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마냐의 북라이딩] “오늘의 설계는 내일의 질서를 바꾼다” 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SK하이닉스의 ‘결정적 순간들’을 다룬 책 ‘슈퍼 모멘텀’. (⏳4분)

📚마냐의 북라이딩🚴

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SK하이닉스의 ‘슈퍼 모멘텀’

🔗 이인숙 외, 슈퍼 모멘텀 –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 (2026)

자타공인 세계 최대 랠리를 이어가는 코스피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2월 말 기준 코스피 순익 중 60%, 시총 기준으로는 40%가 반도체 종목이다.

‘슈퍼 모멘텀’은 SK하이닉스 스토리다. 1월에 나온 책은 ‘세계 D램 1위와 시가총액 500조 원 된 기업’ 이야기라고 했는데, 시총은 3월 현재 700조를 훌쩍 넘었다. 만년 2위 기업이 어떻게 AI 시대 핵심 플레이어가 됐을까?

그 전략을 추적한 ‘슈퍼 모멘텀’ 부제는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 모두 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언더독이 어떻게 이겼을까? 천덕꾸러기가 어떻게 한국 경제의 핵심 전략 자산이자 국민기업이 됐을까? KBS 김원장 기자 등 전직 기자들을 비롯해 전략컨설팅 회사 플랫폼9와3/4의 유민영 대표와 임직원들이 함께 썼다.

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회사

SK하이닉스는 간판이 3번 바뀌었다. 원래 현대전자에서 출발, 외환위기 이후 LG반도체와 강제 빅딜 당했고, 계속 애물단지였다. 마이크론에 팔려다 무산됐을 당시 100분 토론 주제가 하이닉스 최후의 선택이었을 정도로 거대한 애물단지. 결국 채권단 관리 아래 10년을 버티다가 SK를 만났다. 그 무렵 하이닉스 시가총액은 13조 원이었다.

만약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넘어갔다면? 2012년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2013년 하이닉스와 AMD의 HBM 실험이 좌초됐다면? 2020년, 엔비디아의 AI 칩에 HBM2E가 탑재되지 못했다면?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에 하이닉스가 없었다면?

한국 경제의 굴곡과 AI 시대라는 기술 패권 전환기를 관통하는 SK하이닉스의 서사를 압축한 질문들을 이 책은 담고 있다.

고난의 시기가 축적의 시간

고난이 SK하이닉스를 담금질했다. 냅킨 아낀다고 다들 손수건 들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채권단 산하 더부살이, 셋방살이를 지나 고된 홀로서기를 하는 동안 ‘하이닉스 DNA’라는 것이 생겼다.

첫째, 독했다. 사람이 없으니 저마다 자기가 마지막이었다. 내가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마음이 자기 완결성을 키웠다. 2015년 한 임원은 일기에 기록했다. “이 회사는 왜 이렇게 일하기가 고달픈가?” 회사는 전쟁 중이었다. 둘째, 살아남기 위해 뭉쳤다. 동지애, 원팀 스피릿이 남다르다. 일 잘하는 사람이 월급 인상을 자제했고, 일 좀 못하는 사람을 가르쳐서 이끌었다. 모르는 게 등장하면 경쟁사 사람들은 검색한다는데, 하이닉스 이들은 선배나 동료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셋째, 솔루션이 먼저였다.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해야지 책임 따질 시간이 없었다.

그 무렵, 하이닉스를 인수하면 ‘제2의 삼성자동차’가 된다고 다들 말리던 시기다. 인수설이 나돌면서 SK 주가가 급락했다.

SK는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다가 3년 만에 해산한 아쉬움이 있었다. 최태원 회장은 2008년부터 반도체 공부를 시작했고, 시장 점유율은 떨어져도 D램 기술력 1위라는데 베팅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형의 가치였다. SKT는 언제나 1등인데 미래 사업에서 고전했다. 채권단 10년을 견뎌낸 하이닉스의 치열한 생존능력, 독한 야성을 SK에 이식하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결과, SK하이닉스는 이제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80%를 책임지고 있다.

인수 합병된 회사는 잘 되는 게 더 어렵다. SK도 숱한 실패가 있었다. 그런데 하이닉스 경우, PMI(Post-Merger Integration), 인수 후 통합의 교과서 같다. 책이 최태원 회장을 미화한 부분이 없지 않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대목. 최 회장은 인수 후 하이닉스 임원 100명 전원과 일대일 미팅을 1~2시간씩 했다고 한다.

하이닉스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들었다. 공들인 것 인정한다. 현대파, LG파, 외부영입파, SK파까지 연합군을 한 팀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인수 후 점령군처럼 들어가는 대신 최정예 30명만 파견해서 경영 지원만 챙겼다는 것도 전략적이다. 기술과 제조는 전적으로 원래 하이닉스 사람들에게 맡겼다. 임원들은 워크숍 때 ‘우리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 에세이를 A4 용지 5쪽 이상 써냈다. ‘반성문’이었다. 어떤 회사가 되어야 하느냐. 끝장토론이 이어졌다.

SK가 하이닉스의 뒷배가 된 시점도 운이 좋았다. 공급과잉으로 D램 가격이 반값이 되면서 공격적 증설에 나섰던 일본 엘피다가 2012년 파산했다. 위기였지만 반도체는 불황기에 투자를 못 하면 호황기에 기회를 놓치는 악순환에 빠진다. SK하이닉스는 향후 10년간 총 4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반도체 팹(공장)이란 게 착공에서 생산까지 4년, 장비 셋업에 1년 6개월 걸리는 긴 호흡 투자. 청주의 하이닉스 팹은 축구장 8개 크기 면적에 높이가 아파트 26층 규모다. 스케일이 다른 산업에서 축적의 시간이 이어졌다.

기술 베팅과 판을 새로 짜는 전략

가로세로 1cm에 머리카락보다 얇은 12개 칩이 쌓여 있는 HBM(High Bandwidth Memory), 초고대역폭 D램. 방대한 데이터를 GPU와 초고속으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데이터 연결 통로를 극단적으로 ‘넓고 짧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전송통로가 8~32개 있었다면, 하이닉스 제품은 1024개. 8차선을 1024차선으로 늘렸다는 얘기란다. 속도를 어떻게 높일지 고민하는 대신 구조를 바꿔버렸다. 하이닉스와 AMD가 7년을 매달려서 만든 작품이다. AMD도 CPU로는 인텔에 치이고 GPU는 엔비디아에서 밀리던 중에 만년 2등끼리 의기투합했다.

판을 새로 짜는 전략도 주목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일본 엘피다 매수를 노렸지만 못했다. 결국 미국 마이크론이 인수해서 D램에서 살아나고 삼성전자에 이어 3강 자리를 굳혔다. SK하이닉스가 2018년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키옥시아)를 인수하고, 2025년에는 5년 줄다리기 끝에 인텔 낸드플래시까지 삼킨 것은 아예 판을 직접 짠 결과다. 낸드플래시 업계 4위에서 2위로 올라섰고, 종합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위한 퍼즐을 맞췄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최태원 회장은 HBM 스토리의 핵심은 AI라며 “우리는 길목에 서 있었다”고 고백한다. AI 시장이 열리는데, 하이닉스는 준비돼 있었고, 타이밍을 잡았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까지 AI 반도체가 만든 임팩트는 서곡에 불과하다”“지난 10년이 하이닉스를 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여정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싸움의 전장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닉스는 지금보다 10배는 더 커져야 한다는 최 회장 포부를 주주들이 반길 게 분명하다.

미운 오리가 백조가 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통한다. 시의적절하게 정리된 책은 한 기업의 생존기 이상 흥미롭다. 게다가 의지와 선택, 전략과 설계, 실행과 타이밍이 산업 지도를 바꾸는 과정이 생생하다. 중간에 기술 정리가 문과 출신에게는 조금 어렵기도 하지만 대체로 잘 읽히는 것은 저자들이 스스로 갈아 넣은 덕분이라고 믿는다. “어제의 선택이 오늘의 성과를 만들었다면, 오늘의 설계는 내일의 질서를 바꾼다”는 선언이 이제 다르게 들린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