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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스타트업 삥뜯고 세금 낭비하는 방법

인디스트릿은 인디뮤지션 공연소식과 인디밴드 정보가 모여있는 서비스입니다.

정부, “그냥 인디스트릿을 넘겨주면 안되겠습니까?” 

정부에서 직접 인디스트릿과 같은 서비스를 오픈하려 하니 협조해달라는 요청이 왔었습니다. 문화관광부 사업이고 ‘상부 지시사항’이라고 하니 어떤 취지에서 시작했는지 알만했습니다. 이런 서비스를 흥하게 하려고 정부가 응원해준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데없이 ‘갑툭튀’하여 아예 직접 똑같이 만들고싶다고 나선다는 소식에 솔직히 좀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공연소식이 널리 알려지고 인디밴드와 뮤지션이 노출될 기회가 늘어날 채널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입니다. 이를 위해 일해줄 수 있는 분들이 더 늘어나는 것도 큰 틀에서는 환영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인디스트릿이 인디음악을 위한 일종의 인프라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정부와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설정되는 건 좋을 거라 생각했죠. 잘 협의한다면 방향을 건강하게 선회시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일단 인디스트릿 같은 역할의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싶다고 하기에, 아니 그럼 고민할 거 없이 그냥 기관에서 인디스트릿을 인수해가시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기관에서 나오신 분은 ‘사실 그걸 제일 원하지만 예산이 없다’며 ‘그냥 사이트를 그대로 넘겨주면 안되느냐’더군요. 농담이겠거니 했습니다.

인디음악 위해 정부에 데이터 사용을 허락했습니다 

예산이 없어 인수하지 못한다면 운영을 지원하는 형태로 예산을 집행하면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시라고 했지만, ‘정부 이름으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므로 결국 정부 사이트는 하나 만들어야 한다’라고 하더군요. 이 분들이 원하는 바는 ‘정부 사이트에 코너를 새로 만들 터이니 인디스트릿이 인디스트릿의 데이터를 모두 정부에 제공해주었으면 한다’는 요청이었습니다.

가공된 데이터인데 그걸 구입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넘겨달라니 그 또한 찝찝했지만 ‘좋은 일 하시잖아요~’의 세계가 원래 그렇지 하고 그 또한 넘어갔습니다. 똑같은 공연일정 소식을 다른 사이트가 또 소개한다 하더라도 각 서비스가 차별화된 이용자 층을 가지고 있다면, 그 또한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홍보 채널이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뮤지션이나 공연장 입장에서도 한 곳에 등록해서 널리 공유되는 게 편하니까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연일정은 널리 퍼지면 널리 퍼질수록 좋은 일이고 그건 제가 원하던 바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수락했습니다. 단, 다음과 같이 권고했습니다.

1. 그리하기로 하자. 다만 시스템적으로 DB를 통째로 열어주는 건 깨끗한 방법이 아니고, 크롤링으로 짰다간 빈번한 수정에 대응 못할 테니, 차라리 공개된 임베드 위젯을 쓰시라.
2. 똑같은 웹서비스가 두 개 생기는 건 쓸모없는 일이니 공연정보는 부수적인 정보로 활용하시고, 차별화된 컨텐츠를 가진 사이트를 새로 만드시라. 매거진 형태가 되든 무엇이 되든 간에.

그 이후에도 추가 요청이 빗발치더군요.

계속 이어진 정부의 공짜 데이터 ‘요청’ 혹은 ‘구걸’ 

온갖 요청이 몰려왔습니다. 추가 요청 뒤에는 “실무자가 새로 생겼습니다.”, “실무자와 이야기해보시죠.”라면서 실무자에게 포워딩하는 메일로 “다음 컨텐츠를 확보하는 걸 협의하시오.”하고 보내오기도 했고, 심지어 제가 강연하러 다니는 곳까지 찾아와서 “데이터 좀 더 주세요.”라며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활용하고 싶어 하시는 건 좋은데 그렇게 다 요청하는 건 몽땅 퍼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나무랐습니다. 이렇게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같은 정보가 두 사이트에 똑같이 뜬다면 민간사이트의 존립가치는 없어지는 거다. 그럴 거면 맥스무비(maxmovie.com)왓챠(watcha.net)도 다 퍼가서 정부사이트로 통합하지 그러느냐!”

인디스트릿 ‘복제 사이트’ 기획서에 담아 보내온 정부 

다시 업무협조 미팅을 위해 방문해달라는 연락과 함께 기획서가 날아왔습니다. 이젠 ‘오라 가라고 까지 하나’,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하면서 첨부 파일을 열어보니 이번엔 인디스트릿과 모양마저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사이트를 제작할 예정이라며 UI 구성도까지 왔습니다.

상세 디자인까지 완벽하게 동일하고 로고만 다른 사이트입니다. 디테일하게도 공연장은 노란색 박스라던가 하던 인디스트릿의 컬러셋까지도 완벽하게 옮겼더군요. 하하하. 그분들의 의지와 철학이 너무나도 잘 전달되었습니다. 인디스트릿의 경우 디자인할 때 포토샵을 거치지도 않고 CSS로 짜버린 경우였는데, 그걸 그대로 PPT로 옮기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다 싶었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더 협조해드리는 건 적절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거절 메일을 보냈습니다.

한국형 K-플랫폼? 한국형 유튜브? 

한국형 K-플랫폼이니 한국형 유튜브니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관련 업계가 시끌시끌합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시작된 이 사업은 국감을 앞두고 새정치연합 우상호 의원이 밀어주고, 같은 당 문병호 의원이 비판하면서 세간에 더 크게 알려졌습니다.

정책의 당위성에 대한 평가는 제쳐놓기로 하겠습니다. 당위성 문장만 보면 훌륭하죠. 다만 그걸 사이트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맞서겠다는 호기가 무슨 배짱이냐는 것이 조롱의 바탕일 것입니다.

철학도 뭐도 없이 주먹구구로 일단 사이트 이것저것 만들고 여러 민간 단위에 ‘정부 시책이니 컨텐츠 등록 협조하라’고 괴롭히다가, 정권 바뀌면 담당자가 바뀐다든지 부처가 없어진다든지 혹은 윗분 관심사가 바뀌어 결국 서비스를 소리소문없이 닫고 마는 일은, 사실 수년 전부터 꾸준히 반복되어온 것이기도 합니다.

2010년부터 애플과 구글에 맞서자며 추진된 ‘한국형 통합 앱스토어-K앱스’ 프로젝트를 기억하십니까? 이 서비스가 지금 모두에게 잊힌 것처럼, 지금도 정부가 직접 발주하는 수많은 어플과 웹서비스들이 잊힐 예정으로 우후죽순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뭐든지 ‘통째로 베낀’ 마구잡이 정부 사이트 

공공서비스 거버넌스를 설계하면서 민간단위와 어떻게 상생할 것인지에 대해 폭넓게 논의되지 않고, 각 기관의 성과주의에 매달리다 보니, 뭐든지 다 담는 사이트, 뭐든지 다 하는 사이트, 잘하는 서비스 통째로 베낀 사이트가 준비 없이 마구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킥스타터 류의 사이트가 뜨니 정부가 직접 한국형 K-킥스타터를 만든다고 나섰고, 결국 창조경제타운이라는 서비스를 ‘청와대 보고’와 함께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소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상)과 한국형 킥스타터(?) '창조경제타운'(하)

소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상)과 한국형 킥스타터(?) ‘창조경제타운'(하)

‘아이디어 사업화’라는 아이템으로 플랫폼 서비스를 만들려던 많은 스타트업은 난데없이 정부와 경쟁하거나 맞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아이템을 접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K-유튜브를!’ 같은 구호로 추진되는 K플랫폼이 그 다음 차례인 모양입니다.

실은 그 수면 아래에도 위에서 소개한 인디스트릿 카피캣 서비스처럼 수많은 서비스가 부처마다 계속 준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키 같은 독서기록 소셜 서비스도 ‘독서진흥’ 차원에서 정부가 직접 운영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스타트업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많은 관심을 보이셨던 창조경제타운 청와대 보고회!

대통령님께서 많은 관심을 보이셨던 창조경제타운 청와대 보고회!

세금은 계속 들어가는데 성과는 없는 사업 

민간이든 정부든 누가 되었든 간에 좋은 서비스를 아주 잘 만든다면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세금을 들여 유익한 공공서비스, 유익한 공공데이터를 더욱 늘려가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서비스 아이템을 열심히 발굴하는 것도 아마 창조경제니 정부3.0이니 하는 정책구호에 부합되는 걸 거라 생각합니다.

민간에서 서비스하는 무언가가 공공서비스화되는 것이 더 유익하다면 그리 추진하는 것 또한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정부기관이 ‘잘 운영’할 리 만무합니다. 세금은 계속 들어가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는 사업!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정부가 만든 각 서비스의 지표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페이지뷰(PV)가 1천 명도 안되는 서비스가 수두룩하지요. 민간영역이라면 이 정도 지표일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당장 사업을 접습니다. 정부는 세금으로 예산을 책정하여 집행하는 집단입니다.

제11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관련 브리핑 대통령님 말씀. 사이트 만들기를 좋아하십니다. 몇번을 강조하시는지… http://www1.president.go.kr/news/briefingList.php?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6616

제11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관련 브리핑 대통령님 말씀.
사이트 만들기를 좋아하십니다. 몇 번을 강조하시는지…

그런 이유로 ‘서비스가 잘 팔리지 않고 있음’은 홍보예산 집행으로 메꾸어지고, ‘그래도 안 팔려서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 타이밍’은 사업을 처음 주도한 인물이 낙마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예산낭비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글로벌 사업자에게 주도권이 빼앗긴다’거나 ‘K-컨텐츠가 잘 팔면 무척 잘 팔리는데’, ‘정부가 이 친구들을 지원해줘야 하는데’ 등의 구호는 솔깃하지요. 하지만 그 구현을 ‘사이트를 만들겠다’로 퉁쳐버리는 건 사실 정책입안자로서는 무책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세금 낭비 스타트업 삥뜯기 사이트 제작은 이제 그만! 

조선시대 시전(市廛) 같은 건 21세기에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처럼 정부기관이 이렇게 많은 ‘인기도 없는’ 사이트를 마구 만드는 나라도 전 세계를 통틀어 많지 않습니다.

정부가 사이트를 마구 만들어 민간과 경쟁하려 하기보다는, 민간의 훌륭한 서비스가 정부정책 추진에도 도움이 되도록 좋은 협업 모델을 만들든지, 수익모델이 딱히 없지만, 공공적 가치가 높은 민간서비스 운영을 지원하든지 하는 방향으로 궁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니면 민간과 경쟁해서 제대로 만들어보던가요.

기왕 글을 다 읽으셨으니, 다가오는 공연일정은 인디스트릿에서 확인하시고, 인디스트릿 페이스북 페이지도 좋아요 눌러서 공연 일정도 배달 받아보세요!

인디스트릿

글 쓴지 몇 시간도 안 돼서 정부가 또 ‘통합포털’을 만든다고 보도자료를 냈네요.

내친 김에 정부가 사이트니 앱이니 직접 만들겠다고 발표하거나 실제로 만든 걸 한번 주욱 적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영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설계 10대 원칙으로 마무리합니다.

영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설계 10대 원칙

인디음악 공연과 뮤지션 정보를 제공하는 인디스트릿, 다양한 모임 준비에 도움을 주는 온오프믹스. 이들 중견 스타트업 서비스를 삥뜯는(베끼는) 정부 행태를 rainygirl(이준행 인디스트릿 대표) 님과 슬로우뉴스가 함께 비판하고, 끝까지 추적해, 대안 마련을 모색하려 합니다. 여러분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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