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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풍경에서 의미 찾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내가 사는 곳은 성남 정자동이다. 거기엔 랜드마크처럼 지하철역 앞에 우뚝 선 두 개의 건물이 있다.

SK  빌딩

킨스타워와 SK 빌딩 (사진: 서윤)

킨스타워 vs. SK 빌딩

하나는 킨스타워(사진 왼쪽)이고, 다른 하나는 SK 빌딩(사진 오른쪽)이다. SK는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 중 하나고, 반면 킨스타워는 다국적 IT 기업을 포함한 중소 벤처기업들이 입주한 건물이다. 덧붙이자면, 이 두 건물은 지난 2000년 성남시가 시행한 벤처기업 육성 촉진사업의 결과다.

사진은 며칠 전 산책하러 갔다가 정자역 탄천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를 걷던 중에 찍었다. 보다시피 양 건물에 켜진 불빛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 차이로부터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벤처 vs. 대기업

이 건물 풍경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사진은 오후 9시 30분에 찍었다.

킨스타워를 보면서는 “야근들 하는구나, 힘들겠다”라고 할 수 있겠고, SK 빌딩을 보면서는 “SK는 퇴근들 했네, 하여튼 큰 기업이 좋긴 좋아”라고 중얼거릴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킨스타워가 중소 벤처들이 입주한 건물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 두 건물이 뿜어내는 불빛의 차이를 우리 사회의 노동 환경에 관한 징표로 생각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과잉해석

저 두 건물의 불빛 차이로 벤처와 대기업의 노동환경 문제를 떠올린다고? 그건 좀 과한 해석이 아닐까?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메시지가 지닌 그 자체의 생명력을 상기해보라. 그렇다면 그저 과잉해석으로 치부할 수 없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그문트 바우만 (위키백과 공용)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회학의 쓸모](What Use Is Sociology)에서 메시지란 그것이 발생하는 순간 자체적인 수명을 지니며 나름의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그의 지적은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핀터레스트, 트위터와 같은 소셜 서비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의미의 재생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입증할 수 있다.

사진에 있는 두 건물의 불빛 차이는 SK 빌딩과 킨스타워 건물을 발원지로 하고 있지만, 불빛 차이가 보여주는 의미를 꼭 두 건물에 한정해 해석해야 할 필요는 없다.

세 가지 층위

SK 빌딩과 킨스타워를 바라보고 뭔가를 생각한 사람의 인식은 다음 세 가지 층위로 나눌 수 있다.

1. 시각 체험을 통해 즉각적으로 떠오른 어떤 것 (체험)

가령, 두 건물의 불빛을 바라보는 것 자체에서 사람들은 “아, 지금 꽤 늦은 시각인데 아직도 근무 중이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2. 시각 정보를 기존 정보와 종합해 가공 (분석)

두 건물을 비교하면서, 기존 지식을 거기에 더해 “큰 기업에 근무하는 이들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들 간의 차이”라는 의미를 추출해낼 수도 있다.

3. 분석한 의미를 관계적으로 맥락화 (추상화) 

그리고 끝으로 그렇게 도출한 지식과 정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에 관한 사유의 단초를 마련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제반 문제로 사유를 확장할 수 있다.

그 불빛의 차이, ‘갑툭튀’가 아니라 항상 존재해왔던 것

두 건물의 불빛 차이를 통해 무슨 깊이 있는 철학적 단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시각 체험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추상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례를 하나 예시해보자.

2013년 5월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 주인에게 폭언한 사건은 ‘남양유업 사태’로 번져 우리 사회 ‘갑을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남양유업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갑을 관계’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사건으로 평가돼 많은 언론에서 논평을 내기도 했다. 실은 한 차례씩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저변에 늘 숨어 존재하고 있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불빛의 차이’는 우리 사회에 흔히 있는 갑을의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일종의 징표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위계질서로 인해 지금 당장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런 부조리의 토대에서 남양유업 사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이것은 현실의 균열을 보여주는 아주 사소하지만 생생한 풍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좀 더 구체화하는 사유의 방법론은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인식의 문을 열어준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주위를 둘러보면,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것들이 실제로는 어떤 문제상황에 대한 단서를 주는 때가 많음을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한 모든 것은 나의 생활, 그 속에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숨겨진 맨얼굴 역시 우리 주변의 풍경, 그 일상 속에 있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필자 후기

오스카 와일드오스카 와일드(오른쪽 사진)는 자신의 유일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헨리 워튼 경의 입을 빌려 “감각은 영혼을 만들고, 영혼은 다시 감각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감각이 어떻게 사고방식을 만드는지에 대해 고민할 때 한 번쯤 생각해볼 만 문구인 것 같습니다.

감각이 어떻게 사고방식을 만드느냐는 것은,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감각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인식의 경로를 형성할 것인지로 바꾸어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형성된 인식의 경로는 이후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무수한 낱개의 사실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형성된 인식의 경로는 그 자체로 어떤 인식의 구조에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낱개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 인식의 구조를 가리켜 ‘성향’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가 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기실 그렇게 자명한 것이 아닙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문장처럼 사람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같은 사실도 다르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때로는 사실이 성향을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받아들임-지각의 대상과 인식된 것들은 상호적(reciprocal)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이런 상호적 관계 속에서의 지각과 인식작용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대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해석해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맡고, 맛보고, 만지고, 들리는 모든 것들이 대상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감 중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라는 곳은 거의 폭력적이라는 말을 써도 될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도록 강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획을 나누고, 도로가 닦고, 그 주변으로 보도를 설치합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눕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과 숨겨지는 것의 구도에서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 그리고 보이는 각각의 대상물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주변의 대상물은 그 자체로 일련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혹은 경제적 징표라는 의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이와 같은 점을 가리켜 시각성(visaulty)이라고 합니다. 현대사회의 시각성에 관한 단상들을 앞으로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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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초대필자. 대중예술인

전산과 전산수학을 공부했다. 만화로 전향한 뒤 카툰과 웹 일러스트레이션, 게임 원화 등을 하며 여러 분야에 촉수를 두고 독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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