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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오늘은 마켓바스켓(Market Basket)이라는 미국 동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슈퍼마켓 체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00년 전 10여 평의 작은 식료품점으로 시작한 마켓바스켓은 오늘날 75개의 매장에서 25,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연 매출 5조 원의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특유의 기업 문화에 힘입어 일군 성과였다.

마켓 바스켓

흔한 경영권 분쟁 

2014년 무렵, 언제까지나 순항할 것만 같던 이 유서 깊은 회사에도 위기의 파도가 불어닥쳤다. 당시 마켓바스켓의 최고경영자인 아서 T. 디물러스(Arthur T. DeMoulas)는 그의 사촌 아서 S. 디물러스(Arthur S. DeMoulas)로부터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최고경영자 아서 T. 디물러스는 마켓바스켓 창업자의 후손이다. 그는 평직원으로 마켓바스켓에 입사한 후 보통 직원들과 똑같이 40년을 근속한다. 매대 정리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가장 궂은 일부터 하나하나 익혀나간다.

한편, 아서 S. 디물러스도 창업자의 후손이다. 그는 삶은 우리나라의 대기업 2세, 3세의 그것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그는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는다. 아서 S. 디물러스는 물려받은 재산을 토대로 해외 유학을 다녀오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Arthur T. Demoulas (left) and Arthur S. Demoulas. (출처: bostonglobe.com) https://www.bostonglobe.com/business/2016/05/27/the-demoulas-cousins-are-back-new-lawsuit-emerges-market-basket-saga/3wyW7gxQDPJQGc9h1fPG1O/story.html
아서 T. 디물러스(왼쪽)와 아서 S. 디물러스. (출처: bostonglobe.com)

그러던 중, 아서 S.는 가족기업인 마켓바스켓의 경영권에 눈독을 들인다.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지분을 확보한다. 결국, 아서 S. 디물러스 측의 지분이 50.5%에 이른다. 그는 곧 49.5%의 지분을 보유한 아서 T. 디물러스로부터 마켓바스켓의 경영권을 빼앗는다.

경영권 방어에 실패한 아서 T. 디물러스는 마켓바스켓에서 해고된다. 아서 T. 디물러스가 떠난 자리에는 아서 S. 디물러스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경영인들이 투입된다.

여기까지는 흔하디흔한 가족 기업의 경영권 분쟁 이야기다. ‘지분 방어를 하지 못해서 경영권을 빼앗긴다.’라는 지극히 진부한 이야기다. ‘재벌 걱정은 할 게 아니’라는 세간의 푸념처럼, 이 이야기만 두고 보면 경영권을 빼앗긴 아서 T. 디물러스에게도 그다지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이례적인 파업,”아서 T.를 복직시켜라!” 

마켓바스켓의 임직원 수천 명이 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선다. 200만 명의 고객들은 그 파업에 지지하며 불매운동을 시작한다. 심지어 납품업자들도 파업을 지지하며 상품공급을 중단한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 아서 T. 디물러스를 다시 최고경영자로 복직시키라는 것이다.

우리 CEO는 아서 T.다! (출처: washingtonpost.com)https://www.washingtonpost.com/business/on-small-business/small-business-advice-lessons-in-loyalty-from-the-market-basket-protests/2014/10/06/84f7c534-4d6f-11e4-babe-e91da079cb8a_story.html?utm_term=.3684d9e0293a
“아서 T.가 우리의 CEO다!” (출처: washingtonpost.com)

이제껏 당신이 주변에서 접한 파업과는 아주 다르지 않은가. 당신이 지금까지 뉴스에서 보아온 파업은 어떠했는가. 우선 직원들이 기업의 경영자에게 요구사항을 전한다. 예를 들면, 임금인상, 근무환경 개선 등이 있을 수 있겠다. 만일 그 요구사항이 거부되면 그 다음 단계에서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 파업이다.

요컨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파업이란 기업의 경영자와 그 반대편에서 선 직원들의 싸움이다. 같은 맥락에서 소비자들은 기업을 대상으로 요구조건을 내걸고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나마 직원이나 소비자는 이처럼 싸울 무기라도 있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는 납품업자들은 부당한 조건에도 끌려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영자를 지키기 위한 파업이라니,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마켓바스켓 이야기] [footnote]원제 : We Are Market Basket | 대니얼 코션, 그랜트 웰커 지음 | 윤태경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05월 27일 출간[/footnote]는 당시 마켓바스켓 직원들의 파업 안팎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 대니얼 코션(Daniel Korschun)과 그랜트 웰커(Grant Welker)는 당시 파업 한복판에 있던 직원과 소비자들 그리고 납품업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들과 인터뷰를 하며 어떻게 이런 이례적인 파업이 가능했는지 살펴본다.

마켓바스켓

파업과 불매운동, 그리고 납품거부 등의 일련의 행동에 대해서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하나의 핵심으로 추릴 수 있다. 이것들은 결국 해고된 아서 T. 디물러스에 대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나타낸다.

일개 기업 경영자에 대한 지역 사회의 강력한 지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마켓바스켓 이야기]에서는 그것이 바로 아서 T. 디물러스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서 T. 디물러스의 경영철학’이 어떤 것인지는 다음의 사례에 잘 나타난다.

‘소비자’에게 vs. ‘주주’에게 

2014년 무렵 마켓바스켓은 전 품목에 걸쳐 4%의 할인을 시행했다. 물품을 구입하면 영수증에 ‘4% 할인된 OO만큼 절약했습니다.’ 라고 찍혀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처음부터 가격을 그만큼 내리면 되지, 가격은 그대로 두고 꼭 이렇게 할인하는 티를 낸다고, 이게 다 상술이라고 불평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4% 할인에는 사연이 있었다. 그것은 아서 T. 디물러스가 이사회와 싸운 결과였다. “작년에 난 순수익을 소비자에게 환원해주자”고 주장한 아서 T. 디물러스, 반면에 “순수익은 주주들에게 배당해야지 왜 소비자에게 주냐”고 주장한 아서 S. 디물러스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 둘 사이에서 치열한 힘겨루기가 있었다.

아서 T. 디물러스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은 일하는 직원들이 있고, 쇼핑하는 소비자들이 있으니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이 생기면 직원과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4% 할인은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준다는 아서 T. 디물러스 본인이 한 말의 실천이었다.

마켓바스켓

반면, 그의 사촌 아서 S. 디물러스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은 주주들의 것이다. 따라서 수익이 나면 주주들이 갖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그는 아서 T. 디물러스를 해고한 다음에 제일 먼저 3억 달러를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여기서는 직원과 소비자에 대한 것만을 다루었지만, 납품업자에 대한 자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직원과 고객 그리고 납품업자를 ‘사람’으로 바라보는 경영자 아서 T. 디물러스와 ‘숫자’으로 바라보는 경영자 아서 S. 디물러스 간에는 경영철학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 둘 사이에 경영권을 둔 싸움이 일어났다. 그러자 직원과 고객, 그리고 납품업자는 자신들을 ‘사람’으로 바라본 아서 T. 디물러스의 편에서 싸웠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파업은 어떻게 됐을까 

기업의 경영자, 직원, 고객 그리고 납품업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는 이해당사자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서 T. 디물러스는 이 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대우했다. 회계장부의 ‘숫자’가 아니라.

마켓바스켓 이야기는 기업의 경영자가 직원, 고객 그리고 납품업자를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사람’ 대우를 받은 이들은 위기에 빠진 경영자의 편에서 그들의 힘이 되어준다.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 당연한 명제임에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사실을 잊고 지내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람’을 ‘숫자’로 착각하며 살아가는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wearemarketbasket.com http://wearemarketbask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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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직 마켓바스켓 파업의 결론을 말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일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직원들의 파업과 고객들의 불매운동 그리고 납품업자의 납품거부는 지역 사회를 넘어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신문과 방송을 통한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시민들은 길거리에서 파업 시위 중인 직원들에게 먹을거리와 후원금을 보내며 힘을 보탰다.

정치권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쇄도했고, 이는 곧 아서 S. 디물러스에 대한 퇴진 압박으로 이어졌다. 결국, 아서 S. 디물러스는 경영권을 포기한다. 아서 S. 디물러스가 외부에서 영입한 경영자들은 서둘러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난다. 아서 T. 디물러스는 직원들과 소비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최고경영자로 복직한다. 그렇게 해피앤딩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우리는 사람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고개를 돌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봤다. 2014년 미국에서 2017년 대한민국으로 시선을 옮겨보았다. 마켓바스켓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도 마켓바스켓처럼 여러 지점을 거느린 거대 유통 기업이 몇 군데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가족기업으로 출발했다는 점마저 마켓바스켓과 닮았다.

그런데 만일, 우리나라의 유통 기업에서 가족끼리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흘러갈까. 마켓바스켓처럼 직원들이 경영자를 지키기 위한 파업에 나설까. 경영자를 돌려달라며 고객들이 불매운동을 벌일까. 혹은 납품업자들이 납품을 거부하며 버틸까.

그 답은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의 그 기업이 평소에 직원, 고객, 그리고 납품업자를 ‘숫자’로 대했는지 아니면 ‘사람’으로 대했는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숫자’로 보는 기업들은 위기의 순간에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다.

마켓바스켓의 원제는 ‘We Are Market Basket’이다. 그들의 시위 구호이기도 했던 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는 마켓바스켓이다’가 된다. 이 구호를 통해 그들이 진짜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사람이다’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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