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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9일 대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부회장, 최순실, 3명에 대한 최종 재판을 동시에 선고하였다. 최고 권력인 대통령 주위에 고려 신돈 이후 최고 비선 실세라는 자가 활개를 치고, 그 틈을 타 재벌들이 구린 냄새가 나는 뇌물을 주면서 그룹 현안을 해결하려는 탐욕스러운 천태만상이 드디어 법적으로 일단락되었다.

3명의 판결문을 모두 합하면 143쪽으로 방대한데, 그 중 핵심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간의 뇌물죄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사안이 중대할 뿐만 아니라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사회적 이슈까지 머금고, 법리적으로도 유무죄의 가르마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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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이재용의 뇌물죄 1심, 2심 판결 비평 아래 글 참고

  1. 뇌물죄 회피 ‘꼼수’ 알려준 최순실 1심 재판부 (김남근)
  2. 이재용은 정경유착의 공범인가, 권력의 희생자인가 (노종화)
  3. 박근혜의 세 가지 죄 (임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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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뇌물죄과 제3자 뇌물죄의 간극 

형법에서는 뇌물죄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1. 단순 뇌물죄: 자기가 직접 받았을 때는 대가관계가 증명되면 ‘단순 뇌물죄’가 된다.
  2. 제3자 뇌물죄: 하지만 3자가 받았을 때는 ‘부정한 청탁’까지 있어야 ‘제3자 뇌물죄’가 된다. 뇌물을 내가 받는 것과 제3자가 받는 것을 똑같이 볼 수 없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국정 농단 사건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 모녀, 최순실 조카인 장시호, 최순실이 운영한 재단이 경제적 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법리 구성이 문제된다.

최순실 모녀가 받은 것은 단순 뇌물죄 여부가 다투어졌다. 최순실은 제3자이므로 자신의 딸인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을 단순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최순실은 핵심 경과를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정도에 이르렀다”라고 하여 배척하였다. 최순실이 제3자가 아니라 사실상 박 전 대통령과 한 몸으로 본 것이다.

이 때 최순실이 받은 경제적 이익이 얼마인지가 문제된다. 고급차의 소유권을 내가 가진 채 상대방 공무원에게 마음대로 타라고 하면 뇌물액이 얼마인가의 문제이다. 2심에서는 말의 소유권이 삼성에 있기 때문에 뇌물은 공짜로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이익이고, 그 이익은 계산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뇌물액을 특정할 수 없으면 범죄액수에 따라 형량이 가증되는 특별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 부회장으로서는 행복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실질적인 사용·처분 권한이 최순실에게 있는데도 뇌물이 액수 미상의 사용이익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반하고, 뇌물은 말 자체라면서 2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형식상 소유권일뿐 사실상 고급차를 뇌물로 준 것이라면서 2심 판결을 바로 잡은 것이다. 말 구입액 34억 원이 뇌물로 특정됨에 따라 이 부회장의 뇌물과 횡령액이 그만큼 늘어났고, 이 부회장은 좋다 말았다.

2심은 최순실이 받은 이익을 계산할 수 없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그 이익(='뇌물액')을 34억 원으로 '특정'했다.
2심은 최순실이 받은 이익을 계산할 수 없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그 이익(=’뇌물액’)을 34억 원으로 ‘특정’했다.

삼성에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필요한 이유

가장 큰 논란은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장시호의 영재센터 지원건에서, ‘부정한 청탁’, 즉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도움을 받으려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는가 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작업’해서 들어간 것이냐,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가의 문제이다. 2심은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 ‘작업’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지만, 대법원은 ‘작업’한 것이라고 달리 판결했다. 그리고 2심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의 형태를 정확히 특정해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한 청탁’으로 볼 수 없다고 했지만, 대법원은 ‘작업’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세세히는 모르지만 뭔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 돈이 오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부정한 청탁’으로 볼 수 있다면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에서 승계작업을 인정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대법원에서 정의한 승계작업이란 ‘이재용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하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개편작업’이고,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진 승계작업을 조직적으로 진행했다고 인정했다.

삼성 제일모직 삼성물산

누구나 다 아는 재벌 3세가 굳이 승계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들을 복잡한 구조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전체 계열사를 깔끔하게 지배하려면 200을 투자해야 하는데, 겨우 10을 투자해서 지배하고 이걸 다시 자녀에게 상속세까지 감안해서 물려주려니까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 당연한 결론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달라붙었다.

보다시피 현재 뇌물죄가 너무 어렵다. 새로운 기법의 뇌물이 속속 등장하는데 2개의 법 조항으로 모두 해결하려고 하니 법리만 복잡해진다. 어쨌든 돌고 돌아 말 구입액 34억 원과 영재센터 지원금 16억 원이 추가되어 이 부회장은 86억 원의 뇌물죄과 86억 원의 횡령죄로 처벌받게 되었다.

그럼 이 부회장은 다시 감방으로 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정도의 범행이면 통상 실형이 선고된다.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는 국민들의 구명 운동에 힘입어 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구명운동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의 ‘이순신’ 코스프레만으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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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기획한 ‘광장에 나온 판결’ 연재의 일부로, 필자는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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