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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box]

제1차 세계 대전 때 일이다. 영국이 전면적으로 전쟁에 가담하다 보니, 전시물자 공급이 문제였다. 총동원령을 내려도 부족현상은 계속되었다. 초과근로도 제약 없이 늘리고, 관련 예산지원까지 해주었다. 게다가 전쟁 중이니 애국주의 열기가 대단했다. 그런데도 물량은 계속 부족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정부는 버논(Vernon)이 이끄는 연구팀을 공장에 보내서 그 이유를 분석하게 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노동자는 초과근로가 생기자, 일의 양을 자동으로 조정했다.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노동자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다. 애국주의 구호가 난무하는 공장에서 스스로는 전쟁에 “봉사”한다고 믿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생산량이 노동시간 증가한 만큼 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생산성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노동자 개인에게도 고달픈 것이 바로 장시간 노동이다.

영화 [모던 타임스]의 한 장면
영화 [모던 타임스]의 한 장면. ©Charles Chaplin Productions
물론 이런 무의식적 조정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생산과정이 자동화되어 노동자 개인이 작업량을 조정할 수 없으면, [모던 타임스]의 챨리 채플린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찰리도 공장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났구나). 자동화가 한창 도입되기 시작했던 1920년대 미국의 자동차 공장에서는, 창창한 나이 40세가 되면 퇴직이었다. 회사 압력도 있지만, 노동자가 물리적으로 버틸 재간이 없다.

2013년 11월 30일 직업능력개발연구원(KRIVET)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냈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성도 떨어지고, 의욕도 떨어지고, 숙련향상 의지도 떨어진다. 그리고 틈틈이 쉴 궁리를 하게 된다. ‘땡땡이’를 치는 게 아니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제조업에서 장시간 초과근로의 영향

그럼, 이렇게 누구에게도 별달리 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보고서는 ‘경영 요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에둘러 한 얘기다. 나는 생산적 효율성 문제라기보다는 ‘관성’의 문제라는 결론으로 해석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기업의 자발성에만 의존한 방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역사적으로 봐도, 장시간 노동 축소는 대부분 사회적 압력 때문이었다. 법이 중요하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노동시간 단축 반대론자 중에는 ‘노동자가 게으르다, 더 열심히 뛸 때다,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정책적으로는 대개 ‘노동시간 단축 신중론’으로 연결된다. 역설적이게도, 그분들의 걱정은 그들이 반대하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꽤 해결된다. 그러니 걱정 접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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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한국이 OECD국가 중에서 근로시간 최장이면서도 노동생산성이 바닥을 긴다는 뉴스가 매년 나오는데도 여태 변화가 없는 건 분명 기업을 압박해야 할 국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소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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