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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15년 전(고등학교 2학년) 모습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제게 내린 가장 큰 벌은 바로 ‘비만’일 것입니다. 저는 제 인생의 3분의 2를 ‘고도비만인’으로 지냈습니다. 성장기 여느 아이들보다 특별히 많이 먹는다거나 편식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그냥 ‘돼지’였습니다.

공중목욕탕에서 ‘수영’하던 초등학생 아이

제가 기억하는 ‘돼지 시절’ 첫 번째 에피소드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전 공중목욕탕을 좋아했습니다. 수영과 목욕을 좋아했고, 집에서 먼 수영장 대신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수영을 하곤 했죠. 그래서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쯤은 꼭 함께 목욕탕을 가곤 했습니다.

그런 날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엔 열 살(3학년)이었지만 다른 이들보다 뚱뚱하다 보니 제 몸에는 가슴이 좀 있었어요. 그땐 친구들과 ‘사우나 들어가면 때 나온다’는 믿음으로 신 나게 놀고 난 뒤엔 항상 뜨거운 사우나 방으로 향했습니다.

사우나 아저씨

그런데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던 어떤 아저씨가 제 가슴을 만졌습니다. 스킨십을 싫어하는 저는(지금도 싫어합니다) 가슴을 만지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이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가슴이 없는 마른 남자애들과의 차이를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던 중 그 아저씨는 제 젖꼭지를 누르고 영문모를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밝히기 치욕스럽습니다만,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아래위로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성추행이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된 후 전 중년 남성에 대한 혐오감과 이성과의 성 접촉을 꺼리는 두 성향을 함께 갖게 됐습니다.

성추행이 뭔지 모르던 시절이지만 그 눈빛과 웃음에서 인간의 더러움을 인지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아마 제 가슴을 만지며 욕구를 해소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 때문에 전 그렇게 좋아하던 공중목욕탕을 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제게 콤플렉스를 안겨준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비만 = 더러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점점 살이 찌는 제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인상을 쓰곤 했는데, 본의 아니게 이를 ‘더러운 것을 보는’ 표정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뭐 몇 명 중 그런 생각을 한 친구도 있었겠지만요. 

하지만 그런 친구들의 시선은 오해였습니다. 저는 씻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집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 저는 조금만 땀이 나도 찬물을 온몸에 들이붓고 선풍기 앞에 앉아있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에 스무 번 샤워할 때도 있었죠.

겨울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온돌방에 등을 대고 있노라면 여지없이 땀이 흐르죠. 땀이 더럽다는 생각은 못 했지만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좋아서 겨울에도 자주 샤워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도 그렇고요.

당시엔 그 친구들이 밉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 뚱뚱한 모습이 그들에게는 ‘더러운’ 것이었겠죠. 달리 말하면 제가 뚱뚱한 것은 그들에게 잘못이었습니다. 전 잘못을 했기 때문에 매를 당연히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민한 뚱보

성인이 된 지금, 주변 사람들은 비만인들을 추하고 못된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넉넉하다’ ‘푸짐하다’는 개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저를 성격이 좋은 아이로 생각했죠.

모두가 저를 성격 좋고 넉살 좋은 아이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남들만큼 소심했습니다. 그렇게 넉살 좋은 편도 아니었고요. 지금도 예민하고 섬세한 구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비뚤어진 책을 바로 놓는다거나, 수도꼭지가 꽉 잠기지 않아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잠을 못 자는 것처럼요.

편견이 만든 거짓말

하지만 친구들의 (제가 넉살 좋고 이해심 많을 것이라는) 편견은 저를 어린 나이에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친구들은 뚱뚱한 친구가 성격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 둔하고 성격 좋은 아이처럼 행동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저는 늘 ‘차별’받았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세상 속에 숨는 계기가 됐습니다. 친구들은 당연히 마르고 날렵한 친구를 더 좋아했죠. 저는 운동회나 축구 시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외형적으로도 그들보다 나은 것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비만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면 ‘귀여웠을 것 같다’고 가끔 말씀하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통통하거나 뚱뚱한 아이가 귀여울 수는 있겠죠. 그런데 살이 축축 쳐지고 몇 겹의 배를 가진 아이도 귀여울까요? 저는 귀엽지 않았습니다. 둔해 보이고 성격 좋아 보이는 몸매는 저에게 많은 차별을 안겨줬습니다.

선생님의 차별

앞서 말했듯 친구들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다른 종’ 같은 제가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겠죠. 초등학생들이 편견으로 저지를 수 있는 나쁜일이여봤자 저에게 큰 상처를 주진 않았고요.

그런데 차별 때문에 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힌 존재는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을 원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잘못한 적이 없는 못생긴 아이에게 공평할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친구들과 비슷하게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를 성격 좋고 아무거나 주면 다 먹는 아이로 생각했죠. 담임선생님이 저를 차별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지만 친구들에게 그랬듯, 선생님께도 거짓된 착한 모습을 보여야만 했죠.

먹다 남은 음식은 즐겁지 않았어요

하지만 먹다 남은 음식을 준다고 해서 절대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무거나 잘 먹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행동을 하는 선생님들은 초등학교 담임 여섯 분 중 두 명이나 됐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건 약과였습니다. 반에는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와 제가 똑같은 잘못을 했습니다. 물론 날짜는 다르고요. 청소하는 걸 까먹고 집에 갔다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잘못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유난히 저에게만 인상을 쓰던 선생님들이 기억나네요.

이런 차별은 큰 충격을 줬습니다.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 하구요. 선생님조차 믿고 이야기할 상대가 아니었던 겁니다. 저는 잘못을 하지 않아야만 하는 아이가 됐습니다. 지금도 시간, 물건에 대한 강박감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형성된 것이 확실합니다. 선생님의 성함, 준비물을 놓고 갔을 때 그 선생님이 짓던 표정을 모두 기억합니다. 그분들은 저를 볼 때 무언가 더러운 것을 보듯이 바라봤지요.

상처만 준 태권도

초등학교 때 저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멋있어 보였거든요. 태권도 도장엔 사범님과 관장님이 있었습니다. 사범님은 차별의 끝을 보여줬습니다. 결석할 경우 혼이 나기도 했는데, 사범님이 귀여워하는 아담한 아이에게는 결석하지 말라는 웃음의 충고가, 저에겐 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6년 정도 태권도를 다니는 동안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됐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태권도를 그만두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살을 빼기 바라셨으니까요. 부모님에게 몹시 어렵게, 솔직하게 말했던 것이 5학년 정도였던 것 같네요. 태권도는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상처만 남겨준 채로.

수영… 어느 날의 집단 촬영

이후 저는 부모님의 권유로 수영을 배우러 다니게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수영을 좋아했습니다. 물 안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것이 좋았고 물의 촉감도 아주 좋았습니다. 조명과 물이 만나면 아주 예쁘단 생각도 해서 하라는 수영은 안 하고 물에 반쯤 담긴 손이나 팔을 한참이나 바라보곤 했습니다.

이는 생각이 짧은 결정이었습니다. 수영복을 입으면 제 몸이 다 드러나니까요. 그래도 수영은 열심히, 재미있게 다녔고 선생님들도 뚱뚱한 저를 특별히 차별하진 않았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고도비만인 수강생이 다른 운동보다는 많았죠. 수영 자체도 즐거웠습니다. 모든 영법을 다 배우고도 계속 수영학원에 다닐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마치고 먹는 컵라면도 맛있었고요. 그런데 피고용자인 선생님 말고 수영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생각은 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고도비만인 친구들만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은 아마 비포&애프터(before&after) 용도로 사용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이 사진이 해당 센터의 광고로 사용되진 않았어요. 제가 아닌 다른 고도비만 친구의 부모님이 항의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어떤 사과를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동물원” “돼지농장”…… 평범하게 사는 꿈

당시의 저에게는 사진이 걸리고, 아니고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도중의 저를 바라보며 짓던 사람들의 표정이 중요했죠. 사진을 찍는 선생님도 웃고, 같이 수영을 배우는 친구들도 저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제가 볼 때 제 몸과 다를 바 없는 일부 아주머니들은 저희를 보며 ‘동물원’, ‘돼지농장’ 등의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그때 느꼈습니다. ‘뚱뚱한 것은 죄다’라는 생각을 넘어 ‘내가 인간이 아니고 동물이구나. 돼지구나’라는 것을요.

이때(중 2 정도) 이후 저는 5년이 넘도록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숨었습니다. 가족과 있을 때를 빼면 별로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네요.

그때부터 제 소원은 ‘평범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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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총 4부작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저는 현재 고도비만이 아닌 정상 체중(혹은 약간 미달)입니다. 지속해서 짐(gym; 헬스장)에 다니거나 닭가슴살 다이어트 등을 해본 적은 없고요. 제 나름의 다이어트법을 개발해서 ‘억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책을 내라는 주변 권유도 있지만 잘생겼거나, 몸짱도 아닌지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도 고도비만의 감성을 그대로 갖고 있고요.

고도비만으로 괴로워하시는 분이 있다면(의지가 있다면) 페이스북으로 쪽지 주시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뭐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대가는 당연히 없습니다. 도와드릴 것이 없다면 이야기라도 들어드리겠습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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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저도 어렸을 때 부터 비만이라서 ‘뚱뚱하니깐’이란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보시는 분들을 많이 봐왔네요. 뚱뚱하다보니 땀이 많이나서 자주 씻어도 냄세가 났었는데 그걸 가지고 더럽다고 하고 꼭 음식도 제가 있다는 이유로 욕심내서 과하게 시켜서 결국 제가 다먹었었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 위는 ‘적당히’의 감을 못잡고 계속 늘어나기만 했죠. 솔직히 그 때 남은 음식을 안먹었으면 지금 10kg은 날씬하다고 생각 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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