, 나의 법익, 나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방위하기 위해 적합한 수단은 무엇인가?
  • 이 상황에서 상대방의 혀를 깨무는 것 외에 효과적인 방위수단은 무엇인가?
  • 상대의 몸뚱이가 덮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 성폭력에 저항하며 가해자의 혀를 물어 혀가 1.5cm 끊어졌다면 정당방위의 ‘상당한 이유’는 부정되어야 하는가?
  • 성폭력범은 아무 죄가 없고 성폭력을 방어한 사람은 중상해죄의 벌을 받아야 하는가?
  • 정당방위에 관한 형법 지식이 있건 없건, 그 상황의 인간이 불법에 맞서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즉각적이고 유효한’ 저항

1965년의 법원은 정당방위가 아니고 중상해 유죄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025년 법원은 중상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고, 정당방위가 성립하여 무죄라고 판단했다.

중상해 결과 발생에 관하여, 대상 판결은 형법 제258조 제2항에서 규정한 ‘불구’(형법 제258조 제2항이 쓰고 있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비하 표현이므로 대체되어야 할 용어이다)는 ‘단순히 신체의 일정 부분에 대한 완전성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서 사지절단 등의 신체 중요 부분의 상실이나 중대 변경 또는 시각, 청각, 언어, 생식기능 등의 중요한 신체 기능의 영구적인 상실과 같이 건강상태를 중대하고 불량하게 변경하는 신체의 중요한 부위의 중대한 불구만을 말한다고 한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 요청에 부합한다’라고 전제하였다.

그 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 피해자(노OO)가 혀 봉합 수술을 받고 판결 선고 후 육군에 입대하여 병역판정검사에서 ‘갑’ 등급을 받고 정상적인 군 복무를 마쳤다는 새로운 증거와 지인의 진술을 토대로 피해자에게 ‘신체의 중요 부분 상실이나 중대 변경 또는 중요한 신체 기능의 영구 상실이 발생하였음이 합리적 의심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법원은 축소사실인 상해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피고인의 행위는 상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위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공소사실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당시 상황을 두루 살펴 “피고인이 다른 사람에게 구호를 요청하거나 피해자(노OO)와 전면적인 몸싸움을 통해 피해자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위법한 침해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혀를 깨무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신체접촉 시도를 저지한 것은 즉각적이고 유효하게 피해자의 침해행위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행위는 자신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려고 한 행위로서 형법 제21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라고 하였다.

과거 오판을 넘어, ‘오늘의 최말자들’을 구하자

“피고인은 무죄!”

판결문 첫 장의 이 판결 주문은 중상해죄의 해석과 사실 인정을 바로잡음으로써, 그리고 성폭력 피해 상황에 있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해 성폭력범의 혀를 물어 끊은 행위를 ‘유일하고 즉각적인 방어수단’으로 보고 정당방위를 인정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대상판결의 피고인 최말자의 변호인은 이렇게 일갈한다: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사건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검찰과 법원의 잘못으로 오판되었던 것이다.”

김수정,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력 정당방위 사건 재심판결’, 『사법정의와 여성 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2026년 발간
칼자루는 뉴진스가 쥐었다. 하지만 뉴진스는 정의의 여신은 아니다.

이 말을 뒤집어 하자면, 시대가 바뀌었지만 현재도 폭력 사건, 특히 젠더폭력 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아 최말자 님처럼 피고인이 된 피해자들이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폭력 피해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저항한 행위가 ‘침해의 현재성’이 없다고 하여, 또는 ‘방위행위의 상당성’이 없다고 하여 피고인으로 처벌받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젠더폭력 가해자의 침해행위의 성질을 살피고, 지속적인 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방어행위를 할 때 침해의 현재성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거나, 공격행위와 방어행위의 균형성 판단에 신중을 기하여 정당방위의 상당성 요건을 정밀하게 심사함으로써, 정당방위를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몇 십 년 후에 나타날 또 다른 최말자 님을, 우리는 지금 구해야 한다.

👨‍⚖️광장에 나온 판결: 308번째 이야기

⚖ 성폭행범에 대한 방어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60여 년 만에 무죄를 선고한 재심 판결
⚖ 부산지방법원 김현순(재판장), 김현주, 민지환 판사 부산지방법원 2025. 9. 10. 선고 2020재고합5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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