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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어현상이 다른 언어적/비언어적 요소의 영향을 받아 일정한 특성을 갖게 되었다면, 그 현상의 배후에는 언어적/비언어적 동기가 있으며, 동기화 되었다(motivated)고 말할 수 있다”

– 라덴 & 판터

지난 글에서 언어의 자의성과 동기화라는 개념의 중요성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글의 말미에 제기한 질문에 대답하며 동기화의 다양한 측면을 고찰합니다.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여러 형태의 동기화

십진법의 기원

십진법의 기원을 명확히 규명할 수는 없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은 인간의 신체, 그중에서도 손가락의 형태 및 개수와 관련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조르주 이프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체를 이용해 수를 헤아리는 여러 기법들 가운데서도 손가락에 의존하는 방법이야말로 사실상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인류는 한 손의 손가락들에서 다섯까지 추상적으로 헤아리는 법을 배웠고, 다른 한 손의 손가락들에서 대칭에 의해 열까지 연장시키는 법을 배웠으며, 자연정수의 규칙적인 연속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숫자의 탄생] 68쪽에서

이에 대한 간접적 증거로 중앙아프리카의 알리(Ali)어에서 5와 10을 나타내는 단어가 각각 ‘손’과 ‘두 손’에 해당한다는 점, 뉴기니의 부길라이(Bugilai)어에서 1부터 5까지의 수가 다섯 손가락 각각을 나타내는 단어와 겹친다는 점을 들고 있지요.

손가락이 다른 신체에 비해 자유롭고 움직이기 쉬우며, 길이에 있어 비대칭적이어서 혼동할 염려가 없다는 사실 또한 10진법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합니다.

손바닥

이런 증거는 10진법의 탄생, 발전, 확산에서 시스템으로서의 우수성뿐 아니라 신체와의 긴밀한 연관이 큰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즉, 10진법이라는 수 현상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동기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box type=”note”]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같은 10진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문화권마다 손가락 셈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손가락을 편 상태에서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를 하나씩 접어가면서 숫자를 세지만, 대부분의 유럽인은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부터 하나씩 펴가면서 숫자를 셉니다.[/box]

의성어와 동기화

언어 외적인 동기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예가 바로 의성어입니다. 소리를 흉내 내는 말이니 실제 소리의 특징을 담고 있을 거란 주장이죠. 하지만 다양한 언어의 의성어를 비교해 보면 이런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가 짖는 소리를 살펴보죠. 한국어에서는 ‘멍멍’ 혹은 ‘왈왈’이라는 의성어가 사용되지만, 발리어에서는 kong-kong, 터키어에서는 hev-hev라는 표현이 주로 사용됩니다. 사실 영어 내에서도 woof-woof, ruff-ruff, arf-arf, bow-wow, yap-yap 등 실로 다양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언어적 특성이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 흥미로운 예로 소리상징(sound symbolism)으로 불리는 현상을 들 수 있는데요. 특정한 음성분포가 특정한 의미역에 연결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fl-"로 시작하는 단어들

예를 들어 영어에서 ‘fl-’은 종종 가벼움(lightness)이나 빠름(quickness)과 같은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 일부가 됩니다. “fly, flee, flow, flimsy, flicker, fluid”등은 모두 이들 특성과 관련이 있죠.

"gl-"로 시작하는 단어들

이에 비해 “gl-”로 시작하는 단어들은 빛남, 밝음(brightness)과 관련이 큰 경우가 많습니다. gleam, glisten, glow, glint, glitter, glimmer 등의 단어가 그 예입니다.

"-ump"로 끝나는 단어들

“-ump”로 끝나는 단어 중에서는 유독 뾰족하지 않게 튀어나온 것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많습니다. 낙타 등의 육봉이나 둥근 언덕을 나타내는 hump, 덩어리를 나타내는 lump, 통통하다는 의미의 plump, 엉덩이를 이르는 rump, 그루터기나 밑동을 나타내는 stump 등의 단어들이 주는 공통적 느낌이죠.

이들 음성상징이 언어의 자의성에 결정적인 반증은 될 수 없지만, 언어의 형식과 의미가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만국공통어, Huh?

2013년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된 한 연구는 이른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다루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언어에서 “Huh?”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들이 정해진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요. 한국어라면 “어?”가 이에 대응될 듯합니다. 다음의 예를 보시죠.

[box type=”info”]철수: 너 어제 미장원 갔다 왔구나?

영희: 어? 뭐?

철수: 어제 미장원 갔다 온 거 아니야?

영희: 아하하하. 요즘에 누가 미장원이라는 말을 써?[/box]

위 예에서 볼 수 있듯 “어?” 혹은 “Huh?”는 상대방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감탄사(interjection)입니다. 일상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죠. 그렇다면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이 다수의 서로 다른 언어에서 등장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연구자들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1. 먼저 인간이 처한 환경입니다. 상대의 말을 듣지 못했거나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은 어느 문화에서나 존재합니다.
  2. 다음으로는 환경에 대한 적응 전략입니다. 상대방에게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할 때에는 “(H)uh?”와 같이 길이가 짧고, 입술과 혀를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조음을 택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즉,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사소통기능을 “Huh”와 같은 단어의 사용으로 충족시켰다는 설명입니다. 이것은 진화생물학의 개념 중 서로 비슷한 환경에 처한 생물체가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에 해당하는데요, Huh와 같은 감탄사들은 언어 외적인 요인들(의사소통 환경, 인간 조음기관의 생물학적 특징 등)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으므로 동기화되어 있다(motivated)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Huh?! 하는 아기

이상에서 언어가 동기화되는 몇 가지 예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마도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동기화는 ‘발화가 길면 길수록 더욱 복잡한 개념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는 명제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합니다. 긴 단어는 복잡한 개념을 담고, 긴 문장은 짧은 문장에 비해 복잡한 내용을 표현할 때가 많죠. 형식과 의미의 양이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가진 것이어서 아래와 같은 유머의 기초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굉장히 짧은 단어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유머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box type=”info”]철수: (알 수 없는 외국어 발음으로) @#@% @#^# @$###@$ !@#!$ #!$@% @%@%@ @#!#!$ #^ #@$###@ $!@#!$# #^#@$### @$!@#!$ ##!$##^ #@$###@ $!@#!$#

영희: 어, 이게 무슨 말이야?

철수: 밥 먹자는 말!

영희: (꽈당)[/box]

참고문헌

  • 조르주 이프라 (2011). [숫자의 탄생]. 도서출판 부키.
  • 스미스소니언 매거진 – Everybody in Almost Every Language Says “Huh”? HUH?!
  • Blake, B. J. (2008). All About Language. Oxford University Press.
  • Crabtree, M & Powers, J. (2000). “Arbitrariness in Language.” Linguistics of American Sign Language, ed. by C. Valli and C. Lucas. Gallaudet Univ. Press, 2000
  • Liberman, A. (2005). Word Origins And How We Know Them: Etymology for Everyone. Oxford Univ. Press.
  • Radden, G. & Panther, K. (2004). Introduction: Reflections on motivation. In Radden, Günter, and Klaus-Uwe Panther, eds. Studies in Linguistic Motivation. Cognitive Linguistics Research 28, 1–46. Berlin and New York: Mouton de Gruyter.
  • 사이콜로지 투데이 – How Dogs Bark in Different 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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