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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글을 읽다가 글이 ‘뚝뚝 끊긴다’, ‘어수선하다’, ‘잘 읽히지 않는다’ 같은 말을 한다. 그런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음 두 문장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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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a.[/dropcap] 우주의 본질에 관한 몇몇 놀라운 의문이 우주의 블랙홀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서 제기되었다. 죽은 별이 붕괴하여 구슬보다 작은 점으로 수축되어 블랙홀을 생성한다. 상당한 부피의 물질이 그토록 작은 부피로 수축하면 그 주변의 우주공간의 구조는 혼란 속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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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b.[/dropcap] 우주의 본질에 관한 몇몇 놀라운 의문이 우주의 블랙홀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서 제기되었다. 블랙홀은 죽은 별이 붕괴하여 구슬보다 작은 점으로 수축되어 생성된다. 상당한 부피의 물질이 그토록 작은 부피로 수축하면 그 주변의 우주공간의 구조는 혼란 속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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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수자리 A*의 모델로 제안된,[1] 전리물질의 토러스를 두르고 있으면서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의 상상도
블랙홀의 상상도. 블랙홀을 설명하는 문장에서 블랙홀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 위치’해야 좀 더 쉽게 독자들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원칙: 시작은 쉽고 간결하게 

두 글을 읽어보면 a보다 b가 훨씬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와 b는 사실, 두 번째 문장만 다르다. 두 번째 문장이 독서경험에 차이를 불러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두 가지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1. 독자는 익숙한 정보로 시작하는 문장을 잘 이해한다.
  2. 독자는 문장의 뒷부분에서 새로운 정보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예문에서 첫 번째 문장은 ‘블랙홀’이라는 새로운 정보로 끝을 맺는다. 따라서 두 번째 문장을 읽는 독자에게 익숙한 정보는 ‘블랙홀’이다. 또한, 두 번째 문장을 ‘부피의 수축’으로 끝맺으면 세 번째 문장의 ‘부피의 수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스타일 레슨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좀 더 오래 읽어주기 바란다면 이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일단 술술 읽힌다는 느낌이 들면, 개별 문장들이 다소 명확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좀더 오래 글을 읽어 나가며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나갈 수밖에 없다. 문장의 첫머리에 오는 항목은 앞으로 읽을 내용이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알려주는 깃발 역할을 하는데, 독자는 이것을 토대로 다음에 나올 정보들을 정리하고 해석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깃발은 익숙할수록 좋으며, 더 나아가 관심을 끄는 것이면 더 좋다. 무엇보다도 깃발은 빨리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깃발은 최대한 가벼워야 하며, 문장이 시작되었을 때 최대한 빠르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장의 첫머리에 가장 많이 오는 항목은 바로 화제어나 주어다. 그래서 이 항목이 너무 길거나 다른 항목 속에 파묻혀 있어서 찾기 힘들다면 문장은 읽기 힘들어진다.

시작은 익숙하고 경쾌하게! 낯설고 무겁게 시작하면 독자도 당연히 어렵게 느낀다.
시작은 익숙하고 경쾌하게! 낯설고 무겁게 시작하면 독자도 당연히 어렵게 느낀다.

실제 예문을 한번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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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c.[/dropcap] 문장을 시작하는 부분에 일관된 개념이 등장하면 글이 전반적으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 독자들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심층적으로 결속된 느낌은 연속된 화제들이 연관된 개념으로 이루어진 한정된 집합을 구성할 때 발생한다. 하지만 각 문장의 맥락은 화제들이 임의적으로 바뀌는 것처럼 보일 때 사라진다. 초점이 없는, 심지어 구성이 어수선한 글은 그럴 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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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어떠한 문법적 오류도 없다. 하지만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의미를 이해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 글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해보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글 속 문장들의 화제어를 뽑아보자.

  • 문장을 시작하는 부분에 일관된 개념이 등장하면
  • 심층적으로 결속된 느낌은
  • 하지만 각 문장의 맥락은
  • 초점이 없는, 심지어 구성이 어수선한 글은

이 항목들은 모두 ‘-은/는’이 붙어 있는 화제어들이다. 이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느껴지는가? 독자들은 이 항목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을 수 있다고 느낄까? 그렇지 않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했듯이 이들 문장의 주요 행위자들을 찾아서 수정해보자.

주어와 동사는 명확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주어와 동사는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주요 행위자’를 문장의 주어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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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d.[/dropcap] 독자들은 문장을 시작하는 부분에 일관된 개념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글이 전반적으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이해한다. 연속된 화제들이 연관된 개념으로 이루어진 한정된 집합에 맞춰져 있을 때 글이 심층적으로 결속되어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화제가 임의적으로 바뀌는 것처럼 보일 때, 독자들은 각 문장의 맥락을 잃을 수 있다. 그럴 때 초점이 없고 심지어 구성이 어수선한 글을 읽는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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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가 c보다 훨씬 잘 읽힌다는 것에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이 글 속 문장들의 화제어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독자들은
  • (독자들은)
  • 독자들은
  • (독자들은)

이처럼 문장의 첫머리는 간결하고 가벼워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은 앞으로 나올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문장을 시작하면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바로 새롭고 낯선 정보들을 문장의 뒤쪽으로 미룰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내용은 쉽게 쓰려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흔히 어려운 내용은 아무리 글을 쉽게 쓴다고 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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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e.[/dropcap] 액틴, 미오신, 트로포미오신, 트로포닌과 같은 단백질은 근육 수축의 기본단위인 근육원 섬유마디를 구성한다. 에너지생성 단백질 미오신은 굵은 필라멘트를 구성하는 반면, 조절 단백질 액틴, 트로포미오신, 트로포닌은 가는 필라멘트를 구성한다. 미오신과 액틴의 상호작용은 근육의 수축을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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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f.[/dropcap] 근육 수축의 기본 단위는 근육원 섬유마디다. 근육원 섬유마디에는 가는 필라멘트와 굵은 필라멘트가 있는데, 이 필라멘트는 근육수축을 조절하는 네 가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가는 필라멘트는 액틴, 트로포미오신, 트로포닌으로 구성되어 있고, 굵은 필라멘트는 미오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는 필라멘트에 있는 조절 단백질 액틴이 굵은 필라멘트에 있는 에너지 생성 단백질 미오신과 상호작용할 때 근육이 수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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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 전공자라면 두 글 모두 읽어나가는 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e보다 f가 훨씬 읽기 쉽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독자에게 익숙한 정보로 문장을 시작하고 독자에게 낯선 정보로 문장을 끝맺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글 같지만 f는 e를 수정한 글에 불과하다.)

생각 아이디어 소녀 아이

이 글의 화제어들을 모아보자.

예시 e. 

  • 액틴, 미오신, 트로포미오신, 트로포닌과 같은 단백질은
  • 에너지생성 단백질 미오신은
  • 조절 단백질 액틴, 트로포미오신, 트로포닌은
  • 미오신과 액틴의 상호작용은

예시 f.

  • 근육수축의 기본단위는
  • 근육원섬유마디에는
  • 이 필라멘트는
  • 가는 필라멘트는
  • 굵은 필라멘트는

f의 경우, 화제어만 봐도 이 글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한 눈에 들어온다.

쉽게 쓰려면 짧게 쓰라? 

또한, 흔히 많은 글쓰기 책들이 쉽게 쓰려면 문장을 ‘짧게 쓰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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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g.[/dropcap] 1861년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2세는 농노를 해방시켰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농촌 코뮨에서 살기로 했다. 거기서 그들은 농업생산활동에서 서로 협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사회구조도 만들 수 있었다. 한 가지 전략은, 낮은 경제적 지위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소작농들의 생활수준이 모두 빈곤에 가까운 상태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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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h.[/dropcap] 1861년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2세가 농노들을 해방시킨 이후, 많은 이들이 같은 땅에서 협동하며 일하고 안정적인 사회구조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바람으로 농촌 코뮨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초기 코뮨을 이끌던 몇몇 사람들은 새로운 소작농들에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평등한 지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낮은 경제적 지위를 부과하였다. 빈곤에 가까운 상태로 생활 수준을 떨어뜨리는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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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는 6문장으로 이루어진 반면, h는 3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글이 훨씬 쉽게 읽히는가? 대부분 h가 쉽게 읽힌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단문을 나열한 글보다 긴 복문을 쓴 글이 훨씬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문장을 길게 쓰면 여러 사건들을 문장의 시작, 중간, 끝에 배치하여 비중을 차등해서 전달할 수 있다. (당연히 문장의 맨 끝에 오는 사건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에 비해 단문은 각각의 진술마다 똑같은 강세를 받기 때문에 결국 개별 사건들의 비중을 독자가 알아서 배분해야 한다.

우리가 귀 기울일만한, 또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면, 절대 짧은 문장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단문으로 구성돼 있어서 글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순서'로 어떤 내용을 '강조'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단순히 짧게 단문으로 문단을 구성한다고 해서 글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순서’와 ‘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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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8년 4월 출간된 책 [스타일 레슨]에서 발췌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1. 레이건의 분노: “요점만 말해, 이 바보야!”
  2. 스토리텔링: 글쓰기의 첫걸음
  3. 어순은 위대하다: 문장의 깃발과 메시지의 초점
  4. 서론 쓰는 법: 독자 위협하기
  5.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 6가지 원칙
  6. 문장 미학의 원리: 긴 문장 짧은 문장 
  7. 글 쓰는 사람의 윤리: 좋은 글은 어디서 나오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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