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모 편의점 관계자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도시락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제가 고민하는 부분과 많이 닿아 있어서, 오랜만에 다이어리 꺼내어 ‘휘리릭~’ 필기까지 하면서 정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쌀 가공 소비 시장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정리됐습니다.
잘 알다시피,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2015년)과 비교해 올해 판매량이 두 배로 오를 정도입니다. 성장률 관점에서 편의점 내에서 도시락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 것은 ‘디저트’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 그 의미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은 인근 외식업체와의 카테고리 간 경쟁을 유발합니다. 또 편의점 디저트 (조각 케이크, 마카롱, 에클레어, 쁘띠첼 등)의 성장은 인근 베이커리, 카페와의 카테고리 간 경쟁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편의점은 지금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있습니다. 외식체인 가맹점들은 줄줄이 문 닫고, 베이커리 체인과 카페 체인도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소매점에선 유일하게 편의점만이 성장하는 상황이죠.
한두 해 전만 하더라도 뉴스에서는 편의점 너무 힘들고, 점주들이 노예 생활을 하네, 착취를 당하네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1년 만에 국내 편의점 수는 11%가 늘었고, 점당 영업이익은 작년 대비 20% 정도의 성장을 보입니다. 현재 국내 소매업에서 이런 성장을 보이는 곳은 ‘결.코.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급격한 성장입니다.
도시락은 작년 대비 10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모 편의점 업체는 작년 도시락 제조를 위한 쌀 구매량이 6,600톤이었는데, 올해는 10,000톤이 확실히 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쌀 만 톤이라고 하면 인구 16만의 안동시 시민이 1년 동안 소비하는 전체 쌀과 동일한 양입니다. 이와 같은 막대한 양을 편의점 업체 하나가 도시락을 만드는 데 씁니다.
편의점 도시락은 ‘더’ 성장할 것인가
그런데 이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앞으로 더, 훨씬 더 성장할 것 같습니다. 1인 가구가 늘고, 혼밥족이 늘고 하는 당연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도시락 가격
첫 번째, 소비자들의 도시락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3,000원대에서 4,000원대를 이미 넘어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5,000원대로 빠르게 향하고 있습니다. GS25는 무려 만 원짜리 장어 도시락을 내놓을 정도입니다.
즉, 가성비로 식당대신에 편의점 도시락으로 가던 사람들이 이제 강한 충성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죠. 2016년엔 5,000원 내외가 일반 직장인들이 돈내고 먹을 수 있는 한계선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2,000원부터 15,000원까지 가는 다양한 도시락 제품 포트폴리오가 매대를 차지하게 될겁니다.
2. 현재 도시락의 매출 비중은 단 7%
두 번째 근거는 일본 사례를 보며 판단한 부분입니다. 일본은 편의점 매출에서 도시락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정도입니다. 2016년 현재 한국의 편의점 매출에서 도시락이 차지하는 비중은? 놀랍게도 단지 7%밖에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편의점에서 더 다양한 제품이 나오게 되면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은 분명히 더욱 빨라지게 될 겁니다.
3. 앞으로 ‘상온 유통’이 가능하다면?
세 번째, 국내 편의점 도시락은 법으로 반드시 냉장 상태로 유통하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냉장 유통이 대세일 겁니다. 그런데 만약 편의점 내 상온 도시락의 유통을 허가한다면? 소비자가 편의점에서 따뜻한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다면?
편의점은 더 쉽게 가격을 올릴 수 있고, 인근의 그렇고 그런 외식업체들은 더욱 힘들어지게 될 겁니다. 일본은 편의점 내 상온 도시락 유통이 가능합니다. 이 규제가 국내에서 풀리면 도시락 매출은 당연히 더 올라가겠지요.
4. 아침 식사라는 ‘블루오션’
네 번째, 아직 아침 식사 쪽이 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아침 식사 니즈가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잘 모릅니다. 적어도 일반적인 차가운 도시락은 아니라는 것 하나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아침 식사’를 두고 새로운 형태의 도시락 개발에 꽤 많은 시도가 있을 겁니다. 이 시장은 상당히 주목해 볼 시장입니다.
편의점 도시락 성장이 초래할 변화
자, 이렇게 편의점 도시락이 성장하게 되면, 어떤 다른 변화를 볼 수 있을까요?
1. 외식업체는 더 힘들어진다
첫째, 인근 외식업체들은 더 힘들어 질 겁니다. 그냥 적당한 가격으로 적당한 품질로 빽빽한 홀에서 음식 판매하는 분식점들은 다수 나가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편의점이 욕심을 부리면서 2~3천 원대 도시락의 품질을 낮추고, 고가 도시락으로 빨리 이동해 준다면, 오히려 인근의 외식업체들엔 숨통이 트일 수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냥 적당한 가격과 품질의 빽빽한 홀의 분식점들은 가망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2. 제과점의 반격
두 번째 변화는 베이커리들도 도시락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는 겁니다. 이미 파리크라상은 리조또 도시락을 출시해서 점심시간에 판매합니다. 베이커리들은 편의점 디저트의 성장에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조또, 빠에야, 잠발라야, 브리토 등의 서양식 쌀 요리를 바탕으로 편의점을 역으로 공격해 나갈 겁니다. 한편, 카페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면서 도시락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될 겁니다.
3. 쌀 소비 감소세 둔화
세 번째, 쌀 소비는 일시적으로 증가하겠지만, 쌀 소비가 감소하는 대세를 완전히 바꾸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감소세를 상당히 둔화시킬 겁니다. 여기엔 가정이 하나 붙는데요. 글로벌 곡물 가격이 올라가면, 오히려 국내 쌀 소비 감소 추세는 더 둔화할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 쌀의 대체재는 고기이고, 곡물 가격이 올라가면 고기 가격이 올라가고, 그러면 고기를 덜 먹고, 쌀을 조금 더 먹게 될 겁니다.
4. 반찬 공장의 성장
네 번째, 반찬 공장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단품 중심의 ‘한 그릇 편의식'(HMR)[footnote]Home Meal Replacement[/footnote]의 성장은 가정에서 반찬 소비를 줄였습니다. 가정에서 반찬을 안 사 먹게 되죠. 그런데 도시락이 발전하면서, 반찬 공장의 공장 가동율이 엄청 올라가고 있을 겁니다.
예전에는 반찬 공장의 주요 고객이 마트였으나, 이제는 반찬 공장의 주요 고객은 편의점이 된 거죠. 저는 여윳돈만 있다면 반찬 공장에 투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리고 도시락 박스 제조 공장에도 투자해야겠습니다.
5. 편의점 내 육가공품·유제품의 몫이 축소할 가능성
다섯 번째, 이걸 예측하고 싶은데, 예측이 잘 안 되네요. 도시락의 매대 점유율이 늘면, 분명히 매대의 다른 무언가는 줄어 들겁니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뭐가 줄어들까요? 저는 육가공업체가 가공하여 직접 유통하는 육가공품과 유제품의 몫이 줄어든다는 것에 한 표 던지겠습니다.