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헷갈리지 않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써야 그러한 ‘명확한’ 글을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한 글쓰기 책들이 이에 대한 처방으로 내세워온 것이 ‘짧게 쓰라’는 것이다.
글이 어려워지는 이유
예컨대 다음 문장을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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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a.[/dropcap] 대학생들의 과도한 음주의 인과요인에 대한 이해는 더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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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어렵다고 느껴지는가? 그렇게 느껴진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 너무 길어서
- 문장 구성이 어려워서
- 단어가 어려워서
아마 이 정도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 길이: 이 정도 문장을 길다고 느낀다면, 아마 이 글의 첫 문장부터 읽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글의 첫 문장은 예문보다 훨씬 길다.)
- 문법: 이 문장은 ‘주어+서술어’로 이루어진 아주 간단한 문장이다.
- 단어: ‘인과요인’은 물론 일상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지만, 그다지 어려운 단어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장을 쉬운 문장이라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
실마리: 동사와 주어
다음 문장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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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b.[/dropcap] 대학생들이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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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가? a보다 b가 훨씬 명확하게 이해된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문장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길이, 문법, 단어는 이유가 아니다. 우선 이 두 문장의 서술어(동사)를 비교해보자.
- a. 이어진다.
- b. 이해하다 / 치료하다.[footnote]서술어에 붙는 ‘-하면’은 앞의 절과 뒤에 나오는 절을 어떻게 연결해서 이해할 것인지 알려주는 기능을 하며, ‘-수 있다/-을 것이다’는 이 진술에 대한 화자의 태도(확률/추론) 등을 표시하는 기능을 한다. 이들은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메시지에 대한 화자의 해석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메타디스코스(metadiscourse)’라고 한다.[/footnote]
일단, b는 두 개의 ‘절’이 연결되어 있는 복문으로서 서술어가 두 개다. 그렇다면 이들 동사의 주어는 무엇일까?
- a. 이해는… 이어진다.
- b. (우리는/당신은)… 이해하다 / (우리는/당신은)… 치료하다.
a의 주어는 ‘이해’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이 개념이 어딘가로 ‘이어진다’고 진술하는 매우 고차원적인 진술이다. (지금 한 번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라.)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사건이다. 물론 그러한 사건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은 아니다.
반면, b의 경우 주어는 구체적인 행위자다. 동사에 표현된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주인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익숙한 형식의 문장이다.
- 호랑이가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했다.
우리는 어릴 적, 동사(動詞)는 움직임(행위)을 묘사하고, 주어 자리에는 행위의 주인(主人)의 이름(名詞)이 와야 한다고 배웠다. 이것은 어떠한 작위적인 규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인식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이다.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은 말과 글을 빚어내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가장 근원적인 원리다.
문제는 ‘행위의 명사화’
그렇다면 a에서는 행위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 a와 b의 의미가 같다면, b에서 동사로 표현된 것을 a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해하다 → 이해
- 치료하다 → 치료법
행위가 명사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바로 행위의 명사화(norminalization)이라고 한다. 움직임을 명사화하면 우리의 인식과 문장의 형식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따라서 문장이 어렵게 느껴진다.[footnote]이 글에서는 글쓰기에서 중요한 가장 기초적인 원리만 단편적으로 소개합니다. 예컨대 여기서는 ‘명사화’를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글쓰기 과정에서는 문장 구성을 용이하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타일레슨]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footnote]
- 호랑이가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 호랑이의 밧줄 등반이 있었다.
-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했다.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벌어졌다.
스토리텔링의 원리
지금까지 설명한 스토리텔링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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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행위자를 주어로 삼고 그 행위자의 구체적인 행위를 동사로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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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정도 문장이야 스토리텔링 원리를 적용해 고칠 수 있다고 해도, 훨씬 복잡한 개념을 진술하는 문장에서도 이런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내용이 어려우면 아무리 스토리텔링 원리를 적용한다고 해도 글이 쉬워질까?
다른 예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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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c.[/dropcap] 학교의 기초적인 소양교육의 실패 원인은 학습에 관한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33″]d.[/dropcap] 학교가 기초적인 소양교육에 실패하는 것은 아이의 학습방식에 문화적 배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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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문장은 어떤가? 누구에게 물어보든 b가 훨씬 명확하고 쉽게 이해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두 문장의 주어와 동사를 비교해보자.
- c. 실패 원인은…데 있다.
- d. 학교가…실패하다 / (학교가/학교 운영자가)… 이해하지 못하다.
이것도 너무나 쉬운 내용일 뿐인가? 그렇다면 논문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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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e.[/dropcap] 현학적인 문체의 핵심은 바로 평이한 동사의 제거다. 단일어 동사, 예를 들면 break, stop, spoil, mend, kill과 같은 동사 대신 prove, serve, form, play, render와 같은 다용도 동사에 명사나 형용사를 붙여 만든 구동사를 사용한다. 게다가 능동태가 선호되어 사용 가능한 곳에서는 언제든 수동태가 등장하며, 동명사 대신 명사구문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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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즐겨 쓰는 현학적인 문장을 비판하기 위해 1946년 조지 오웰이 작성한 소논문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라는 글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쉽게 써야 한다는 그의 주장과 달리, 그의 글 역시 난해하다. 스토리텔링 원리를 적용해 고친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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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33″]f.[/dropcap] 현학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단일어 동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break, stop, kill처럼 한 단어로 이루어진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그 동사를 명사나 형용사로 바꾼 뒤 prove, serve, form, play, render와 같은 다용도 동사에 덧붙인다. 능동태 대신 어디서나 수동태를 사용하고, 동명사 대신 명사구문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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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훨씬 쉽게 이해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읽힌다. 예문 e와 예문 f에 쓰인 주어와 동사를 각각 비교해보자.
예문 e. ↔ 예문 f.
핵심은… 제거다. ↔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능동태가 선호된다. ↔ (그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바꾼다, 덧붙인다.
수동태가 등장한다. 명사구문이 사용된다. ↔ (그들은) 사용한다.
이처럼 어려운 글에서도 스토리텔링 원리는 문장을 쉽게 고치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전히 이해해야 쉽게 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쉽게 고친 글에서도 여전히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어 단어들뿐만 아니라, ‘단일어 동사’, ‘다용도 동사’, ‘명사구문’ 등 전문용어들이 연달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글을 읽어나가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내용이 어려우면 글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을 담은 글이라도 이처럼 더욱 명료하게 쓸 수 있다.
물론 a를 b처럼 고치기 위해서는 이 문장이 진술하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렇게 쓸 수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어려운 글은, 글을 쓴 사람 자신도 자신이 쓰는 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썼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면 다른 이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난해함이 심오한 사상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더 나아가 그런 글을 모방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아도 혼미한 세상이 더욱 혼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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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8년 4월 출간된 책 [스타일 레슨]에서 발췌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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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 글쓰기의 첫걸음
- 어순은 위대하다: 문장의 깃발과 메시지의 초점
- 서론 쓰는 법: 독자 위협하기
-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 6가지 원칙
- 문장 미학의 원리: 긴 문장 짧은 문장
- 글 쓰는 사람의 윤리: 좋은 글은 어디서 나오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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