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5일,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가 유출됐다. 뉴스산업을 주제로 진지하게 논의하는 매체나 개인치고 그 보고서를 화제로 삼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그 때문에 보고서에 관한 분석은 이미 적지 않다. 슬로우뉴스 역시 심층 분석 기사와 더불어 한국일보닷컴과 SBS의 디지털 전략을 인터뷰로 담아 내보낸 바 있다.
-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의 교훈: 멋지게 실패하자! (강정수)
- 굿바이 디지털 황색언론: 한국일보 최진주 뉴스팀장 인터뷰 (민노씨)
- SBS의 디지털 전략을 듣는다 – 김도식 뉴미디어부 부장 인터뷰 (이지선)
이 글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하지만, 약간 접근 방식을 달리해 또 다른 혁신의 교훈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생각 더하기: 기존 논의 +@
먼저, 이왕에 많이 분석된 혁신보고서의 핵심 내용에 조금만 더 생각을 보태보자.
1. 첫 화면 트래픽 감소의 의미
메인페이지의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라, 모든 랜딩 페이지를 메인페이지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적극적으로는 LA타임스처럼 정말 기사 최하단에 섹션 메인 또는 전체 메인 페이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소극적으로는 사이드바 같은 좁은 면적에 주요 관심 뉴스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치할지와 같은 배치와 구성의 문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페이지 원’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페이지 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페이지 원: 신문 1면을 지칭. 특히 뉴욕타임스에서는 그날의 가장 중요한 이슈를 선택해 배치하는 자존심을 상징한다.
2. 재맥락화를 위한 리패키지 전략
독자의 뉴스 탐색 경로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응하는 기법은 이미 많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 차원에서, 결국 기사에 담긴 내용을 새롭게 재맥락화해 지금 여기의 저널리즘적 과제를 다시 부각할 수 있어야 한다.
복스(vox.com)의 화제작인 카드 스택에 관해 내린 진단과 비슷하다. 특정 사안에 관해 새로운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을 때 이를 반영해 관련 콘텐츠 패키지를 재구성하고, 변경 사실을 명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위키피디아 히스토리 기능보다는 훨씬 쉽고 깔끔한 모양새 필요가 필요하다.
당장 특별기획 연작 기사들조차 효과적으로 한 번에 모아서 제시해내지 않는 대다수 한국 언론사 사이트들 입장에서는 매우 먼 이야기지만 말이다.
3. 독자의 개인화 지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단 하나의 과제만으로도 벅찬데,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함축할 수 있다. “개인이 선호하는 토픽”과 “개인이 덜 선호하더라도 사회적 담론 참여에 필요한 토픽”이라는 두 가지 사이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4. 소셜 서비스를 통해 유입을 강화하라
매체를 홍보하고, 기사를 알리는 일을 모든 매체 구성원이 보도 활동과 편집의 일환으로 삼으라는 주문의 필요성은 공감한다. 하지만 당장 업무가 늘어나는 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커뮤니티 관계를 어떻게 잘 키우고 유지하면서도 그 팬덤에 도취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해당 커뮤니티와 객관적 거리를 설정하고, 비판적인 안목을 잃지 않을 것인가.
‘각자 알아서들 잘 해봐라?’ 이런 무대책의 대책을 세울 게 아니라 ‘최적의 요령'(best practice)를 개발하겠다면, 꽤 맨바닥부터 설계해야 할 수밖에 없다.
5. 일회성 프로젝트보다 독자 참여 탬플릿이 필요하다
혁신을 위해 도구와 기술에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스토리텔링 자체의 ‘최적의 요령’을 매뉴얼화해야 한다. 스노우폴을 예로 들자. 멀티미디어 장치 자체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를 유기적으로 기사와 결합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더 유용한 내용, 흥미로운 줄거리 전개를 독자가 참여해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법 자체를 기술화하고, 도구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6. 디지털 퍼스트의 딜레마
혁신보고서는 온라인에 먼저 공개하고, 먼저 공개한 기사를 전제로 종이신문에는 그 좋은 기사들을 모아서 발행하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은 당연히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한편으로는 엄살에 가깝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것이라고 본다.
디지털 퍼스트라는 명제에 지나치게 심취한 것일까. 혁신보고서의 디지털 퍼스트만을 맹목적으로 의식하면, 뉴욕타임스가 그동안 종이 신문으로서 쌓아온 장점과 노하우를 오히려 잃어버릴 수 있다. 그것은 여러 단계의 검증과 교열, 의제를 설정하는 고도의 프로세스 등이다.
비유하자면 꽉 짜인 앨범을 잘 만드는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가 디지털 싱글로 경쟁해봤자 무슨 득이 있겠는가. 즉, 개별 기사 발간 시점에서 온라인 최적화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기획 측면에서는 원래 뉴욕타임스의 전통과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활용하고, 그 방식을 따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트래픽에 관한 눈먼 욕망으로 버즈피드를 질투하며 경쟁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말이다.
기술적 논의와 한 몸으로 엉켜있는 조직론
그런데 이런 기술적 논의 너머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이런 논의들을 담아내며 보고서의 목적으로 이끌어가는 구성 방식과 맥락에 있다.
보고서 안에도 담겨있듯 뉴욕타임스는 8명의 기자로 보고서 작성팀을 구성해 그 업무만을 담당하게 했다. 이들은 6개월간 취재 후 집필했다. 팀 리더는 뉴욕타임스를 소유한 설츠버거 가문의 차기 사주 후보며 그때까지 뉴스타임스 메트로 섹션에 있던 아더 G 설츠버거가 맡았다.
보고서가 나온 후, 담아낸 냉정한 현실 분석을 받아들인 질 애브럼슨 당시 편집장이 디지털 전문가 고위 인사 섭외에 몰두하다가 안 그래도 쌓였던 내부 갈등에 불을 지펴서 전격 경질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만큼 보고서는 일회성 연구가 아니라 진지한 차기 구상의 위상으로 조직에 수용되었다.
보고서 구성은 기본적으로 기술론과 조직론이라는 두 가지 연관된 덩어리로 되어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1. 우리 독자 확장하기 (Growing our audience)
기술론에 해당한다. 뉴욕타임스가 이왕에 가진 장점을 살리고 여러 매체 기술을 발휘해 독자들이 콘텐츠를 더 많이 읽게 하자는 것. 이는 1) 발견, 2) 홍보, 3) 연결 기능을 강화하는 것으로 성취할 수 있다. 각 항목에는 매체 환경의 현실, 뉴욕타임스가 해왔던 시도가 담겨 있다. 주로 언론 종사자와 연구자의 관심을 끈 것은 이 기술론에 해당한다.
1) 발견: 독자가 뉴욕타임스 기사를 계속 더 많이 발견하게 하기
- 오랫동안 쌓은 기사 아카이브의 효과적 활용.
- 연관 콘텐츠들을 효과적으로 함께 묶어내기. 연관성 추출 기술과 레이아웃 등.
- 개인화: 이슈 전개에 관한 업데이트(‘팔로잉’), 지역 기반 추천 시스템 도입 등.
- 메타데이터 구조화 등 기술 요인을 혁신함으로써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2) 홍보: 콘텐츠 알리기
- 공식 홍보 창구 개선. (당장 트위터는 뉴스룸에서, 페북은 경영팀에서 관리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 취재 현장에서 직접 프로모션.
- 저널리스트 개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역할 부여하기.
3) 연결: 독자와 양방향성을 구현할 수 있는 ‘끈’ 만들기
- 사용자 제작 콘텐츠 수용하기.
- 이벤트 개최.
2. 우리 뉴스룸을 강화하기 (Strengthening our newsroom)
보고서의 조직론에 해당한다. 뉴욕타임스의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현재의 매체 환경에서 망하지 않도록 뉴스룸을 개편하라!
1) 협업: 편집국과 비즈니스팀이 좀 따로놀지 말고 협업을 하자. 독자경험 향상을 최우선 공동 목표로 함께 연구하자.
2) 전략: 전략팀을 별도 창설하자. 전략이 좀 있어야지, 다들 마감에만 바쁘면 미래가 없다.
3)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 종이신문의 전통에 ‘몰빵’하면 망한다. 디지털이 본판이 되도록 하라.
보고서의 숨은 함의: 그 작성 맥락과 구성방식 자체
사실 개별 내용은 ‘뉴스의 미래‘를 논하는 일련의 업계전문가 동네에서 지난 몇 년간 계속 꺼내던 이야기들과 전반적으로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묻혀있는 핵심은 보고서의 작성 맥락과 구성방식 그 자체다.
작성 맥락이란, 뉴욕타임스라는 신문 저널리즘에서 디지털 저널리즘으로 효과적 전환을 이루었다 평가받는 대표적 매체가 기업 차원에서 이것을 진지하게 의뢰하고 진지하게 적용하려던 자세 말이다. 다양한 담당 영역에서 차출한 탄탄한 실무팀을 장기간 투여하고,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냉철한 자기비판마저 온전히 담아내고 또 수용한다. 그 덕분에 조직 내부에 상당한 분란이 발생함에도 말이다.
이런 자세는 구성방식에도 잘 담겨있다.
보고서는 1부에서 매체 환경의 현실과 현재 뉴욕타임스가 추진 중인 기술적 시도, 빠른 환경 변화에 대처해야 할 보완점 등을 서술한다. 특히 그 안에 구조화된 데이터 개념, 전 기능의 유기적 결합 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2부는 1부에 진행한 논의를 바탕으로 조직론을 기술한다. 지금까지의 난관을 기술적으로 돌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 기술 한두 가지를 적용하는 데서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전언이다. 아예 조직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그 논의는 현실적이고, 실체적이다. 추상적으로 ‘모든 걸 바꾸자!’ 같은 구호가 아니다.
현재 조직 상황에서 딱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한다. 1) 부처 협업 강화, 2) 중장기 전략에 관한 조직적 지원, 3) 디지털을 새 본판으로 삼기 위한 총체적 이니셔티브에 이르기까지 소극적 방법론에서 적극적 방법론으로 가는 세 가지 과정을 보여준다.
‘마스터플랜’이라는 말이 이처럼 적절한 보고서 구성 양식은 드물 것이다.
보고서의 숨겨진 교훈: 문제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혁신보고서가 한국의 저널리즘 매체들에 던져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앞부분에서 몇 가지 개별 기술 요인은 논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보고서는 ‘뒷뜰 풀장에 넣는 소독제의 양을 반으로 줄이자’ 같은 내용이다. 즉 개별 기술은 어디까지나 뒷뜰에 거대한 풀장이 있는 집안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즉, 큰 원칙은 참조하되, 기본적으로 자기 조직의 모습과 장단점 등을 따로 각자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뉴욕타임스처럼 자기 매체가 환경 속에서 처한 ‘존재의 좌표’를 진지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이 걸어온 지난 과정들을 통해 확인한 장단점, 그 성취와 앞으로 해야 할 시도를 냉정하게 비판하고, 또 종합해야 한다. 경영진이 이를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기로 약속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일보 사례처럼 ‘분쟁’을 통한 경영진의 교체라는 극적인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극적인 전환점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뉴욕타임스가 혁신보고서를 통해 보여준 과학적이고, 치열한 연구가 필요하다.
8인팀을 6개월 동안 굴릴 스케일이 안된다면, 3명을 2개월 굴려라. 그것도 힘들면 연구 인력에게 외주를 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반드시 내부 사정에 밝은 내부인은 결합해야 한다.) 인터뷰하고 분석하고 토의하라. 최신 경향을 철저하게 공부해서 뼈아픈 제언을 마다하지 마라. 그리고 마스터플랜을 도출하라.
살아있는 화석 같은 사주의 추상적 훈계 몇 마디, 그리고 거기에 부합하는 전략을 궁리해 끼워 맞추는 것으로는 ‘혁신’을 불가능하다.
정성들여 쓰신 포스팅 좋응 이지와 하께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