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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힌두 민족주의가 삼킨 네루의 유산’에서 이어집니다. 

 

이제 다시 2017년 8월의 라다크로 돌아갈 때가 왔다. 라다크에서 벌어진 패싸움은 동쪽의 도카라에서 벌어진 군사적 대치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리고 도카라 분쟁은 단순히 히말라야에 있는 작은 지역을 놓고 벌어진 자존심 싸움 이상으로 의미가 있었다.

중국과 인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국가다. 중국이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인도는 중국보다 낙후되어 있어 성장 잠재력은 더 크지만, 여전히 난관이 많다. 하지만 이제 중국과 인도가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으로 복귀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적, 정치적 부상을 예측한 사람들은 금세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있었다. 다만 선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2001년 골드만삭스는 비서구권 거대 국가들이 G7 국가들의 성장 속도를 크게 상회하는 것을 보고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후 2010년에는 아프리카 국가를 대표하는 차원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합류해 BRIC’S’가 되었고 자체적인 정상회담도 열기 시작했다.

2016년 중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모여 기념촬영한 '브릭스' 5개국 정상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2.0) https://en.wikipedia.org/wiki/BRICS#/media/File:BRICS_leaders_meet_on_the_sidelines_of_2016_G20_Summit_in_China.jpg
2016년 중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모여 기념촬영하는 ‘브릭스’ 5개국 정상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2.0)

브릭스는 신흥국(혹은 신흥 시장; Emerging market)의 부상을 상징하는 용어로 금새 자리잡았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의 전망은 정확히 절반만 맞았다. 바로 이 점이 2000년경에는 여전히 국제 정치 지형의 전망이 흐릿했음을 보여준다. 2010년대 들어 브릭스에서 두 나라, 브라질과 러시아는 실질적으로 탈락했다. 원자재 가격 등락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는 나라는 진정한 강대국이라 할 수 없었다. 더하여 러시아는 무리한 크림 반도 병합으로 인해 경제제재라는 한파를 맞았고, 브라질은 부패 스캔들과 탄핵으로 홍역을 치렀다.

결국, 경제성장을 지속해 나갈 확고한 정치 리더십을 갖춘 두 나라만이 남았다. 러시아는 불안한 독재 국가였고, 브라질은 취약한 민주 국가였다. 위기가 왔을 때 두 나라의 리더십은 제대로 대처해나가지 못했다. 다른 두 나라, 중국과 인도는 달랐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 국가였고,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민주 국가였다. 확고한 정치 리더십을 바탕으로 두 나라는 때로는 과거의 유산을 벗어 던지고 때로는 반대파를 짓밟으며 자신들의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BRICs는 BR과 IC로 확연히 갈라졌다(아프리카 지역 안배 차원에서 넣어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브릭스

역사의 종말에서 이상의 종말로

따라서 이 현상은 십여년 전 한 금융기업의 예측보다 더 심원한 뿌리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자국의 오랜 문명적 전통과 국가적 차원의 권력을 결합시켰다. 또, 세계 경제와 권력의 중심지인 유라시아의 심장지대와 주변지대 모두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는 중국과 인도를 다시금 국제 무대의 강국으로 만들어주었다.

이것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오래된 미래]를 저술했던 1990년대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정한 오래된 미래였다. 그 대신 당시 서구 사회를 휩쓴 것은 거대한 이상주의의 파도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영원한 흑역사로 남을 [역사의 종말]과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제 모든 독재와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세계의 절대적 규범으로 등극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본디 지배자는 저항자의 성격도 규정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서구의 승리에 도취된 이상주의자들에 대항하던 노르베리 호지 같은 이들도 결국 동전의 뒷면만을 말하는 똑같은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노르베리 호지 같은 지식인들은 세계화가 불러올 전통 문화의 파괴와 환경 오염과 같은 문제에 집중했다. 하지만 막상 그 전통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속한 전통 문화와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물론 많은 경우 아무 의미 없이 파괴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간혹 있는 ‘생산적 파괴’에는 풍성한 대가가 주어졌다. 경제성장, 풍요, 중산층으로의 진입, 안락한 도시 생활. 서구 선진국 지식인들에게는 기억조차 희미해질 과거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서구의 세계 지배를 결정한 요인도 결국은 성장과 물적 풍요였다는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라다크의 소녀. 이 소녀가 자라 진심으로 꿈꾸게 될 것은 전통의 보존일까 아니면 그 파괴일까.
라다크의 소녀. 이 소녀가 자라 진심으로 꿈꾸는 것은 전통의 보존일까 아니면 전통의 파괴일까.

지정학의 부활

그래서 과거 서구의 경험이 보여준 바가 중요한 것이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 이래로 서구는 영국 중심의 패권 밑에서 세계 대분업을 주도하며 발전했다. 철도와 증기선이 세계 각지를 구석구석 연결했고, 특히 가장 밀도 높게 개발이 진행된 유럽 지리는 금새 좁아졌다. 과거 나폴레옹은 천재적인 전술적 역량으로 프랑스군을 이동시켜 전장에서 승기를 거머쥐었다.

이제 새로운 운송수단과 거대한 관료제의 등장은 나폴레옹의 업적을 구닥다리 유물로 만들어버렸다. 지리적 변화는 국내, 그리고 국제 정치의 문법을 바꾸었다. 국민교육, 교통과 통신의 발전 등의 요소들이 결합해 국민적 정체성이 등장했다. 새롭게 등장한 민족주의는 무력 사용의 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철도와 기선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등장함에 따라 국제적 갈등 또한 범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교통과 통신수단은 곧 무력 사용의 수단이었다.

의지와 수단, 두 개가 결합함에 따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나중에는 일본, 미국, 독일 등의 주요 산업 강대국들이 세계 각지의 땅을 자국 영토로 편입했고, 지구적 규모의 지정학적 경쟁이 최초로 등장했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은 카리브 해의 섬이나 향신료 군도, 거대한 인도 해안의 자그마한 교역소를 두고 펼쳐진 지구적 경쟁이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영국, 러시아, 일본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또는 ‘그림자의 토너먼트’)[footnote]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또는 그림자의 토너먼트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대영제국과 러시아제국 간의 전략적 경쟁과 냉전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보통 그레이트 게임은 1813년의 러시아-페르시아 조약부터 시작하여 1907년의 러시아-영국 우호 조약으로 끝을 맺는다. 일부에서는 1917년의 러시아 10월 혁명을 종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출처: 위키백과 – 그레이트 게임)[/footnote]은 유라시아 전체를 공간적으로 분할하고 권력으로 대지의 공백을 채웠다. 이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쟁이었다.

그레이트 게임 초반인 1814년의 페르시아 지도
그레이트 게임 초반인 1814년의 페르시아 지도

아시아 국가들이 이제 20세기 후반의 재세계화(Reglobalization)로 성장 대열에 합류하자 펼쳐질 그림이 무엇일지는 자명했다. 유럽보다 몇 배나 큰 아시아의 지리는 철도와 증기선 대신 고속철도와 컨테이너 항만, 송유관과 가스관, 고압 송전선으로 새롭게 통합되고 있다. 과거 근대화와 대중교육의 중추였던 각국의 군대는 첨단 장비로 무장해서 지정학적 경쟁에 얼마든지 뛰어들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중국과 인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라다크의 패싸움’은 역사와 지리의 귀환을 알리는 진정한 오래된 미래다(1편 참고). 역사는 종말한 줄 알았으나 그저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던 것이고 지리는 사회발전에 따라서 의미를 바꾼 것에 불과했다. 아시아 각국과 인도양 연안이 성장하면서, 또 기술 발전으로 거대한 공간이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되면서 세계섬(World Island: 지정학자 핼퍼드 매킨더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합쳐서 일컬은 개념) 전역이 경쟁 무대로 재편될 것이다.

이 지정학적, 전략적 경쟁의 참여자들은 물론 중국과 인도로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갖는 절대적 위상과 통제력이 줄어들면서, 소위 지역 강국들은 좋든 싫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일본, 오세아니아의 호주, 중동의 터키와 이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대표적인 나라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구, 영토, 경제 규모를 고려하였을 때 가장 주요한 플레이어들은 세계 질서에서 돌출하고자 하는 중국과 이에 맞서는 인도, 그리고 일본의 연합 세력 사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이었던 빌 에모트가 인터뷰한 인도 외교가 관계자의 말은 이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중국과 인도는 모두 미래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두 국가가 모두 옳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중국 인도

주변이 중심이다

오래된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중국과 인도의 경쟁은 인도양권에서 가장 치열하다.

이런 시각은 우리의 익숙한 사고와 거리가 있다. 왜냐면 중국과 미국이 주로 마찰하는 곳은 북한과 대만과 남중국해가 있는 태평양 연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태평양은 양대 초강대국을 포괄하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 경제권으로 향후 세계 권력의 진정한 중심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실질적인 경쟁 무대를 인도양으로 만들어준다.

대만 문제와 북한 문제를 끼고 있는 태평양은 양대 세력의 긴장이 너무 첨예하기 때문에 진정한 갈등이 벌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만약 현 상황이 신냉전으로 이어진다면 그 신냉전이 진짜 결판 나는 곳은 당연히 동아시아와 태평양이 되겠지만, 그 전(前) 국면에서는 인도양의 중요성이 태평양에 버금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도양 (출처: 구글 지도 캡쳐)
인도양 (출처: 구글 지도 캡쳐)

돌이켜보면 미국과 소련의 냉전도 그랬다. 냉전이 지구적 경쟁이었다고는 하지만 갈등의 진정한 중심지가 유럽이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소련의 중심지는 모스크바를 위시한 유럽에 있었고, 미국의 핵심적 이익은 대서양 연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처칠은 철의 장막이 “발트해의 슈체친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에 걸쳐 있다고 말하며 냉전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그 철의 장막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물리적 상징을 얻게 되었는데, 장벽이 붕괴되면서 냉전은 종료된다. 냉전은 유럽에서 시작해서 유럽에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주도했던 집단안보체제의 이름이 각각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라는 데서도 냉전의 유럽 중심성은 잘 드러난다.

그러나 반대로 냉전의 향방을 결정한 주요 사건들이 결정된 곳은 상대적으로 주변적이라 할 수 있었던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이었다. 냉전 기간 내내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한 곳도 이 지역이었다. 두 초강대국의 지도자들은 모두 본국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유럽에서의 긴장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갈등을 감수할만 했던 주변 지역에서는 피가 흩뿌려졌다.

스탈린은 독일에서의 실책을 만회하고 태평양으로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 전쟁을 조장했다. 미국은 중국에서의 실패를 보상 받기 위해서 동남아시아에 깊숙히 개입했고,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소련은 쾌재를 부르면서 베트남에 군항 사용권을 얻고 군사 교류를 확대했다. 그 반대급부로 미국은 소련을 압박하고 베트남이라는 덫에서 나오기 위해 마오쩌둥의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이후 소련은 서쪽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이란 이슬람 혁명의 영향이 중앙아시아로 미치는 걸 차단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리고 소련을 발목 잡은 것은 레이건의 거창한 스타워즈 계획과 유럽에 배치된 미사일이 아닌 아프가니스탄 산맥의 무자헤딘들이었다.

남아시아와 인도의 그림자

21세기의 유라시아 지정학 경쟁도 이 점에서는 과거의 냉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세력 분포가 전부 강하게 고정된 태평양은 가장 강도 높은 정치적 긴장이 형성되는 공간이겠지만, 그렇기에 전략적 경쟁은 그 바깥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 대신 태평양의 세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긴장의 정도도 낮고, 무엇보다 세력분포가 유동적인 인도양이 주 무대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이는 특히 인도가 어느 정도로 중국을 뒤쫓아가 떠오르냐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그러나 지난 8월 도카라 사태(중국·인도·부탄 세 나라가 만나는 ‘도카라’ 지역에서 벌어진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 이후로 인도는 보다 공격적으로 인도양 연안에서 활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의 공조는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이 경쟁에서 중국이 승리하게 된다면 인도양, 태평양에서 가해지는 미국의 자국 공급망 압박과 해상봉쇄를 우회할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중국이 태평양에서 더 공세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의미다.

도카라(인도에서 부르는 명칭) 혹은 도클람(부탄에서 부르는 명칭) 또는 둘랑(중국에서 부르는 명칭)
중국과 인도, 부탄의 세 나라가 만나는 도카라(인도에서 부르는 명칭) 혹은 도클람(부탄에서 부르는 명칭) 또는 둥랑(중국에서 부르는 명칭)

그래서 신냉전이라는 것이 벌어진다면, 가장 치열한 무대는 인도 본토의 배후 지역, 즉 남아시아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서쪽으로는 석유가 흘러 나오는 호르무즈 해협과 인도양에서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수에즈 운하, 동쪽으로는 석유를 빨아들이면서 태평양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말라카 해협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강력한 해양 강국을 꿈꾸는 인도는 주변국에서 중국이 벌이는 활동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미 비동맹 시절부터도 인도는 전통적으로 남아시아에서만큼은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었으며, 경우에 따라선 무력 사용도 주저하지 않았다. 1971년 인디라 간디가 지휘한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은 대표적인 예시다. 원래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가 서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자 파키스탄군은 방글라데시 지역에서 잔혹한 학살을 벌였는데, 인도군이 개입하여 파키스탄군을 분쇄하고 방글라데시를 사실상 독립시켜준 것이다.

인도가 자국도 아닌 부탄의 도카라 도로 건설을 둘러싸고 벌인 최근의 분쟁도 40년 세월을 건너 뛰었어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지역 패권 추구가 인도만의 습성인 것은 아니다. 더 멀리 다른 나라들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이 쿠바의 혁명 정권을 전복하려고 시도했던 피그만 침공 사건, 소련군이 급파되어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 공산주의자인 두브체크를 무력으로 실각시킨 사건,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격렬한 반발이 바로 그런 사례다. 자국에 대한 위협을 먼저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주변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일환인 것이다. 물론 그 ‘예방 조치’에 당하는 국가들은 패권주의적 횡포라고 생각할 것이고, 사실 두 경우가 모두 진실이다.

신경전

인도에 문제가 있다면 이런 배후 지역이 이미 중국의 배후 지역으로 편입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인도는 가깝게는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를 자국의 확실한 영향권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멀리는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몰디브까지도 그렇게 본다. 파키스탄은 적대국이기에 영향권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핵심 지역일 수밖에 없다.

이 중 중국은 파키스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다시피 했고, 미얀마는 차욱퓨 항구와 시트웨 가스관을 매개로 그럴 조짐이 보인다. 한편 방글라데시는 파이라 항구와 가스관을, 스리랑카는 함반토타 항구를 중국 주도 하에 개발하고 있다. 몰디브는 중국과 FTA를 체결했다. 네팔은 친중국 좌파 연정이 출범하여 인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혼란의 대명사인 아프가니스탄마저도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할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인도 입장에서는 수천년 동안 유목민들이 침략의 길목으로 삼아 왔던 ‘지정학적 악몽’이라는 점에서 뉴델리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편집)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편집)

인도가 2017년 5월 일대일로 포럼에 불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아시아 전역에서 일대일로를 통해 펼쳐지는 중국의 공세에 불편한 심기를 표한 것이다. 인도는 2010년대 초반부터 중국의 공세에 대응해 남아시아에서 구심력의 원천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노력 중이다. 미얀마 로힝야 난민 사태 당시 인도가 중국과 함께 입을 다물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인도는 미얀마를 거쳐 태국, 나아가 베트남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해 아세안 지역에 접근하고자 하고 있다. 인도는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미얀마 정부가 어떤 일을 벌이든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이 미얀마를 접수할 것이 분명하다.

‘자유와 번영의 호’에서 인도 태평양까지

그렇지만 인도의 국가 역량은 중국에 비해 역부족이고, 역외 경제 협력의 경험조차 없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세력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은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 당시 “아시아 자유와 번영의 호(弧·둥근 활 모양)라는 개념을 만들면서 태평양과 인도양 연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다.

일본 민주당이 추구한 '자유와 번영의 호' 외교 전략
일본 자민당이 추구한 ‘자유와 번영의 호’ 외교 전략

이를 주도 했던 것은 당시 외상 아소 다로였다. 제1차 아베 내각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곧이어 민주당 내각이 들어서면서 이 구상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중국에 대한 위기의식이 전례 없이 확산됨에 따라 새로이 ‘인도 태평양’이 부상하게 되었다.

일본은 역내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할 역량은 부족해도 선진화된 경제, 오랜 공적개발원조(ODA) 경험, 수준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인도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대신 인도는 일본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정치적 주도권과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국가의 협력은 ‘아시아 아프리카 성장 회랑’(AAGC, Asia-Africa Growth Crridor)이라는 프로젝트로 드러나게 된다. 일본이 비교적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을 통해 인도양 연안 각국의 인프라를 개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명백히 일대일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노리고 발족되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출처: eria.org http://www.eria.org/Asia-Africa-Growth-Corridor-Document.pdf
출처: eria.org

이제 양국의 협력 프로젝트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9월 아베는 인도 총리 모디의 고향인 구자라트를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진행했는데, 구자라트의 주도 아흐메다바드와 뭄바이를 잇는 신간선 착공식에 참석해 15조 원 규모의 차관 약속까지 했다. 총 사업비의 80% 규모다. 고속철도가 중국으로 인해 현대의 가장 첨예한 인프라 사업이 된 것을 생각하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명확해진다.

또한, 양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과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란의 차바하르 항과 스리랑카의 트링코말린 항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제조업 투자에 목마른 인도와 협력하고 중국 리스크를 분산하는 차원에서 중국에 진출한 제조업 기업을 인도로 옮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2017년 12월 5일, 히라마쓰 겐지 주 인도 일본 대사와 브라마니암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부 차관은 뉴델리에서 제1회 일본-인도 신동방정책 포럼을 발족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등의 관계자들은 인도 동북 8개 주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비롯한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동남아시아와 인접한 이 지역들을 개발하여 모디의 동남아시아 접근 전략인 ‘Act East’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항하는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 아베와 모디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SA)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rime_Minister_Narendra_Modi_meeting_Japanese_PM_Shinzo_Abe.jpg
중국에 대항하는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 아베와 모디 (출처: 위키미디어 공유, CC BY SA)

중국이 그동안 독무대로 활약한 아프리카도 빼놓을 수 없는 무대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피로를 느낀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안으로 일본과 인도를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시민사회가 형성된 나라일 수록 이런 경향이 강할 수 있다. 더불어 인도는 식민지 시절에 아프리카에 이미 강력한 인도인 이민자와 사업가 네트워크를 구축한 바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활동하던 지역이 남아프리카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두 지역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진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역, 이를테면 과거사 문제에서도 두 정상은 공감대를 표하기도 했다. 비록 식민지였지만, 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에 속해있던 인도가 어떻게 패전국으로서 제대로 과거사 청산도 안 한 일본과 공조할 수 있는지 의외로 여겨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두 국가의 연결점은 1946년 5월 도쿄 전범 재판에 인도 대표로 참석한 라다비노드 팔 판사다. 팔 판사는 일본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벌인 침략 행위가 본질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벌인 침략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질문하고, 과연 승자가 패자를 처벌할 자격이 있는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946년 5월 도쿄 전범 재판에 인도 대표로 참석해 (적어도 결과적으로) 일본 입장을 최대한 옹호한 라다비노드 팔 판사.
1946년 5월 도쿄 전범 재판에 인도 대표로 참석해 (적어도 결과적으로) 일본 입장을 최대한 옹호한 라다비노드 팔 판사.

결국, 식민지의 영향력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일본은 팔 판사의 의견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후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팔 판사의 동상까지 만들어 그를 기념하고 있고, 아베는 인도에 가서 팔 판사를 모르는 일본인은 없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와 일본의 협력이 다분히 중국을 의식하고 또 견제하기 위해서 진행되는 것이긴 해도 과거의 냉전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과거 소련 주도 하의 공산권은 천연자원의 제한적 무역을 제외하면 서방권과 어떤 주요 무역 창구를 열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인도, 일본이 진행하는 일대일로, 아시아아프리카성장회랑 등의 모든 사업은 공식적으로 상대방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세계화와 경제발전이 포지티브섬 게임의 성격을 지니고, 경제적 영향력이라는 것은 마치 미얀마에서 중국과 인도가 그러하듯이 공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베는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조건으로 일대일로 사업에 자금 지원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인도는 이란 문제에서 미국 대신 중국에 공조하기로 결정하면서 여전히 ‘가장 거대한 개발도상국’끼리의 유대 내지는 공동이익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성장 기대지역으로서 중국과 인도가 서로를 포기할 수 없는 점도 중요하다. 중국 스마트폰은 인도 시장을 휩쓸고 있고 인도 또한 중국의 소비시장이 주는 매력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중국과 인도의 전략적 부상, 일본과 인도의 밀착, 협력과 견제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는 세계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나는 이것이 2018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서 패권국가로서 중국의 향방, 아시아의 세력 균형, 개도국의 빈곤퇴치와 경제 통합, 정치적 안정 등의 세계 주요 이슈가 하나로 모인다.

여기서 아프리카부터 인도,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지역이 불안정의 늪으로 빠져들지 아니면 번영의 길로 나아갈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최근 붕괴한 중동과 아프리카 사회에서의 난민 유입이 유럽 사회에 준 충격에서 잘 드러나듯 이 문제는 종국적으로 선진 사회들이 나아갈 길도 결정할 것이다.

안 좋은 길로 들어갈 경우 중동에서 이란과 사우디가 벌이는 지역적 냉전이 인도양 전역에서 벌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고립을 선언하여 서반구로 후퇴하고, 중국의 돌출을 나머지 국가들의 자력으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는 카터가 박정희에게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고 월남전에서 빠진 이래로 아시아 국가들이 공히 공유하는 악몽이다.

실제로 최근 트럼프는 경제원조를 해주어도 무엇 하나 돌아오는 것이 없다며 파키스탄을 비난했는데 미국의 이런 행동은 주변국들에게 안 좋은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심지어 중국의 배후지로 전락한 파키스탄마저도 이를 전적으로 달가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갈림길 아기

아니면 전략적 경쟁 국면은 사그라들고 미국 대신 아시아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세계화를 주도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건 정반대로 상정해본 가장 좋은 길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꽃길은 가시밭길보다 실현 가능성이 훨씬 낮다. 중국은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력한 민족주의 노선을 걷고 있으며, 아무리 적어도 주변국에 당근을 주는 것만큼, 때는 그 이상으로 철권을 휘두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인도도 이 길을 따라가려고 하고 있다. 문명적 자부심과 국수주의가 넘치는 두 대국의 경쟁의식은 라다크에서 주먹을 교환하며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를 보여준 병사들이 가장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 유럽, 일본 위주의 국제 규범이 그 장악력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는 지금 국제적 분쟁을 처리할 상위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도 가시밭길에 개연성을 놓아준다.

이제 각국은 자국이 쥐고 있는 공급사슬과 데이터 흐름까지도 전략적 자산으로 사용하려 들 것이다. 센카쿠 분쟁 때 사용한 희토류 금수 조치, 사드 배치로 감행한 한한령 말고도 실제 사례들이 계속 누적되고 있다. 중국은 아삼 지역 상류의 홍수 정보를 하류에 위치한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늘 공유해주고 있었는데, 2017년에는 방글라데시에만 정보를 공유해 인도측이 큰 홍수 피해를 본 일이 있었다. 홍수가 도카라 분쟁 이후에 발생한 걸 생각하면 중국의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 비스마르크와 스탈린이 능수능란하게 다뤘던 힘의 정치와 협상의 기술이 재등장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거대한 바둑판

실제 시나리오는 아마 극단적 경쟁과 사이 좋은 화합 사이의 어디쯤일 것이다. 그리고 경쟁 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 10년 간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일본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 지역에서 주로 경쟁을 벌이면서 때에 따라서는 협력을 통해 긴장이 너무 나아가지 않도록 조절할 것 같다.

각국이 생산 네트워크와 글로벌 가치 사슬로 긴밀하게 얽힌 지금 시대에 지정학적 리스크를 지나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국내의 불안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국내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 민족주의적 행보를 보일 필요도 있다는 점이 사태의 본질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냉전이 끝난 뒤 유라시아 지정학을 두고 “거대한 체스판”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다. 하지만 포위에 역포위에 또 다시 역포위를 이어가는 지금 상황은 거대한 체스판보다 ‘거대한 바둑판’에 가까워진 것 같다. 대개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바둑돌들은 양 진영의 경쟁관계를 활용하여 흑백 사이의 등거리 외교를 구사할 것이다.  인도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남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아세안 국가들, 그리고 이란과 터키 같은 지역 강국들,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수출국들이 그 후보들이다.

Jaro Larnos, CC BY
Jaro Larnos, CC BY

하지만 파키스탄처럼 특수한 지정학적 상황에 놓여 있거나, 북한처럼 극악한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중국에 밀착해야만 할 것이다. 필리핀은 최근 두테르테의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이 들어오자 남중국해 문제로 대립해오던 중국에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서방의 비판자들로부터 비호를 요청한 것이다. 최근 30년 넘게 캄보디아를 통치하고 있는 훈 센 총리도 비슷한 이유로 중국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제3의 시나리오? 지역적 연합의 가능성

제3의 시나리오는 없을까? 이를테면 중국과 인도의 막강한 중력권에 빨려 들어가는 대신, 좀 더 작은 나라끼리 뭉쳐 또 다른 구심점을 형성하는 해법 말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연합체인 아세안이 대표적이다. 아세안은 인구가 6억 3천만명에 육박하고 GDP는 인도보다 높다. 뭉친다면 충분히 하나의 구심점으로 기능할만 하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도 힘들어 보인다. 아세안 국가들은 경제적 발전단계와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상이하다. 한 국가 안에서라면 감당 가능할 수도 있지만, 국가 연합에서 이 점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은 훨씬 성숙하고 부유한 유럽연합이 잘 보여주었다.

아세안

또한, 역사 문제와 지정학 문제, 종교에서 비롯된 정체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미얀마의 로힝야 사태를 보며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가 웃으며 넘어갈 수만 있겠는가?

비슷한 구조적 제약 때문에 두 거대 국가의 중력에 거스를 수 있는 지역 연합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서도 성립이 불가능할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경우,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과 경쟁관계에 있으며 키르기스스탄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고, 투르크메니스탄은 지역 문제에 깊이 연루되는 것 자체를 기피한다. 불합리한 국경선으로 인한 자원 쟁탈전과 부족 간 갈등으로 얼룩진 아프리카도 비슷하다. 물론 분열이 극심한 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의 미국과 그 너머

위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그러했듯이 초강대국 미국의 역할이다. 향후 인도양과 유라시아에서 미국이 어떻게 행동하고 또 자국의 역할을 규정할 것인지에 따라 게임의 전체 향방마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첫 1년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이란에 대한 강경노선은 엄청난 탄화수소 에너지원을 보유하고 카스피해와 인도양을 잇는 천혜의 요지에 있으며 이슬람권 전역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 대국을 중국과 러시아에 밀착시키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인도도 이란에서 중국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하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것 또한 크나큰 실책이었다. 인도양 연안의 이슬람교 국가들 사이에서도 미국의 리더십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과거에 갖고 있던 국제적 주도권을 미국이 점차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간 경쟁은 지정학적인 측면보다는 보다 다른 곳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미국은 유라시아 지정학 게임에서 2선으로 후퇴하여 1선의 인도와 일본을 지원하는 데 자원을 집중할 수도 있다. 실제로 로버트 카플란은 2012년에 낸 저서 [지리의 복수]에서 미국은 유라시아에서 균형화 세력을, 아메리카에서 통합화 세력을 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두 노선이 어그러지게 되었는데 예측 가능한 인물이 다음 대통령을 맡으면 얼마든지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지리의 복수

네 가지 시나리오 

그렇다면 트럼프 이후 미국, 일본, 중국, 인도는 서로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가게 될까?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1. 미국 패권의 지속

이는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나리오다. 미국의 GDP는 절정기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25% 아래로 내려왔다. 세계에 대한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유럽연합, 일본과 같은 서방 진영의 동맹국을 합치면 장악력은 여전히 늘어난다고 할 수 있지만, 최근 들어 늘어만 가는 미국의 신뢰 상실은 서방 동맹의 응집력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제 중국과 미국이 정치, 경제, 환경 문제에서 전방위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생긴 이상, 중국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미국의 의지를 강제하는 시대는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의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자”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로널드 레이건의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자”였다. (출처: 위키미디어)
도널드 트럼프의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슬로건 역시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자”였다. (출처: 이베이)
도널드 트럼프의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슬로건도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자”였다.

2. 중국의 돌출

미국이 아시아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두려워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중국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게 된다. 이 시나리오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첫째 시나리오가 이루어질 가능성보다는 높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의 패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패권의 지속이 가장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라면 중국의 돌출은 가장 불안정한 시나리오다.

중국은 미국이 빠져나가더라도 다른 모든 아시아 국가들을 장악하기엔 힘이 부족하며, 아시아의 지리는 여전히 너무 넓다. 아시아 각국은 안보 불안으로 서로 손을 잡아 중국에 맞설 것이다. 아마 중국과 기타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무역 충돌과 정치적 분쟁은 계속 잦아질 것이다. 자연스레 인도양과 태평양 경제의 성장 엔진은 속력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21세기 그레이트 게임: 미·인·일 연합의 등장 

지금까지 살펴본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인도와 일본의 대응으로 미루어보아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거세게 일어난 미국의 고립주의 여론과 동반구에서의 실질적 지배력 약화가 맞물려 미국의 세력은 최전선에서는 한 발짝 물러날 개연성이 크다.

그 대신 인도와 일본이 선택한 전략은 등 뒤에는 여전히 미국을 놓은 채 자신들끼리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인도 태평양 구상이나 미국 없는 TPP 추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신 로버트 카플란이 제안한 것처럼 미국은 세력 균형의 주춧돌로서 유라시아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인도양과 유라시아에서 펼쳐지는 최전선의 갈등은 이제 일본과 인도의 몫이 될 것이다. 각국에서 세력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경쟁도 이제 이 두 나라가 맡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최전선에서 충돌이 벌어질 때는, 여전히 언제든지 미국이 투입될 수 있도록 힘은 새롭게 배분될 것이다.

과거 그레이트 게임에서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자 일본을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해준 일들이 다른 형태로 재현될 수 있다.

4. 아시아 협조체제 

마지막 네 번째 시나리오는 가장 안정적인 시나리오지만, 실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바로 아시아 협조체제이다. 일찍이 유럽 국가들은 나폴레옹 전쟁의 폐허 위에서 ‘유럽협조체제’를 만들어 운영해온 선례가 있었다.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유럽의 5대 강대국으로서 유럽의 수많은 외교 문제를 놓고 거래와 협상을 이어갔다.

물론 강대국 간의 협상 결과에 따라서 약소국들의 운명이 180도 달라지기도 했다. 동방문제나 헝가리, 폴란드 문제 등에 있어서 약소국들에게는 발언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스템은 1815년 이래로 50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지속되었으며 넓게 볼 경우 제1차세계대전이 시작되는 1914년까지 100년을 이어갔다.

아시아협조체제는 현재 아시아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요 강대국들이 모여 아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 현안을 풀어나가는 자리가 될 것이다. 회원 자격이 있는 나라는 중국, 인도, 일본, 그리고 미국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와 달리 이 경우 인도와 일본은 전적으로 미국과 협조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회원국들은 사안에 따라서 제각기 다양한 형태로 뭉칠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트 게임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각국은 유라시아, 아프리카, 인도양 지역에서 세력을 확대하고자 서로 경쟁할 것이다.

아시아

현실은 이 네 시나리오 사이를 복잡하게 움직일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전술했듯 ’21세기 그레이트 게임’ 시나리오에 개연성을 무겁게 놓는다. 그러나 네 번째, 두 번째, 혹은 첫 번째 시나리오로도 상황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유럽협조체제가 독일의 돌출로 위기를 맞이하고 전쟁까지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또 아시아 협조체제 시나리오는 강대국 간 충돌이라는 면에서는 가장 안정적이나, 한국과 같은 중소국가들의 안전을 전적으로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이 시나리오들이 한국에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장 가능성 높은 ‘그레이트 게임’을 검토해봐도 사실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유라시아와 인도양을 둘러싼 경쟁이었던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은 러·일전쟁과 가쓰라-태프트 밀약, 경술국치로 끝났다.

이후 영국은 독일의 돌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러시아와 삼국협상으로 손을 잡았고, 조선은 그렇게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으로 받쳐졌다.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이나 아시아 협조체제가 의미하는 것도 이런 암울한 미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미래는 맞지만, 암울하지만은 않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한국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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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오래된 미래 

  1. ‘라다크’에서의 패싸움
  2. 헬싱키의 함정 
  3. 누가 인도양의 주인이 되는가
  4. 아베의 몸부림
  5. 힌두 민족주의가 삼킨 네루의 유산 
  6. 21세기 ‘그레이트 게임’
  7. 한국, 자기부정과 과대망상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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