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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의 초반부에서 개념적 은유 이론(CMT; Conceptual Metaphor Theory)과 교육에 관한 함의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마크 터너(Mark Turner)등의 학자들이 주창한 개념적 은유 이론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인지언어학의 주요 분과로 자리매김하였고, 지금까지 많은 교사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시대를 연 이론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개념적 은유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은유의 생산과 해석 과정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한 개념이 바로 ‘개념적 혼성(conceptual blending)’입니다.

오늘은 개념적 혼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만화 한 컷을 살펴보려 하는데요. 이론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인 만큼 이 글에서는 개념적 혼성을 ‘사회적, 문화적, 시대적으로 다양한 개념적 요소들을 순식간에 섞어(blend) 의미를 만드는 일’로 정의합니다.

'장도리'로 본 개념적 혼성

[장도리]로 살펴보는 개념적 혼성의 예

제 생각에 개념적 혼성의 꽃은 시사만화입니다. 복잡다단한 사건과 개념들이 몇 컷 안되는 공간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와 감동도 긴 사설에 못지 않지요. 이렇게 효율적인 의미표현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다양한 개념공간을 자유자재로 섞어가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냄으로써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5월 8일 자 경향신문의 시사만화 [장도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장도리] 2014년 5월 8일 자
[장도리] 2014년 5월 8일 자
두 번째 컷을 살펴봅시다. 검찰의 옷은 지금의 것이 아닙니다. 검찰 초기의 법복이 현재의 검찰조직을 상징하는 한 검사에게 입혀져 있죠.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국가 하위조직으로서의 검찰’이라는 의미를 따오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조선 시대 느낌의 관복과 그것을 입고 있는 개인, 이 둘을 관통하는 의미를 쉽게 파악합니다.

탐욕스럽고 고집불통 같은 얼굴은 만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에 대한 검찰조직 전체의 태도를 함축합니다. 실제 서류를 보지도 않고 내팽개치는 물리적 행동을 묘사함으로써 증거와 의혹을 쓸어버린다는 비유적 의미를 표현합니다. (물론 실제 검찰 조직의 책임자가 서류를 쓸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그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아울러 이 상황은 많은 직장인이 기획서를 들고 상사의 방에 들어갔을 때 경험해 봤을 만한 짜증과 모멸감을 연상시킵니다. 독자의 공감대를 넓히는 장면임에 틀림이 없죠. 당황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검찰 조직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검찰의 행태에 짜증을 내고 분노하는 일련의 사회 구성원과 집단을 상징한다고 봐야겠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와 비슷한 구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출처: [거인의 별] 제32이야기 "악마의 깁스" 편)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와 비슷한 구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출처: [거인의 별] 제32이야기 “악마의 깁스” 편)
이런 면에서 개념적 혼성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사회문화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외국어로 만화를 보는 게 어려운 건 언어적 문제, 즉 단순한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다 이러한 혼성(blending)에 내포된 개념적·문화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두 번째 컷은 마지막 컷인 “검찰수사 마무으리”에 가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합니다. 즉, [장도리]라는 시사만화가 터프한 이미지로 유명한 남자 배우의 광고와 겹쳐지며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마무으리’는 장도리 만화와 모 식혜 광고를 이어줌과 동시에,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일련의 ‘으리’ 시리즈를 연상시킵니다.

YouTube 동영상

이런 효과를 노렸기에 “마무리”라는 표준 발음이 아니라 “마무으리”라는 비 표준적 발음이 사용되었죠. “으리”는 “으리으리”와 음가를 공유하면서 은밀하게 ‘B급 표기 문화’를 가리킵니다. 이런 표현은 특정한 사회문화적 집단에 의해 향유되고 전파되므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쉽게 접근하기 힘듭니다.

한편 상품 광고의 말미에 등장하는 ‘마무으리’가 만화의 마지막 컷에 삽입되어 수사적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두 ‘마무으리’가 같은 위치에 등장하는 것이죠. 검찰의 선언은 광고 속 ‘마무으리’라는 대사와 겹쳐지면서 ‘마무으리’라는 표현의 느낌을 전달합니다. 검찰의 얼굴은 광고의 주인공인 남자 배우의 후덕한 얼굴형을 연상시키고, 검찰과 사이좋게 주먹을 부딪치는 인물은 대통령을 연상시키죠.

이제 올라가 다시 두 번째 컷을 보면 책상 위 서류를 쓸어버리는 행동은 광고 속 배우의 와일드한 액션과 겹쳐집니다. 실제 광고에서 남자배우는 이른바 ‘아메으리카노’를 들고 있는 여성의 손에서 커피를 가차 없이 쳐내고, 냉장고의 문짝까지 떼어 던져버리는데, 이 장면과 검찰이 ‘증거’, ‘의혹’을 쓸어내는 모습은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개념적 혼성을 학문적으로 적립하다

인간의 의미 생산 능력은 이처럼 역동적입니다. 두 장면의 비슷한 면을 순간적으로 조합하여 의미를 만들어 내면서도, 각각의 내용과 개념을 따로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죠. 수많은 개념적 요소들을 순식간에 조합하여 의미를 만들고 해석하는 능력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특성 중 하나고요.

이런 사실에 천착하여 개념적 혼성(Conceptual blending)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인지언어학자 질 포코니에(Gilles Fauconnier)와 철학자 마크 터너(Mark Turner)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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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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